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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한 나의 그릇(07-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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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6,473회 작성일 07-03-13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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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한 나의 그릇
행9:10~17

한 미술가가 숱한 고난 끝에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명성을 얻고 나니 사랑하는 아내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슬픔과 절망을 견딜 수 없어 술로 세월을 보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의 전도를 받고 새 삶을 시작했는데, 그가 바로 렘브란트입니다. 나중에 한 미술학도가 렘브란트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어떻게 하면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습니까?” 그때 렘브란트는 대답했습니다. “지금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 되네.” 그렇습니다. 재능은 차후의 문제이고 지금 당장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그림을 잘 그리는 비결입니다.

인생성공의 비결도 마찬가집니다. 지금부터 무엇이든 시작하면 됩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싶으면 지금부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면 되고, 낙심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면 지금부터 주님을 바라보고 소망을 품으면 됩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지금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어느 누구라도 하나님 앞에 멋있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힘들면 살아 계신 하나님께 기도하면 됩니다. 고통스럽고 어려우면 찬양하면 됩니다. 기도하고 찬양하면 먼저 내가 변화됩니다. 그 다음에는 환경이 변화되고, 문제가 신기하게 풀립니다. 때로 문제가 풀리지 않아도 그 문제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생기게 됩니다. 결국 우리의 문제는 환경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이고, 믿음의 문제입니다.

왜 미군이 압도적인 무기를 가지고도 월남전에서 패배했습니까? 월맹군과의 심리전에서 패배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군은 이것을 역이용했습니다. “따이한에게 붙잡히면 사시미가 된다!” 그래서 따이한이란 말만 들어도 월맹군들이 두려움에 떨었다고 합니다.

살면서 사단은 끊임없이 우리의 마음을 흔듭니다. 두렵게 불안하게 약하게 만듭니다. 하나의 심리전인 샘입니다. 그때 우리는 사단의 이 심리전에 말려들지 않고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오히려 이런 사단의 공격을 역이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사단아! 네가 우리 가정, 우리 자녀, 우리 교회를 건드리면 너는 사시미가 된다!” 우리는 약한 모습을 보이지 말고, 심리적인 패배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대처해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의 모습입니다. 이런 담대한 믿음이 어디서 나오느냐. 그것은 내가 주님께 쓰임받고 있다는 확신에서 나옵니다.

미국 워싱턴에 벨링헴 감리교회가 있습니다. 이 교회 예배당에 들어서면 신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포스터가 있는데, 그 포스터에는 간결하고도 깊은 감명을 주는 네 가지 말들이 붙어 있습니다. 그 내용은 Melt me, Mold me, Fill me, Use me입니다. 담임 목사인 윌리엄 버니는 이 내용들은 그릇의 과정이고, 또한 그릇의 역사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곧 신자들의 믿음의 과정이요, 또한 믿음의 역사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이 말이 너무 좋아서, 신앙 성숙과 주님께 쓰임받는 인생이 되기 위한 우리교회 표어로 삼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시간 이 네 단어를 중심으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Melt me! 나를 녹이소서.  
아마 가마터를 가보신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것이 흙으로 만든 것이든 철로 만든 것이든 제일 먼저 그 재료들을 녹인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원석 그대로는 원하는 그릇이나 다른 도구를 만들 수가 없습니다. 불로 녹여서 모든 불순물을 제거한 다음, 그것으로 원하는 그릇을 만듭니다. 그러므로 철저하게 녹이지 않고는 어떠한 그릇도 만들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서 성숙한 사람이 되고, 쓰임받는 인생이 되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낮아지고, 부서지고, 깨지고, 철저하게 녹아져야 합니다. 부서지고 깨져서 철저하게 녹지 않으면 참된 신자가 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를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소금을 보십시오. 소금은 녹아야만 소금의 역할을 할 수가 있습니다. 여기에 한 가마니의 소금이 있어도 녹지 않으면 단 한 컵의 물도 짜게 할 수가 없습니다. 단 한 마리의 생선도 썩는 것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또한 주님께 쓰임받는 인생이 되는 비결입니다. 구약의 5대 제사 중에 소제라는 제사가 있습니다. 유일하게 피를 흘리지 않고 곡물로만 드리는 제사입니다. 떡이 주요 제물인데, 이 떡을 만드는 가루를 히브리어로 ‘쏘레스’라고 합니다. 즉 ‘고운가루’라는 뜻입니다. 주님께 향기로운 제물이 되는 삶, 주님께 쓰임받는 삶은 ‘쏘레스’처럼 완전히 부서지고 녹는데 있습니다(성전에 사용되는 기름도 마찬가지). 그러므로 우리가 성숙한 신앙인, 주님께 쓰임받은 인생이 되려면, 흙처럼 쇠처럼 소금처럼 녹아져야 합니다. 완악한 것들이 녹아져야 하고, 교만한 것들이 부서져야 하고, 육체적 욕망과 자아가 깨져야 합니다. 죄악들이 무너져야 합니다. 남아있는 건물 위에 새로운 집을 다시 지울 수 없습니다. 완전히 무너뜨리고 깨끗이 철거한 다음 새로운 집을 지을 수가 있습니다. 철저하게 녹아지지 않고 내 속성이 그대로 있으면서 내가 주님의 그릇이 되기를 원한다고 아무리 소리쳐 외쳐도 우리는 주님의 그릇이 될 수 없습니다.

2. Mold me! 나를 만드소서.
mold란 틀(소조, 주조용의), 거푸집(미장이나 콘크리트 공이 사용하는), 주형(鑄型)이란 뜻입니다. 흙의 경우는 잘 반죽을 하여 도공이 자기 마음대로 원하는 그릇이나 도구를 만듭니다. 그렇지만 쇳물의 경우는 먼저 틀(mold)을 만들고, 그 틀 속에 쇳물을 부어서 그릇이나 도구를 만듭니다. 그러므로 틀을 어떤 형체로 만드느냐에 따라, 그릇(도구)의 종류가 달라진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종의 틀이면 종이 만들어지고, 그릇이면 그릇, 병이나 컵이면 병이나 컵, 칼이면 칼이 됩니다. 아무리 녹였다하더라도 어떠한 틀에 부어 넣지 않으면 그것은 그저 흙이나 쇠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흙과 쇠를 다루는 사람입니다. 결국 그 분의 의지에 따라 그릇의 모양이나 가치가 달라지고, 주형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누구의 손에 들려지냐가 관건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집니다. 삶의 주인이 누구냐, 누가 우리의 삶을 지배하느냐 입니다. 이에 따라 우리 삶의 틀과 운명이 결판나기 때문입니다. 사단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면 우리 삶의 틀은 사단의 모습으로 만들어질 것이고, 사단이 원하는 대로 우리의 삶은 사단의 도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손에 들려지면 주님을 닮은, 주님이 필요로 하는 그릇이나 도구로 만들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삶을 지배하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의 삶을 내어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그 분의 마음대로 우리를 빚으시고, 원하시는 대로 모형을 만드셔서 우리를 만들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은 토기장이시고, 우리는 그 분 손에 들린 보잘것없는 진흙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은 주님 손에 달렸습니다.

3. Fill me! 나를 채우소서.
성경은 사람을 질그릇(고후4:7)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그릇 자체로는 가치도 없고, 볼품도 없는 연약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그리스도라고 하는 보배를 담은 질그릇이라고 합니다. 비록 가치도, 볼품도 없는 연약한 존재 질그릇이지만 보배를 담은 보배그릇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릇의 가치는 그 안에 담긴 내용물에 따라서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질그릇이라도 거기에 보배가 담기면 보배그릇이 되고, 금이나 은으로 만든 그릇이라도 거기에 오물이 담기면 오물 그릇이 됩니다. 밥을 담으면 밥그릇, 물을 담으면 물그릇, 술을 담으면 술그릇이 됩니다. 성경은 우리를 하나님의 전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이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감이란 단어를 매우 좋아합니다. 「여자의 인생은 자신감으로 결정된다.」는 책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자신감은 비행기로 말하면 연료와 같다. 연료가 없으면 비행기가 활주로에서 이륙할 수 없듯, 인생에 있어서 자신감이 없으면 성공할 수 없다.’ 매우 공감이 가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이 자신감이 어디서 올까요? 그것은 자존감에서 옵니다. 자기를 존중히 여기는 데서부터 자신감이 생깁니다. 그리고 이 자존감은 어디서 오느냐?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 확신에서 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늘 자신을 믿고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자기 암시를 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생각은 다릅니다. 성경은 내 안에 있는 그 분에게서 온다고 말씀합니다. 그 분은 보배로우신 그리스도입니다. 왜냐하면 내 가치를 결정하는 분이 그리스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무엇을 채우느냐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것이 우리 인생의 가치와 질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마땅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담은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지난 주일설교에서 말씀 드렸던 대로 예수님의 마음과 삶을 담아야 합니다. 즉 예수님의 낮아지신 겸손한 마음,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신 삶,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삶을 담아야 합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마음과 삶을 담은 우리 마음 그릇에 예수의 향기로 가득 채워야만 합니다. 이 외에도 은혜로, 말씀으로, 기도로, 찬양으로,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4. Use me! 나를 사용하소서.
그릇의 가치를 결정하는 또 하나는 그 쓰임에 있습니다. 좋은 일에 쓰임을 받으면 좋은 그릇이 되고, 나쁜 일에 쓰임을 받으면 나쁜 그릇이 됩니다. 선한 일에 쓰이면 선한 그릇이요, 악한 일에 쓰이면 악한 그릇입니다. 같은 칼이라도 의사가 수술용으로 사용하면 살리는 도구가 되지만 강도가 사람을 죽이는데 사용하면 사람을 죽이는 도구가 됩니다. 그러므로 어디에 무슨 일에 쓰임을 받느냐가 중요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누가 사용하느냐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누가 사용하느냐가 어디에, 무슨 일에 사용하느냐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악한 사람이 사용하면 악한 일에 사용되고, 선한 사람이 사용하면 선한 일에 사용됩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면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시지만 사단이 사용하면 사단의 도구로 불의한 일에 사용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롬6:12~13)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16). 누가 나를 사용하느냐! 참으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주님 손에 붙들려 주님께 쓰임받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성 프랜시스처럼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Melt me, Mold me, Fill me, Use me. 이 과정을 잘 보여준 사람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본문은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장면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잡으러 가다가 도리어 예수님께 붙잡히게 되는 장면입니다. 바리새인으로서, 유대교의 철저한 신봉자로 그의 삶이 완전히 무너지는 순간입니다. 그리하여 복음을 위한 하나님의 택한 그릇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순간입니다. 이 일 이후로 바울은 자신의 모든 것을 오물처럼 버렸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날마다 자신을 죽이는 삶(고전15:31)을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본받는 생활(고전11:1), 그리고 예수님의 향기(고후2:15)를 담아 휘날리며 살든지 죽든지 오직 예수님만을 위하여(롬14:8) 살았습니다.  

나는 얼마 부서지고 녹아졌는가? 누가 내 삶을 지배하여 만들어가고 있는가? 무엇으로 채워졌는가? 그리고 지금 나는 누구에게 사용되어지고 있는가? 항상 이 말들을 생각하며 살아간다면 우리는 주님께 쓰임 받는 훌륭한 그리고 귀한 그릇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처럼 주님 안에서 빛나는 인생, 성공적인 삶을 살 수가 있을 것입니다. Melt me, Mold me, Fill me, Use me. 이 네 가지를 항상 기억합시다. 그리고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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