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의 전달자, ‘모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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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5,967회 작성일 13-10-27 13:19본문
율법의 전달자, ‘모세’
출24:12~18
2013. 10/27. 08:00, 11:00(종교개혁주일)
인생숫자 십계명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강림하셔서 모세에게 주셨던 십계명은 사도신경과 함께 우리 기독교 신앙의 두 기둥이다. 사도신경은 ‘무엇을 믿을 것인가?’(이렇게 믿어라!) 신앙의 내용을 요약해 놓은 것이고, 십계명은 ‘어떻게 살 것인가?’(이렇게 살아라!) 신자의 삶을 요약해 놓은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이와 같은 십계명을 패러디해서 삶의 규범을 만들어 놓은 것들이 많다. 그래서 주변에 별의별 십계명이 있다. 행복 십계명을 비롯해서 부부 십계명, 결혼, 남편(아내), 시간관리, 다이어트, 로또, 투자, 수능, 공부, 심지어 좀비 십계명이라는 것도 있다. 그 중에 ‘인생숫자 십계명’이라는 것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일. 일일이 따지지 말자.
이. 이것저것 다하려 하지 말자.
삼. 삼삼오오 모여서 즐겁게 살자.
사. 사생결단하지 말자.
오. 오기 부리지 말자.
육. 육체적으로 건강하자.
칠. 칠십 프로(70%) 성취에 만족하자.
팔. 팔팔하게 살자.
구. 구차하게 변명하지 말자.
십. 십 프로(10%)는 이웃에게 베풀며 살자.
마음에 새겨도 좋을 내용이라 생각한다. 아무튼 내용을 불문하고 십계명에 대한 이러한 패러디물이 쏟아지고 있는 것은 십계명이 신/불신 간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주고 있다는 증거라 생각하며 고무적인 일이다.
시내산 언약
출19:~24: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시내산에서 언약(‘시내산 언약’)을 맺은 내용이다. 여기가 출애굽기의 중심부분이고, 이 사건이 이집트 탈출 사건의 목적이다. 그 내용은 언약체결을 위한 준비(19:), 하나님께서 십계명의 친히 선포하심(20:1~17), 모세를 통하여 여러 가지 언약법전을 주심(20:18~23:), 언약식 거행(24:1~11), 그리고 본문에서 십계명을 친히 두 돌에 새겨서 모세에게 주신 것이다. 여기서 십계명이 얼마나 중요하고 특별한가를 알 수가 있다. 모세를 통하지 않고 ①하나님께서 친히 백성들에게 선포하셨고, ②하나님께서 친히 돌에 새겨주셨고, ③‘~하지 말라! 혹은 ~하라!’ 형식의 필연법이라는 점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나오게 하시고, 그들을 지름길을 두고 먼 광야로 인도하신 것은 시내산에서 이 언약을 맺기 위함이었다. 사실 시내산은 이집트를 나온 이스라엘의 실질적인 목적지였다. 이는 모세가 소명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3:12). 그리고 이곳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장엄한 언약이 체결되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집트에서 구출하신 것이 단순히 정치적/육체적 자유와 해방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서 성취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은 그들과의 언약에서 이점을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소속)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사명)가 되며, 거룩한 백성(신분)이 되리라.”(출19:5,6).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비로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태어나게 된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집트에서 구원하신 이유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름길을 두고 멀고 험한 광야길로 인도하신 것이다.
왜 시내산인가?
그렇다면 그렇게 중요한 하나님과의 언약이 왜 광야 한 복판에서 맺어졌을까? 중요한 것은 내용이니까 아무 곳에서라도 언약식을 가지면 그만인데 굳이 시내산을 택한 이유가 무엇일까? 여기엔 중요한 신앙적인 의미가 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로부터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의 주도로 이루어진 전적으로 하나님의 역사였다. 홍해를 건너고, 지난 3달 동안 광야를 거쳐서 시내산에 도착한 것도 마찬가지다.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19:4).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일을 가만히 서서 지켜보고만 있었다(14:13). 그들이 여기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 것도 이런 모습의 연장이다.
시내산은 사막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사막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는 곳이다.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공급해주셔야 살아갈 수 있는 곳이 사막이다. 그래서 인간은 사막에서 ‘극소’(極小)가 되고, 하나님은 ‘극대’(極大)가 되신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사막이라는 환경을 통해서 그들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된 것은 그들에게 그럴만한 업적이나 장점이나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그렇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된 것은 우리에게 그럴만한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다.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 동시에 자신을 극소로 비우면 하나님께서 극대로 그 자리를 대신해주신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이 신앙의 역설이고 신비이다. 하나님께서 때때로 우리에게 광야를 허락하신 이유, 열악한 환경에서 부르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다.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율법의 수여
이렇게 하나님의 주도적인 역사로 언약이 이뤄지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열방을 위한 제사장 나라가 되었다. 전에 그들이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할 때에는 이집트의 왕 바로에게 속하였고 그의 법을 따라 살았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소유,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새로운 존재로 그 신분과 소속이 바뀌었다. 그러니 이제는 새로운 신분에 맞는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살아야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서둘러 새로운 법을 선포하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십계명과 함께 여러 언약법전이다(20:~23:). 이것을 ‘율법’이라고 한다. 바로 이 율법의 수여가 이 시내산 언약의 핵심이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의 하나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일이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아무런 보장도 받지 못한 노예였던 그들이 거룩한 백성이 되어 신령한 법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법은 세상 어느 나라도 갖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이 율법은 구원의 조건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이 율법을 받기 전에 이미 구원을 받았고(13:), 하나님의 소유, 거룩한 백성이 되어 있었다(19:5,6). 그러므로 이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한 조건(구원조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라고 준 것이다. 십계명 서문에 이런 사상이 잘 나타나 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20:2). 이 법을 따라 살 때,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새로운 신분에 맞는 거룩한 생활이 가능해지고, 세상을 향해 거룩한 제사장 나라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된다.
언약의 중보자 모세
사람은 누구나 한번밖에 살지 못하는 짧은 인생을 후회없이 의미있고 가치있는 인생, 위대한 인생을 살고 싶어한다. 그래서 불철주야 분투하며 노력하고 배우고 자기관리에 힘쓰지만 결국은 회한으로 생을 마감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세는 우리에게 좋은 본이 된다. 모세는 의미있고 가치있는 참으로 위대한 인생, 빛나는 인생을 살았다. 모세는 구약에서 아브라함 다음 가는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고, 유대인에게 가장 존경받는 사람이다. 모세는 자기 백성을 이집트에서 인도한 이스라엘 건국의 아버지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하나님의 능력을 행한 영적 지도자이기도 하다. 2차 세계대전의 명장 몽고메리는 모세를 전무후무한 위대한 지도자라고 극찬했다. 성경도 그를 ‘하나님께서 친히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신34:10), 하나님의 온 집에 충성된 종(히3:5)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모세가 이런 영광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섬기는 사람이었기에 가능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섬기다보니 하나님과 친히 대면할 수 있었고, 마치 친구처럼 하나님과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었다(33:11). 이런 까닭으로 사람들이 가까이 할 수 없는 광채가 그의 얼굴에서 났다(34:30). 한 마디로 사람들이 두려워할 만큼 빛나는 인생을 산 것이다.
이와 같은 모세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 시내산 언약이다. 이 언약의 중심에 모세가 있었다. 그래서 이를 ‘모세의 언약’이라고도 부른다. 모세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서 언약의 중보자가 된 것이다. 모세는 이 언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시내산을 8번이나 오르내렸다. 그러면서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했고, 또한 백성의 반응을 하나님께 고했다. 때문에 모세를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의 전달자, 선포자, 그리고 율법을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말한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가 말한 대로 그는 정말 말씀에 충성스러운 종이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명하신대로 그는 백성에게 전달하고 선포하고 가르쳤다. 이 모세를 통하여 한 사람의 인생을 위대하고, 빛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다. 이것을 종교개혁자들의 삶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가 있다.
빛나는 인생을 위하여
오늘이 498년 전에 루터에 의해 일어난 종교개혁을 기념하는 ‘종교개혁주일’이다. 종교개혁은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전달하고 선포하며, 가르쳐야했던 당시 로마 카톨릭 교회가 그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 것에 대한 반발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권위위에 교회와 교황이 있었고, 라틴어 외에는 어떤 언어로도 성경번역을 못하게 하여 교회와 성직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독점하고 있으면서 백성들에게 가르치지 않았고, 말씀이 없는 의식만 있는 예배를 드렸다. 그것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진행이 되었다. 그래서 개혁자들이 개혁의 기치(旗幟)로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을 외쳤고,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전달하고, 선포하고, 가르치는 교회의 회복에 역점을 두었다. 성경을 모국어로 번역하고, 예배에서 말씀선포를 강조하고, 모국어로 예배를 드리게 했다. 그래서 백성들이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깨닫도록 했다. 이런 개혁자들을 하나님은 역사의 중심에 우뚝 세웠다. 빛나는 인생이 되도록 축복하셨다. 오늘의 교회와 신자가 이 시대의 모세이다. 하나님은 교회와 신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맡기셨다. 그것을 올바로 전달하고 선포하고 가르치도록 말이다. 교회의 권위, 신자의 권위는 이 사명을 잘 감당하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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