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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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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1,902회 작성일 24-06-16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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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고전9:16

2024. 6/16. 11:00(성령강림 다섯째 주일)

골든타임(golden time)의 중요성

골든타임이란 말이 있다. 여러 방면에서 널리 사용이 되고 있는 용어인데, 의학분야에서는 생사의 갈림길에 선 환자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제한된 시간을 뜻한다. 전문가에 따르면, 교통사고와 같은 중증외상 환자의 경우 1시간, 뇌졸중 발병환자는 3시간, 심장마비는 4~6분이다. 그 시간 안에 제대로 된 의료처치를 하지 않으면 환자는 생명을 잃게 된다. 이 시간을 골든타임(死活의 시간)이라고 한다.

 

부산에서 있었던 일이다. 배드민턴 대회에 참가했던 40대 남성이 사망했다. 이 남성은 경기를 대기하고 있던 저녁 7시쯤 갑자기 심장마비로 쓰러졌다. 안타깝게도 사고현장에는 응급의료진이 없었고, 심폐소생술을 위한 제세동기(심장충격기)도 비치되어 있지 않았다. 13분 후, 소방구급대가 도착하여 병원으로 옮겼지만 결국 목숨을 잃고 말았다. 심정지가 일어나고 6분 이내에 응급처치를 못했기 때문이다.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시간, 골든타임을 놓친 것이다. 반면 한 여성이 의자에 앉는가 싶더니 그대로 쓰러졌다. 주변에서 이를 보고 놀란 사람들이 다급히 119에 신고했다. 그때 하얀 유니폼을 입은 남성이 달려오더니 힘껏 심폐소생술을 시작했고, 잠시 뒤, 여성의 다리가 움직이고 조금씩 의식을 되찾았다. 빠른 응급조치로 환자를 구한 사람은 인근 호텔에 근무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환자의 호흡이 없는 것을 보고 군대에서 배웠던 심폐소생술을 시도하여 죽어가는 목숨을 구한 것이다. 지난해에 제주도에서 있었던 일이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한 사람은 깨어나지 못했고, 다른 한 사람은 깨어났다. 그 이유는 한 사람은 골든타임을 놓쳤기 때문이고, 다른 한 사람은 골든타임을 지킨 덕분이다. 그런데 이렇게 소중한 골든타임이 우리의 육적 생명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영적 생명에도 존재한다.

 

기회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다.

유명한 전도자 토레이(R. A. Torrey) 목사가 영국 브라이튼에서 집회를 인도할 때의 일화다. 저녁식사를 하려고 어느 식당에 들어갔다. 한 종업원이 음식주문을 받고 돌아가는데, 그 종업원에게 전도를 하라는 성령의 감동이 왔다. 그러나 종업원이 바쁘게 일을 하고 있어서 전도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성령은 빨리 전도하라고 몰아치셨다. 그래도 그는 전도를 미루고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왔데, 성령은 계속 전도하라고 강권하셨다. 계속되는 성령의 강권에 내키지는 않았지만 마음이 편치 않아 망설이다가 식당으로 다시 들어갔다. 주인은 금방 알아보고 무슨 볼일이 있느냐고 물었고, 음식을 나르던 종업원에게 꼭 할 말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웬 일인가? 그 종업원은 그가 식사를 마치고 밖에 나가 서성거리고 있는 사이 2층 자신의 방에 들어가 자살을 하였다. 그는 천길, 만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죽였구나. 성령께서 그토록 강권하여 전도하라고 하셨는데, 그것도 모르고 무시하다가 귀한 생명을 죽게 하였구나. 예수 믿으라고 한 마디만 했어도 좋았을 것을. 그 사람을 살리려고 성령께서 나를 그 식당으로 보내셨는데, 내가 깨닫지 못하고 순종하지 못했구나.’ 성령의 음성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며 탄식했다. 전도에도 골든타임이 있다. 소위 영적골든타임이다. 이를 놓치면 그 생명을 잃게 된다. 우리가 전도를 해야 할 이유, 전도에 깨어있어야 할 이유가 이 때문이다. 우리 주위에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주님을 믿을 수 있는 영적 골든타임을 놓치고 멸망으로 달려가는 사람이 많이 있다. 기회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다.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누구보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이 있다. 사도 바울이다. 그래서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 것이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이는 바울이 복음전도에 전념한 이유를 말한 내용이다. 사실 바울만큼 전도에 헌신한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기 때문에, 곧 마땅히 해야 할 사명이기 때문에, 나아가 하지 않으면 화가 미칠 것이라는 긴급성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긴급한 위기의식이 그를 항상 전도현장으로 몰아세웠던 것이다. 그가 복음전도에 이런 긴급성을 가지게 된 것은 에스겔 선지자의 영향인 것 같다. ‘인자야 너는 네 민족에게 말하여 이르라 가령 내가 칼을 한 땅에 임하게 한다하자 그 땅 백성이 자기들 가운데의 하나를 택하여 파수꾼을 삼은 그 사람이 그 땅에 칼이 임함을 보고 나팔을 불어 백성에게 경고하되 그들이 나팔소리를 듣고도 정신 차리지 아니하므로 그 임하는 칼에 제거함을 당하면 그 피가 자기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그러나 칼이 임함을 파수꾼이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백성에게 경고하지 아니하므로 그 중의 한 사람이 그 임하는 칼에 제거당하면 그는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제거되려니와 그 죄는 내가 파수꾼의 손에서 찾으리라.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삼음이 이와 같으니라. 그런즉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할지어다.’(33:2~7).

 

바울은 파수꾼의 사명을 전도자의 사명으로 인식한 것이다. 사람들에게 위기를 알려야 할 사명이 있는 파수꾼이 그 사명을 다하지 못해 사람들이 화를 당하면, 물론 그들이 화를 당한 것은 자신의 죄 때문이지만, 그래도 사명을 다하지 못한 책임을 파수꾼에게서 묻겠다는 것이다. 바울은 이것을 복음전도에 적용한 것이고, 자신이 복음을 전하지 못해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는 사람이 생긴다면 그것은 자신의 책임이라는 거룩한 부담감을 가진 것이다.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이런 거룩한 부담감이 전도에 대한 긴급성을 갖게 했고, 이런 긴급성이 복음전도에 전념하도록 만든 것이다. 지난주까지 전도에 대한 생각, 곧 전도를 해보겠다, 해야 한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없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그래서 전도에 대한 생각, 특히 전도가 주님의 소원이라는 생각을 갖자고 말씀을 드렸다. 사실 성도라면 전도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전도설교에 대한 거부감이 그 증거다. 그렇지 않아도 부담감을 가지고 있는데 거기에 전도설교를 하니 그 부담감이 거부감으로 바뀐 것이다. 하여간 전도를 해야지 하면서도 여러 우선순위에 밀려 전도를 못한 것이다. 그 이유는 바울처럼 전도에 대한 긴급한 위기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골든타임을 놓치면 죽는다는 긴급성보다 그저 틈나면 해도 되는 것 정도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꾸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전도에 대한 생각까지 가물가물해지고 만 것이다.

 

전도가 급선무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한자어 중에 급선무’(急先務)란 말이 있다. 급하게 먼저 힘써서 해야 할 일이란 뜻이다. 성도와 교회의 급선무가 무엇일까? 그것은 전도다. 전도가 본질이고 사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도는 우리가 급하게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이것이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주님의 소원을 이뤄드리는 생각에 이은 또 하나 전도에 대한 생각이다. 전도는 급하게 먼저 해야 할 일이라는 전도에 대한 긴급한 생각을 갖는 것이다생명을 구하는 일보다 급하고, 생명을 구하는 것보다 우선하고, 생명을 구하는 것보다 힘써야 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삶을 살았던 바울은 그의 제자인 디모데에게 같은 당부를 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4:2). 이는 복음전도를 일상화하라는 뜻이다. 그 이유는 긴급한 일이기 때문이다. 기회가 있을 때는 말할 것도 없지만 기회가 없으면 일부러 만들어서라도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다. 하여간 모든 상황을 복음전도의 기회로 삼으라는 것이다. 복음전도가 그만큼 절박하고 긴급하기 때문이다. 복음전도의 중요성과 긴급성을 잘 보여주는 일화를 소개하겠다.

 

어느 집사님이 전도하기 위해 어느 아파트에 갔다. 문 앞에 서서 벨을 눌렀지만 반응이 없었다. 그냥 돌아서려는데 마음에서 떠나지 마라는 음성이 들려왔다. 그는 다시 초인종을 눌렀고, 이번에도 반응이 없었다. 돌아서는데 다시 한 번 마음속에서 포기하지 마라는 음성이 들렸다. 다시 문을 두드렸으나 역시 반응이 없었다. 잠시 후, 문이 벌컥 열리더니 험악하게 생긴 사람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도대체 누구기에 이렇게 귀찮게 구는 거요?’ 전도하러 나왔다고 말하자 그 사람은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일 없으니 딴 데나 가보시오.’ 그 와중에 그는 전도지를 건네주며, ‘예수님 믿으세요.’ 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날 밤, 그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오늘 전도하는 당신을 쫓아냈던 사람입니다. 당신이 찾아왔을 때 나는 삶의 의미를 잃고 죽기로 결심하고 막 목을 매려던 순간이었습니다. 반복되는 초인종 소리에 죽지 못하고 돌아가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초인종 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누가 이렇게 나를 애타게 찾는지 죽더라도 한번 보고나 죽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문을 열어보니 당신이 서 있었습니다. 나는 문을 닫은 후, 당신이 건네준 쪽지를 별 생각 없이 읽어보았습니다. 읽다보니 내 인생을 이렇게 끝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예수라는 분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너무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쪽지에 적혀있는 당신의 전화번호를 보고 늦은 시간이지만 전화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예수라는 분이 누구이고,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이것이 전도의 중요성이고, 우리가 전도를 해야 할 이유이고, 그것도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긴급하게 해야 할 이유다. 전도는 해보겠다.’, ‘하겠다.’, ‘할 수 있다.’는 생각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전도에 대한 긴급한 생각을 갖는 것이다. 내가 잠시 머뭇거리고 주저하고 있는 동안 절박한 상황에 놓인 천하보다 귀한 생명이 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성도는 교회 다니는 사람으로 통하지만 초대교회 당시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람으로 알려졌다. 인생(人生)은 일생(一生)이다. 한 번 밖에 주어지지 않는 생이다. 이런 인생의 핵심가치를 어디에 두고 살아야겠는가? 적어도 성도라면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17:4)이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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