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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델링,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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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22,120회 작성일 22-05-21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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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델링, ‘건물

왕하12:1~8

2022. 5/1. 11:00(산돌 언어심리상담센터)

리모델링 시대

건축용어 중에 리모델링’(remodeling)이란 말이 있다. 신축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기존의 건축물을 새롭게 개보수하는 모든 작업을 총칭하여 일컫는 말로, ‘2의 건축이라고도 한다. 외국에는 기존건물을 유지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겉은 오래된 건물이라도 안은 리모델링을 통해 현대식으로 바뀌는 건물이 많다. 그래서 외국에서 리모델링이 훨씬 활발하다.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도 주거공간과 상업공간의 리모델링이 신축 못지않게 왕성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교회들도 신축보다 공사기간도 짧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건축비로 공사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리모델링을 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우리교회도 기존건물을 사서 사용하다 17년 만에 리모델링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리모델링을 계획하다보니 여러 생각이 많다. 이를 통해 교회는 물론 우리 마음과 습관, 영적 생활 전반에 리모델링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윗왕가의 작은 불씨, 요아스

구약시대에 성전 리모델링을 한 왕이 있다. 남 유다의 제7대 왕 요아스. 그는 할머니 아달랴의 왕위찬탈 과정에서 고모 여호세바와 고모부 제사장 여호야다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져, 6년 동안 성전에서 아무도 몰래 그들에 의해 길러졌다. 그는 다윗왕가의 마지막 남은 불씨였다. 다윗왕가 자손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아달랴는 북 왕국 아합 왕과 그의 아내, 희대의 악녀 이세벨의 딸이다. 아달랴는 여호사밧과 아합의 결혼동맹으로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과 결혼을 했는데, 여호람이 병으로 죽고 그의 막내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다. 아하시야도 북 왕국 예후의 쿠데타에 휘말려 죽임을 당하게 된다. 이 기회를 틈타 아달랴가 왕위를 계승할 아하시야의 형제들, 곧 자신의 아들들을 모두 죽이고, 심지어 손주들까지 죽이고 자신이 왕위에 올랐다. 한 마디로 다윗왕가의 혈통을 모든 끊고 자신이 왕이 된 것이다. 그리고 6년 동안 유다를 다스렸다. 바로 이 살상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요아스다. 아달랴와 그의 세력을 제거한 고모부인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도움으로 이 요아스가 다윗왕가의 혈통을 다시 잇게 되었다. 그때 그의 나이 7세였다.

  

요아스의 성전 사랑

이렇게 극적으로 왕이 된 요아스에게 성전은 죽음의 위험에서 건짐을 받은 피난처였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을 받는 신앙 훈련장이었고, 암울하고 고통스러운 어린 시절의 추억이 깃든 놀이터였다. 그러기에 그는 그 누구보다도 성전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성전을 사랑했다. 그런데 생명의 은신처요, 신앙훈련 장소요, 그 암울하고 두려운 시절의 추억이 담긴 성전이 아달랴와 그의 세력들에 의해 철저히 짓밟히고 훼손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왕위에 오르고 난 뒤, 성전을 수리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요아스는 성전의 어느 곳이든지 퇴락한 것을 보거든 수리하라명령했다(5). ‘퇴락한’(뻬테크,בדק)’, ‘헤진 곳이고, ‘보거든’(마차,מצא)나타나다’, ‘발견하다는 뜻이다. ‘퇴락한 것을 보거든은 수리할 곳을 주의 깊게 잘 살펴보라는 것이다.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아스가 그토록 원했던 성전 리모델링이 23년이 지나도록 착수조차 하지 못했다(6). 제사장들의 전문성이 결여된 것도 아니고, 성전을 리모델링하는데 재정이 부족해서도 아니다. 나라는 안정되고, 백성은 성전에 모이고,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데도 성전 리모델링이 23년 동안이나 이뤄지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는 이렇다. 성전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없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모든 의미 있는 일, 특히 하나님의 일은 그것을 사랑하고, 그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 의해 시작이 된다. 관심과 사랑이 있어야 알려고 하고, 또한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랑한다는 것안다는 것은 거의 같은 의미다. 엄마는 아기의 울음소리만 듣고도 아기의 상태를 안다. 이는 아기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사랑의 또 다른 모습이다. 무엇이든 관심과 사랑이 있어야 시도할 수 있고, 관심과 사랑이 있어야 올바르게 진행할 수 있고, 관심과 사랑이 있어야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본문에서 성전 리모델링을 제안한 사람이 성전 책임자인 대제사장이 아니고 어린 왕 요아스라는 점이 이를 잘 보여준다. 성전 리모델링은 당연히 제사장이 서둘러야 하는 일인데, 왕이 먼저 이를 제안한 것이다. 요아스가 그만큼 성전에 대한 관심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무슨 일이든 중요한 것이 마음이다. 마음이 있으면 보이고, 마음이 있으면 들리고, 마음이 있으면 필요성을 가지고 시도하게 된다. 반면에 관심과 사랑이 없으면 금이 간 곳, 무너진 곳, 물이 새는 곳을 발견할 수 없다. 문제를 찾지도 못하고 문제의식을 갖지도 못한다. 문제를 보지 못하니까, 문제의식이 없으니까 필요성 또한 갖지를 못한다. 우리교회가 건물을 구입해서 들어온 날부터 물이 새고, 하수구가 막혀 역류해서 식당에 물이 몇 번이나 차고, 지붕의 물받이 물이 넘쳐서 3층 천정으로 흘러들어와 부엌으로 화장실로 방으로 거실로 흘러내리고, 2년 전까지만 해도 비만 오면 유아실에 물이 새서 지금도 냄새가 난다. 그런데 이것을 누가 해결했을까? 누수전문가? 아니다. 내가 했다. 나에게 누수에 대한 전문지식이나 기술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저 몸인 교회에 대한 관심과 사랑 때문이다.

  

가끔 어떤 일을 할 때, 특히 주님의 일을 할 때 재능 탓, 시간 탓, 재정 탓, 시기 탓을 한 사람을 본다. 은사가 없어서, 시간이 없어서, 혹은 필요한 물질이 없어서, 아직은 때가 아니라서 못하겠다고 말한 사람이 있다. 물론 그럴 수 있다. 그렇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마음이다. 마음이 없는 것이고, 관심과 사랑이 없는 것이다. 이런 사람의 특징은 가능성을 찾고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핑계거리부터 찾는다. 그러나 마음이 있으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는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이런 사람에게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은사와 지혜를 주시고, 시간을 주시고, 재물 또한 주신다는 사실이다. 본문에서 왕의 명령에도 성전 리모델링이 23년 동안이나 지연되었다. 앞장서서 솔선해야 할 제사장들이 이 일에 관심과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 소중한 일을 23년 동안이나 시작하지도 못한 것이다. 결국 요아스는 관심이 없는 제사장들을 물리치고 관심이 있는 백성으로 성전 리모델링을 하게 하였고,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직책이나 직분이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마음이다. 특히 주님의 일은 직책이나 직분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관심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아스 시대 성전 리모델링을 관심 있는 백성이 주도하여 완성하였다는 사실이 이를 확증한다.

 

또 다른 성전 리모델링 

성전을 리모델링한 왕이 또 한 사람 있다. 유다의 제15대 왕 요시야. 그는 8살에 왕이 되었는데, 왕이 된 지 8년 째(16)에 조상 다윗의 하나님을 찾았고, 18년 째 해(26)에 성전 리모델링을 실시하였다. 이는 할아버지 므낫세와 아버지 요담 때 극심한 우상숭배로 성전을 방치하였고, 훼손까지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를 바로 잡으려고 그는 재위 12(20)1차 종교개혁을 실시하였다. 유다와 예루살렘에 있는 우상과 우상숭배지역을 제거하였다. 또 우상들을 빻아 가루를 만들어 우상에게 제사하던 자들의 무덤에 뿌렸다. 그리고 6년 후에 성전을 리모델링하였다. 이 과정에서 놀라운 보물을 발견하였다. 모세의 율법책이다. 원래 이 책은 언약궤 곁에 필사하여 두었던 것인데, 어느 때부터 사라져버렸다. 잃어버린 것이다. 유다가 뒤죽박죽 엉망이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민족의 나침반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말씀이 삶의 중심이고, 앞길을 밝히는 등불이다. 말씀에 붙들려야 넘어져도 다시 회복할 수 있고, 방향을 잃지 않게 된다. 그런데 요시야 때 성전 리모델링을 하다가 이 소중한 말씀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하여 요시야는 이 말씀을 듣고 자신부터 깊이 회개하고, 백성에게도 말씀을 들려주어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도록 했다. 아울러 사사시대부터 요시야 이전까지 유월절을 제대로 지킨 적이 없었는데, 말씀의 규정에 따라 유월절을 준수했다.

 

깨닫는 마음은 하나님이 주신다. 말씀에 눈이 열리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다. 그리고 이러한 은혜는 주님을 사랑하는 신실한 사람들에게 주어진 복이다. 주님을 신실하게 사랑하는 것은 주님의 몸인 교회를 사랑하고 돌보는 것도 그 중에 하나다. 요시야가 성전수리 과정에서 발견한 율법책 사건에도 이 법칙이 적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시야는 잃어버린 율법책을 찾기 위해 성전을 수리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무관심으로 방치되어 쇠락하고, 하나님을 떠난 무도한 사람들에 의해 훼손된 성전을 수리과정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주님의 비유 중에 밭을 갈다가 우연히 보물이 담긴 항아리를 발견한 농부처럼 말이다. 그저 성전에 대한 관심과 사랑하는 마음이 전부였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율법책을 발견하여 기록된 말씀에 따라 신앙개혁까지 완성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성전을 섬기고, 성전을 사랑하고, 성전을 돌보는 사람이 받는 복이다. 주님의 몸인 교회에 관심을 가지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섬기는 사람이 받는 복이다. 우리도 무엇을 바라고 이번 교회 리모델링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그저 건물이 낡고, 예배공간이 비좁고, 하수나 오수의 배수도 전기도 불안하고, 주변 건물과 비교해도 뒤떨어지고 해서 시작한 공사다. 그렇지만 요아스처럼 관심과 사랑하는 마음으로 교회 리모델링에 참여하면 요시야처럼 뜻하지 않는 주님의 은혜로운 선물을 발견하는 기회가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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