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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조언자, ‘이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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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4,541회 작성일 14-02-02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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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조언자, ‘이드로’

출18:17~27

2014. 2/2. 08:00, 11:00

인생을 점프(jump)하게 해주는 사람

 춘추시대 제나라 환공이 대군을 이끌고 고죽국을 공격하였다. 크게 승리를 거둔 환공의 군대는 적의 잔당까지 섬멸하기 위해 추격하다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지나치면 뜻하지 않는 어려움에 처하는 법이다). 도무지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을 때, 관중이 말했다. ‘늙은 말은 길을 안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 가운데 늙은 말을 하나 골라 길을 찾도록 한 다음, 그 뒤를 따르면 분명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환공은 관중의 조언을 따랐다. 과연 늙은 말은 그들을 정확한 길로 인도해주어 난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경험이 풍부한 사람의 의견을 귀담아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우쳐주는 이야기다.

 

그래서 성경도 “의논이 없으면 경영이 무너지고 지략이 많으면 경영이 성립하느니라.”(잠15:22)고 하였다. 공동체 안에서 의견피력의 중요성과 조언자의 역할을 강조한 말씀이다. 비록 자신은 뛰어나지 못해도 주변에 좋은 참모(조언자)를 많이 둔 사람이 인생의 승자, 역사의 승자가 된다. 초나라의 항우와 한나라의 유방이 좋은 예다. 항우는 걸출한 능력을 갖춘 명문가의 출신이나 그의 주변에는 사람이 없었다. 범증이라는 훌륭한 참모가 한 사람 있었지만 그의 말도 듣지 않았다. 반면에 유방은 출신은 물론 모든 면에서 항우보다 열세였다. 하지만 그에게는 장량, 소하, 한신과 같은 유능한 참모가 있었다. 그는 이들의 도움으로 결국 항우를 꺾고 천하를 통일하였다. 가진 능력이 열세(劣勢)라도 좋은 조력자가 있고, 그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면 자신의 약점을 뛰어넘을 수 있다. 그러므로 조언자(참모)는 ‘인생을 점프하게 해주는 사람’이다. 본문에 나온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그런 사람이다.

 

이드로의 조언

모세는 탁월한 영성과 훌륭한 리더십을 가진 뛰어난 지도자였다. 하지만 백성을 편안하게 다스리는 행정능력은 많이 부족했던 것 같다. 그것은 그가 사람을 다스려본 경험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잘 아는 대로 처가살이하며 양을 치던 목동에서 갑자가 민족의 지도자가 되었다. 백성을 다스리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도, 다스려본 경험도 없었다. 그러다보니 자신은 물론 백성도 힘들었다. 단 몇 분, 혹은 말 몇 마디면 해결될 일도 며칠씩 걸려야 되니 백성은 백성대로 모세는 모세대로 힘들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의 장인 이드로가 이 문제를 조언하여 단 번에 해결해 주었다. 그 내용이 본문이다.

 

이드로는 비록 이방 민족(미디안)의 제사장이긴 하지만 모세에겐 생명의 은인이었다. 그가 이집트 사람을 죽이고 광야로 도망하였을 때 그를 거둬준 사람이다. 쫓기는 범죄자에게 자신의 큰 딸 십보라를 아내로 주어 가정을 이루게 하고, 자신의 가정을 안전한 피난처로 제공했다. 그리고 자신이 좋은 후견인이자 보호자가 되어 주었다. 도망자로서 그가 40년 동안 도피생활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이드로 덕분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나와 시내산에 이르렀을 때, 이드로가 모세의 아내와 자녀들을 데리고 찾아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백성들을 재판하느라 종일토록 고생하는 모세의 모습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이러한 그의 모습을 보고 이드로가 다음과 같이 지적한 것이다.

 

혼자서는 안 된다.

 

......그대가 이 백성에게 행하는 이 일이 어찌됨이냐. 어찌하여 네가 홀로 앉아 있고 백성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네 곁에 서 있느냐......네가 하는 것이 옳지 못하도다. 너와 또 너와 함께한 이 백성이 필경 기력이 쇠하리니 이 일이 네게 너무 중함이라. 혼자 할 수 없으리라.”(14~18).

 

네 혼자 할 수 없으리라!’ 이것은 모세가 이미 ‘아말렉과의 전투’(17:8~16)에서 경험했던 사실이다. 그런데 그는 함께 하는 것의 중요성을 깊이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백성의 문제를 혼자서 감당하느라 힘들어하고 있었다(13). 경험해서 알고 있는 것과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는 법이다. 그래서 가장 먼 길이 머리에서 가슴까지, 또 가슴에서 손과 발까지라고 한다. 알고 깨닫는 것,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말이다.

 

캠벨이라는 심리학자가 기업체에서 주목받은 유망주를 대상으로 실패한 사람들의 특징을 조사해 보았다. 이들 상당수가 좋은 학벌과 탁월한 능력, 그리고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의 탈락은 대부분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 협력을 이루지 못한 독불장군형이었다. 혼자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모른 것이다. 물벼룩에서부터 아프리카 밀림에 사는 원숭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동물들도 그 무리에 끼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는 ‘무리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아무리 탁월한 사람도 혼자서는 잘 할 수가 없다. ‘멍청이’를 뜻하는 영어단어 ‘이디엇’(idiot)은 헬라어 ‘이디오스’(ιδοs)에서 나왔다. 이는 ‘혼자 사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다른 사람과 함께 하지 못하고, 혼자 하겠다고 덤비는 사람은 멍청이다. 혼자서 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암세포와 같다. 암세포는 우리 몸에서 유일하게 혼자서 존재하는 세포다. 결국은 몸을 죽이고, 자신도 죽는다. 모세는 이드로의 충고를 받아 혼자는 안 된다는 것을 겸손히 인정했다. 이 때 이드로는 모세에게 중요한 행정원칙을 조언했다.

 

사람을 세워 사역을 나누라.

혼자서 다하려고 하지 말고 적절한 사람을 세워서 그들에게 역할을 분담하라는 것, 사역을 나누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이드로의 원칙에 따라 제자를 세우셨다. 주님은 전능하시기에 혼자서 다 하실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제자를 세워서 세계복음화의 사명을 위임하셨다. 이것은 특히 신앙공동체를 세우는 아주 중요한 원칙이 되었다.

 

너는 또 온 백성 가운데서 능력 있는 사람들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를 살펴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그들이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게 하라. 큰일은 모두 네게 가져갈 것이요, 작은 일은 모두 그들이 스스로 재판할 것이니 그리하면 그들이 너와 함께 담당할 것이니 일이 네게 쉬우리라.”(21,22).

 

여기엔 두 가지 내용이 있다. 하나는 적절한 사람을 세우라는 것이다. “온 백성 가운데서 능력 있는 사람들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를 살펴서 백성 위에 세워”(21). 이것이 사람을 세우는 중요한 기준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드로가 제시한 “능력 있는 사람들”이란 오늘날 우리의 생각과 사뭇 다르다. 능력 있는 사람이란 학벌과 능력과 실력을 갖춘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하는 사람, 곧 믿음의 사람이다. 진실한 사람’이다. 사적인 욕심이 없는(공동번역) 사람, 곧 하나님께 충성되고 사람에게 참된 사람이다. 유능해도 사적인 욕심을 가지고 있으면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없다. 지도자 역시 이런 사람과 함께하면 좋은 지도력을 발휘할 수가 없다.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사람’이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불의를 미워하는 정의로운 사람이다. 이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진실한 사람의 특징이다. 이런 사람을 동역자로 세우라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함께 해준다면 그 사역이 얼마나 든든하겠는가?

 

다른 하나는 능력에 따라 역할을 나누라는 것이다.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그들이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게 하라.” 그릇마다 크기가 다르고, 그 쓰임이 다르듯이 사람도 ‘은사와 능력’이 각기 다르다. 그 은사와 능력에 따라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으로 세우고, 그들에게 맞는 역할을 맡기라는 것이다. 10살짜리에게 어른의 옷을 입혀놓으면 불편해서 감당하지를 못한다. 다윗이 골리앗을 맞서 싸우겠다고 하자 사울 왕이 자신의 갑옷과 투구, 그리고 칼을 다윗에게 입혀주었다. 하지만 다윗은 불편하다며 거절하고 평상복에 물매와 조약돌 다섯 개를 주머니에 넣고 골리앗을 향해 나아갔다(삼상17:38~40). 사역도 마찬가지다. 물론 주님께서 감당할 수 있는 능력과 은사를 주시지만 대개의 경우 자신의 은사와 능력에 맞지 않은 사역은 도리어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 사람은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일,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신명이 난다. ‘은사와 능력’은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일, 자기가 좋아하는 일과 관련이 있다.

 

지금 우리사회의 가장 큰 병폐는 개인의 은사나 능력보다 연고주의(학연, 지연, 혈연)와 학벌주의를 따르고 있는 점이다. 이드로의 원칙은 능력, 은사, 재능위주로 사람을 세워서 역할을 맡기는 것이다. 아무튼 모세는 이와 같은 이드로의 원칙을 수용하여 사람을 세워서 사역을 나눔으로 과도한 업무로부터 자유롭게 되고, 일의 효율성도 높일 수 있었다.

 

조언을 들어라!

내가 남들보다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더 멀리 볼 수 있었던 것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이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확립한 뉴턴의 말이다. 자신이 탁월해서 남들보다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더 멀리 본 것이 아니라 훌륭한 조언자 때문이라는 것이다. 조언자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하는 말이다. 뉴턴이나 모세, 그리고 서론에서 소개한 유방처럼 조언자는 인생을 점프하게 해주는 사람이다. 그러니 좋은 조언자를 갖는 것은 인생의 복이다. 그런데 우리에겐 이미 최상의 조언자가 계신다. 주님이시고, 또한 주님의 말씀이다.

 

남자는 세 여자의 말만 잘 들으면 성공한다는 말이 있다. 첫째는 엄마, 둘째는 아내, 셋째는 지니 언니다. 중요한 것은 듣는 것이다. 항우처럼 아무리 훌륭한 조언자(범증)가 있어도 듣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 신자와 교회도 이 ‘항우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있다. 범증과 비교할 수도 없는 우리 주님과 주님의 말씀에 귀를 막고 마음을 닫고 있으니 말이다. 모세의 탁월함은 비록 장인이지만 이교도인 이드로의 조언을 기꺼이 수용했다는 점이다. 주님과 주님의 말씀을 즐거이 듣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면 신앙과 삶에 커다란 도약을 경험할 것이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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