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이 약속된 말씀, ‘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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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0,400회 작성일 19-03-17 18:02본문
축복이 약속된 말씀, ‘헌신’
출32:25-29
2019. 3/17. 11:00
두 지파 이야기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는 야곱의 열 두 아들에서 시작되었다. 야곱의 열 두 아들이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 조상이 된 것이다. 이 열 두 아들 중에서 야곱이 끔찍하게 생각했던 두 아들이 있었다. ‘시므온과 레위’다. 그래서 야곱이 임종직전에 열 두 아들을 불러 유언(예언)을 했는데, 이 두 아들에게는 거의 저주에 가까운 유언을 했다.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잔해하는 기계로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예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그 노염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창49:5~7).
원수도 아닌 자기 자식인데, 왜 이런 저주에 가까운 유언을 한 것일까?(밑줄 친 것 참조). 그 이유가 표면적으론 이들의 폭력성 때문인 것처럼 보이나 실재적으론 숙곳에서 있었던 사건 때문이다(창34:). 외삼촌 집에서 돌아온 야곱은 형 에서와 극적으로 화해를 하고 벧엘로 가던 중에 세겜 사람의 거주지인 숙곳에서 얼마간 머물게 되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딸 디나가 세겜성주의 아들 하몰에게 강간을 당한 일이 발생했다. 이 일에 대한 사과의 뜻으로 세겜이 화친을 제의했고, 야곱과 그의 아들들은 할례를 조건으로 내세웠다. 화친을 맺기 위해 세겜의 모든 남자가 할례를 받게 되었고, 할례를 받고 고통스러워할 때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을 공격하여 모든 남자를 죽이고 물건을 약탈했다. 언약의 상징 할례를 무기로 저지른 끔찍한 사건이다. 이 사건의 주동자가 시므온과 레위였다(:25). 이 때 야곱은 이들의 행동에 매우 분개했다. 그 결과 야곱은 이들에 대하여 흩어짐과 분리의 저주가 담긴 유언을 했다. 이 유언은 그대로 성취되어, 시므온은 가나안 정착이후 유다지파에 흡수되고, 유다지파 영내에 있는 몇 개의 성만을 받았다. 레위지파 역시 독자적인 기업을 가지지 못하고 각 지역에 흩어져 살게 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야곱의 이 저주유언(예언)이 시므온에게는 저주가 그대로 성취되고, 레위에게는 축복으로 바뀌어 성취되었다는 점이다.
황금송아지 사건
어떻게 똑같은 사람을 통하여 주어진 저주예언이 한 사람에게는 저주 그대로 성취되고, 다른 사람에게는 축복으로 바뀌어 성취된 것일까? 본문이 이에 대한 답이다. 레위지파에게 야곱의 이 저주예언이 축복으로 바뀌게 된 계기가 되었던 사건이 바로 본문이다.
이집트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로 이집트를 탈출하여 석 달 만에 시내산에 도착했다(출19:1). 하나님은 그들과 이곳에서 언약의식을 가졌다(19:3~, ‘시내산 언약’). 그리고 언약증서(십계명)를 돌에 새겨주시기 위해 모세를 산 위로 부르셨다. 언약증서를 받기 위해 산 위에 오른 모세가 40일이 지나도 산에서 내려오지 않자 이스라엘은 모세가 산에서 죽은 것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모세와 함께 자신들을 인도한 아론을 찾아가 요구했다. ‘우리를 이집트에서 인도한 모세가 어찌 되었는지 모르니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어 달라.’(32:1). 아론은 그들에게 금을 가져오게 하여 황금 송아지를 만들어 이것이 너희를 이집트에서 인도한 신이라고 선포하고 축제를 베풀었다. 소위 ‘황금송아지 숭배사건’이다(:2~7). 이집트에서 나온 지 불과 넉 달여 만에 일어난, 그것도 모세가 언약증서를 받기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일어난 기가 막힌 사건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모조리 죽이시겠다고 마음먹을 만큼 하나님의 분노를 일으킨 사건이다(:10). 다행히 모세의 간곡한 중보적 기도로 일단 하나님의 진노를 멈출 수가 있었다(:11~14).
운명을 바꿔놓은 헌신
이렇게 하나님의 진노를 멈추고 산에서 내려와 이 사건을 본 모세 역시 거룩한 분노에 휩싸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직접 만들어주신 언약증서 두 돌 판을 던져 깨뜨려버렸고(언약을 깨버렸으니 증서 또한 필요없게 된 것), 그들이 만든 황금송아지를 가루로 만들어 물에 뿌려서 백성으로 그 물을 마시게 했다(:19,20). 그리고 외쳤다. “누구든지 여호와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26). 그 때 레위자손이 모여 모세에게로 나아갔다. 모세는 그들에게 명령하였다.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자기의 친구를, 각 사람이 그 이웃을 죽이라.”(27). 참으로 끔찍한 명령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모세의 명령대로 행하였고, 그날에 3천 명이 죽었다. 이 일을 행한 레위자손에게 모세는 이렇게 말했다. “각 사람이 자기의 아들과 자기의 형제를 쳤으니 오늘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29).
하나님은 레위자손이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우상숭배에 빼진 형제, 지녀, 이웃을 향해 칼을 든 것을 하나님께 헌신으로 보셨다. 이것은 사사로운 분노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하나님의 분노를 대신 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500여 년 전 그들의 조상 레위는 사사로운 분노에 휩싸여 복수의 칼을 들었다가 자손을 저주예언에 묶이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의 후손은 하나님의 분노를 대신하여 헌신의 칼을 들어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었다. 이 헌신이 저주예언에 묶여있던 그들의 운명을 축복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가 오늘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했는데, 그들이 받은 복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다.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 지파가 되었다.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의 다리역할을 하는 지파가 되었다. 그들은 지근(至近)거리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특권을 얻게 되었다. 하나님을 가까이서 섬긴다는 것은 최고의 영광이고 그 자체가 복이다(시84:3,10). 이스라엘의 각 지파 중에 흩어져 살면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생활에서 발생하는 각종 송사문제를 해결해주고, 하나님의 복을 빌어주는 지파가 되었다. 비록 땅에서는 기업이 없었지만 하나님이 직접 그들의 기업이 되었다. 하나님께 대한 헌신이 그들의 운명을 이렇게 바꿔놓은 것이다.
헌신의 중요성
일반적으로 신앙인이 좋아하는 단어가 무엇일까? 아마 믿음, 소망, 사랑, 은혜, 복, 기쁨과 같은 단어가 아닐까? 반면 부담스러운 단어도 있을 것이다. 모르긴 해도 그 중에 헌신이라는 단어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놀랍게도 헌신이라는 단어를 성경이 매우 강조하고 있다. 성경에 믿음은 246회, 소망은 185회, 사랑은 733회 정도 나온다. 이에 비해 헌신은 2,285회 정도 나온다. 사랑보다 3배 이상 많이 나오고 있다. (물론 많이 나온다고 꼭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이는 그만큼 헌신이 하나님의 관심사라는 뜻이다. 여기서 우리가 좋아하는 단어 대부분은 위로부터 내려오는 것이다. 주로 우리가 받는 것이다. 반면 부담스러워하는 헌신은 우리가 드리는 것이다. 이렇게 헌신을 부담스럽게 여긴다는 것은 받는 것에는 익숙하지만 드리는 것에는 인색하다는 말이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문제가 있다. 우리가 축복의 주인공이 되려면 기쁘고 즐겁게 드리는 헌신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헌신이라는 히브리어 단어를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헌신을 히브리어로 ‘마레’(מלא)라고 하는데, 어떤 희생으로 의도(뜻)한 바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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