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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과 용기를 주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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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402회 작성일 25-08-17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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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과 용기를 주는 말씀

1:6~9

2025. 8/17 11:00(성령강림 열한 번째 주일)

불안한 사람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가장 잘 대변해 주는 단어가 있다. 불안이 그것이다. 또 하나의 단어는 두려움이다. 불안과 두려움은 왜 찾아올까? 물론 그 원인은 여러 가지다. 가장 일반적인 것은 우리 스스로 삶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마주하기 때문이다. 또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다. 우리는 스스로 삶을 어찌할 수도 없거니와 특히 미래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다. 그 미래를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개인적이고 실존적인 문제를 넘어 일상에서 발생하는 문제도 있다.

 

일례로, 지난 2023721일 오후 2시 무렵 서울 관악구 신림역에서 무차별적으로 휘두른 흉기에 20대 남성 1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을 당했다. 하도 이 사건이 충격적이어서 당일에 발생한 다른 사건이 묻혔다. 같은 날 부천에서는 30대 남성이 채무자의 집을 찾아가 채무자의 어머니를 흉기로 살해하고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또한 이날 오후 210분쯤 30대 남성이 안산시의 한 미용실에서 과거 연인 사이였던 30대 여성을 칼로 찌르고 투신 소동을 벌이다 긴급 체포됐다. 이처럼 예측할 수 없는 장소에서 발생하는 사건 또한 불안의 원인이다. 이런 불의의 습격에 대해 마땅히 경계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그 시간에, 그 장소에서 그 사람을 만났다면 내가 그 대상이 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서 인생의 불안이 생긴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에 대해 성도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불안한 가운데 어떻게 신앙을 지키며 담대하게 살 수 있을까? 이는 성도의 중요한 과제다. 이렇게 잠재적 불안 요인에 대해 마땅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처럼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이 없다.

 

불안이라는 감정은 정말 나쁘기만 한 걸까?

그렇다면 불안이라는 감정은 정말 나쁘기만 한 걸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면도 있다. 비근한 예로 불안은 우리를 신앙의 길로 안내하기도 한다. 우리 중에도 삶의 불안이 신앙생활의 동기가 된 사람이 있고, 불안 때문에 신앙생활에 집중하게 된 사람도 있다. 신경과학자 웬디 스즈키(Wendy Suzuki)는 불안을 통해 한 번 더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불안을, 삶을 방해하는 부정적인 것이 아닌 삶의 동력이 되는 긍정적인 것으로 본 것이다. 당신의 불안은 죄가 없다.라는 그녀의 책에서 이를 말하고 있다. 그녀는 이 책에서 자신이 불안에 빠져들며 경험했던 사실과 뇌과학적 근거를 통해 불안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고 있다. 그야말로 불안을 재발견하게 해준 책이라고 할 수 있다(명량이란 영화의 한 장면).

 

두려움에 떨고 있는 여호수아

그러면 어떻게 두려움과 불안을 힘과 용기로 바꿀 수 있을까? 성경에도 불안과 싸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본문의 여호수아가 그중에 한 사람이다. 여호수아는 막중한 책임감으로 두려움과 불안에 떨고 있었다. 물론 구체적인 표현은 나오지 않으나 수1장을 통해 충분히 짐작할 수가 있다. 그것은 모세를 이어 새로운 지도자로 세움을 받은 여호수아를 향해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이를 잘 보여준다. 본장에서 강조되고 있는 단어가 강하고, 담대하라!’이다. 4번이나 반복해서 나오고 있다. 하나님이 3, 백성이 1번 여호수아에게 한 말이다. 이는 힘내라. 용기를 가지라!’는 의미다. 이렇게 말한 것은 여호수아가 무척 두려워하고, 불안해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이다.

 

이는 충분히 추론할 수 있는 일이다. 모세라고 하는 탁월한 지도자의 뒤를 이어 지도자가 되었으니 심리적으로 얼마나 부담이 되겠는가? 또한 지도력을 발휘하는 장소와 내용에서도 모세와는 전혀 다르다. 물론 모세가 삶의 여건이 전혀 갖춰지지 않는 광야에서 그것도 40년 동안이나 그 많은 백성을 인도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넉넉하지는 않아도 하나님께 바위를 깨뜨려서 마실 물을 주시고, 매일 만나를 내려 먹이시고, 그들이 가야할 곳과 머물러야 할 곳을 친히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인도하셨다. 하나님께서 친히 길을 내주신 것이다. 이에 비해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에 거주하고 있는 원주민과 전쟁을 해서 그 땅을 점령하고 각 지파에게 분배해야 했다. 특히 거기에는 그들이 40년 전에 보고 간담이 녹았던 거인족 아낙 자손과 그들의 견고한 성이 버티고 있었다. 그러니 여호수아의 심적 부담이 얼마나 컸을까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여호수아의 마음을 잘 아신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이 강하라! 담대하라!’이다.

 

불안을 용기로 바꾸려면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마음대로 되느냐는 것이다. 아무리 힘내자! 용기를 갖자! 라고 스스로 다독이면서 격려해도 돌아서면 곧 두려움과 염려에 사로잡히게 된다. 우리가 우리 마음을 스스로 다스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람의 위로나 격려는 공허한 말장난이다. 힘이나 용기는 우리 안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힘을 주셔야 힘을 갖는 것이고, 용기를 주셔서야 용기를 갖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이런 도움도 되지 않는 헛말씀을 하신 것일까? 중요한 것은 이 말씀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뒤에 이어지는 말씀에 있다.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라......’(7~9). 하나님의 말씀에는 항상 해답이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가 있다. 두려움과 염려를 힘과 용기로 바꾸는 비결이 말씀에 있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은 분명히 다른 말씀을 하셨을 것이다. 백성을 강한 용사로 훈련시키라든지 많은 군마와 무기를 구입하여 백성을 강군으로 무장시키라든지. 그런데 하나님은 엉뚱하게 전쟁을 앞둔 여호수아에게 율법책을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여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고,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고 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말씀 속에 힘과 용기를 얻는 법, 곧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는 비결이 있기 때문이다.

 

말씀에 묶인 삶

결국 말씀에 대한 태도가 두려움과 염려를 힘과 용기로 바꾸는 비결이다. 어떻게 해야 말씀을 통한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을까? 강하라.’, 담대하라.’는 단어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강하라.’는 히브리어로 하자크(חָזַק)인데, 강한, 든든한, 힘센등 여러 의미가 있다. 이 단어의 본래 의미는 가까이 하다.’, ‘꽁꽁 묶다.’, ‘단단히 매다.’는 뜻이다(손에 힘이 있는 상태). 이는 힘의 본질을 잘 보여주는 단어다. 힘의 본질이 근접성집중이다. 자석을 보면 알 수 있다. 쇠붙이 자체에는 자력이 없다. 하지만 자석에 근접할수록 자력이 커진다. 또한 부드러운 물도 집중하면 쇠도 자를 수는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된다. 그러므로 힘이란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하나님께 단단히 묶일 때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그 무엇보다 말씀을 가까이하는 삶을 강조하신 것이다. , 율법책을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여 주야로 묵상하라고 하신 것이다. 말씀을 가까이하고, 말씀에 자신을 단단히 묶는 것이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하나님께 단단히 묶이는 삶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 진정한 힘이 솟아나기 때문이다. 두려움과 염려가 많은 세상이다. 두려움과 염려의 희생양이 되지 않으려면 이를 힘과 용기로 바꿔내야 한다. 그 비결이 말씀을 가까이하고, 말씀에 단단히 묶이는 삶이다. , 하나님의 말씀을 하자크하는 것이다.

 

말씀에 깨어있는 삶

그리고 다음으로, 담대하라.’. 이는 히브리어로 아마츠(אָמַץ)인데, ‘기둥이 되다.’, ‘굳게 되다.’, ‘용감하다.’는 의미다. 이 단어의 본래 의미는 방심하지 않고 깨어있는 것’, ‘~에 대해 깨어있는 것을 뜻한다(무릎에 힘이 있는 상태). , 바르게 분별하여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 앞에 늘 깨어있는 것을 뜻한다. 앞에서 말씀을 가까이하고, 말씀에 단단히 묶인 것이 두려움과 염려를 힘과 용기로 바꾸는 비결이라고 했는데, 문제는 이 일이 절로 되지 않는다. 이 일이 가능하게 하려면 말씀에 깨어있어야 한다. 깨어있다는 것은 마음을 여는 것이다. 온전히 집중하여 정성을 쏟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마음을 활짝 열고, 말씀에 온전히 집중하여 정성을 쏟는 것이다. 이것이 아마츠. 그러면 말씀을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삶이 가능해진다.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는 삶을 살게 된다. , 말씀을 가까이하고, 말씀에 단단히 묶이는 삶이 가능해진다. 그래서 두려움과 염려를 힘과 용기로 바꿀 수가 있다.

 

게임 체인저(Game Changer)

우리의 일상은 두려움과 염려의 연속이다. 두려움으로 하루를 시작하여 염려로 하루를 보낸다. 어떤 사람에겐 이런 두려움과 염려가 각종 질병의 원인으로 작용하여 삶의 질을 무너뜨리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이를 잘 선용하면 성장의 동기, 더 큰 은혜로 나아가는 통로가 될 수도 있다. 이렇게 두려움과 염려를 혁신적으로 바꾸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 역할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말씀을 가까이하고, 말씀에 단단히 묶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말씀에 항상 깨어있는 것이다. 이것이 두려움과 염려를 극복하고 힘과 용기로 우리의 일상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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