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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지혜, 눈뜬 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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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26회 작성일 26-10-11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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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지혜, 눈뜬 겸손

잠28:11

2026. 10/11 10:00(성령강림 후 스무 번째 주일)

유쾌한 착각

유명한 현대 미술관에 초보 해설사(Docent)가 배치되었다. 그는 첫날, 긴장한 나머지 전시관 한구석에 놓인 청소도구를 현대 미술의 걸작인 줄 알고 관람객에게 진지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현대 사회의 노동과 일상의 경계를 허무는 설치 미술입니다.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청소도구를 통해 인간의 고단한 삶을 은유적으로 표현했죠.’ 관람객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도 하고, 청소도구를 사진까지 찍었다. 그때, 미화원이 청소도구를 챙기러 전시관으로 들어왔다. 미화원은 사람들이 자신의 도구를 둘러싸고 진지하게 감상하고 있자 어리둥절해하며 말했다. ‘아니, 이거 작품 아니에요! 청소하려고 내가 놓아둔 것이에요!’ 그러자관람객은 놀랐고, 특히 초보 해설사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때 한 관람객이 유쾌하게 외쳤다. ‘어쩌면 이 해프닝 자체가 진정한 현대 미술 아닐까요?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완벽하게 무너뜨렸으니까요!’ 이 말에 모두가 박장대소했고, 그날 그 미술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은 단연 그 청소도구였다. 이런 것을 ‘유쾌한’ 착각이라고 한다. 유쾌한 착각은삶의 팍팍함을 잊게 만드는 윤활유와도 같다. 오히려 따뜻한 추억으로 바뀔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유쾌한 착각과 달리 삶을 서서히 무너뜨리는 ‘블랙’ 착각도 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예수님의 비유에 나온 어리석은 부자다(눅12:16~21). 그는 큰 부자였는데, 농사가 너무 잘 돼서 기존의 창고를 헐고 새로 지어야 할 만큼 많은 수확을 거뒀다. 수확물을 모두 창고 쌓아두고 그는 이렇게 외쳤다.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기자.’ 이런 그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가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예수님은 이 비유를 마치시며 이런 결론을 내리셨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주님의 이 비유에 나온 부자는 심각한 착각쟁이다. 풍성한 수확이 오롯이 자신의 능력 때문이라는 착각, 내일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착각, 물질이 영혼을 채워줄 수 있다는 착각이다. 이런 착각이 가장 중요한 생명과 영혼을 잃도록 만들었다. 착각이란 자신을 ‘오해하는 병’이다. 자기가 얼마나 부족한지 모르고, 스스로 잘 안다고, 다 할 수 있다고, 지혜롭고 의롭다고, 경건하다고 착각하며 사는 것이다. 사실 이것만큼 위태로운 것은 없다. 본문은 이와 같은 사람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다.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는 부자의 착각

‘부자는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나 가난하나 명철한 자는 자기를 살펴 아느니라.’(11). 이 세상이 가치 기준으로 삼는 ‘부’(富)와 성경이 말씀하는 ‘명철’(明哲)을 날카롭게 대조하고 있다. 세상은 재물이 많으면 지혜도 많다고 착각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는 교만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리고 자신을 성찰할 줄 아는 겸손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말씀하고 계신다. 여기서 ‘부자’는 단순히 물질이 많은 사람만을 뜻하지 않는다. 자신의 힘, 물질, 경험, 성취를 의지하여 하나님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믿는 모든 사람 즉, 자만에 빠진 사람을 의미한다.

 

‘부자’를 히브리어로 ‘아시르’(עָשִׁיר)라고 한다. 이 단어가 본문에서는 단순한 물질적 부를 넘어, 인간이 가진 소유가 가져다주는 착각을 고발하는 내용으로 쓰였다. 고대 히브리 사상에서 부자를 자신의 재물과 능력을 과신한 나머지 스스로 지혜롭고 자급자족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히브리 사상에서 사람은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이웃에게 의존하여 살아가는 ‘관계적 존재’다. 그런데 부자는 자기 힘과 지혜로 삶을 완벽하게 꾸려갈 수 있다고 믿으며, 하나님이나 공동체의 도움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즉, 자신의 재물을 방패 삼아 어떤 위험이나 심판도 비껴갈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이것은 착각이고, 또한 오만이다. 그러므로 ‘아시르’(부자)는 외적인 부에 눈이 멀어 내면을 보지 못하는 영적 맹신 상태를 비판적으로 드러내는 은유적 의미다. 그렇다. 사람은 물질적인 풍요나 성공을 맛보면 쉽게 착각에 빠진다. 자신이 똑똑해서 남보다 많은 돈을 벌고, 능력이 뛰어나서 높은 자리에 올랐다고 착각한다. 자신이 남다르다고 착각한다. 이런 착각이 정작 자신의 한계를 보지 못하게 만든다. 하지만 세상 것은 무엇이든 유통기한이 있다. 불어오는 인생의 풍랑 앞에서는 아무리 많은 재물도, 자랑하던 지혜도 한순간에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자신의 한계를 아는 것이 지혜이고 명철이다. 지혜는 자신이 가진 소유의 크기가 아니라, 자신의 한계와 은혜를 겸손히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자기를 살펴 아는 가난한 자

본문은 자신을 지혜로운 자로 착각한 부자와 대조하여 가난하지만 ‘자기를 살펴 아는 명철한 사람’을 소개하고 있다. ‘가난하나 명철한 자는 자기를 살펴 아느니라.’ 세상 기준으로는 가진 것 없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가난한 사람이지만, 하나님 안에서 자기 자신을 꿰뚫어 보는 ‘명철한 자’라는 것이다. 여기서‘가난한 사람’은 히브리어로 ‘딸’(דָּל)이다. 결핍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사물의 본질과 하나님의 뜻을 깊이 꿰뚫어 보는 사람(명철한 사람)을 뜻한다. 본문이 가난한 자와 명철한 자를 동일시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록 가진 것이 없어서 가난하지만, 영적으로 탁월한 사람을 뜻한다. 그리고 ‘살펴 안다.’라는 말은 겉모습만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거울 앞에 자신을 바로 세워 자신의 허물과 한계,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자기를 살펴 아는 가난한 자란, 자신의 연약함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교만에 빠지지 않는 겸손하고 지혜로운 사람이다.지혜는 내가 얼마나 능력이 있는가를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심각한 죄인인가를 깨닫는 것에서 출발한다.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자신을 성찰하는 사람은 결코 교만의 덫에 걸리지 않는다.

 

타이타닉의 침몰

1912년, 당시 세계 최첨단 초호화 여객선 ‘타이타닉’이 출항했다. 이 배는 최신 공학 기술로 만들어져, 하나님도 침몰시키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사람들의 자만이 하늘을 찔렀다. 그러나 출항 불과 며칠 만에 빙산과 충돌했다. 절대 침몰하지 않는다는 자만심 때문에 구명정조차 턱없이 부족하게 준비되어 있었고, 결국 수많은 사람이 차가운 바다에서 목숨을 잃었다. 반면, 날마다 거친 바다로 작은 목선을 타고 나가는 어부가 있었다. 그는 바다의 무서움과 자신의 한계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바람의 방향을 늘 살피고, 날씨를 주의 깊게 보며, 겸허게 바다를 대했다. 자신을 과신하지 않고 늘 경계하고 준비하기에 거친 바다에서 생명을 지켜냈다. 스스로 지혜롭다고 자만하는 부자는 타이타닉과 같다. 거창해 보이고 안전해 보이지만, 스스로 과신하다가 한순간에 침몰했다. 그러나 말씀 앞에서 자신을 늘 살피는 명철한 사람은 지혜로운 어부와 같다. 자신의 한계를 알기에 늘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겸손함이 인생의 바다에서 영혼을 지켜낼 수가 있는 것이다.

 

혹시 내가 가진 소소한 경험과 지식, 약간의 재물, 세속적 지위 때문에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며 타인을 판단하고 있지는 않는가?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영적 안목을 가지라고 말씀하신다. 즉, 우리가 가진 물질과 성공의 착시 현상에 속지 말라는 것이다. 말씀이라는 거울 앞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겸손히 인정하고, 오직 주님의 은혜만을 구하며 자신을 살펴 아는 명철한 성도가 되자.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는 사람은 실상은 눈먼 사람이고, 자신을 겸허하게 낮춘 사람이 눈뜬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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