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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는 마음이다. ‘빚진 자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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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0,682회 작성일 18-02-04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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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는 마음이다. ‘빚진 자의 마음

1:8~14

2018. 2/4. 11:00

빚을 권하는 사회

매일 교회 문 앞에서 명함 크기의 광고지를 본다. 치워도 돌아서면 또 있고, 또 있고 해서 이제는 한쪽으로 모아뒀다가 한꺼번에 치운다. 돈을 빌려준다는 광고진데, 그 내용은 주로 이렇다. ‘즉시 대출, 절대 비밀보장, 무담보, 무보증, 당일 대출가능, 신용불량자도 가능......’ 말이 돈을 빌려준다는 것이지 결국 빚을 권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광고지를 볼 때마다 하와의 사과(유혹의 사과)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뿐만 아니라 케이블TV 광고에서도 연예인이 나와서 대출광고 하는 모습을 쉽게 접할 수 있고, 심지어는 정부까지 나서서 빚을 내서 집을 사라고 할 정도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국민을 꾸러기로 만들기 위해 을 권하는 공화국이라고 부른 것이다. 흔히 국가를 위기에 빠뜨리는 가장 위험한 뇌관을 가계의 빚이라고 하는데,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지난 해 3분기 말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가계의 빚이 1,4191,000억이라(가구당 평균 빚은 6,600만 원)고 했다. 그러니 빚 공화국이란 말도 일리가 있다. 이와 같은 우리의 현실을 어느 시인은 이렇게 탄식하였다.

 

 것이라고 부를  있는 

모두 

빚더미에서 자고

빚더미를 입고

빚더미를 먹으면서도

겉으론 번지르르하게 치장한 

목숨을 이어가는 일이

휘황찬란한 미래만 선전하는

금융자본주의 생존법이 되었으니

누구나 이렇게 빚더미에 얹혀서

이자의 노예로 살다가

상환능력이 없어지면

자식에게 빚을 상속하고

 세상을 떠야 하는 것인가?

 

생기사귀(生寄死歸)

사실 우리는 남의 돈으로 집도 사고, 차도 사고, 옷도 사고, 먹을 것도 사고, 공부도 하고, 사업도 하고 있는 셈이다. 먹고 입고 쓰고 생활하는 것 대부분이 빚이다. 빚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빚꾸러기인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런 상황에 대해 위기의식을 갖기는커녕 오히려 빚도 자산이고 실력이다.는 매우 위험한 생각을 갖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이것이 우리 인간의 실존이기도 하다. 옛 사람은 삶과 죽음을 이렇게 정의했다. ‘생기사귀’(). 산다는 것은 잠시 빌붙어있는 것이고, 죽는다는 것은 본디 온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뜻이다. 빌붙어 사는 존재이니 인생은 그 자체가 빚이고, 사는 만큼 빚을 지는 것이다. 성경 역시 마찬가지다.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소작인)이요 동거하는 자(나그네)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25:23). 이 세상에서 우리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심지어는 내 몸도, 내 생명도 내 것이 아니다. 모두가 주님의 것이다. 잠시 주님께 빌려서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렌트(rent)인생이다. 그래서 우리가 자주 드리는 찬양처럼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네. 호흡마저도 다 주의 것이니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거룩한 빚꾸러기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자신을 모든 사람에게 빚진 자라고 소개하는 거룩한빚꾸러기가 나온다. 사도 바울이다. 그는 이렇게 자신을 소개한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14). 강한 채무의식에 대한 고백이다. 무슨 빚을 누구에게 얼마나 졌기에 이런 고백을 한 것일까? 물론 이것은 그가 누군가에게 어떤 육적인 빚을 져서 이런 고백을 한 것은 아니다.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진 것이다. 죽어 마땅한 죄인을 위해 대신 죽으신 주님, 죄인의 괴수를 자녀로 삼으시고 복음의 일꾼으로 삼아 지금까지 활동하게 하시고 섬기게 하신 주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하여 빚진 자란 것이다. 이와 같은 주님의 빚을 갚기 위해 모든 사람에게 빚진 자의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겠다는 고백이다. 그래서 거룩한 빚꾸러기라고 표현한 것이다. 바로 이 빚진 자의 마음, 곧 채무의식에서 바울의 인생관과 사역관이 시작된다. 특히 지난번에 말씀드린 복음을 전해야만 한다는 거룩한 부담감,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임할 것이라는 긴급한 위기의식은 이와 같은 채무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빚은 반드시 갚아야만 하는 의무(책임)이고, 갚지 않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바울에 대하여 이런 평가를 했다. ‘바울의 발길이 닫는 곳마다 그곳이 시골이든 도시든 상관없이 그 순간부터 땅이 진동하기 시작했다.가는 곳마다 큰 영향력을 주었다는 뜻인데, 이런 삶을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이 채무의식이다.

 

사실 이 영적 채무의식은 인격과 신앙의 척도다. 인격이 낮은 사람은 채무의식이 없다. 인격적인 사람일수록, 신앙이 독실할수록 채무의식이 강하다. 그러니 누가 전도를 열심히 하고, 몸된 교회와 지체를 뜨겁게 섬길까? 채무의식이 강한 사람이다. 또한 채무의식은 사역의 자세를 결정한다. 채무의식을 가진 사람은 원망이 없고, 불평도 없다. 그저 감사와 보은의식만 있다(바울을 보라!).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보답하는 마음으로 스스로 하는 것이고, 마땅히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하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으려면 속에서 불덩이가 일어 견딜 수가 없어서 하는 것이다. 그러니 남이 알든 모르든 신경 쓰지 않고, 보상이 주어지지 않아도 지속적으로 분발한다. 우리 역시 바울처럼 주님께 빚진 사람이다. 거룩한 빚꾸러기다. 사랑의 빚, 은혜의 빚, 구원의 빚, 이해와 용서의 빚을 진 사람이다. 그러므로 바울처럼 철저한 영적 채무의식을 가져야 한다.

 

악착같이 살아야 하는 이유

우연히 인터넷에서 황인숙 시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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