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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편에 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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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1,134회 작성일 24-08-26 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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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편에 서라!

32:25~29

2024. 8/25(성령강림 열다섯 번째 주일)

헤라클레스의 선택

그리스 신화의 영웅 헤라클레스는 어려서부터 남다른 힘을 보였다. 아버지 암피트리온은 그의 힘에 놀라 키타론 산으로 보내 소 떼를 돌보게 했다. 어느 날, 헤라클레스가 자신의 앞날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다 잠이 들었고 비몽사몽간에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는 갈림길에 서 있었다. 그곳에는 욕망이라는 여인과 미덕이라는 여인이 그를 기다렸다. 욕망이란 여인은 자신과 함께 가면 쉽게 욕망을 마음껏 채울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미덕이라는 여인은 자신을 따르는 길은 고난과 역경의 길이지만 참된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갈림길에서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힘들어도 참된 행복의 길을 걷기로 결단하며 꿈에서 깬다. 이것을 헤라클레스의 선택이라고 부른다. 미덕의 길을 선택한 헤라클레스는 살면서 많은 역경을 겪게 되지만 마침내 천상에서 신들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장 폴 사르트르는 인생은 BD사이의 C.’고 말했다. 출생(Birth)과 죽음(Death) 사이에서 늘 선택’(Choice)을 해야만 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뜻이다. ,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란 말이다. 과거에 내가 내렸던 많은 선택이 모여 오늘의 나를 만들고, 지금 이 순간에도 선택을 하며 인생을 채워가고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이 모여 내일의 나를 만든다. 그러니 선택의 잘잘못에 따라 인생의 행불행이 결정되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면 부패(腐敗)가 되는 음식이 있는가 하면, 시간이 지나면 발효(醱酵)가 되는 음식이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세월과 함께 점점 쇠퇴하는 사람이 있고, 세월이 지날수록 성숙하게 변화하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부패된 상태를 썩었다고 하고, 발효된 상태를 익었다고 한다. 썩은 인생, 잘 익은 인생! 이를 결정짓는 것 중에 하나가 선택이다. 본문도 선택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레위 지파의 선택

49장에, 열두 아들 대한 야곱의 축복이 나온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내용이 놀랍도록 후대에 그대로 성취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를 야곱의 축복이라기보다 야곱의 예언적유언이라고 부른다. 거기에서 야곱은 시므온과 레위에 대하여 이런 예언적 유언을 남긴다.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잔해하는 기계로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예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그 노염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49:5~7). 이는 시므온과 레위의 폭력성을 강조하면서 장차 그들이 일정한 분깃을 갖지 못하고 이스라엘 중에서 흩어지게 되리라는 것이다. 이러한 예언적 유언이 그대로 성취되었다. 가나안 정복이후, 시므온 지파가 얻은 땅은 유다 지파가 받은 땅에서 몇 개의 성읍이 전부였고, 결국 유다 지파에 흡수되었다. 또 레위 지파는 다른 지파의 지역에 모두 흩어져서 살게 되었다. 그런데 시므온과 레위가 비슷한 것 같지만 다른 점이 있다. 시므온 지파는 유다 지파에 흡수되었다. 33장을 보면 모세가 죽기 전에 각 지파에 축복할 때 시므온 지파는 언급되지 않는다. 물론 레위 지파 역시 기업이 없이 다른 지파의 지역에 흩어져 살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이스라엘의 모든 장자를 대신하는 이들이 되었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되었다. 야곱의 예언이 표면적으로는 시므온 지파와 같지만 내용적으로는 완전히 다르게 성취가 되었다. 그들의 선택이 이런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렇게 레위 지파가 시므온 지파와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된 결정적 이유가 본문에 나온다. 시내산 계약을 마치고(19:~24:),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해 시내산에 올라가 40주야를 금식하고 있을 때다. 그때 하나님께서 친히 두 돌판에 십계명을 적어주시고, 장차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거하실 장소 성막에 대해 말씀하시고 있었다(25:~31:). 그런데 바로 그 때 시내산 아래에서 희한한 일이 일어났다. 모세가 40일이 되도록 산을 내려오지 않자 죽은 것이라 생각하고, 이스라엘 백성이 아론을 찾아가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어 달라.’(32:1)고 요구했다. 그래서 아론은 백성에게 금귀고리를 가져오게 하여 그것으로 황금송아지를 만들고, 그 황금송아지가 그들을 이집트에서 인도하여낸 여호와라고 선포하였다. 백성은 황금송아지에게 화목제를 드리고 광란의 축제를 즐겼다. 본문은 이 모습을 한 단어로 표현하고 있다. ‘방자하다.’(25). 이를 히브리어로 파라(פרע)라고 하는데, ‘고삐를 풀다.’ ‘벌거벗다.’는 뜻으로 통제를 벗어나 제멋대로 날뛰는 것을 의미한다. 전혀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하나님을 자신의 욕망의 수단으로 여기며 금송아지 앞에서 흥분하여 광란의 축제를 벌인 것이다. 그리고 이 광경을 시내산에서 내려온 모세가 목격을 하였다. 본문은 바로 이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것이다.


 

운명을 바꾼 선택

하나님은 백성의 방자함에 진노하여 그들을 지상에서 진멸하고 새 역사를 시작하려고 했다. 그러나 모세의 중보적인 기도로 뜻을 돌이키셨고, 그들이 회개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주고, 돌이키지 않는 자들만 죄의 대가를 치르게 하셨다. 그래서 모세가 진문에 서서 외친 것이다.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26a). 이것은 모세가 백성에게 자신이 어디에 속한 자인지, 곧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깨닫고 선택할 시간(기회)을 준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레위 자손만 모세에게로 나아왔다(26b). 그들만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온 것이다. 그렇지만 다수의 백성은 회개하지 않았다. 선택의 여지가 사라진 것이다. 모세는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을 하나님 앞에서 레위 자손에게 칼로 쳐 죽이도록 명령했고, 3천명이 죽임을 당했다. 비록 형제이고, 이웃이고, 친구이지만 죽여야만 했던 레위 자손의 마음이 결코 편치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모세는 이 일을 감당한 레위 자손을 축복했다. ‘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자기의 아들과 자기의 형제를 쳤으니 오늘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 너희에게 복을 내리리라.’(29).

  

바로 이때, 이 선택이 레위 지파로 하여금 그들의 조상 야곱의 부정적인 유언적 예언을 축복으로 바꾼 계기가 되었다. 이것이 소위 운명을 바꾼 선택이 된 것이다. 민수기를 보면 각 지파별 인구조사 결과가 나온다. 다른 지파는 20세 이상 남자를 계수했는데(1:3), 레위 지파는 1개월 이상 된 남자를 계수했다(3:14). 그런데도 레위 지파의 수는 22,273명에 불가했다(3:43). 다른 지파와 비교하면 현저하게 적은 수다. 왜 레위 지파가 다른 지파보다 숫자가 적을까? 어떤 사람은 그 이유를 이집트에서 신앙을 지키면서 순교한 사람이 가장 많은 지파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상의 본거지인 이집트에서 430년간 신앙을 지키는 일은 목숨을 내놓는 일과 같았을 것이다. 우상을 멀리하고 신앙을 지키려다보니 많은 사람이 순교를 당했고, 때문에 다른 지파보다 인구가 적다는 것이다. 물론 확인할 수는 없지만 개연성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본문에서 함께 우상숭배에 빠졌으나 모세의 명령에 속히 돌이킬 수 있었던 것도 그들에게 이런 영적 민감성이 작용한 것으로 본다. 하여간 레위의 자손은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기 위해 목숨을 걸고 하나님 편에 서서 신앙을 지켰고, 그것이 이런 결과를 만든 것이다. 누구라도 하나님께 헌신하는 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편을 선택하면 하나님의 복을 받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금메달보다 주일예배를 선택한 사람

얼마 전에 2024년 파리 올림픽이 끝났다. 지금부터 100년 전, 파리 올림픽에서 있었던 일이다. 중국 선교사의 아들이었던 에릭 리들의 이야기. 그는 100미터 달리기 영국국가 대표로 올림픽에 출전했다. 그는 무난히 결승까지 진출하였는데, 하필 결승전이 주일날 열리게 되었다. 그는 단호하게 주일엔 달릴 수 없다며 기권을 선언했고, 이로 인해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다. 특히 영국에서 난리가 났다. ‘미쳤냐. 믿음도 좋지만 어떻게 그렇게 꽉 막힐 수가 있느냐세계 기록을 가진 선수가 금메달을 조국에 바칠 기회인데 주일성수를 위해 포기하다니!’ 이런 비난에도 그는 흔들리지 않았고, 다행히 함께 출전한 친구가 금메달을 땄다그 후에 에릭은 400m 경기에 출전해서 주 종목이 아니었지만 예상을 뒤엎고 세계신기록과 함께 금메달을 땄다오히려 그의 포기로 조국에 두 개의 금메달을 선사하게 된 것이다. 그는 올림픽에서 금메달보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주일을 선택했다. 이 선택으로 그는 많은 비난을 받았고, 금메달의 영광도 포기해야만 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그를 외면하지 않으셨다. 이것을 만회할 수 있는 훨씬 더 큰 영광으로 보답하셨다. 만약 그가 주일을 포기하고 돈과 명예가 보장되는 금메달을 선택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수많은 메달리스트 중에 한 사람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주일예배를 선택했기에 불멸의 영웅으로 남게 된 것이다.


 

우리는 날마다 선택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매 순간이 선택의 연속이다. 몇 시에 일어날지어떤 옷을 입고누구를 만나고, 어디를 가고, 어떤 말을 하고무엇을 먹을지 등등. 하루에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선택을 한다. 이런 선택의 결과가 오늘의 나이고, 또한 내일의 나를 만들어 간다. 그러니 앞에서 말한 레위 지파나 에릭 리들처럼 선택을 잘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사소한 일에서부터 좋은 선택, 특히 경건하고 거룩한 믿음의 선택을 해야 한다. 불평이나 원망보다 감사를 선택하고, 근심이나 걱정대신 말씀과 기도를 선택하고, 슬픔이나 분노대신 찬양을 선택하는 것이다. 입고 먹고 마시는 것보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선택하고, 그 무엇보다 예배를 우선순위에 두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선택하고, 사랑하고 섬기고 헌신하는 일을 선택하고, 주님께 영광이 되고 기쁨이 되는 일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런 경건한 믿음의 선택이 하나님의 편에 서는 것이고, 또한 하나님의 복을 부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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