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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그릇에 의해 그 모양이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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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1,384회 작성일 15-11-22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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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그릇에 의해 그 모양이 결정된다.

잠22:6, 신6:4~9

2015. 11/22. 08:00, 11:00

모든 부모의 소망

로마의 귀족부인 몇 명이 자기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자랑하고 있었다. 한 부인은 최근 중국에서 수입한 비단옷을 자랑했다. 너무 가볍고, 부드럽고, 포근한 이 옷 좀 보라고 하면서 자랑했다. 다른 부인은 남편이 전쟁에서 이기고 빼앗아온 그 나라 왕의 보석을 보이면서 이렇게 진귀한 보석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고 자랑했다. 또 다른 부인은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온천과 별장에 대해서 자랑했다. 그런데 집 주인인 부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자 친구들이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자기 아이들의 이름을 불렀고, 그들이 와서 곁에 서자 팔을 벌려 그들의 어깨 위에 손을 얹고 자기는 이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이라고 했다. 그렇다. 자식이야말로 부모에게 가장 소중한 보물이고, 또한 자랑이다. 그래서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부모의 한결같은 소망이 있는데, 그것은 ‘내 아이를 최고로 키우는 것’이다. 특히 저(底)출산 시대에 자기 자녀를 잘 키우고 싶은 것은 너무 당연하다. 그런데 죽는 날까지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것 두 가지가 있다. 무엇인지 아는가? 그것은 ‘건강과 자식’이라고 했다.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것이 자녀교육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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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우리의 자녀를 잘 기를 수 있을까? 물론 여러 가지 이론과 학설이 있을 수 있다. 너무 뻔한 답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세상의 어떤 가르침이나 이론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길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셨고, 우리 가정은 물론 자녀를 허락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만큼 인간에 대하여, 특히 우리 자녀에 대하여 잘 아시는 분은 없다. 어떤 기계든 그 기계를 설계하고 제작한 사람만큼 그것을 잘 아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인간 역시 마찬가지다. 오늘 본문인 잠언의 말씀은 자녀교육에 가장 성공적인 사람들로 손꼽히는 유대인의 자녀교육 원리이자 청교도들이 교육철학으로 삼았던 말씀이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방향이 중요하다.

이 말씀은 자녀교육에 있어서 부모에게 분명하게 강조하는 것이 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우선 이 말씀은 올바른 삶의 ‘방향’을 가르치라는 것이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했다. 무조건 빨리 간다고 하여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다. 먼저 방향이 맞아야 한다. 비행기가 아무리 빨라도 서울을 가야하는데 제주도로 가는 비행기를 타면 결코 서울에 도착할 수 없다. 비록 완행열차일지라도 서울로 가는 것이라면 반드시 서울에 도착하게 된다. 쉬엄쉬엄 걸어가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짧은 기간에 근대화를 이루고, 민주화를 이뤄냈다. 정말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과정에서 우리는 속도에 매몰되고 말았다. 그리고 이 속도는 필연적으로 경쟁을 부추긴다. 외국인이 우리말 중에서 가장 먼저 배운 단어가 ‘빨리빨리’이다. 그들이 우리를 보면 ‘빨리빨리’하고 웃으면서 말을 걸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놀림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언짢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약간 창피하기도 했다. 아무튼 이 속도의 문제는 자녀교육에서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저 내 아이가 속도에 뒤지지 않도록 조기교육도 모자라 조기유학까지 기승을 부리면서 ‘기러기 엄마’ 혹은 ‘기러기 아빠’와 같은 신조어까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아이들 입에서 ‘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요.’ 라는 말이 나올 만큼 스펙 쌓기에 몰아세우고 있다.

 

본문은 걷는 법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올바른 방향으로 걷는 법을 먼저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히브리어로 복을 뜻하는 단어가 여럿 있는데, 그 중에 ‘아샤르’(אשׁר)라고 하는 단어가 있다. ‘걷다.’, ‘똑바로 걷다.’는 뜻이다. 복이 무엇이냐? 우리 자녀를 참으로 복되게 하는 것이 무엇이냐? 올바른 방향을 향하여 걷게 하는 것, 올바른 방향을 향하여 똑바로 걷게 하는 것이다. 이것을 본문 말씀으로 표현하면 ‘마땅히 행할 길을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자녀의 일생이 하나님의 복을 받아 복된 인생이 되게 하려면 마땅히 행할 길을 가도록 부모가 그 방향을 잡아주어야 한다. 훌륭한 부모는 이것저것 참견하지 않고 방향을 제시해 주는 사람이다.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주는 해결자가 아니라 올바른 방향으로 안내해주는 안내자이다. 이것이 부모의 사명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렇다면 부모가 자녀에게 가르쳐야 할, 올바른 삶의 방향으로서  ‘마땅히 행할 길’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곧 신6:4~9이다.

 

이스라엘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하신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6~9절은 생략).

 

이 말씀을 ‘쉐마’(שמע)라고 한다. ‘이스라엘아 들으라.’(שמע ישראל)에서 ‘들으라.’가 쉐마다. 이는 ‘명심하라.’, ‘새겨들으라.’ 라는 뜻이다. 쉐마는 이스라엘의 신앙고백서이면서 신앙교육의 대강령이다. 부모가 자녀를 신앙으로 교육할 책임과 의무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신앙교육의 주체인 부모에게 주어진 신앙교육의 지침서다. 쉐마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유일하신 한 분이심을 믿는 ‘신앙고백’이다(4). 유일하신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은 자연히 하나님에 대한 절대 사랑과 충성을 요구하고(5), 이 사랑과 충성은 구체적인 실천을 필요로 한다(6~9). 그리고 이 실천은 하나님의 말씀을 삶 속에 행하는 것(6)과 그것을 자녀에게 가르치는 일이다(7~9). 즉 부모가 먼저 모범을 보이면서 자녀를 신앙으로 양육해야 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가르쳐야한다는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시하고 있다. 신앙교육의 장소를 가정으로만 제한하지 않고 집안을 비롯하여 집밖 어디에서도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가르칠 것을 명령하고 있다. 더 나아가 자녀가 부모의 얼굴을 보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떠오르게 만들어야 하고, 집으로 들어가고 나갈 때에도 하나님의 말씀이 기억나게 해야만 했다. 이는 실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자녀를 신앙으로 교육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말씀을 손목에 차고(그 말씀대로 행하며 살겠다는 뜻), 미간에 붙이고(모든 사고와 판단을 그 말씀대로 하겠다는 뜻), 문설주에 매달아 놓았다(삶의 중심인 가정의 모든 일을 이 말씀대로 되기를 소망하는 뜻).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보고 기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들은 이렇게 철저하게 13세가 되기까지 신앙교육, 특히 말씀(율법)교육을 시켰다. 그래서 그들은 13세가 되면 모세오경을 다 외우고, 아무리 머리가 나쁜 아이라도 신명기는 외운다고 한다. 이스라엘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민족정신을 지키며, 그들의 문화적 유산을 돋보이게 만든 힘이 바로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1899년에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두 아이가 태어났다. 한 아이는 성질이 몹시 급한 아버지와 사교생활에만 관심이 있는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죽자 어머니는 알코올 중독자인 숙모에게 그를 맡기고 가출하였다. 반면 또 다른 아이는 경건한 신앙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특히 그는 어머니의 기도를 먹고 자랐다. 두 아이 모두 장성하여 앞의 아이는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이 되었고, 뒤의 아이는 세계 평화를 위해 싸웠다. 앞의 아이가 자살했다는 소식에 세계가 환호했고, 반면 뒤에 아이가 세상을 떴을 때 온 세계가 애도를 표했다. 앞의 아이는 ‘아돌프 히틀러’이고, 뒤의 아이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다. 무엇이 이 두 사람의 운명을 이렇게 극명하게 바꿔놓은 것일까? 교육이다. 특히 부모의 신앙교육이다. 성경이 한결같이 강조하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잘된다는 말씀이다(잠3:1~10). 자녀에게 마땅히 행할 길을 제때에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면 히틀러처럼 자신은 물론 가정과 공동체를 무너뜨린다. 많은 부모들이 신앙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철이 들면 잘 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것은 착각이다. 철이 들 때까지 사단이 그대로 둘 것 같은가? 영혼의 사냥꾼 사단도 그렇게 생각할까? 신앙교육은 빠를수록 좋다. 무엇보다 먼저 우리 자녀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녀로 만들어야 한다. 어떠한 환경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을 유산으로 남겨놓는다면 자녀가 잘되고 그의 미래가 보장받는다.

 

부모는 자녀의 거울이다.

어떤 아버지가 아들이 공부는 하지 않고 말썽만 부리니까 아들을 붙들고 꾸짖었다. ‘이놈아, 링컨은 네 나이 땐 책만 읽었단다! 제발 정신 좀 차려라!’ 그러자 아들이 ‘아빠, 링컨이 아빠 나이 때 대통령됐다는 것은 모르세요? 아빠도 정신 좀 차리세요!’ 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 무엇이든 부모가 모범을 보이지 않으면 자녀에게 설득력을 상실하게 된다.

 

물은 그릇에 의해 그 모양이 결정된다. 마찬가지로 좋은 부모, 경건한 부모에게서 좋은 자녀, 경건한 자녀가 나온다. 부모는 자녀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부모를 보면 그 자녀가 보인다. 부모의 말과 행동, 생활습관이 그대로 자녀에게 반영되어 나타나게 된다. 부모의 삶을 통해 이런 것들이 자녀에게 그대로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마음에 새겨진 것은 행동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동물행동학의 대부 로렌츠 박사는 이것을 ‘각인현상’(Imprinting)이라고 하였다. 기러기나 오리와 같은 이소성(離巢性, 움직일 수 있는 상태로 부화하는 조류)을 가진 조류들은 부화(孵化)직후 처음으로 목격한 ‘움직이는 물체’를 어미로 생각하고 자나깨나 그를 따라다닌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마음에 새겨지고, 마음에 새겨진 그것이 그대로 삶의 모델이 된다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어려서 마음에 각인된 것이 그 사람의 평생을 좌우한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그래서 나온 것이다. 자녀교육에 있어서 부모의 역할을 강조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녀의 평생을 좌우하는 이런 행동이 부모에게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문은 가정에서 부모가 어린 자녀에게 마땅히 행할 길을 자나깨나 가르치도록, 부모가 먼저 모범을 보이면서 가르치도록 말씀한 것이다. 그러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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