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성(蘇醒)되지 못한 땅(07-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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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5,466회 작성일 07-01-22 09:46본문
소성(蘇醒)되지 못한 땅
겔47:6~12
영적 목마름
지난 주일 설교 서두에서,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아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소개했습니다. 그것들 외에도, ‘그가 목말라 하는 것이 무엇이냐, 무엇에 대하여 목말라 하는가?’를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명예나 권력과 같은 세상의 부귀영화, 재물이나 일신의 안위 등에 목마른 사람이라면, 그는 분명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빠진 사람일 것입니다. 밤낮으로 나라와 민족의 앞날을 생각하는 사람은 분명 애국자입니다. 또한 복음에 목마르고, 주님의 말씀과 사랑, 주님의 나라와 의에 목마른 사람이라면, 그는 신실한 신자입니다.
어느 탁월한 영업사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판매할 수 있는 큰 건수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가 무척 안타까워하면서 상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말을 물가로 끌고 갈 수는 있지만, 말에게 물을 먹을 수는 없나 봅니다.’ 그러자 그 상사가 다음과 같이 충고를 했습니다. ‘이보게, 자네의 일은 말에게 물을 먹이는 게 아니라 말을 목마르게 하는 것이야!’ 이 말이 너무 멋지지 않습니까? 저는 이것이야말로 곧 세상을 향한 우리 신자와 교회의 사명이라고 생각입니다. 우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에 대하여, 복음에 대하여, 천국과 구원에 대하여 목말라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목이 말라 주님을 찾게 만드는 것이 우리와 교회의 사명입니다. 그리고 그 목마름을 채우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렇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태도입니다. 먼저 우리 자신이 영적 갈증, 영적인 목마름을 가져야 합니다. 예배에 대한, 말씀에 대한, 찬양에 대한, 기도에 대한, 복음에 대한 목마름이 있어야합니다. 우리에게 이런 목마름이 없이는 다른 사람들을 목마르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런 목마름을 가질 수 있을까요? 그것은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공부하고, 찬양을 하고,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릴수록 예배에 대한 목마름이 생기고, 성경을 읽고 공부를 할수록 말씀에 대한 갈증이 생깁니다. 전도를 하다보면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뜨거운 목마름이 일어나 견디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기도나 찬양도 마찬가집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기도에 대한 목마름을 모릅니다. 그러므로 이런 영적 갈증은 영적인 일들을 시도할 때, 경험할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목마름이 있어야 다른 사람도 목마르게 만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장차 회복될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에스겔 선지자의 환상 중 하나입니다. 작은 물줄기가 성전 문지방 밑에서 흘러나와 사방으로 흘러갔습니다. 그것을 자로 일천 척씩(약 500M) 잴 때마다 물의 깊이 변합니다. 처음 일천 척에서는 발목물이 되었고, 무릎 물, 허리 물, 헤엄쳐야 할 물로 변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의 관계를 잘 보여줍니다. 여기서 ‘자’(尺)는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자로 잴수록 물의 깊이가 깊어졌던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수록 하나님의 은혜가 깊어집니다. 발목깊이의 은혜→무릎깊이의 은혜→허리깊이의 은혜→헤엄칠 수 있는 깊이의 은혜. 점점 은혜가 깊어지고 신앙이 깊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은혜가 깊어지고 신앙이 깊어질수록 자기 마음대로, 자기 의지대로 살지 않고 겸손하게 하나님께 맡기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주님께 붙잡힌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가라 하시면 가고, 주님이 서라 하시면 섭니다. 주님이 기뻐하는 일을 기뻐하고 주님이 좋아 하는 것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숙한 신자의 모습을 루터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자유를 포기한 자유인’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이 물이 닿는 곳마다 살리는 역사가 풍성하게 일어나고 있음을 또한 보여줍니다. 죽은 강이 살아나고, 각종 고기들이 물 속에 살게 됩니다. 죽음의 바다가 생명으로 충만하게 되고, 바다가 생명으로 채워지자 어부들이 모여들고 그 적막한 땅에 마을이 형성됩니다. 또한 강가에는 나무가 자라고, 그 나무에 잎과 열매가 풍성히 맺었습니다. 특히 나무의 이파리는 각종 약제로 사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풍성한 생명의 역사와 전혀 관계가 없는 곳이 있었습니다. 개펄과 진펄입니다. 그곳은 생명이 살 수 없는 소금 땅, 죽음의 땅입니다. 다른 곳은 소성되었는데, 이곳만이 소성되지 못한 땅으로 남았습니다.
저는 이 시간 왜 이 개펄과 진펄이 소성되지 못한 땅으로 남았는지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사실 부흥회는 마치 마른 땅에 물을 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부흥회를 통하여 개인이나 교회가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에 잠기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그래서 생명의 물줄기가 힘차게 뻗어나가게 될 이번 부흥회에, 개펄과 진펄로 남지 않고 생명력이 왕성한 삶으로 변화되기 위한 비결에 대하여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선 개펄과 진펄이 소성되지 못한 이유는 강물이 그곳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12). 물은 생명입니다. 물이 있어야 생명이 유지가 됩니다. 그러므로 물이 있는 곳에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사람의 목숨도 물이 있어야 유지가 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닿지 않으면 생명의 역사는 없습니다. 강물은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닿는 곳에 생명의 역사, 회복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은혜받지 못하면 개펄과 진펄이 됩니다. 죽음의 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라도 은혜를 받으면 생명으로 충만하게 되고, 풍성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성 프랜시스의 일화입니다. 제자 중 한 사람이 ‘선생님은 스스로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당시 그 지역에 악명 높은 강도가 있었는데, 자신은 그 강도보다 더 악한 자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주님의 은혜를 받아서 주님의 종이 되었고, 그 사람은 주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여 강도가 되었을 뿐이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왜 강물이 개펄과 진펄에 미치지 못한 것입니까? 그것은 두 가지로 그 원인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1. 사방이 막혔기 때문입니다.
물은 낮은 곳, 활짝 열린 곳으로 흐릅니다. 막힌 곳엔 물이 흘러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개펄과 진펄에 물이 들어가지 못한 것은 사방이 막혔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교만한 마음을 상징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한 이유는 교만 때문입니다. 교만이란 자아라고 하는 벽에 의해서 사방이 막힌 것과 같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베풀지만 교만한 자는 물리치신다고 하였습니다. 낮고 겸손한 마음, 열린 마음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지만 닫힌 마음, 교만한 마음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전히 소금 땅으로, 생명이 존재할 수 없는 죽음의 땅으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정말 이와 같은 불행이 우리에게 미치지 않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내게 머물게 하기 위해선 겸손해야 합니다. 교만은 천사를 떨어뜨려 마귀가 되게 하고 겸손은 사람으로 천사가 되게 합니다. 어거스틴은 모든 덕이 하늘에 오르는 사다리인데, 겸손이 그 첫째 계단이고, 첫째 계단에 오르면 그 다음에는 위로 올라가기가 쉽다고 했습니다. 겸손은 하나님의 나라에 풍부한 창고를 발견하는 눈이요, 그것을 받는 손입니다. 독일어로 겸손을 Demut라고 하는데, '힘'이란 뜻입니다. 영적인 힘, 신자의 힘, 교회의 힘이 어디서 나오느냐 겸손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의 강물이 흘러 들어오도록 겸손하게 내 자신을 낮추고 내려놓아야합니다. 막힌 것들을 다 허물어야 합니다. 헨리 나우엔의 책 중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한 젊은 수도사가 어느 수도원으로 갔습니다. 그 수도원의 원장 수도사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내게 머물게 하는 비결을 가르쳐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원장이 그 젊은 수도사에 물을 한 주전자 떠오도록 했습니다. 그리고는 마른 땅에 그 물을 부으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지 않고 흘러가 버렸습니다. 잠시 후 원장 수도사가 돌멩이로 땅을 두들겨 마른 흙덩이를 부드럽게 부수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다시 물을 부으라고 했습니다. 물이 땅 속으로 잘 스며들었습니다. 원장 수도사가 말을 합니다. ‘영성이란 바로 이와 같은 것이다. 자신을 부드럽게 겸손하게 깨뜨려야 하나님의 은혜가 머물게 된다.’
내 마음이 개펄과 진펄이 되지 않기 위해선 주님 앞에 겸손하게 내 마음과 삶을 내려놓는 것, 내 경험, 내 지식, 내 욕심 모두를 주님 앞에 내려놓는 것. 크고 위대하신 주님 앞에 철저하게 항복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은혜를 충만히 경험하는 비결이고, 은혜의 강이 흘러들어오게 하는 비결입니다. 그리하여 내 삶에서 생명의 역사, 회복의 역사, 풍성하게 열매를 맺는 역사를 경험하게 되고, 이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이웃을 유익하게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강의 가장자리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개펄은 강도 육지도 아닌 습지를 의미합니다. 비가 올 땐 물이 고였다가 비가 오지 않으면 말라버린 곳입니다. 그리고 진펄은 물이 들었다 나갔다 하는 곳을 의미합니다. 비가 많이 와서 수위(水位)가 올라가면 물에 잠겼다 비가 오지 않아 수위가 낮아지면 물이 빠져나가 버린 곳입니다. 물이 항상 머물지 않는 곳입니다. 왜냐하면 그 지역이 강의 중심에 있지 않고, 강의 가장 끄트머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강이나 바닷가에 가면 이런 곳을 흔히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신앙과 세상의 경계에 머물면서 한 발은 세상에, 한 발은 신앙세계에 들여놓고 있는 사람을 상징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①자기중심적인 신앙, 자기 정해 놓은 기준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라고도 하고, ②정함이 없이 자기감정에 따라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교회의 중심에 서서 섬기지 않고, 신앙생활은 하지만 주님께 자신을 올인(All in)시키지 않고 주변만 맴도는 사람입니다. 주님을 바짝 쫒지 않고 멀찌기 거리를 두고 따르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주변에서 아무리 엄청난 생명의 역사, 살리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어도 그와는 무관한 일이 되고 맙니다.
우린 이미 이런 신앙의 위험성에 대하여 지난 수요일 설교를 통하여 알고 있습니다. 바울이 드로아에 이르러 밤늦은 시간까지 설교를 하게 되었는데, 유두고란 청년이 설교를 들으면서 졸다가 3층에서 떨어져 죽었습니다. 그 이유는 졸음도 문제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창가에 걸터앉았다는 사실입니다. 졸아도 방안에서 졸았다면 죽을 일은 없었습니다. 문제는 창가입니다. 창가에 불안하게 앉아서 졸다가 이런 봉변을 당한 것입니다. 창이 무엇입니까? 바로 안과 밖의 경계입니다. 물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개펄과 진펄입니다. 이 경계에 있었기에 그 위대한 선생님의 마지막 설교를 제대로 듣지 못하고 졸게 된 것이고, 졸다가 그만 떨어져 죽고 만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중심에서 벗어나게 되면 주님으로부터 주님의 은혜로부터 멀어진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꼭 중심에 서기 바랍니다. 중심에 서서 섬기고, 중심에 서서 생활하시기 바랍니다.
신앙생활에서 위치와 거리가 중요합니다. 항상 중심에 서야합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안전지대를 확보해야 합니다. 주님과 거리를 좁혀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개펄과 진펄이 되지 않는 비결입니다. 충만한 주님의 은혜 안에 잠기는 비결입니다. 물리적인 위치와 영적인 위치는 비례합니다. 물리적인 거리와 영적인 거리도 비례합니다. 중심에 서서 교회를 섬기고 주님을 섬기면 주님 중심의 삶이 됩니다. 주일 낮은 물론 오후, 수요일, 새벽예배, 매일 묵상생활 등으로 주님과 물리적인 거리를 좁히면 영적으로도 주님과 더욱 가까운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때도 마찬가집니다. 예배시작 10분전에 나와서 준비하여 예배를 드린 사람과, 10분 늦게 헐레벌떡 들어와서 예배드린 사람의 차이는 엄청납니다. 앞자리에 앉은 것과 뒷자리에 앉은 것도 마찬가집니다. 감격도 다르고 훨씬 예배에 집중할 수가 있습니다.
다음 주일부터 시작되는 개당2주년기념성회는 단순한 행사가 아닙니다. 우리 개인과 가정, 교회의 부흥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영적 사건입니다. 이것이 단순한 행사로 끝나느냐, 영적 사건이 되느냐는 전적으로 우리의 태도에 달렸습니다. 잘 준비하여 중심에 서서 은혜의 강물에 깊이 잠기게 되면 우리와 우리 가정과 교회부흥의 중요한 영적 사건이 되겠지만, 변두리로 빠지면 은혜와 무관한 단순하고 공허한 행사로 끝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꼭 중심에 서십시오. 은혜 받는데 최선을 다하고, 은혜 받는데 만 집중하십시오. 강사접대 잘하는 것 중요합니다. 그러나 최고의 접대는 선포하는 말씀을 빠지지 않고 잘 듣는 것입니다. 그 말씀에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모쪼록 이번 성회가 신앙회복과 성장, 풍성한 열매를 맺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은혜를 받아 회복과 치료의 역사를 경험하는데 나만 개펄과 진펄로 남아 소성되는 못한 땅으로 남는 불행이 없기를 바랍니다.
※ 생각해 봅시다.
1. 현재 당신이 가장 목말라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2. 발목 물, 무릎 물, 허리 물, 헤엄할 물을 각각 신앙(은혜)의 단계라고 할 때 지금 당신의 신앙(은혜)은 어느 단계라고 생각합니까?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3. 오늘 말씀을 통해 도전받은 내용은 무엇이며, 어떻게 삶에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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