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애로 고통을 겪은 여인, ‘리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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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9,345회 작성일 13-06-30 13:03본문
편애로 고통을 겪은 여인, ‘리브가’
창27:5~23
2013. 6/30. 08:00, 11:00
분열의 무기, 편애
‘열 손 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이 있다. 부모의 자식 사랑을 빗댄 속담이다. 부모에게 있어서 자식은 하나같이 사랑스럽고 소중한 존재라는 뜻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부모가 모든 자녀를 다 사랑하지만 그 중에 ‘표가 나게 사랑하는’(편애) 아이가 있다. 어쩌면 당한 일이다. 사랑은 감정의 영역이고, 감정이 한결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또한 불가피한 이유가 있을 수도 있고 해서).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 자녀간의 심각한 갈등의 원인이 된다는 점이다.
초등학교 3학년인 아이가 엄마와 이웃집 아주머니의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이웃집 아주머니의 말이다. ‘댁의 큰 아이는 참 부지런하고 착해요. 부러워요.’ 이에 대해 엄마가 ‘그래요. 하지만 그 애는 좀 덤벙대는 게 탈이죠. 그에 비하면 작은 애가 더 부지런하고 침착하지요. 그래서 저는 큰 애보다 작은 애를 더 믿는 답니다.’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아이는 온 몸에서 힘이 빠지면서 서있기조차 힘들었다. 엄마의 말에 심한 상처를 받은 것이다. 사실 부모가 쏟는 사랑은 자녀의 자존심, 사회성, 다른 가족과의 관계에 큰 영향을 준다. 반면 다른 형제보다 부모의 사랑을 덜 받는다고 느끼는 자녀는 불안, 낮은 자존심, 우울증에 시달릴 확률이 높다. 그 날 이후, 이 아이는 엄마의 마음에 들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한 결과 덤벙거리는 습관이 좀 고쳐지기는 했지만 동생에 대한 적개심은 더욱 커갔다.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남아서 형제 사이가 원수처럼 되었다. 편애에 따른 부모의 치우친 말 한 마디가 아이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되고, 형제간의 갈등 원인이 되었다.
편애는 분열의 무기다. 부모의 편애는 자녀간의 분열을 만들고, 선생님의 편애는 학생간의 분열을 만든다. 목회자의 편애는 신자간의 분열을 만들고, 직장에서 상사의 편애는 동료 사이에 분열을 만든다. 성경에서는 야곱의 가정이 좋은 본보기다. 야곱의 요셉에 대한 편애가 자녀간의 불평과 불만, 갈등과 분열의 원인이 되었고, 급기야 형제들이 공모해서 요셉을 노예로 팔아버리는 끔찍한 일까지 일어났다.
치맛바람의 원조
본문의 이삭 가정도 마찬가지다. 이삭 부부는 결혼 20년 만에 늦둥이로 에서와 야곱 쌍둥이 아들을 낳았다. 그런데 이삭은 에서를 더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더 사랑했다(25:28). 두 아이를 두고 부부가 각각 편애한 것이다. 편애란 일반적인 현상이긴 하지만, 또한 부부 사이가 원만하지 못한 경우 나타나는 현상이라고도 한다. 그렇다면 이삭 부부사이에 틈이 있었는데, 아이들의 탄생으로 그것이 더욱 고착화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것은 장차 에서와 야곱 사이 갈등의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사실 본문은 부모의 편애가 낳은 막장을 보여준 사건이다. 축복을 계승하는 이 중대한 일을 자기가 좋아하는 별미를 얻어먹고 은밀히 진행하려는 이삭, 이를 엿듣고 자식과 남편을 속여 자기가 사랑하는 자식이 그 복을 계승하도록 한 리브가의 행동은 막장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그 훌륭한 믿음의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상식과 인륜에 벗어난 행동을 할 수 있을까? 무언가에 치우치면 이렇게 된다. 치우치면 집착하게 되고, 집착하면 그 대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즉 집착의 대상에게 지배를 당하게 된다. 신앙인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주일 말씀에서 보았듯이 리브가는 다른 사람의 필요에 민감한 친절한 사람이고(24:46), 하나님의 뜻에 즉각적으로 순종한 믿음의 사람이다(24:58). 한 마디로 믿음의 여장부였다. 그런데 자녀 앞에서는 그녀도 한 어머니에 불과했다. 그래서 일반적인 어머니들, 아니 그보다 더한 추한 모습을 보이게 된 것이다. 소위 ‘치맛바람의 원조’라는 오명까지 붙게 된 것이다. 때문에 우리의 구원이 나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고, 나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고 한 것이다. 누구든지 인간은 절망적인 죄인이다. 주님의 은혜가 필요한 존재이다. 그것은 리브가도 마찬가지다.
이삭은 에서를, 리브가는 야곱을
본문은 하나님께서 에서와 야곱이 리브가의 태중에 있을 때,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25:23)고 하신 말씀이 성취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문제의 발단은 한 가정의 제사장인 이삭이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임의로 자기가 사랑하는 에서에게, 그것도 좋아하는 별미를 얻어먹고 장자의 축복을 하려고 한데서 시작되었다(1~4). 팥죽 한 그릇에 자신의 장자권을 동생에게 판 에서나 별미음식으로 축복한 이삭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아무튼 야곱은 팥죽 한 그릇으로 에서에게서 장자권을 확보하고, 별미로 아버지의 축복도 받았다. 역시 사람에게는 먹는 문제가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리브가가 이와 같은 이삭의 잘못된 결정을 막고,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대응하는 것으로 내용이 전개가 된다. 표면상으로 그렇다. 그런데 이 문제의 배후에는 이삭 부부의 치우친 사랑(편애)이 작용하고 있다. 이삭이 하나님의 뜻을 무시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뒤엎고 야곱이 아닌 에서에게 복을 빌고자 한 것은 야곱보다 에서를 더 사랑한 까닭이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선 하나님의 뜻도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이삭의 잘못된 결정을 막고,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고자 했던 리브가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이삭이 에서를 사랑한 것보다 리브가가 야곱을 사랑한 것이 훨씬 설득력과 정당성이 있어 보인다. 그녀는 이삭처럼 육적인 이유(25:28)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25:23)을 따랐기 때문이다. 그녀는 하나님이 사랑한 사람(말1:2~3, 롬9:13)을 자신도 사랑한 것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신앙의 모습이다. 그런데 본문에서 보여준 그녀의 태도는 너무 다르다. 이삭의 잘못된 결정을 막고,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것은 하나의 명분이고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 즉 자기가 사랑하는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받도록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야곱은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어 하나님을 대신 한 아버지를 속이는 일에 두려움을 가졌지만(12) 그녀는 두려움은커녕 대담함을 보인다. 아버지를 속여서라도 축복을 받도록 하려는 계획에 야곱이 주저하자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어머니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따르고 가서 가져오라.” 이것은 단순히 자식을 위해 어떤 희생도 감수하겠다는 모성애적 표현이 아니다. 자신은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고 있다는 일종의 신앙적 확신의 표현이다. 이것은 리브가에게 있어서 야곱에 대한 편애가 종교적 신념이 되었음을 뜻한다. 이것은 아주 심각한 일이다. 잘못된 신앙적 확신, 혹은 종교적 신념에 사로잡히면 더 이상 합리적이고 윤리적인 사고나 행동에 매이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행동에 스스로 정당성을 부여한다. 자신은 신의 뜻을 수행하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리브가도 본문에서 상식과 인륜에 벗어난 행동을 대담하게 저지른 것이다. 자신이 야곱을 사랑하고, 사랑하는 야곱이 축복을 받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어떤 수단과 방법도 정당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무슨 일이든 뜻도 중요하고, 목적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이루어가는 과정도 중요하다. 하나님의 일은 더욱 그렇다. 하나님이 무엇이 아쉽고, 무엇이 부족해서 부당한 방법을 사용하시겠는가?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당신의 뜻을 이루시도록 믿고 기다리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축복한 사람을 사람이 저주할 수 없고, 하나님이 버린 사람을 사람이 축복할 수 없다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이다. 리브가에게 바로 이 점이 부족했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것이 그녀의 관심이 아니었다는 증거이다. 아무튼 리브가에게서 편애는 하나님의 뜻의 실현이라는 명분으로 드러나고 있다. 자신은 야곱을 편애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실현한 것이라고 하겠지만 하나님의 뜻은 명분이고 야곱에 대한 편애가 중심이다. 이는 편애가 하나님의 뜻으로 위장이 된 경우다. 이런 태도가 자신과 가족을 비극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편애가 부른 고통
사회학자 짐멜(G. Simmel)은 ‘더욱 높아지려고 노력하는 정신적인 인간이 무엇보다 회피해야 할 것은 편애하는 것이다.’고 했다. 한 사람을 지나치게 사랑하는 편애가 여러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음을 지적하는 말이다. 누군가 한 사람을 지나치게 사랑하게 되면 반대로 사랑을 받지 못한 다른 사람은 상대적으로 상처를 받는다. 어느 직장인의 말이다.
‘상사가 동료를 편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그 다음부터는 상사에 대한 믿음도 깨지고 일할 마음도 안 나더라고요. 아무리 열심히 해봤자 편애 받는 그 동료보다 내가 더 인정을 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죠.’
결국 편애가 팀 분위기를 와해시키고, 나아가 조직의 결속력을 무너뜨리는 상황으로 치닫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편애로 인한 결과는 개인은 물론 공동체에도 커다란 상처를 남길 수 있는 것이다. 본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리브가의 편애는 가족 모두에게 고통을 주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리브가 자신과 야곱이다. 우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지 못하는 고통이다. 이렇게 헤어진 어머니와 아들은 죽을 때까지 서로를 보지 못한 채 살아야 했다. 야곱을 친정 오빠에게 보낸 후 그녀는 성경의 무대에서 사라진다. 성경에는 그녀의 죽음에 대한 기사가 없지만 여러 정황으로 보아 야곱이 삼촌 라반의 집에 거하는 기간에 세상을 떠난 것 같다. 헤어진 야곱을 얼마나 그리워하며 눈물로 세월을 보냈을까? 기록은 없지만 가히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다. 또한 자신의 편애로 한 핏줄인 형과 아우가 원수가 되어 함께 살 수 없게 되었고, 게다가 함께 살고 있는 아들 에서의 원망과 미움을 가슴으로 삭혀야했으니 그녀의 가슴앓이가 얼마나 컸을까? “사람의 심령은 그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잠18:14)고 했다. 리브가가 이토록 빨리 세상을 떠난 것은 이와 같은 마음의 상처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누군가에 대한 편애는 자신과 가족, 주변 사람들에게 엄청난 상처를 남긴다.
묶어주는 사람이 되자!
한자에서 편(偏)자가 들어가는 말 대부분이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편애(偏愛)를 비롯하여 편당(偏黨), 편견(偏見), 편식(偏食), 편중(偏重), 편집(偏執), 편증(偏憎).......리브가를 반면교사로 삼아 우리 삶과 가정, 교회, 직장, 그리고 속한 공동체에서 이 ‘편’자를 제거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것이 제거되어야 건강하고 행복한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다. 아울러 리브가란 이름의 뜻이 ‘짐을 묶기 위한 고리로 된 끈’(그물 끈)을 의미한다. 방법이 잘못되긴 했지만 리브가는 야곱을 하나님의 축복, 즉 하나님께 묶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하지만 편애 때문에 가족을 묶어주고, 자녀를 묶어주는 역할에는 실패함). 묶어줌의 사명, 이것이 부모의 사명이자 또한 우리 신자의 사명이다. 사랑하는 자녀를 주님께 묶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부모, 교회 안에서 지체들을 주님께 묶어주고 또한 서로 묶어주는 성숙한 신자, 나아가서 이웃을 주님께 묶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신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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