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구포신(除舊布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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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4,811회 작성일 13-12-29 13:28본문
제구포신(除舊布新)
엡4:22~24
2013. 12/29. 08:00, 11:00
묵은 것을 제거하고 새로운 것을 펼쳐낸다.
2001년부터 매년 대학교수들이 새해에는 그해의 소망을 담은 사자성어를, 연말에는 그해를 대표하는 사자성어를 교수신문에 발표를 해왔다. 최근에 올해의 사자성어로 ‘도행역시’(倒行逆施/ ‘순리에 어긋난 행동’)를 선정해서 발표했다. 그리고 연초에는 소망의 사자성어로 ‘제구포신’(除舊布新)을 선정했다. 이는 춘추좌전(春秋左傳)에 나오는 말로 ‘묵은 것을 제거하고 새로운 것을 펼쳐낸다.’는 뜻이다. 올해가 새로운 정부의 집권 1년차가 되다보니 정부에 대한 기대를 담아서 이 글자를 선정한 것 같다. 사실 그 동안 우리 사회는, 특히 대선으로 심화된 지역갈등을 비롯한 이념논쟁, 계층갈등, 낡은 정치, 낡은 의식, 낡은 가치와 같은 구악(舊惡)이 사회발전의 족쇄로 작용하였다. 이 기회에 이런 낡은 것을 제거하고, 새롭게 도약하는 기회를 만들어보자는 의미다.
유감스럽게도 금년 한 해를 돌아보면 묵은 것을 제거하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간다는 본뜻과는 달리 구악이 나라와 백성의 희망을 강탈하고도 모자라 오히려 몽둥이를 들고 설치는 격이 되고 말았다. 요즈음 대학가에서 번지고 있는 ‘안녕’ 대자보가 이런 현실을 잘 반영한 것 같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제구포신 역시 그저 공허한 구호로 그치고 만 것 같다. 희망은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일 뿐이고, 희망과 현실 사이의 차이만 다시 한 번 확인했을 뿐이다. 이것은 비단 사회뿐만 아니고, 교회도 우리 자신도 마찬가지다. 올해는 새롭게 살아보리라! 잘못된 생각, 습관, 생활을 끊고, 좋은 생각, 좋은 습관, 올바른 생활을 다짐했다. 하지만 크게 달라진 것 없이 또 한 해를 마무리하게 되었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이미 늦은 것이고, 반성은 아무리 늦어도 매우 빠른 것이다.’는 말이 있다. 반성이나 후회, 둘 다 어떤 일이 지나간 다음 일어나는 우리 마음의 반응이다. 그런데 반성에는 새로운 발전의 기미가 있지만 후회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아무튼 이와 같이 우리의 기대와 어긋난 현실을 후회가 아니라 반성의 기회로 삼을 수 있기를 바란다.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라!
건강한 신앙생활은 신학과 윤리, 신앙과 삶의 균형에 있다. 흔히 이를 신행일치(信行一致)라고 한다. 예수님을 비롯한 바울과 성경 저자들이 강조한 내용이다. 특히 바울의 경우는 그의 서신 대부분이 전반부는 신학(앙)적인 부분이고, 후반부는 윤리(실천)적인 부분으로 되어 있다. 서신의 구조면에서부터 신학과 윤리, 신앙과 삶의 조화를 강조한 것이다. 에베소서도 마찬가지다. 1~3장은 신학적인 부분이고, 4~6장은 실천적인 부분이다. 이 실천적인 부분의 주제는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는 삶’(4:1)이다. 그리고 본문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할 이유와 방법에 대한 말씀이다.
존재와 신분의 변화
왜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살아야 하는가?(그 이유). ‘새로운 존재’(New being)가 되었기 때문이다. 존재가 변하면 그 존재에 걸맞게 생활도 변해야 한다. 본문은 ‘신자의 존재선언’이다. 바울은 신자는 이미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에 대하여 죽었고’(22),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이 되었다.’(24)고 선언하였다. 여기서 ‘벗어버리고’(22)와 ‘입으라.’(24)는 동사는 ‘단순과거 수동태’다. 단순과거는 과거에 있었던 일회적이고 일시적인 행동을 뜻하고, 수동태는 다른 존재에 의해 일어난 행동을 뜻한다. 그러므로 옛 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입은 것은 하나님에 의해 과거에 있었던 일시적인 사건이라는 뜻이다. 즉 신자는 이미 하나님에 의해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는 뜻이다. 바울은 이와 같은 신자의 존재변화를 사람이 낡고 더러운 옷을 벗고, 새로운 옷을 입는 것에 비유하였다. 신자는 이렇게 천국 백성, 하나님의 자녀로 존재와 신분이 바뀐 새사람이 되었으니까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이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다.
마음이 새롭게 되라.
어떤 분이 사단이 사람을 사로잡는 과정을 5단계를 설명했다. 1단계는 ‘집착’ 혹은 ‘강박관념’(obsession)이다. 사단이 나쁜 생각, 악한 생각을 거머리처럼 마음에 달라붙게 해서 자꾸 악한 마음의 생각이 들게 한다. 2단계는 ‘억압’(oppression)이다. 마음의 생각을 사단이 사로잡아 악한 행동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3단계는 ‘침울’(depression)이다. 사단이 조종하는 대로 행동을 하고나니 후회가 되고, 마음이 우울해지고, 평안이 없어진다. 4단계는 ‘포기’(recession)이다. 3단계까지는 ‘이래서는 안되는데......’라고 생각도 하지만 이때부터는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고 포기해 버린다. 5단계는 ‘사로잡힘’(possession)이다. 완전히 사단에게 사로잡혀서 그저 사단이 조종하는 대로 움직인다. 삶의 주도권을 사단에게 넘겨버린 상태이다. 이 이야기는 사단이 우리의 마음을 공격의 통로로 삼는다는 것(요13:2), 그리고 마음관리에 실패하여 사단이 악한 생각의 씨를 뿌리도록 마음의 틈을 준 것이 결국 삶의 주도권을 사단에게 넘겨준 원인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바울이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27)고 한 것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마음관리를 잘하라는 것이다.
23절,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라는 말씀도 같은 의미다. 이것이 소극적으로는 사단에게 마음의 틈을 주지 않는 것이고, 적극적으로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는 삶을 사는 방법이다. 그렇다. ‘심령이 새롭게 되어야’ 사단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차단하면서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한 삶을 살 수가 있다. 여기서 심령을 어떤 사람들은 마음과 영으로 구분하는데, 그냥 ‘마음’이다. 마음이 새롭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울은 비슷한 말씀을 로마서에서도 하였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여기서 ‘새롭게 되다.’는 ‘변화와 갱신’을 뜻한다(회개와 같은 의미). 앞에서 ‘벗어버리고’와 ‘입으라.’는 동사는 단순과거형이었는데, 이 동사는 현재형이다. 현재형은 계속적 반복적인 의미다. 존재와 신분의 변화(벗고-입음)는 단번에 이루어진 사건이지만 마음의 변화와 갱신(심령이 새롭게 됨)은 계속적이고 반복적인 사건이라는 뜻이다. 과거에 있었던 일회적 사건으로서 존재와 신분의 변화를 신학적으로 ‘중생’(거듭남)이라 하고, 현재 계속적 반복적으로 이루어 가야하는 마음의 변화와 갱신을 ‘성화’(결)라고 한다. 전자를 ‘과거적’ 구원, 후자를 ‘현재적’ 구원이라고 부른다. 이 현재적인 구원이 바로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는 삶이다. 그러므로 변화된 존재와 신분에 합당한 삶, 곧 성화(결)의 삶은 지속적인 마음의 변화와 갱신에 있다. 성탄설교에서 말씀 드렸듯이, 산처럼 언덕처럼 높은 마음은 낮추고, 여러 상처로 골짜기처럼 내려앉은 마음은 높이고, 굽고 비뚤어진 마음, 거칠고 험한 마음은 곧게 펴서 평탄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100배 60배 30배의 결실을 맺는 옥토가 되게 하는 것이다.
내 마음부터 변해야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마음이 상처를 받으면 나도 상처를 받고, 마음이 울면 나도 울고, 마음이 기쁘면 나도 기쁘고, 마음이 무너지면 나도 무너진다. 마음이 병들면 나도 병이 들고, 마음이 건강하면 어떤 병도 극복할 수 있다(잠17:22). 마음이 곧 내 자신이기 때문이다. 대학(大學)에, ‘사람이 마음에 없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고 했다. 마음이 있어야 보이고, 마음이 있어야 들리고, 마음이 있어야 맛을 느낄 수가 있다. 어디에, 무엇에 마음을 두고 있느냐에 따라 사람마다 다르게 보고, 다르게 듣고, 다르게 느낀다. 그래서 성경은 마음의 중요성을 이렇게 말씀한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살다보면 지켜야 할 것이 많다. 재산도 지켜야 되고, 목숨도 지켜야 되고, 가정도 지켜야 되고, 사업도 지켜야 되고, 명예도 지켜야 되고, 오만가지 지킬 것이 많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마음을 지키지 못하면 모든 것이 허사가 된다. 이 마음을 잘 지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마음이 새롭게 되어야 한다. 날마다 주님의 마음에 합하게 변화되고 갱신되어야 한다. 마음이 바뀌면 생각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인생이 바뀌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억해야 할 것은 이 모든 출발이 ‘나’로부터여야 한다는 것이다. 제구포신이 제대로 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음이 아닌 제도나 사람에 초점을 두고,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초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내 자신, 내 마음이 변화와 갱신의 출발점이다. 주변에서 불평이 많은 사람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자신은 가만히 있으면서 다른 사람이 움직여주기만 바란다. 내가 움직여야 다른 사람도 움직인다. 내가 변하면 다른 사람도 변하고, 주변도 변한다. 비록 그렇지 않더라도 내가 이미 변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다. 어느 나라의 왕이 사냥을 갔다. 그런데 울퉁불퉁한 자갈길에서 넘어져 발에 상처가 났다. 화가 난 임금은 발을 보호하기 위해 온 나라의 길이란 길에 모두 소가죽을 깔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때 지혜로운 신하 하나가 급히 달려와 말했다. ‘폐하, 발을 보호하시려면 작은 가죽 두 장이면 충분합니다. 가죽을 폐하의 발에 붙이면 온 나라가 다 가죽아래 있습니다.’ 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의 발에 가죽을 붙였다. 세상을 탓하지 말고, 환경 탓하지 말고, 다른 사람 탓하지 말고, 모든 길에 가죽으로 깔아야만 된다고 생각하지 말고, 내 발에 가죽을 붙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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