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의 능력(06-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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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20,910회 작성일 06-12-04 12:02본문
찬양의 능력
행16:16~26
「왕자와 꾀꼬리」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왕자에게 아주 노래를 잘하는 황금 꾀꼬리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왕자는 이 꾀꼬리의 노래를 무척 좋아했고, 그래서 왕자는 이 꾀꼬리를 아끼고 사랑했습니다. 어느 날 저녁입니다. 꾀꼬리가 노래를 부르지 않고 그냥 시무룩해 있습니다. 왕자가 그 이유를 묻자, 꾀꼬리가 대답했습니다. ‘왕자님, 저 개구리들의 소리가 들리지요. 개구리들의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노래를 부르고 싶은 마음이 생기질 않습니다.’ 그러자 왕자가 꾀꼬리를 위로하며 말합니다. ‘개구리들 소리 때문에 네가 노래를 부르지 않으니 온통 주변이 개구리들 소리만 들리지 않느냐, 그러니 네가 더욱 열심히 노래를 불러서 저 개구리들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해다오.’
이 짤막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찬양을 해야 할 이유, 찬양의 능력을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쉬지 않고 찬양을 해야 할 이유는 세상의 온갖 더럽고 악하고 추한 개구리 소리들 때문입니다. 그 소리들을 물리칠 수 있는 비결이 찬양입니다. 내 마음 속의 시끄러운 개구리 소리를 비롯하여, 우리 생활 주변에서 쏟아져 나오는 시끄러운 개구리 소리들을 잠재울 수 있는 비결입니다. 찬양하면 내 마음 속에 있는 슬픔과 고통, 염려와 근심이 사라집니다.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탄식이 변하여 기도가 되고, 불평과 원망이 변하여 감사가 됩니다. 여러분, 찬양을 드려보세요! 복잡하고 답답한 내 심령의 분명한 변화를 경험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잡다한 유혹의 소리, 불신의 소리, 죄악의 소리들이 사라지게 됩니다. 우리 찬송 중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세상과 나는 간 곳없고 구속의 주만 보이도다.”
어느 때 우리가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습니까? 찬양을 드릴 때입니다. 찬양을 드리다 보면 주님께 몰입하게 됩니다. 아무 소리도 아무 생각도 없고, 감격스럽게 그저 주님만 바라보게 됩니다. 이것이 찬양의 능력입니다.
오늘 이 설교는 지난 11월 첫 주에 했던 찬양하는 생활에 이은 것입니다. 그 때는 주로 찬양의 이유와 목적에 주안점을 두고 말씀을 드렸는데, 오늘은 찬양의 능력에 대하여 여러분과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아름다운 노래를 한 꾀꼬리가 왕자의 사랑을 받았던 것처럼 우리가 찬양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왜냐하면 찬양은 신뢰의 표현이고, 감사의 표현이고, 믿음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찬양 중에 충만히 임재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능력으로 역사하십니다. 그렇다면 찬양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어떤 일들을 하실까요?
1. 하나님은 찬양을 통하여 치유의 능력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실 때는 모든 게 질서 있고 조화로웠습니다. 창1:31, 창조 후에 만물을 보시고 하나님이 이렇게 반응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여기서 ‘좋았다’라는 말씀은 인간을 포함한 세계와 모든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 스스로의 평가요,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계, 창조하신 창조물들의 특징을 요약해서 잘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이 말씀은 윤리적으로 완전하다, 마음에 쏙 들도록 만족하다, 미학적으로 매우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죄를 짓고,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면서 질서와 조화가 깨지고 말았습니다. 즉 완전에 문제가 생기고, 아름다움을 상실하여 하나님의 마음에 싫어버린 바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로 인해 우리 인생은 망가지고, 깨지고, 상처받고, 병들고, 나아가서 죽음이라는 비극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무질서와 혼돈의 상태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의 삶 가운데 임하셔서 그 능력으로 역사하시면 무질서와 혼돈이 사라지고 질서정연해집니다. 그것이 곧 회복이요 치유인 것입니다. 이런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우리의 찬양 중에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장관을 지낸 어느 분의 이야기입니다. 장관이 됐는데 이상하게 불안합니다. 그래서 밤이면 밤마다 불면증에 시달립니다. 저야 잠이 너무 많아서 고민이지만 잠을 못자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것도 없습니다. 불면증은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질병입니다. 불면증에 걸리면 식욕도 사라지고, 건강도 심각하게 나빠지고, 나아가 삶의 의욕마저 잃게 됩니다. 그러므로 잠 잘 자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고 감사할 일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 했거든요. 그러므로 사람이란 것이 이렇게 연약합니다. 남 보기에는 권세가 대단한데도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지 않으면 오히려 높아질수록 불안해집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정말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다행히 부인이 신앙이 좋은 분이어서 밤마다 이 장관 남편의 머리맡에서 찬송을 들려주고 시편을 읽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6개월 만에 이 불면증이 깨끗이 치유됐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찬양은 능력입니다. 특히 치유의 능력, 회복의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찬양을 통해 그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우리 모두는 영/육간에 치유와 회복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찬양의 능력을 믿고 하나님께 찬양을 통해서 마음을 다 털어놓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임하셔서 놀라우신 능력으로 망가진 인생을 회복시켜 주시고, 병든 마음, 병든 영혼을 치유해 주실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찬양을 통하여 승리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우리가 험한 세상 살 동안 얼마나 많은 고난과 환란이 우리 앞에 도전해 오는지 모릅니다. 밀물과 썰물처럼 이제는 사라졌다 싶으면 다시 고난이 닥쳐옵니다. 혹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산맥처럼 산 너머 산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나 찬송을 부르며 주님과 동행하면 주께서 도와주십니다. 승리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본문에 나온 바울과 실라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바울 일행이 빌립보에서 전도할 때입니다. 귀신이 들려 점을 하는 불쌍한 여인이 있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녀에게서 귀신을 쫓아내고 그녀를 온전하게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로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매를 맞고 손발이 묶인 채 깊은 토굴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울과 실라는 밤중에 일어나서 기도하며 찬양을 합니다. 학자들은 말하기를, 이 밤중은 바울과 실라가 매를 맺고 기절을 했다가 깨어난 시간이라고 합니다. 즉 이들은 정신이 들자마자, 자신들의 형편이나 환경을 돌아보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찬양을 드린 것입니다. 바로 그때, 그들이 찬양을 할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본문25~26,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獄) 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옥문이 열리고 묶인 사슬이 풀렸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바울과 실라는 그 날 밤에 즉시 석방이 되었고, 간수의 가족이 구원받아 모두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그들에게 매를 때리고 감옥에 가두었던 관원들의 전송을 받으며 빌립보 관청을 나왔습니다. 멋진 역전의 승리입니다. 이 모든 것이 찬양 중에 임하신 하나님의 역사였던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우리가 찬양하면 지옥의 터가 흔들리고, 사단의 세력이 무너지고, 묶인 사슬들이 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노벨상 수상 작가인 펄 벅의 어린 시절 이야기입니다. 그의 부모는 중국 선교사였습니다. 한번은 아버지는 전도 여행을 떠나고 없고, 어머니와 아이들 셋만 집에 있을 때입니다. 저녁을 먹고 어머니가 창가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는데 밖에서 중국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내용인즉 가뭄으로 온 동네가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이유가 서양인들이 들어와서 신이 노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밤이 깊어지면 서양인들을 처치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어머니는 질겁했습니다. 대책이 없어 그냥 골방에 들어가 기도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용기와 지혜를 주셨습니다. 밤이 깊어지자 중국인들이 들이닥쳤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침착하게 그들을 맞이하였고 다과를 대접했습니다. 그리고는 오르간 앞에 앉아 중국어로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찬송이 끝날 때까지 방안은 조용했고, 신기하게도 중국인들은 얼굴을 마주보면서 멋쩍어하다가 하나 둘씩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역시 찬송 중에 임하셔서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아무리 눈앞이 캄캄해도 찬양을 하십시오. 찬양은 형통한 가운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답답할 때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아무쪼록 늘 찬양하면서 이런 승리의 역사를 체험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은 찬양을 통하여 소망의 삶을 살게 합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때때로 절망을 경험할 때가 생깁니다. 죽음의 절박한 상황에 처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상황일지도 우리가 찬양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큰 위로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절망 너머로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양승훈 교수의 에세이 「물에 빠져 죽은 오리」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어느 의사 선생님의 경험담인데, 그 분의 병원에 피부암 말기인 어느 환자가 입원했습니다. 눈과 입만 빼고 얼굴 전체가 흉측하게 암 덩어리로 뒤덮였습니다. 얼마나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그 환자는 어느 교회 권사님이었습니다. 그 병실을 지나갈 때마다 뭔가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래서 가까이 가서 무슨 소리인가 들어봤더니 이 권사님이 찬양을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찬송가 23장입니다.
“만 입이 내게 있으면 그 입 다 가지고 내 구주 주신 은총을 늘 찬송 하겠네”
인간적으로 그렇게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이 찬양을 한 것입니다. 이렇게 찬양하는 권사님의 모습에는 구원의 기쁨과 천국에 대한 소망으로 가득 차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찬양의 능력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 이 의사 선생님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신앙이 이렇게 위대하고, 찬송이 이렇게 놀라운 것임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 징그럽고도 무서운 암도 찬양하는 그분에게서 구원의 감격과 천국의 소망을 앗아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얼마 후 그 권사님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평화로운 모습으로 천국에 들어갔습니다. 이제 그분은 눈물도 고통도 질병도 사망도 없는 천국에서 영원히 찬양하며 살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생활을 한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혹시 나의 찬송의 샘이 마르지는 않았는지. 혹시 습관적으로 입만 벙끗벙끗하는 껍데기 찬송을 부르는 모습은 아니지.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중심으로 찬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어떤 상황에서도 이 권사님처럼 소망의 삶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 교수의 이야기입니다. 그분은 신약학 교수인데 이상하게 예배시간에도 찬송을 부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찬송 음치’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교수가 어찌된 일인지 찬송을 힘차게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강의 시간에 조심스럽게 물었답니다. “교수님, 무슨 일 있으세요? 찬송을 다 부르시고......” 그랬더니 겸연쩍은 표정으로 고백을 했습니다. 그 전날 밤 꿈을 꾸었다는 것입니다. 천국 문에 이르러 노크를 했더니, 베드로가 나오더니 누구냐고 묻더랍니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신자요, 지금은 신학교 교수라고 자신을 소개했더니, 베드로가 무슨 장부 같은 것을 뒤지며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공부는 많이 해서 아는 건 많은데, 찬미의 제사를 올린 기록이 없소. 천국은 지식이 많은 박사를 원하는 게 아니라 찬송을 열심히 부르는 사람을 원하오. 그러니 다시 가서 찬송을 많이 부르다가 오시오!” 그러면서 천국 문이 ‘탕’ 하고 닫혀서 깜짝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찬송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신앙의 영웅들을 보면 한결같이 일생토록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닥치든지 항상 마르지 않는 찬송의 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치 퍼낼수록 새물이 솟아오르는 샘물처럼 풍성한 찬양 생활을 했습니다. 그것이 복된 인생의 비결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새롭게 결단하여 열심히 찬양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쁜 일도 힘든 일도, 즐거운 일도, 슬픈 일도 찬양하며 주님과 동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날마다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그분의 능력으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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