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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곡의 여인, ‘라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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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5,050회 작성일 13-07-28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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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곡의 여인, ‘라헬’

창30:1~2

2013. 7/28. 08:00, 11:00

곱고 아리따운 라헬

 외모가 ‘재산’인 사람과 외모가 ‘무기’인 사람이 있다. 그 차이를 어떻게 구분하는지 아는가? 밤길을 가게해보는 것이다. 밤길이 두려운 사람은 외모가 재산인 사람이고, 밤길이 두렵지 않은 사람은 외모가 무기인 사람이라고 한다. 자신이 곧 무기이니까 사람들이 알아서 피해가기 때문이다.

 

야곱의 두 번째 아내 라헬은 인간적으로 부러울 게 없는 사람이다. 무엇보다도 ‘곱고 아리따운’(29:17) 외모를 소중한 재산으로 가진 사람이다. 예나 지금이나 (남성도 마찬가지지만)여성에게 있어서 외모의 아름다움은 중요한 스펙이다. 특히 요즈음 성형이 붐을 이루고, 심지어 직업 맞춤형 성형까지 유행하고 있다. 그런데 라헬은 이런 외모를 타고났다. 그래서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하였다. 무엇보다 남편이 자신과 결혼하기 위해 14년이나 머슴살이를 한 로맨스까지 가진 참으로 행복한 여인이다. 그리고 이런 남편의 사랑은 결혼생활 내내 변함이 없었다. 그녀는 이렇게 행복의 조건을 다 갖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는데, 남편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자녀가 없었다. 이 약점이 평생 그림자처럼 그녀를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반면 남편에게 벌레처럼 취급을 당하고, 원수처럼 대접을 받았던 언니 레아는 그것도 아들만 줄줄이 넷이나 낳았다(29:32~35). 이것을 보니 더욱 조급하고 자존심이 상하고 화가 났다(1,2). 사실 이렇게 남편 사랑을 받지 못한 레아는 줄줄이 아들을 낳고, 그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는 라헬에게 자녀가 없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였다. 하나님께서 라헬에게 이런 약점을 주신 것이다(29:31). 그것은 자신의 약점을 통해 약점으로 고통당하는 이웃(레아)의 형편을 돌아보고, 그것을 극복하는 법을 배우도록 하시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약점 또한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면 그것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된다.

 

장애물이냐! 디딤돌이냐!

어떤 사람에게는 약점이 치명적인 ‘장애’가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더 높이 더 멀리 도약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되기도 한다. 야곱의 두 아내 레아와 라헬이 좋은 본보기다. 약점이 레아에겐 삶의 디딤돌이 되었다면, 라헬에겐 장애물이 되었다. 이런 결과는 그것을 다루는 사람 때문이다. 레아의 경우는 약점을 성공적으로 잘 관리한 반면 라헬은 약점 관리에 실패했다. 어떻게 하면 약점 관리에 성공할 수 있을까? 그래서 약점까지도 삶의 디딤돌이 되게 할 수 있을까? 라헬을 반면교사로 하여 이를 알아보고자 한다.

 

1.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고,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삶이란 그 자체가 너무 엄숙한 것이기 때문에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일반적인 사실들을 놓고 볼 때 레아와 비교하여 라헬이 훨씬 나은 상황이었다. 라헬은 자녀를 낳지 못한 것만 빼고 다 가진 유복(裕福)한 사람이고, 레아는 자녀를 낳은 것 외에는 내세울 것이 없는 박복(薄福)한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레아는 자신의 약점 때문에 불평하거나 누구를 원망하지 않았다. 이는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인 까닭이다. 그러나 라헬은 시기를 하고, 일편단심 자신만 바라보는 남편에게 화를 내면서 ‘죽겠다.’고 협박까지 했다(1). 그녀는 약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보다 주변 사람의 탓으로 돌렸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약점은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면 재앙이 된다. 성공적인 삶을 살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치명적인 약점을 가졌던 사람들이다.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극복하고 나니까 약점이 도리어 삶의 디딤돌이 되고, 인생의 날개가 되어 더 높이 더 멀리 도약하고 비상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인간관계에서도 약점을 인정하면 도리어 역설적인 효과가 나타난다. 프랑스의 작가 라로슈푸코는 이런 말을 했다. ‘자신의 사소한 약점을 먼저 인정하는 것은 자신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없다는 것을 상대에게 알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약점이 아니다. 그것은 누구나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것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이 레아와 라헬의 차이다.

 

이것은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이 천국과 지옥을 다녀왔는데, 천국엔 이 세상의 모든 죄인이란 죄인이 다 모여 자신의 죄가 용서된 것을 감사하고, 지옥엔 자신이 죄인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세상 모든 의로운 사람이 다 그곳에 있었다. 그렇다. 인간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죄’다. 신앙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자신이 절망적인 죄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 용서하시는 주님의 은혜, 구원하시는 주님의 은혜가 임한다(눅18:9~14). 바로 이런 사람이 가는 곳이 천국이다. 그러니 천국엔 죄인만 있을 수밖에! 그렇지만 그들은 모두 용서받은 죄인이다. 지옥은 그 반대다.

 

2. 약점은 시기의 대상이 아니라 기도의 대상이다.

이렇게 자신의 ‘없음’을 인정하고 수용하면 상대방의 ‘있음’에 대해 시기하고 질투할 필요가 없게 된다. 그것 때문에 불평하거나 원망하지도 않게 되고, 그것 때문에 더 이상 상처를 받지도 않게 된다. 그것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라면 더 이상 걱정하지 않고, 모두를 하나님께 맡기게 된다. 탁월한 사람들은 그것을 감사의 대상의 삼는다. 그래서 담담하게 해결책을 찾게 된다. 레아가 그랬다.

 

레아는 라헬에 비하면 훨씬 심각한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라헬을 시기하지도 않고, 아들을 줄줄이 낳아주어도 자신을 거들떠보지 않는 남편을 원망하지도 않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아이들과 함께 집을 나간다거나 죽어버리겠다고 협박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그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지도 않고, 그저 이런 자신의 형편을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녀의 형편을 보셨고(29:31), 그녀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다. “그가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가 사람 받지 못함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 아들도 주셨도다.......”(:33). 사실 이 점은 레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중요한 원인이기도 하다. 지난주일 설교에서 이 부분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오늘 말씀하기 위해서다. 여기서 “사랑 받지 못함을 들으셨으므로”라는 말씀에는 레아가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었다는 내용이 생략되어 있다(그래야 논리적으로 연결이 됨). 레아가 남편에게 벌레처럼 원수처럼 취급받는 모든 상황에 대하여 간절히 부르짖었더니 하나님께서 ‘들으셨으므로’ 이 아들(시므온)도 주셨다는 고백이다. 레아는 자신의 약점을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갔다. 그리고 그 앞에 엎드려 간절히 부르짖었다. 이것이 또 하나 약점에 대한 중요한 태도이다.

 

반면에 라헬은 이 문제로 기도하지 않는다. 대신 남편에게 해결하라고 억지를 부리고 협박까지 했다.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1). 이는 당연한 결과다. 애초부터 그녀는 이를 자신의 문제로 인정하거나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도,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러니 약점을 위해 기도하기보다 해결능력이 없는(2) 남편에게 해결하라고 협박하고, 그저 자신의 ‘없음’에 대해 상대방의 ‘있음’을 시기하고 질투하는데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았다. 이런 시기와 질투는 ‘아기 낳기 경쟁’이라는 희한하고 어이없는 일로 이어졌다(3~24). 얼마 후 하나님께서 라헬을 생각하셔서 그녀에게 아이를 허락하셨는데, 그가 곧 열 아들이 부럽지 않는 요셉이다. 하지만 낳기 경쟁에 사로잡혀 있는 그녀에겐 이런 요셉의 가치를 알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요셉 한 사람으로 만족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아이를 낳다가 결국 난산으로 죽고 말았다. 그녀는 자신이 낳은 아이의 이름을 ‘베노이’(슬픔의 아들, 고통의 아들)이라 지어주고 눈을 감았다(창35:18). 시기와 질투, 이에서 비롯된 경쟁의식으로 점철된 슬프고 고통스러운 그녀의 삶을 대변해 주는 이름이다. 라헬은 많은 장점을 가졌지만 그 장점을 누리지도 못하고, 약점에만 집착하다 그 약점 때문에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였다. 결국 약점이 삶의 장애물이 된 것이다. 이것은 라헬뿐만 아니고 성경 안팎에서 이런 위인(爲人)들을 많이 만날 수 있고, 지금 우리 주변에도 많다.

 

아무리 사소한 것도 기도하지 않으면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지만 아무리 심각한 것도 기도하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약점을 주신 것이 아니다. 더 큰 은혜, 더 큰 사랑, 더 큰 복을 주시기 위해서 주신 것이다(요9:3). 그러므로 이 문제를 가지고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것이다. 주님께서 보실 때까지, 주님께서 들으실 때까지, 그래서 해결해 주실 때까지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면 약점은 인생의 장애물이 아니라 디딤돌이 될 것이다.

 

약점, 인생의 좋은 동반자

가뭄이 들면 냇가에서 자란 나무와 산등성이에서 자란 나무 중에, 어느 곳의 나무가 먼저 말라 죽을까? 냇가에서 자란 나무라고 한다. 평소에 물이 풍부하니까 뿌리를 깊이 내리지 않고 있다가 가뭄이 들어 냇가에 물이 줄어들면 금방 말라죽게 된다. 반면에 산등성이에서 자란 나무는 열악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뿌리를 깊고 멀리 뻗고 있어 어지간한 가뭄도 충분히 극복할 수가 있다. 좋지 않은 환경이란 약점이 가뭄을 극복할 수 있는 장점으로 작용한 것이다. 마찬가지다. 약점이 인생을 무너지게 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약점 때문에 인생이 실패하고, 약점 때문에 무너진다면 모든 인간은 실패로 무너졌을 것이다. 예수님 외에는 약점이 없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약점은 인생의 불청객이 아니라 인생의 참 좋은 동반자이다. 사실 우리 중에도 인생의 심각한 약점이 없었다면 이 자리에 없었을 사람이 있다. 그 약점이 주님을 영접하게 하고 섬기게 해서 이 자리에 있게 한 것이다. 특히 신앙생활에서 약점은 갈망의 공간이다. 이것이 클수록 신앙생활이 더욱 간절해지고 절박해지는 것이다. 물론 약점은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을 인정하고 수용하여 기도로 바꾸면 소중한 은혜의 선물을 제공해 주고, 지속적으로 은혜 안에 머물게 한다. 주님은 은혜라는 값진 보물을 약점이라는 보자기로 덮어두셨다. 모쪼록 약점이라는 보자기 속에 감춰진 주님의 보물들을 찾아서 누리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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