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하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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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397회 작성일 24-12-08 14:59본문
잘 하였도다!
마25:14~30
2024. 12/8 11:00(강림절 둘째 주일)
인터림(interim)
지난 주일에 이어 본문도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의 자세와 관련된 말씀이다. 본문은 한 주인이 전 재산을 종들에게 맡기고 ‘먼 타국에 갔다가 돌아온’ 이야기다. 물론 여기서 주인은 예수님이시고, 종은 우리다. 주인이 타국에 갔다(승천)가 돌아오기(재림)까지의 기간을 두고 신학에서는 ‘인터림’(interim)이라고 한다. ‘중간기’란 뜻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라고 하는 바로 이 시간이다. 이 시간은 교회를 통하여 성령의 공급하신 능력으로 서로 교제하고, 사랑하고, 섬기고, 복음을 전하는 사명의 기간이고, 선교의 기간이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식품마다 유효기간이 있는 것처럼 만들어진 모든 것에는 유통기한이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생명도, 건강도, 기억력도 한계가 있다. 유통기한이 있다. 때문에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을수록 상태가 점점 나빠진다. 그러니 건강하고 기억력이 좋고 총명이 있을 때 주님을 잘 섬겨야 한다. 팔다리에 힘이 있고, 머리에 총명이 있고, 기억력이 남아 있을 때 아직 기회가 있을 때 특히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야 한다.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인터림’을 허락하신 것이다. 우리에게 더 사랑하고, 더 충성하고, 더 섬기고, 더 봉사하고, 더 일하라고 주신 기회다. 모든 일에 있어서 보다 철저하게 잘 준비하라고 주신 기회다. 이 기회를 잘 선용해야 한다. 본문은 우리에게 주신 이 기회의 선용에 대한 말씀이다.
달란트를 맡긴 주인
본문은 자기가 평생 모은 전 재산을 세 명의 종에게 맡기고 먼 타국으로 갔다가 돌아와서 셈을 한 어느 부자 이야기다. 이 부자는 특별한 분이다. 그는 ①종들을 자식처럼 사랑하고 신뢰하였다. 그렇지 않고서 어떻게 평생 모은 피와 같은 재산을 사용권한까지 주어 종에게 맡길 수 있겠는가? 심지어 그들이 장사하여 이득을 남겼을 때 그 남긴 것은 물론 본전까지 그들에게 몽땅 주었다. 결국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종을 위하여 달란트를 맡긴 것이다. 또한 그는 ②종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각각 그 재능대로’(15)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겼다. 각 사람의 힘과 능력에 따라 맡긴 것이다. 이는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맡겼다는 뜻이다. 결국 주인이 종들을 잘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이 주인은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신 우리 주님이시다. 그리고 주인의 달란트를 맡은 종들은 우리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일을 맡은 청지기이고, 그리고 맡겨진 것은 반드시 결산의 시간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한 달란트를 맡은 종
그런데 이렇게 종을 신뢰하고 사랑하여 전 재산을 맡기고, 또한 종의 형편과 상황을 잘 알고 맡겨주었는데 충성하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이다. 사실 주님은 이 비유에서 주님과 우리의 관계,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의 자세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 특히 한 달란트 맡은 종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가 가장 경계해야 할 태도다. 본문은 주님이 재림하실 때 이런 사람이 있을 것에 대한 경고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평생을 섬겼던 주인으로부터 버림받은 이 종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그렇다면 그는 왜 주인에게 소중한 달란트를 받았으면서도 주인에게 충성하지 못하고, 주인이 맡긴 달란트를 선용하지 못한 것일까? 그래서 그 결정적인 순간에 주인의 잔치에 참여하지 못하고 버림을 받았을까?
주인에 대한 잘못된 생각
우선 이런 질문을 해보겠다. 만약 종들이 최선을 다했는데도 이윤을 남기지 못하고, 오히려 손해가 발생했다면 주인은 종들에게 어떻게 했을까? 주인은 결코 종들을 탓하지 않았을 것이다. 주인은 이윤을 남기라고 말하지 않고 그냥 달란트를 맡겼다. 대부분의 사람은 어떤 결과를 얼마나 남겼느냐에 관심을 갖는다. 그렇지만 본문의 주인은 어떻게 잘 사용하였느냐에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다섯 달란트를 남긴 종이나 두 달란트를 남긴 종에게 똑은 내용의 칭찬을 했다.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21,23). 그러니 한 달란트 맡은 종이 책망을 받은 것은 이윤을 남기지 못해서가 아니다. 달란트를 선용하지 않은 것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달란트를 사용하지 않고 묻어둔 이유는 주인에 대한 그의 잘못된 생각 때문이다.
그는 주인을 ‘실패를 결코 용납하지 않는 무자비한 결과주의자’로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24). 매우 인색하고 무자비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주인에 대한 심각한 왜곡이다. 아니 모독이다. 이것이 그가 충성하지 못한 이유다. 심지도 않았는데 거두는 것은 ‘빼앗는 폭군’이나 하는 짓이고, 뿌리지 않은데서 모으는 것은 ‘강도’나 하는 짓이다. 그는 주인을 폭군이나 강도와 같은 사람으로 생각한 것이다. 어떤 영화에서 사채업자가 장기밀매조직과 연계하여 빚을 갚지 못한 사람에게 장기적출을 강요하는 장면을 보았다. 그렇게라도 해서 돈을 갚으라는 것이다. 이 종은 주인을 이런 악랄한 사채업자와 같은 사람으로 매도한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목숨도 아끼지 않지만 싫은 사람을 위해서는 머리털 하나도 아까워한다. 그러니 이런 사람을 위해 무슨 일이 하고 싶겠는가! 그래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원금을 지키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선 땅에다 묻어두는 것이 최선이었다(25). 사실 주인은 앞에서도 말했지만 전 재산을 맡길 만큼 종들을 깊이 신뢰하고, 개개인의 능력에 따라 맡기는 자상하고 인격적인 분이다. 남긴 이윤은 물론 원금까지도 몽땅 종들에게 내어준 후하고 사랑이 많은 사람이다. 그런데 한 달란트 맡은 종은 주인을 전혀 다르게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니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컸을 것이다. 이것이 이 종의 실패 원인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세상을 아는 지식보다 ‘주님을 아는 지식’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주님을 바르게 알고, 바르게 고백해야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해야 주님께서 맡기신 달란트도 소중히 여기게 된다. 그래서 착하고 충성스러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본문이 재림을 기다리는 자세로 충성을 요구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충성은 주님을 아는 것과 주님에 대한 고백, 주님을 사랑하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신앙생활은 주님에 대한 바른 고백에서 출발하여 그 주님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주님에 대해 바르게 아는 만큼 충성된 삶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여러분에게 있어서 주님은 어떤 분이신가?
맡겨진 일에 충성
록펠러의 전기에 나온 존 아치볼드(John D. Archibold)라는 사람의일화다. 그는 록펠러가 경영하는 정유회사 스텐다드 오일의 말단 직원이었다. 누구보다 자기 일에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있던 그는 출장을 가면 꼭 하는 일이 있었다. 숙박부에 서명을 할 때 자기 이름 뒤에 ‘1통에 4달러, 스텐다드 오일’이라고 꼬박꼬박 적었다. 어느 날, 밤늦게 숙박한 곳에서 숙박부에 서명을 하지 않은 것이 생각나서 다시 옷을 챙겨 입고 나가 숙박부에 서명을 하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1통에 4달러, 스텐다드 오일’이라고 썼다. 마침 곁에 있던 한 신사가 그의 하는 것을 유심히 보더니 그 이유를 물었다. ‘저희 회사를 조금이라도 더 알리고 싶은 마음에서 이렇게 합니다!’ 라고 그가 대답했다. 한 달쯤 후, 그는 본사 회장실로 불려갔다. 그는 거기서 한 달 전에 만난 신사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 신사가 바로 회장이었다. 회장은 ‘나는 당신처럼 회사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곁에 두고 싶소!’ 하며, 그를 본사로 발령을 내고, 나중엔 중역으로 중용했다.
누구든지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충성스러운 사람을 좋아하고, 그런 사람을 곁에 두고 싶어 한다. 주님도 마찬가지다.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살게 하리니’(시101:6). 주님의 눈은 항상 충성스러운 사람에게 향하고, 이런 사람을 찾으시고, 이런 사람과 함께 계시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충성스러운 사람이 주님을 맞이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본문은 재림을 기다리는 자세로 충성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 주님 앞에 충성스러운 종으로 드러나기를 소원한다. 지난 다니엘 기도회에서 이요셉 교수의 간증이 큰 도전과 감동이 되었다. 내용 중에 하나도 바로 이것이었다. 성도에게 성공은 주님을 만났을 때, 주님으로부터 ‘잘 하였도다.’ 라는 이 한 마디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이는 주님께서 충성스러운 종들에게 주신 말씀이다. 여기서 ‘잘 하였도다.’는 영어로 ‘Well done’인데, 어떤 분은 이 단어의 약자 ‘W.D.’를 가지고 우리 성도가 받아야 할 최고의 학위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잘 하였도다.’ 라는 말씀이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우리 성도에게 가장 영광스러운 말씀이라는 뜻이다.
지난 대강절 첫 주일에 열 처녀 비유를 통해 말세를 살아가는 성도의 삶의 태도로 ‘깨어있는 삶’에 대하여 말씀을 드렸다. 그런데 본문은 말세를 살아가는 성도의 삶은 깨어있는 삶 이상이어야 함을 말씀한다. 그것은 깨어있으되 주님께서 맡겨주신 일에 ‘충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신앙 생활하는 것을 넘어서 주님께서 각자에게 그 재능대로 맡겨주신 일에 충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충성(섬김, 봉사, 헌신)에 묻혀서 가려하지 말고, 자신의 충성을 주님께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란다. 주님은 이런 성도를 오늘도 애타게 찾고 계신다. 그리고 우리 모두 주님으로부터 ‘W.D’(Well Done)라는 학위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관련링크
- https://youtu.be/wFvVXvWkuO8 213회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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