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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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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1,580회 작성일 17-04-02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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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달려있다.

골3:1~4

2017. 4/2. 11:00

생각관리

어느 초등학교에서 했던 실험이다. 선생님이 자기반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최근 연구결과에 의하면 파란색 눈을 가진 사람이 갈색 눈을 가진 사람보다 능력이 있어서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다고 했어요. 여러분 중에 파란색 눈을 가진 사람 손 들어보세요.’ 그러자 여러 아이가 손을 들었다. 그리고 얼마나 후 시험을 치렀는데 파란색 눈을 가진 아이들이 갈색 눈을 가진 아이들보다 성적이 훨씬 좋았다. 이번에는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미안해요. 지난번에 제가 연구결과를 잘못 말했어요. 파란색 눈을 가진 사람보다 갈색 눈을 가진 사람이 더 능력이 있데요. 여러분 중에 갈색 눈을 가진 사람 손 들어보세요.’ 그러자 갈색 눈을 가진 아이들이 손을 번쩍 들었다. 그리고 시험결과를 살펴봤더니 이번에는 갈색 눈을 가진 아이들이 월등하게 성적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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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실험은 생각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생각이 행동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능력이 있다’는 말이 학생들에게 공부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했고, 그 생각이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실제로 재미있는 생각, 행복한 생각, 좋은 생각을 하면 몸이 가볍고, 활발해진다. 흥분된다. 엔돌핀이 배출되기 때문이다. 반면 부정적이고 어두운 생각, 슬픈 생각, 두려운 생각을 하면 근육이 수축되고 몸이 굳어진다. 기분도 가라앉게 된다. 아드레날린이 배출되기 때문이다. 생각은 이렇게 신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또한 행동에도 영향을 준다. 그러니 하겠다는, 해보겠다는 생각, 잘 할 수 있다는, 잘 될 것이라는, 잘 될 수밖에 없다는 확고한 생각은 행동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심리학자 쉐드 헴스테터(Shad Hamstetter)는 말했다. ‘사람은 하루 5~6만 가지의 생각을 하는데, 이 생각의 75%에 해당되는 3~4만 가지의 생각은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부정적으로 흘러 행복보다는 불행을 더 많이 생각하게 한다.’ 생각을 잘 관리해야 한다는 생각관리의 중요성을 역설한 것이다. 생각이 중요한데, 나쁜 생각, 악한 생각, 부정한 생각, 세속적인 생각과 같은 부정적인 생각은 특별히 관리하지 않아도 저절로 생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인생을 망친다는 것이다. 그러니 생각을 잘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각이 인생을 바꾼다.

지난주일 보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무엇을 보고,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우리의 생각이 바뀐다고 했다. 행복한 것을 보면 행복한 생각을 하게 되고, 불행한 것을 보면 불행한 생각을 하게 된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생각이 보는 것을 좌우하기도하다. 이와 같이 보는 것을 좌우하는 생각을 선입견이라고 한다. 선입견은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 대하여 직접 경험하기 전에 이미 마음속에 형성된 생각(관념이나 견해)을 뜻한다. 우린 이미 형성된 이 생각을 가지고 사람도 보고, 사물도 보게 된다. 그래서 긍정적인 생각이 형성되어 있으면 긍정적으로만 보게 된다. 이 사람에게는 될 이유만 보이고, 이 사람은 될 이유만 찾는다. 좋아하는 사람은 항상 좋게만 보이고, 싫어하는 사람은 모든 것이 싫게 보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이 생각이다. 생각을 바꿔야 시선(관점)이 바뀌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각이 바뀌면 인생까지 바뀌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은 생각에 관심이 많고, 생각의 중요성을 말씀하고 있다.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잠23:7). 생각이 곧 그 사람이라는 뜻이다(참고, 롬8:5~6). 요즈음 기업이 사람을 뽑을 때, 가장 중요하게 본 것이 인성(人性)이다. 그런데 인성이란 면접 한 번으로 확인할 수가 없다. 그래서 무엇을 보는가? 생각이다. 생각을 본다. 얼마나 건강하고 건전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이 긍정적이고 낙천적인지, 남을 배려하고 협력할 줄 아는 생각을 가졌는지, 또한 창의적인지를 본다. 생각이 곧 그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사람의 변화는 생각에서부터 시작이 된다. 생각이 변하면 그 사람도 변한다. 생각이 곧 그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관리가 중요한 것이다. 생각관리가 곧 인생관리다. 여기에 인생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위의 것을 생각하라.

본문은 구원받은 성도의 삶의 자세(태도)를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1). 그것은 한 마디로 ‘위의 것을 찾는’ 삶이다. 여기서 ‘위의 것’이란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시다. ‘찾다’(ζητέω)는 ‘간절히 구하다’, ‘추구하다’, ‘갈망하다’, ‘목표로 삼다’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간절히 구하고, 추구하고, 갈망하고, 목표로 삼고 살라는 것이다. 이것이 구원받은 성도의 삶의 태도(자세)다. 성도는 모름지기 이러한 삶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지난주일 보는 문제도 여기에 속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렇게 예수님을 찾는 삶, 곧 간절히 구하고, 추구하고, 갈망하고, 목표로 삼는 삶이 가능할까? 이런 삶을 가능하게 한 것이 2절이다.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생각하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인데, 위의 것만 생각하고 땅의 것은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생각관리를 잘하라는 말씀이다. 위의 것을 생각하면 위의 것을 찾는 삶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위의 것을 생각하고’ 여기서 ‘생각하다’(φρονεω)는 ‘고삐를 매다’는 말(φραω)에서 유래했다. 이는 ‘고삐를 매듯 골똘히 생각하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마음에 두고 몰두하다’, ‘주의를 기울이다’는 뜻도 있다. 그러므로 위의 것을 생각하라는 것은 예수님께 마음을 두고 몰두하라, 예수님만 골똘히 생각하라, 주의를 집중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단어가 여기서 현재 능동태 명령형으로 되어 있다. 한 번 생각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계속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명령이다. 하면 좋고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의지적으로, 의도적으로, 반드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각한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과 같다. 순우리말로 ‘생각하다’의 고어가 ‘괴다’이다. 이 ‘괴다’는 ‘사랑하다’는 의미다. 이처럼 생각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이 어원이 같다. 그러니 위의 것을 생각하라는 것은 위의 것을 사랑하라는 의미다. 다시 말하면 주님을 항상 사랑하고, 사모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대상을 향해 마음을 쏟아 붓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의지적으로, 의도적으로, 계속해서 위에 계신 주님만 생각하고, 주님께만 마음을 쏟으면 자연스럽게 ‘땅의 생각’(5)은 사라지게 된다. 불을 켜면 어둠이 사라지고, 따뜻한 물을 부으면 얼음이 녹듯 말이다. 그래서 ‘세상과 나는 간곳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찬송가 288장 3절) 라는 고백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여전히 분한 생각, 억울한 생각, 비참한 생각, 악한 생각 등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주님만 생각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오직 예수!

시1편은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2)이 복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본문의 표현대로 하면 밤낮으로 예수님을 찾는 사람이다. 그러면 그가 어떻게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밤낮으로 묵상하는 사람이 된 것일까? 그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였기’(시1:2a) 때문이다. 여기서 ‘즐거워하다’는 온통 거기에만 생각이 집중되어 마음을 쏟는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말씀에만 생각이 집중되어 마음을 쏟아 부으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게 된 것이다. 항상 말씀만 생각하고 사니까 말씀이 삶에서 떠나지 않는 말씀의 사람이 된 것이다. 여기에는 다른 생각이 비집고 들어갈 수가 없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성도의 성공적인 생각관리 방법이다. 나아가서 구원받은 성도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비결이다.

 

그러므로 본문은 오직 예수님만 생각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즉 암소 한 마리 가치도 안되는 내게 베풀어주신 모든 은혜와 사랑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만 찾고, 예수님만 바라보는 예수님의 사람이 될 수 있다. 모택동의 말이다. ‘공산주의자는 꿈을 꾸어도 공산주의 꿈을 꾸어야 한다. 만약에 다른 꿈을 꾸었으면 사상비판을 받아야 한다.’ 한갓 이데올로기를 위해서도 이렇게 살아야한다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주님을 위해서 이렇게 사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눈을 뜨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일어나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밥을 먹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옷을 입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길을 걷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사람을 만나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업무를 보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쉬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잠자리에 들자! 우리의 생각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만 채워진 예수 그리스도께 중독된 사람, 바울처럼 예수 그리스도께 붙잡힌 사람, 예수 그리스도께 미친 사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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