행복한 사람(07-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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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5,692회 작성일 07-04-29 16:55본문
행복한 사람
빌1:12~18
사르트르는, ‘인생은 B로 시작하여 D로 끝난다.’고 했습니다. B는 출생/탄생을 뜻하는 Birth의 알파벳 첫 글자이고, D는 죽음을 뜻하는 Death의 첫 글자입니다. 이 말은 모든 사람은 태어난 순간부터 한시도 멈추지 않고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즉 인간은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하루를 살고, 한달을 살고, 일년을 살았다고 하는 것은 그만큼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르트르라고 하는 철학자가 본 인생이란 한마디로 절망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B와 D사이에 C를 넣어 두셨습니다. 이 C는 선택을 뜻하는 Choice와 기회를 뜻하는 Chance, 변화를 뜻하는 Change입니다. 그리고 이 선택과 기회, 변화의 주체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Christ입니다. 인생은 Choice(선택)와 Chance(기회)를 사이에 두고 죽음(Death)이라고 하는 종착역을 향해 달리고 있는 존재입니다. 주어진 기회를 어떻게 선용하여 선택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질, 의미, 가치, 방향과 목적이 변화(Change)됩니다. 이렇게 죽음으로 달려가는 삶이 생명으로, 절망적인 인생이 소망으로 변화되기 위해선 구원의 기회를 잘 붙잡아야 하고, 구원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Christ)를 선택해야 합니다.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Christ)를 선택(Choice)하면 죽음(Death)을 향해 달리던 우리의 삶이 천국에 대한 소망/꿈(Dream)을 품고 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Christ)가 없는 삶은 죽음(Death)이지만 그리스도를 선택한 삶은 소망(Dream)이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Christ)이 없는 삶은 B에서 D로 이어지는 절망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선택하면 소망 가득한 행복한 삶이 됩니다. 그러므로 행복이란 삶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내 마음의 왕좌에 모시고 사는 생활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과 더불어 사는 삶이 행복한 삶이요, 또한 이렇게 사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 바울은 신약성서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사람으로, 주님 안에서 주님과 더불어 행복한 삶을 살았던 행복한 사람입니다. 본문은 이와 같은 바울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지금 바울은 로마 시위대 감옥에 갇혀서 답답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나는 지금의 이 상황과 환경을 기뻐한다. 앞으로도 환경과 상황이 어떻게 변하든 관계없이 기뻐하겠다.’는 뜻입니다. 이는 참으로 마음이 기쁘고 행복한 사람이 아니고는 이런 고백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시간 본문에 나타난 사도 바울의 삶을 통해 행복한 사람, 행복한 삶에 대하여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행복한 사람은 감사가 삶의 태도입니다.
‘암’은 현대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들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요즘 많은 사람들이 암보다 더 무서운 질병을 앓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감사 불감증’입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감사하지 않고, 학생이 교사에게 감사하지 않고, 직원이 고용주에게 감사하지 않습니다. 도움을 받고 은혜를 입어도 감사를 느끼지 못한 것. 이것이 현대인의 심각한 정신적인 질병입니다. 감사를 느끼지 못해서 불만족하고, 불행하다고 느끼게 되면, 마음이 병들게 되고, 결국 육신까지 병들기가 쉽습니다.
잃어버린 감사를 되찾을 때, 감사로 인해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파스칼(프, 1623~1662)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는 사람은 최고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감사하며 살 때 최고의 축복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 말이 하나님의 귀에 들린 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는 분(민14:28, 마12:36)이시기 때문입니다. 노숙자에서 억만장자가 된 일본의 성공학자인 ‘스기자키 히토시’는 「부자 인생, 가난한 인생」이라는 책에서, ‘억만장자가 되는 플러스 사고’가 있는데, 그 플러스 사고가 바로 ‘감사’라고 했습니다. 행복한 삶, 행복한 가정, 행복한 교회, 행복한 나라, 번영하는 산업은 감사생활에 있습니다. 스펄젼(영, 1834~1892) 목사는 “불행할 때 감사하면 불행이 끝나고, 형통할 때 감사하면 형통이 더욱 연장된다.”고 했습니다.
감사는 환경과 상황을 초월한 삶의 태도입니다. 행복 또한 이런 사람의 것입니다. 바울이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지금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육신적으로 몹시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바울은 감사를 잃지 않았습니다. 본문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바울의 수감생활이 길어지고 석방이 불투명해지자 낙심하여 그를 떠나는 사람들이 생기고, 반면에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그 세력을 넓혀가고 있었습니다. 바울의 제자들이 이를 안타깝게 생각하여 그를 찾아와서 보고를 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바울의 대답이 오늘 본문 내용입니다.
오히려 바울은 여기서 자신의 수감생활이 복음의 진보가 되었다(12)고 말하면서, 그 이유를 세 가지로 들어서 감사합니다. 첫째는 자신의 수감생활이 로마 고위층 전도의 기회가 되었다(13)는 것입니다. 지금 바울은 미결수로 로마 시위대(로마 궁궐 수비대로 약 9천명의 병력 주둔) 안에 갇혀 있으나 자유롭게 사람들을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 수감생활을 시위대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전도의 기회로 선용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위대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사람들이 주로 누구겠습니까? 평민들이겠습니까? 로마 고위층 사람들이겠습니까? 고위층 사람들이지요! 바울의 수감생활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래서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다른 신자들이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14)는 것입니다. 물론 낙심한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감생활 중에도 복음을 전파하는 바울의 모습을 통해 복음전파에 대한 강한 도전을 받게 된 것입니다. 아울러 바울이 이렇게 수감되어 있으니 자유로운 자신들이 그의 사역을 계속 이어가야 한다는 복음전파에 대한 책임감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로써 복음의 진보를 가져오게 되었으니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바울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열심입니다(17). 이들은 바울이 수감되어 있는 것이 자신들의 세력을 확장시고 바울을 압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 바울을 고통스럽게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동기는 좋지 않지만)그래서 이들은 열심히 전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역시도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니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바울의 삶의 태도는 다음의 성경구절로 결론지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을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이는 바울의 신앙고백이자, 그의 인생관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모든 사건이나 환경을 이 믿음과 인생관으로 바라보고 해석했습니다. 때문에 그는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감사함으로 받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모든 일에 감사한 사람은 항상 그 마음이 천국이고, 어떤 환경에 있든지 천국을 누리고 사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사람이 행복한 사람인 것입니다.
2. 행복한 사람은 수용성의 폭이 큽니다.
마음이 좁고 시기심이 많은 한 젊은 제자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스승이 제자를 불러 컵을 하나 주면서 말했습니다.
"이 컵에 물을 떠오너라."
제자가 물을 떠오자, 스승이 소금 한 웅 큼을 물에 뿌린 뒤, 그 물을 마시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물맛이 어떠냐?"
"매우 짭니다."
제자는 얼굴을 찌푸리며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스승은 제자를 데리고 호수로 갔습니다. 이번엔 호수에 소금 한 웅 큼을 뿌렸습니다. 그리고 제자에게 호수 물을 떠 마시게 하고, 또 물었습니다.
"짠 맛이 느껴지느냐?"
"아니오."
제자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하자, 스승이 말했습니다.
"컵의 물에 뿌린 소금과 호수에 뿌린 소금은 같은 종류, 같은 양이다. 그러나 컵의 물과 호수의 물은 그 맛이 각각 다르게 느껴졌다. 그 이유는 물의 양 때문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컵의 물처럼 좁은 마음을 가진 사람에겐 호수 같은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것을 매우 크고 심각하게 느끼며 괴로워하는 것이다. 그러니 넓은 마음을 갖도록 하라."
지난 수요일 저녁예배에서 ‘시기와 질투’의 악마성에 대하여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시기와 질투는 한 개인이 가지고 있는 모든 가능성과 영적 생활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마귀의 고등계책입니다. 시기와 질투에 사로잡힌 순간 우리는 감사와 기쁨을 잃게 되고, 행복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기와 질투 역시 마음의 문제입니다. 좁은 마음, 편협하고 굳은 마음, 작은 마음에서 옵니다. 한마디로 수용성의 부족에서 온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소유한 사람의 특징은 항상 비교의식에 사로잡혀 살고, 모든 관계를 경쟁적으로 바라봅니다. 이런 비교의식과 경쟁의식은 시기와 질투를 낳기 마련입니다. 이 시기와 질투가 있는 한 우리의 마음은 항상 전쟁터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엔 감사도 평화도 행복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키워야 합니다. 크고 넓은 마음, 높고 깊은 마음, 그래서 수용성의 폭이 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행복은 이런 마음에 있습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반대자들이 투기와 분쟁(15)으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바울을 압도하고 바울에게 고통을 주기 위한 나쁜 동기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는 저들의 마음이 좁고 작아서 비교의식과 경쟁의식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바울은 저들의 태도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오히려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기뻐하리라.”(18).
행복은 마음의 문제입니다. 크고 넓은 마음, 높고 깊은 마음, 수용성의 폭이 큰 마음에 있습니다. 바울처럼, 예수님의 마음처럼 온 세상을 품고 원수까지도 용납할 수 있는 크고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마음을 주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고, 행복한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바울은 비록 그 몸이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 있었지만 그 마음은 천국을 누리며 사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때문에 그는 불편한 수감생활 중에도 감사를 잃지 않았던 것이고, 자신에게 고통을 주었던 반대자들까지도 품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자신의 불행을 환경과 주변 사람들 탓으로 돌립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내 마음과 태도 때문입니다. 되어진 모든 일들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지 못하는 불신앙적인 태도와 수용성이 부족한 좁은 마음, 편협하고 굳은 마음, 작은 마음 때문입니다. 바울처럼 모든 것을 믿음으로 받는 감사의 태도와 수용성의 폭이 높고 깊고 넓은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행복한 삶, 행복한 사람이 되는 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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