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미소 짓게 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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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131회 작성일 26-01-18 14:35본문
하나님을 미소 짓게 한 사람
욥1:1~8
2026. 1/18. 11:00
하나님도 사탄도 지켜보고 있다.
본문은 하나님의 어전회의에 사탄이 참석한 장면이다. 하나님은 사탄에게 물으셨다. ‘네가 어디서 왔느냐?’(7a). 그러자 이렇게 대답했다. ‘땅을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7b). 참으로 두려운 일이다. 사탄이 우리의 집도, 사무실도, 일터도, 지금 우리가 드리고 있는 이 예배 현장도 두루 돌아다닌다는 것이다. 이유는 단 하나다. 무너뜨릴 틈을 찾기 위해서다. 그래서 성경은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엡4:26)고 말씀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또 사탄에게 물으셨다. ‘너는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8). 여기서 우리 번역에 빠진 단어가 있는데, 그것은 ‘마음’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너도 욥을 마음에 두고 지켜보았느냐?’라고 물으신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마음에 두고 지켜보고 계신다는 의미다. 즉, 사탄도 욥을 지켜보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욥을 지켜보고 계신다는 뜻이다. 물론 목적은 다르다. 하나님은 우리를 귀하게 쓰시기 위해, 그래서 복을 주시기 위해 마음에 두고 지켜보고 계시지만 사탄은 망가뜨리기 위해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잘 믿는 사람, 신실한 사람, 충성스러운 사람에게 시험이 많고 어려움이 많은 것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사람일수록, 하나님께서 소중히 여기시는 사람일수록 사탄의 공격이 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사탄을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대신 이를 예상하고 성령과 믿음 안에서 깨어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 안에 머물러 있고,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도록 애써야 한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기 때문이다. 단순히 지켜보시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출14:15). 그래서 이런 찬송이 있다(470장).
하나님을 미소 짓게 한 욥
에스겔서에 구약시대 3대 의인이 나온다. 노아와 다니엘, 그리고 욥이 그들이다(겔14:4). 이들 중에 욥은 이스라엘의 역대 계보에서 벗어난 사람이다.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는 가나안 동쪽 우스라는 땅(아람, 암몬, 모압, 에돔의 어느 지역)에 거주하였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께서도 인정하시는 사람이었다. 본서는 1,2장에서 욥에 대해 세 번이나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1:1,8, 2:3). 한 번(1:1)은 본서의 저자가 한 말이고, 두 번(1:8, 2:3)은 하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이다. 특히 하나님은 ‘(이런 사람은)세상에 없다.’라고 덧붙이시기까지 하셨다.
거기다가 욥은 엄청난 부자에다 10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자녀들의 신앙까지 잘 챙긴 경건한 사람이었다(2~5). ‘그들이 차례대로 잔치를 끝내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하게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함이더라. 욥의 행위가 항상 이러하였더라.’(5). 자신은 물론 자녀들의 신앙까지 꼼꼼하게 챙겼다는 뜻이다. 이것이 욥의 일상이었다는 것이다. ‘욥의 행위가 항상 이러하였더라.’ 게다가 그는 존경받는 부자일 때뿐만 아니라 이유도 모르고 순식간에 모든 재산과 자녀들까지 다 잃어버렸을 때도 신앙을 지켰다(20~22). 이런 욥의 모습에 감동하여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자랑스럽게 말씀하셨다(2:3). 하나님께서 욥을 크게 기뻐하셨다는 의미다.
하나님을 미소 짓게 하라.
흔히 부모를 기쁘게 하는 것, 즐겁게 해드리는 것이 최고의 효도라고 말한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도 다르지 않다. 하나님을 미소 짓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의 목표다. 무슨 일을 하든 하나님의 영광에 초점을 두라는 바울의 말도 같은 의미다(고전10:31). 구약 민수기에 그 유명한 대제사장의 기도문이 나온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민6:24-26). 이 중에서 25절 말씀을 영어성경 뉴리빙 바이블(NLT)은 이렇게 번역하고 있다. ‘하나님이 너를 향해 미소 짓고,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노라.’ 이 기도문의 핵심이 여기에 있다고 본다. ‘하나님이 너를 향해 미소 짓기를 원한다.’라는 말씀이다. 이것이 모든 축복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나를 향해, 혹은 내가 하는 일에 대해 미소를 지으시면 다른 복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미소를 짓는다는 것은 ‘즐거움’, ‘기쁨’, ‘친밀감’, ‘만족감’의 표시다. 생각을 해보라! 하나님께서 나를 즐거워하시고, 기뻐하시면, 나와 친밀하고, 나를 만족하게 여기신다면 무엇을 아끼겠는가? 흔히 미소를 행복과 성공의 네온사인이라고 부른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미소는 우리에게 형통의 네온사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미소 짓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의 목표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을 미소 짓게 할 수 있을까?
믿음의 고백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믿음의’고백이다. 까닭 없이 욥은 순식간에 쫄딱 망했다. 그 많은 재산과 자녀들까지 하루아침에 다 잃었다. 그런데도 욥은 이 상황에서 절망 대신 ‘예배’를 택했고(20), 원망 대신 ‘찬양’을 했다(21). 불평 대신 믿음의 ‘고백’을 택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21). 욥에 대한 사탄의 말이 잘못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이 옳았음이 판명이 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고백 후 천상에서 2차 어전회의가 열렸고, 사탄 앞에서 하나님께서 욥을 칭찬하셨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충동하여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여전히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켰느니라.’(2:3).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욥을 무척 자랑스럽게 여기시면서 하신 말씀이란 것을 알 수가 있다. 그 이유가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욥의 고백 때문이다. 믿음의 고백은 하나님을 환하게 미소 짓게 한다.
신약에서도 그 예를 찾아볼 수가 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가이사랴 빌립보 지역으로 가고 계실 때다. 갑자기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더냐?’ 그러자 제자들이 들은 대로 이야기를 했다. 사실 주님께서 듣고 싶은 것은 사람들의 생각이 아니라 제자들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또 물으셨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때 베드로가 대답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다른 제자들도 그렇다고 했다. 주님께서 이곳에서 이런 질문을 하신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당시 가이사랴 빌립보 지역은 헬라-로마 시대에 유명한 신들을 섬기는 신전이 즐비했다. 특히 살아있는 권력 로마 황제를 숭배하는 신전까지 있어 그곳을 ‘신들의 도시’라고 불렀다. 이렇게 웅장하고 화려한 신전을 가진 유명한 곳에서 머리 둘 곳조차 없으신 주님께서 이런 질문을 하신 것이고,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멋진 고백을 드린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 무척 기뻐하시며 베드로를 축복하셨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16:16,17). 이 외에도 몇 가지 사건이 더 있다(로마 백부장, 수로보니게 여인 등). 이처럼 믿음의 고백이 주님을 미소 짓게 만든다.
두 종류의 고백
우리가 주님께 드리는 고백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언어적’ 고백이다. 말로 드리는 고백이다. 찬양, 기도가 여기에 속한다. 말씀을 읽고, 듣고, 암송하고, 묵상하는 것도 말로 드리는 고백이다. 왜 우리가 찬양과 기도, 말씀에 집중해야 하는지 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것들이 주님을 미소 짓게 하는 믿음의 고백이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비언어적’ 고백이다. 몸으로 드리는 고백이다. 대표적인 것이 예배다. 예배는 몸으로 드리는 우리의 고백이다. 예배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섬김과 헌신, 순종, 아직 복음을 접하지 못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도 몸으로 드리는 고백이다. 또한 일상에서 경건한 생활도 몸으로 드리는 고백이다. 그렇다. 차량이 없는 지체를 위해 차량을 운행하고, 쾌적한 분위기에서 예배드리기 위해 예배실을 청소하고, 떨어져 있는 휴지를 줍고, 의자의 줄을 맞추고, 휴지통을 비우고, 서로 챙기고, 반갑게 맞아주고, 이런 모든 것이 몸으로 드리는 고백이다. 이런 고백이 주님을 미소 짓게 한다. 주님은 우리에게 또 한 번의 기회를 주셨다. 욥처럼, 제자들처럼 주님께 믿음의 고백을 드려서 주님을 미소 짓게 하자. 주님의 미소는 형통의 네온사인이다. 말과 몸으로 주님께 믿음의 고백을 드려 주님을 미소 짓게 하는 한 해, 그래서 주님의 복을 풍성하게 누리는 한 해가 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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