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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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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2,183회 작성일 15-09-06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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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마6:9~15

2015. 9/6. 08:00, 11:00

최고의 순교자, 주기도문

어떤 목사님이 서울 어느 교회에서 부목사로 있을 때 겪었던 일이라고 한다. 그 교회 어떤 집사님의 대표기도가 너무 길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을 깊이 잠들게 했다. 그가 기도를 하는 날이면 사람들이 예배에 나가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을 할 정도였다. 그래서 그가 기도를 할 때 누가 좀 말려줬으면 해서 이 목사님이 총대를 멨다고 한다. 그가 기도를 인도하던 날, 그의 기도가 국내 교계와 정치경제를 비롯하여 세계 여기저기를 섭렵하고 있을 때, 기도를 줄이라는 신호로 다가가서 바지를 살짝 잡아당겼다. 그랬더니 그가 손으로 탁 치면서 ‘사단아 물러가라!’ 하고는 계속해서 기도를 이어가더라는 것이다. 이쯤 되면 누가 그를 말릴 수 있겠는가! 기도 응답을 확실히 경험할 수 있는 비결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라면을 끓여놓고 길게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면 라면이 배가되는 축복을 확인할 수 있다. 하여간 기도가 신앙생활에 중요해서 그런지 이와 비슷한 기도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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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기독교에는 세 가지 귀중한 보배가 있다. ‘십계명, 주기도문, 사도신경’이 그것이다. 사도신경은 우리의 신앙고백으로 ‘무엇을 믿는가?’ 신앙의 내용에 대한 것이고, 십계명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신앙적인 실천(윤리), 즉 신자의 삶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주기도문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역동적인 신앙생활을 가능하게 해주는 기도생활에 대한 것이다. 주기도문은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를 줄인 말로 모든 기도의 모범이다. 주기도문을 최초로 해석했던 교부(敎父) 터툴리안은 주기도문을 ‘전(全)복음의 요약’이라고 했다. 단순한 기도문이 아니라 주님의 인격과 사역이 투영되어 있는 복음 중의 복음이라는 뜻이다. 김세윤 교수 또한 주기도문을 ‘주님의 공동체의 이상이며, 제자도를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했다. 그런데 우린 이 소중한 주기도문을 주로 예배나 신자들의 모임 끝에 마무리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중요성에 비해 그 활용이 너무 제한적으로 잘못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개혁자 루터는 주기도문을 ‘최고의 순교자’라고 했다. 교회와 신자의 주기도문에 대한 잘못된 사용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저는 주기도문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하고,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의 모범에 따라 우리의 기도생활을 점검해 보는 기회로 삼고자 주기도문 강해(마태복음을 중심으로)를 시작한다. 여러분 또한 기대를 가지고 잘 청종해 주기를 바란다.

 

누가복음의 주기도문

주기도문은 본문과 누가복음(11:1~4), 두 곳에 기록된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유일한 기도문이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두 기도문은 같은 내용이다. 하지만 의미는 서로 다르다. 마태와 누가복음은 서로 다른 배경과 대상, 관점을 가지고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용은 같아도 의미는 다를 수밖에 없다(예, 누룩과 꿀).

 

우선 누가복음에 나온 주기도문은 한 제자가 주님께 기도를 가르쳐달라는 요청으로 시작되었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눅11:1). 유대인에게는 오랫동안 사용해 온 기도문이 있었다. 카디쉬’라는 짧은 기도문으로 안식일 설교 후에 암송하는 기도문, 쉐모네 에쉴레’(18개의 축복기도)라는 긴 기도문으로 매일 3번(아침-낮-저녁)씩 낭독하는 기도문, 그리고 그 유명한 쉐마’(신6:4~9)로 매일 두 번(아침-저녁)씩 암송하는 기도문이다. 이런 기도습관은 경건한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다 지키는 것이었다. 제자들 역시 유대인이었다. 그러니 그들 또한 기도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제자 중 한 사람이 주님께 기도를 가르쳐달라고 했다. 기도하는 법을 몰라서 그랬을까? 아니다. 그러니 여기서 기도를 가르쳐달라는 이 요청은 단순히 기도를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유대교에는 여러 종파가 있었다. 각 종파마다 그들 나름의 ‘사명(역) 선언문’이 있었는데, 그 선언문이 기도문 형태로 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주소서.’ 라고 한 이 요청은 요한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사명 선언문과 같은 사명 선언문을 가르쳐달라는 뜻이다. 이 요청에 따라 주어진 것이 바로 주기도문이다. 그러니 여기서 주기도문은 단순한 기도문이 아니고 주님을 따르는 공동체의 ‘사명 선언문’(교회의 정체성과 목적, 사명)인 것이다. 누가복음은 이방인, 특히 로마인(데오빌로)을 상대로 기록된 복음서다(1:3). 일종의 기독교를 변호하는 ‘변증서’(변증의 성격을 가진 복음서)다(1:4). 이런 배경에서 생각해보면 이 사실이 더욱 분명해 진다. 그래서 주기도문을 단순한 기도문이 아니라 주님을 따르는 공동체의 사명 선언문이라 한 것이고, 나아가 주님의 인격과 사역이 드러나 보이는 복음 중의 복음이라고 한 것이다. 성경의 압축이라, 축소판이라, 우리 주님의 초상화라고 한 것이다.

 

마태복음의 주기도문

반면에 마태복음에 나온 주기도문은 제자(신앙) 공동체에게 주신 신상보훈(5:~7:) 중에 나온다. 누가복음과 비교하면 벌써 대상부터 다르다. 누가는 이방인인데, 마태는 제자들이다. 그것도 산상보훈의 가장 중심부에서 유대인(외식적인 기도)과 이방인(중언부언하는 기도) 잘못된 기도생활을 지적하면서 올바른 기도의 원칙으로 제시하신 것이 주기도문이다. 그래서 “너희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처럼 기도하지 말고)이렇게 기도하라.”(9)는 말씀으로 시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 중의 기도인 주기도문은 주님께서 평생하셨던 기도의 틀이었다. 아무튼 산상보훈이 마태복음의 중심이고, 그 중심에 주기도문이 있는 구조다. 더 확대하면 산상보훈은 주님께서 주신 모든 교훈의 핵심인데, 그 핵심의 핵심에 주기도문이 있다. 그러니 주기도문의 중요성과 가치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구조를 통하여 마태복음 저자는 주기도문의 중요성, 즉 올바른 기도생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마태복음이 교회의 책, 혹은 훈련의 책이라는 점에서 교회생활에 있어서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고, 또한 마태복음이 제자도에 관한 책이라는 점에서, 기도가 제자의 삶에 원동력을 제공하고 제자의 삶의 핵심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면이 마태복음 여러 곳에서 발견이 된다. 예를 들면, 산상보훈이 끝나고 8장에서 주님과 제자들이 탄 배가 풍랑을 만난 사건이 나온다(8:23~27). 놀란 제자들이 주무시는 주님을 깨워 풍랑을 극복한 내용이다. 이 사건은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이란 풍랑이 몰아치는 바다처럼 힘들고 어려운 고난의 길이라는 것, 하지만 ‘주여 우리를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25)고 주님께 부르짖으면(기도하면) 넉넉히 그것들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기도가 제자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고, 제자의 삶의 핵심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한 사건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에서 기도를 호흡에 비유하여 영적 생명을 이어가는 영적 호흡이라, 기도를 대화에 비교하여 주님과 더욱 풍성한 관계를 유지하는 영적 교제라, 하늘의 보물창고를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마스터키라 부르며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기도를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래서 주님은 주기도문을 통하여 기도의 중요성과 함께 올바른 기도의 모델을 제시하신 것이다.

 

주기도문의 중요성

어느 어머니에게 유복자로 태어난 아들이 있었다. 어머니는 이 아들을 사력을 다해 키웠고, 아들 또한 이런 어머니의 사랑과 정성에 부응하여 잘 성장했다. 아들은 어머니가 눈에 밟히긴 했지만 더 큰 성장을 위해 유학을 떠나게 되었고, 공부를 마친 다음 어머니 곁으로 돌아오지 않고 그곳에 머물게 되었다. 그러나 아들은 어머니를 잊지 않고 매달 꼬박꼬박 어머니에게 생활비를 보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어머니는 마을의 험한 일을 도맡아하면서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다. 병이 들어도 병원 한 번 가지 못했다. 이렇게 고생하는 어머니를 보며 마을 사람들은 입을 모아 어머니를 버린 자식이라고 아들을 욕했다. 그러다가 결국 어머니는 죽고 말았다. 어머니가 죽은 후 마을 사람들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장례를 준비하기 위해 방에 들어갔더니 방안 모든 벽이 아들이 보낸 수표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어머니는 그것이 수표인 줄 모르고, 그저 아들이 보낸 편지인 줄만 알고 그것들을 벽에 붙여놓고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달랬던 것이다.

 

아무리 귀한 것도 그 가치를 모르는 사람에겐 무용지물이다. 이 어머니는 곧 우리의 모습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영적으로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소중한 보배 주기도문을 주셨다. 그런데 우린 그것을 그저 예배나 모임의 마감용으로만 사용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실 주기도문은 아주 짧은 기도인 동시에 아주 포괄적인 기도다. 여섯 마디로 되어 있다는 점에서 아주 짧고 간결한 기도다. 그러나 그 속에 담긴 내용은 무엇보다 높고, 깊고, 넓다. 앞에서 누가복음의 주기도문을 교회 공동체의 사명 선언문이라고 했듯이 주기도문은 교회 공동체의 표지판이다. 주님이 기대하시는 교회가 어떤 모습인지, 교회가 가야할 올바른 방향과 사명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표지판이다. 또한 주기도문은 기도생활의 나침반이다. 기도는 신앙생활의 핵심이다. 제자로서의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원동력이다. 우리의 영적 생명을 건강하게, 영적 생활을 풍성하게, 그리고 능력있게 해주는 것이 기도다. 주기도문은 이렇게 중요한 기도의 올바른 대상, 기도의 올바른 방법, 기도의 올바른 내용을 가르쳐준다. 그러니 주기도문의 의미를 묵상해 가며 기도하는 것은 가장 좋은 경건의 습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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