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이 쏟아지는 그날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3,138회 작성일 16-10-23 12:59본문
복이 쏟아지는 그날
암9:11~15
2016. 10/23. 11:00
그날이 오면
심훈(沈熏)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상록수」라는 소설이다. 그리고 또 하나가 〈그 날이 오면〉이라는 시다. 우리 주변에 수십 수백의 시를 쓰고도 그 이름이 기억되지 않은 시인이 많다. 그러나 심훈은 단 한편의 시로 불멸의 시인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만이 아니다. 영국 옥스퍼드 시학교수 바우라(C. M. Bowra)는 「시와 정치」(Poetry and Politics)에서 이 시를 ‘세계 저항시의 본보기’라고 높이 평가했다. 그 시는 다음과 같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주기만 한다면,
나는 밤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듯 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꺼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이런 시를 읽으면 내 자신에게 화가 난다. 똑같은 하루 세끼를 먹으면서 왜 나는 이런 시를 쓸 수가 없을까? 언제까지 나는 감동만 하고 있을까? 무척 내 자신에게 속이 상하고 화가 난다. 아무튼 조국 광복의 그날을 기다리는 심훈 선생의 간절함이 절절하게 묻어나는 시다. 물론 의미는 다르지만 우리 역시 심훈처럼 ‘그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우리에게 그날은 우리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재림하시는 날, 그래서 우리의 모든 얽힌 것과 맺힌 것들이 풀리는 날이고, 악한 세력이 무너지고 승리의 노래를 부르는 날이다. 신랑 되신 주님과 영원한 신혼의 삶을 시작하는 날이다. 성경에는 그날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그런데 성경(특히 예언서)에서 그날은 ‘이중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날은 ‘심판’의 날이고, 또한 ‘회복’의 날이다. 하나님의 복이 쏟아지는 날이다. 본문은 후자에 속한다.
심판의 그날
아모스는 호세아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선지자다. 그는 남쪽 유다지역 드고아에서 뽕나무를 재배하며 양을 치는 목자였다(7:14). 그런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여로보암 2세가 다스리고 있는 북쪽 이스라엘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였다. 당시 이스라엘은 겉으론 불행의 그림자를 찾아볼 수 없는 최고의 부흥시기였다. 그런데 선지자는 이런 이스라엘을 향하여, ‘만군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스라엘의 족속아 내가 한 나라를 일으켜 너희를 치리니라.’(6:14)는 심판을 선포했다. 멸망의 그날을 선포한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모든 것이 너무 잘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불행한 것은 이러한 아모스의 선포가 있고 31년 동안 정변이 6번이나 일어나는 비참한 상황에서도 그들은 돌이킬 줄 몰랐다. 결국 호세아 6년에 앗수르에게 사마리아성이 포위되었고, 그렇게 3년을 버티다가 아모스의 예언대로 함락되고 말았다. 이스라엘은 이렇게 멸망의 그날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노래 소리가 통곡 소리로 변하고, 거리에는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이고,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갔다. 남아있는 사람들은 이방인과의 강제결혼을 통해 혈통과 언어를 잃어버렸다. 다시 말하면 뿌리가 뽑힌 것이다.
회복의 그날
본문은 아모스의 마지막 설교다. 어떤 분은 아모스서의 내용을 전화번호로 표현하여 9-8355번이라고 했다. 9는 아모스서가 9개의 장으로 되었기 때문이고, 8은 아모스가 주변 8국가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했기 때문이며, 3은 아모스가 전한 세 편의 설교, 첫 번째 5는 5가지 환상, 그리고 마지막 5는 5가지 회복의 약속이다. 본문은 다섯 가지 회복의 약속이다. 아모스서는 1장부터 9:10까지 이스라엘의 죄와 심판에 대한 말씀이 핵심을 이룬다. 앞에서 말한 대로 심판의 날로서 그날에 대한 내용이다. 그런데 본문에 이르러 갑자기 축복의 분위기로 바뀌면서 해피엔딩으로 본서가 끝이 난다. 회복의 날로서, 하나님의 복이 쏟아지는 날로서 그날을 약속한 것이다. 여기서 아모스는 그날에 있을 다섯 가지 회복의 약속을 예언하였다. 그러면 다섯 가지 회복의 약속은 무엇인가?
첫째,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겠다는 약속이다(11). 이스라엘 역사상 최대 부흥기였던 다윗 시대의 영광을 회복하시겠다는 뜻이다.
둘째,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신다는 약속이다(12). 이것은 만국의 백성이 하나님을 인정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견고하게 세워지게 될 것에 대한 예언의 말씀인데, 그 중심에 이스라엘을 세우실 것을 약속하신 것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나라의 중심이 된다는 뜻이다.
셋째, 풍요와 번영의 약속이다(13). 곡식이 풍성해서 다 거두기도 전에 다시 파종의 때가 되어 파종하는 사람이 추수하는 사람의 뒤를 따라가며 파종한다는 것이다. 미쳐 수확을 끝내지 못하고 파송해야 할 만큼 주체할 수 없도록 복을 쏟아부어주시겠다는 약속이다.
넷째, 비참하고 불행한 상태에서 온전한 상태로의 회복에 대한 약속이다(14). 사로 잡혀간 곳에서 다시 고국(고향)으로 돌아오게 하신다는 말씀이다.
다섯째, 본토에서의 영원한 평안과 보존에 대한 약속이다(15). 기업의 땅에서 다시는 뽑히지 않고 거기서 영원한 평안을 누리게 되리라는 말씀이다.
우리 여기서 아모스 선지자가 외친 회복의 그날이 어떤 날인지 잘 알 수가 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복이 쏟아지는 날이다. 하나님이 복을 쏟아 부어주시는 날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모스를 통하여 장차 국가의 멸망을 목격하게 될 이스라엘에게 주신 약속이요 소망이다. 훗날 포로로 잡혀간 그들은 이와 같은 그날에 대한 소망 때문에 좌절과 절망 속에서도 견뎌낼 수 있었다. 이 중에서 역사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네 번째(14) 뿐이다. 그들은 바벨론이 멸망한 다음 고국으로 돌아와서 무너진 성전과 성읍을 건축하고, 포도원을 만들었다. 그러나 나머지는 지금까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고 소망으로만 남아 있다.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남겨두신 것이다. 우리로 하여금 답답하고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그날에 대한 소망을 품고 살아가도록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소망을 주신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아모스의 말씀에서 그날에 대한 소망을 갖게 하셨던 것처럼 우리 역시 이 말씀을 통해 그날에 대한 소망을 가져야 한다. 그
날은 있고, 그날은 반드시 온다.
철강 왕으로 알려진 카네기(Andrew Carnegie)의 집무실 벽에는 그가 가장 아낀 그림 한 점이 걸려있었다고 한다. 그것은 바닷가 모래톱에 걸려있는 낡은 나룻배의 그림이다. 젊은 시절 그림 밑에 적혀 있는 글귀가 너무 마음에 들어 어느 노인께 부탁해서 그 그림을 구입하게 되었다고 한다. 글귀의 내용은 이렇다. ‘반드시 밀물의 때가 온다. 그날에 나는 바다로 나갈 것이다.’(The high tide will come. On that day, I will go out the sea). 나룻배가 지금은 모래톱에 걸려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밀물이 올 것이고, 그러면 다시 먼 바다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현실이 힘들고 어려워도 소망을 잃지 말라는 의미다. 카네기는 평생 이 글귀를 마음에 품고 살았다고 한다.
소망은 영혼의 산소다. 그래서 인간을 ‘호모 에스페란스’(Homo Esperance)라고 한다(E. Fromm). 소망으로 사는 존재라는 뜻이다. 그렇지만 세상의 소망은 아무리 큰 것이라도 언젠가는 사라진다. 그러니 진정한 소망이 될 수가 없다. 우리의 진정한 소망은 주님이시고,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이다. 주님께서 재림하신 그날이 우리 인간의 절대 소망이다. 특히 우리 신자는 그날만을 소망하면서 살아야 한다. 아모스를 통해 주신 약속의 말씀들이 이스라엘의 역사에서는 완전히 성취되지 못했지만 주님이 다시 오실 그날에 온전히 성취될 것이다. 그날은 밀물처럼 반드시 올 것이고, 우리는 그날에 드넓은 축복의 바다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그날은 분명히 있고, 그날은 반드시 온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그날이 속히 오도록 간절히 기대하고, 기다리며, 기도하자.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