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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하며 기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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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2,447회 작성일 14-12-14 13:23

본문

충성하며 기다리라!

마25:14~30

2014. 12/14. 08:00, 11:00

인터림(interim)

 본문은 어떤 사람이 자신의 재산을 종들에게 맡기고 ‘먼 타국에 갔다(승천)가 돌아온(재림)’ 이야기다. 여기에서 타국에 갔다가 돌아오기까지의 기간을 두고 신학에서는 ‘인터림’(interim)라고 한다. 중간기란 뜻이다. 예수님의 승천에서 재림까지의 기간으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 현재라고 하는 시간이다. 이 시간은 사명기간이고, 선교기간이다. 또한 교회기간이고, 성령기간이다. 교회를 통하여 성령의 공급하신 능력으로 서로 교제하고, 사랑하고, 섬기고, 복음을 전하는 기간이다. 이 기간에 열심히 일해야 한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만들어진 물건마다 유통기한이 있는 것처럼 사람도 유통기한이 있다. 우리의 생명도, 건강도, 기억력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상태가 나빠진다. 기억력도 나이가 들수록 자꾸 없어진다. 하루에 25만 개의 세포가 없어진다고 한다. 한 마디로 세포가 줄줄이 죽어간 것이다. 그러니 기억력 좋고 총명 있을 때 주님의 일을 해야 한다. 다리에 힘이 있고, 머리에 총명이 있고, 기억력이 남아 있을 때 아직 기회가 있을 때 특히 경건의 훈련을 열심히 해야 한다.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인터림’을 허락하신 것이다. 성경은 ‘주님께서 하루라도 더디 오시는 것은 한 사람이라도 더 믿게 하려 하심이라.’(벧후3:9)고 했다. 이는 우리에게 더 사랑하고, 더 충성하고, 더 섬기고, 더 봉사하고, 더 일하라고 주신 기회이다. 모든 일에 있어서 보다 철저하게 잘 준비하라고 주신 기회다. 이 기회를 선용해야 한다. 본문은 우리에게 주신 이 기회의 선용에 대한 말씀이다.

 

달란트를 맡긴 주인

어떤 사람이 자기가 평생 모은 전 재산을 세 명의 종에게 맡기고 먼 타국으로 갔다. 그는 종들의 재능에 따라 각각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주었다. 그리고 돌아와서 셈을 하였는데, 두 사람은 부지런히 장사를 하여 달란트를 남겼고, 한 사람은 주인에게서 받은 달란트를 그대로 가지고 왔다. 달란트를 남긴 사람들은 ‘착하고 충성스러운 종’(21,23)이란 칭찬을 받고 주인이 베푼 잔치에 참석하였지만 받은 달란트를 그대로 가져온 사람은 ‘악하고 게으른 종’(26)이란 책망과 함께 밖으로 쫓겨났다(30). 본문의 내용이다.

 

본문에 나온 주인은 특별한 분이다. 그는 종들을 자식처럼 사랑하고 신뢰하였다. 그래서 자기가 평생 모은 피와 같은 재산을 사용권한까지 주어 종들에게 맡겼다. 심지어 그들이 장사하여 이득을 남겼을 때 그 남긴 것은 물론 본전까지 그들에게 몽땅 주었다. 결국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종들을 위하여 달란트를 맡긴 것이다. 또한 그는 종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각각 그 재능대로”(15)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그리고 한 달란트를 주었다. 각 사람의 힘과 능력에 따라 맡긴 것이다. 이는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맡겼다는 뜻이다. 이 주인은 감람산에서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신 우리 주님이시다. 그리고 주인의 달란트를 맡은 종은 우리다. 이는 내게 있는 것 중에 내 것이라고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내가 주인이 아니라 주인의 것을 맡은 청지기라는 것이다. 맡겨진 것은 반드시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할 때(결산의 때)가 있다는 것이다.

 

한 달란트를 맡은 종

그런데 본문은 이렇게 종을 신뢰하고 사랑하여 자신의 전 재산을 맡기고, 또한 종의 형편과 상황을 잘 알고 아끼는 주인과 그 주인이 맡겨준 달란트에 충성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이 바로 그 사람이다. 주님은 이 비유를 통하여 주님과 우리의 관계, 나아가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신자의 자세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 특히 한 달란트 맡은 종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신자가 가장 경계해야할 태도다. 본문은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도 이런 사람이 있을 것에 대한 경고다. 그래서 이 시간에 평생을 섬겼던 주인으로부터 버림받은 이 종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그는 왜 주인의 은혜로 살면서도 주인에게 충성하지 못하고, 주인이 주신 기회(달란트)를 선용하지 못한 것일까? 그래서 그 결정적인 순간에 주인의 잔치에 참여하지 못하고 버림을 받았을까?

 

주인에 대한 잘못된 생각

만약 종들이 맡겨진 달란트를 가지고 최선을 다했는데도 남기지 못하고, 심지어 손해가 발생했다면 주인은 종들에게 어떻게 했을까? 그래도 주인은 결코 종들을 탓하지 않았을 것이다. 주인은 종들에게 달란트를 맡기면서 이윤을 남기라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주어진 달란트(기회)를 능력대로 잘 사용하여 어떤 결과를 얼마나 남겼느냐에 관심을 갖는다. 그렇지만 본문의 주인은 주어진 달란트를 능력대로 최선을 다하여 어떻게 잘 사용하였는가에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다섯 달란트를 남긴 종이나 두 달란트를 남긴 종에게 똑은 내용으로 칭찬을 했다.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21,23). 그러니 한 달란트 맡은 종이 책망을 받은 것은 이윤을 남기지 못해서가 아니다. 주어진 달란트를 선용하지 않은 것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달란트를 사용하지 않고 묻어둔 이유는 주인에 대한 그의 생각 때문이다.

 

그는 주인을 ‘실패를 결코 용납하지 않는 무자비한 결과주의자’로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주인을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데서 모으는 인색하고 무자비한 사람’(24)이라고 했다. 이것은 주인에 대한 심각한 왜곡이다. 아니 모독이다. 이것이 그가 충성하지 못한 첫 번째 이유다. 심지도 않았는데 거두는 것은 ‘빼앗아 오는 폭군’이나 하는 짓이고, 뿌리지 않은데서 모으는 것은 ‘강도들’이나 하는 짓이다. 그는 주인을 폭군이나 강도와 같은 사람으로 생각한 것이다. 어떤 영화에서 사채업자가 장기밀매조직과 연계하여 빚을 갚지 못한 사람에게 장기적출을 강요하는 장면을 보았다. 그렇게라도 해서 돈을 갚으라는 것이다. 이 종은 주인을 이런 악랄한 사채업자와 같은 사람으로 매도한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목숨도 아끼지 않지만 싫은 사람을 위해서는 머리털 하나도 아까워한다. 그러니 이런 사람을 위해 무슨 일이 하고 싶겠는가! 그래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원금을 지키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선 땅에다 묻어두는 것이 최선이었다(25). 사실 주인은 앞에서도 말했지만 전 재산을 맡길 만큼 종들을 깊이 신뢰하고, 개개인의 능력에 따라 맡기는 자상하고 인격적인 사람이다. 남긴 이윤은 물론 원금까지도 몽땅 종들에게 내어준 후하고 사랑이 많은 사람이다. 그런데 한 달란트 맡은 종은 주인을 전혀 다르게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에게 세상을 아는 지식보다 ‘주님을 아는 지식’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주님을 바르게 알고, 바르게 고백해야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해야 주님께서 맡기신 달란트도 소중히 여기게 된다. 그래서 착하고 충성스러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본문이 재림을 기다리는 자세로 충성을 요구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충성은 주님을 아는 것과 주님에 대한 고백, 그리고 주님을 사랑하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기독교는 행위의 종교로 전락하게 된다. 신앙생활은 주님에 대한 바른 고백에서 출발하여 그 주님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충성된 삶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여러분에게 있어서 주님은 어떤 분이신가?

 

실패에 대한 두려움

어떤 분이 ‘난 할 수 있어. 난 뭐든지 해낼 거야.’ 라는 자신감을 가진 사람은 자기 능력의 500%를 발휘하지만, ‘난 못해. 나는 불량품이야.’ 라고 생각하며 자신감이 없는 사람은 자기 능력의 30%도 발휘할 수 없다고 했다(심리학자 하드필드). 이와 같이 사람의 마음, 곧 마음의 생각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마음이 무너지면 그 인생도 무너지고, 마음이 병들면 그 인생도 병이 든다. 마음의 생각이 삐뚤어지면 인생도 삐뚤어진다. 마음이 곧 그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마음공부, 마음수련 등이 유행인 것이다.

 

한 달란트 맡은 종이 자신의 달란트를 선용하지 않고 땅에 묻어둔 또 하나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실패에 대한 두려운 마음’ 때문이다. “두려워하여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나이다.”(25). 물론 이 말은 주인을 두려워했다는 뜻이다. 주인을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데서 모으는 인색하고 무자비한 사람’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인에 대한 두려움이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가 주인을 이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주인에 대한 두려움은 주인에 대한 오해와 불신에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그에게 실패는 곧 두려움이었다. 실패를 두려워하면 아무 것도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가 없다. 한 달란트를 맡은 종은 이 두려움 때문에 시도도 하지 않고 달란트를 바로 땅에다 묻어버린 것이다.

 

이 사건을 통해 건강한 마음, 건강한 생활 태도도 올바른 신앙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주님을 바로 알고, 바로 고백하고, 그래서 바른 신앙을 가질 때 바울처럼 놀라운 고백을 할 수가 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이와 같이 절대 확신, 절대 긍정의 태도를 갖게 되는 것이다. 모든 두려움, 염려, 걱정, 근심으로부터 자유롭게 된다. 이런 사람에게는 높은 산도 넘을 만한 작은 언덕에 지나지 않고, 넓고 깊은 강도 작은 개울에 지나지 않는다. 인생의 가시가 은혜의 통로 축복의 통로가 되고, 육체의 연약함이 주님의 능력이 머무는 처소로 변한다. 마음의 관리가 인생의 관리다. 그리고 그 마음의 관리는 주님에 대한 올바른 믿음에서 시작된다. 한 달란트 맡은 종은 주인에 대한 오해와 불신 때문에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되었고, 이 때문에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되어 쫓겨나게 되었다.

 

맡겨진 일에 충성

록펠러의 전기에 나온 존 아치볼드의 일화다. 그는 록펠러가 경영하는 정유회사 스텐다드 오일의 말단 직원이었다. 누구보다 자기 일에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있던 그는 출장을 가면 꼭 하는 일이 있었다. 숙박부에 서명을 할 때 자기 이름 뒤에 ‘1통에 4달러, 스텐다드 오일’이라고 꼬박꼬박 적었다. 어느 날 밤늦게 숙박한 곳에서 숙박부에 서명을 하지 않은 것이 생각나서 다시 옷을 챙겨 입고 나가 숙박부에 서명을 하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1통에 4달러, 스텐다드 오일’이라고 썼다. 마침 곁에 있던 신사가 그의 하는 것을 유심히 살피더니 그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저희 회사를 조금이라도 더 알리고 싶은 마음에서 이렇게 합니다!’ 라고 그가 대답했다. 한 달쯤 후 그는 본사 회장실로 불려갔다. 그는 거기서 한 달 전에 만난 신사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 신사가 바로 회장이었다. 회장은 ‘나는 당신처럼 회사에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을 곁에 두고 싶소!’ 하며 그를 본사로 발령을 내고, 나중엔 중역으로 중용했다.

 

누구든지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충성스러운 사람을 좋아하고, 그런 사람을 곁에 두고 싶어 한다. 그것은 주님도 마찬가지다.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살게 하리니”(시101:6). 주님의 눈은 항상 충성스러운 사람에게 향하고, 이런 사람을 찾으시고, 이런 사람과 함께 계시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충성스러운 사람이 주님을 맞이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본문은 재림을 기다리는 자세로 충성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 주님 앞에 충성스러운 종으로 드러나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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