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보고 별이 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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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87회 작성일 24-12-25 13:25본문
별을 보고 별이 된 사람
마2:1~12
2024. 12/25 10:00(성탄절)
‘주님의 오심을 기념하고 감사하며 기뻐하는 성탄절이다. 성탄의 기쁨과 은혜가 성도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별을 바라보라.
본문은 마태복음에만 기록된 내용이다. 동방에서부터 박사들이 별을 보고 베들레헴에 나신 아기 예수님을 찾아와 경배했다는 내용이다. 소위 동방박사 이야기다. 마태가 이 이야기를 주님의 탄생과 관련하여 기록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주님이 단순히 유대인의 왕이 아니라 만국의 왕이시라는 것을 증거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마태복음을 주님이 만왕의 왕이심을 증거하는 복음서라고 한다. 이를 증거하기 위해 주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먼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찾아온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별은 서정과 낭만을 간직한 밤의 제왕이다. 별은 인간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나침반이나 지도가 없고 시계도 없던 옛날에는 별을 보고 방향을 알고, 시간을 가늠했다. 특히 밤길에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별을 바라보았다. 어려서 내 아버지도 그랬다. 글을 모르니 나침반도, 지도도, 시계도 볼 줄 몰랐다. 그러나 일상을 어려움 없이 살아낼 수 있었던 것은 항상 하늘의 별을 보고 방향을 가늠하고, 그 방향으로 길을 잡고, 시간도 알아차렸다. 본문에 나온 동방 박사들은 하늘의 별 자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다(원어로 그들을 ‘마기Magi’라고 하는데, 별의 빛이나 위치, 운행 등으로 점을 치는 일종의 ‘점성술가’다.). 그들은 별을 관찰하다가 뜻하지 않는 사건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특별한 왕의 탄생에 대한 예고다. 성경에 예고된 메시야이신 우리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것이었다. 말씀도 모르던 그들이 주님의 탄생을 먼저 알고 축하기 위해 찾아온 것은 항상 별을 보고 살았기 때문이다.
바라보아야 할 별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대로 인간은 ‘바라보며’ 사는 존재다. 그러면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야하느냐? 그것은 ‘별’이다. 사람은 누구나 별을 찾는, 별을 바라보는 존재다. 우리 시대를 한 마디로 정의하면 ‘별을 잊어버린 시대’이다. 여기서 별이 상징하는 것은 희망이고, 길이고, 진리이고, 생명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이시다. 주님이 곧 우리가 찾아야 할, 그리고 바라보아야할 별이시다. 주님이 희망이시고, 진리이시고, 길이시고, 생명이시기 때문이다. 별이신 주님을 잃어버릴 때 희망을 잃고 절망하게 되고, 미궁에 빠지게 되고, 길을 잃고 방황하게 되고, 생명도 잃게 된다. 어린 시절 힘들고 어려울 때, 또한 외롭고 슬플 때 별을 보았다.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소원을 빌기도 했다. 그래서 애처로운 느낌도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하늘이 나를 보고 있고, 별들이 나의 울부짖음을 듣고 있는 것 같았다. 어두운 밤길을 걷을 때도 그랬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하늘과 별이 예수님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이제는 주님이 나의 하늘이 되고, 나의 별이 되었다. 주님은 우리 모두가 바라보아야할 별이시다. 주님을 바라보아야 희망이 있고, 진리를 알게 되고, 길을 잃지 않게 된다.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된다.
별이 인도한다.
별을 바라보면 별의 인도를 받는다. 동방박사들이 그랬다. 별을 발견한 박사들은 그곳에 가만히 있지 않고, 별이 되어 이 땅에 오신 그분을 찾아 길을 나섰다. 그러자 그 별이 그들을 인도하여 그들이 가야할 곳으로 정확히 인도하였다. 물론 별의 인도를 놓쳐 잠시 방황하기도 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 순간에도 별은 그들을 여전히 인도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별을 바라보지 못한 것이다. 별을 바라보지 않고 그들의 합리적인 생각에 의존하다보니 별의 인도를 놓친 것이다. 유대 땅에서 태어난 왕이니 탄생한 곳이 당연히 당시 왕이었던 헤롯의 궁궐일 것이라고 합리적인 생각을 한 것이다. 그 순간 별의 인도는 보이지 않고 그들은 방황하게 되었다. 그 방황은 순식간에 헤롯 왕실을 발칵 뒤집어놓았고, 이 일로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두 살 이하의 어린 아이들이 모두 학살을 당하는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별을 바라보면 별의 인도를 받는다. 하지만 별을 바라보지 않으면 인도를 받지 못하게 된다.
신앙이란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것도 손에 잡히는 것이 없는 가운데 주님의 인도하심 하나만을 바라보며 어디서 끝이 날지도 모를 그 길을 가는 것이다. 신앙은 보지 못하는 세계에 첫 발을 내딛는 것이다. 그래서 신앙은 도전이고 모험이다. 그럼에도 그 신앙 속에는 보이는 것보다 더 분명한 증거가 있다. 곧 주님은 살아계시며 내 삶을 선하게 인도하고 계신다는 믿음이다. 그렇다면 누가 이런 인도를 받는가? 앞에서 말한 대로 주님은 별이시다. 그 별이신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이다. 그러면 희망의 별이시고, 진리의 별이시고, 길과 생명의 별이신 주님께서 우리를 희망의 나라로,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
별이 되라.
그리고 별을 바라보고 별의 인도를 받으면 별이 된다. 동방 박사들은 별의 인도를 따라 별이신 주님을 만났다. 그 주님을 경배하고, 준비한 예물도 드렸다. 그리고 다른 길로 고국으로 돌아갔다. 여기서 다른 길로 고국으로 돌아갔다는 말의 의미가 중요하다. 그들은 주님을 만나고 일상으로 돌아갔다는 뜻인데, 다른 길로 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길로 돌아갔다는 것은 그들의 삶의 방식과 태도, 의미와 가치, 목적이 바뀌었다는 뜻이다. 주님을 만나기 전과 같은 일상인데, 그 일상을 살아내는 방식과 태도, 추구하는 가치나 의미, 목적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이다. 별이신 주님을 닮아 별이 된 것이다. 이것이 성탄을 경험한 사람의 모습이다.
성탄절이 무엇인가? 오늘 설교의 제목에 비춰 정의를 한다면, 성탄절은 별이신 주님이 우리 곁으로 오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나아가서 그 주님께서 우리 안으로 훅 들어오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것을 성경적인 용어로 ‘임마누엘’이라고 한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이다. 이것이 성탄절의 의미다. 그러므로 이제 성도는 주님과 함께 하는 사람, 나아가 주님을 품은 사람이다. 교회 역시 주님을 품은 공동체다. 여기에는 엄청난 특권과 책임이 따른다. 그 책임은 곧 우리 또한 별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고, 진리가 되고, 길이 되고, 생명이 되어야 한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이것을 교회와 성도의 사명이라고 부른다. 그러니 우리도 누군가에게 작은 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성탄의 의미를 되새겼으면 좋겠다. 반짝이다가 금방 스러지는 작은 별똥별이라도 좋다. 그러면 세상이 우리로 인하여 조금은 아름답게 밝게 건강하게 변화되리라 기대한다.
별이 된 사람
과천시 청소행정과에 근무하는 어느 집사님 이야기다. 오전 8시 30분 쯤 이미자라는 이름의 할머니로부터 도움을 구하는 전화를 한 통을 받았다. 컵에 담아두었던 틀니를 음식물쓰레기와 함께 버린 것 같은데 찾을 방법이 없겠냐는 것이었다. 집사님은 찾아볼테니 기다려보라고 대답은 했지만 난감했다. 3.5톤 차에 가득 실린 음식물쓰레기 더미 속에서 틀니를 찾는다는 것은 정신 나간 일이었다. 일단 급한 대로 청소차에 연락을 했고, 다행히 청소차가 쓰레기를 싣고 하치장에 가서 버리지 않은 상태여서 자원정화센터로 오도록 했다. 충분히 설명을 한 다음 청소대행업체 직원과 함께 쓰레기를 부어놓고 틀니를 찾기 시작했다. 처음엔 청소대행업체 직원들이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당황했으나 이 집사님의 진지한 모습에 감동을 받아 함께 찾았다. 역겨운 냄새가 풍기는 그 많은 음식쓰레기를 바닥에 펼쳐놓고 찾기 시작한지 1시간이 조금 지났을 때 다행히 틀니를 찾았다. 틀니를 돌려받은 할머니는 이 틀니는 작년에 죽은 남편이 몇 년 전 생일선물로 사준 것이라며 냄새나는 쓰레기를 뒤지게 만들어 미안하다고 연신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현했다. 별 같은 집사님의 이야기다. 이렇게 누군가를 미소짓게 하는 것, 행복하게 하는 것이 일상에서 별이 되는 삶이다.
별이신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심령과 삶에, 그리고 가정과 우리 교회에, 우리나라와 민족에게도 희망의 별, 진리의 별, 길과 생명의 별이 되는 성탄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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