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어머니, ‘요게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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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7,659회 작성일 13-08-25 12:39본문
믿음의 어머니, ‘요게벳’
출2:1~10
2013. 8/25. 08:00, 11:00
어머니는 위대하다.
한 어머니가 유치원 모임에 참석했다. 선생님이 어머니에게 말했다. ‘아이가 너무 산만해서 단 3분도 제자리에 앉아있지를 못합니다.’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에게 말했다. ‘선생님이 너를 무척 칭찬하셨다. 의자에 1분도 앉아있지 못하던 네가 이제는 3분이나 앉아있다고 칭찬하시더라.’ 시간이 흘러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갔고, 어머니가 학부모 모임에 참석했을 때 선생님이 말했다. ‘아이의 학습능력이 안 좋습니다. 검사를 받아보세요!’ 그 말을 듣자 어머니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아이에게 말했다. ‘선생님이 너를 믿고 계시더라. 넌 결코 머리가 나쁜지 않다고. 조금만 노력하면 이번에 21등한 네 짝도 제칠 수 있을 거라고 하시더라.’ 아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였다. 선생님이 어머니에게 말했다. ‘아드님 성적으론 명문고 진학이 어렵겠습니다.’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와 아이에게 말했다. ‘선생님이 너를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하시고 조금만 더 노력하면 명문고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시더라.’
어머니는 항상 선생님들의 ‘부정’모드(negative-mode)를 ‘긍정’모드(positive-mode)로 바꿔서 아이를 격려했다. ‘나쁜’ 스트레스(distress)를 ‘좋은’ 스트레스(eustress)로 바꿔 아이를 격려했다. 어머니의 지혜가 빛나는 이야기다. 아이는 끝내 명문고에 들어갔고 뛰어난 성적으로 졸업했다. 그리고 명문대학에 합격했다. 아이는 합격통지서를 어머니의 손에 쥐어주고는 울며 말했다. ‘어머니! 제가 똑똑하지 못하다는 것 저도 잘 알아요. 어머니의 격려와 사랑이 오늘의 저를 만드셨어요. 감사합니다!’ 이런 지혜로운 어머니의 자식이 성공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여자는 자신을 돋보이려고 하지만 어머니는 자식을 돋보이려고 하고, 여자가 못하는 일을 어머니는 능히 해낸다고 한다. 그래서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본문에도 이런 어머니가 나온다. 이스라엘의 영웅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이다.
위대한 어머니 요게벳
요게벳은 레위 가문의 딸로 같은 가문의 청년 아므람과 결혼하여(1),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렸듯이 가장 험난한 시대에 자녀를 낳아 기른 어머니다. 특히 그의 세 번째 아이 모세가 탄생했을 때는 그 시련이 극에 달한 때였다. 이집트 왕 바로는 자신의 계획이 계속 실패하자 박해 수위를 더 높여 급기야는 아들일 경우 부모가 직접 나일강에 버리도록 하는 잔인한 명령을 내렸다. “그러므로 바로가 그의 모든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아들이 태어나거든 너희는 그를 나일강에 던지고 딸이거든 살려주라 하였더라.”(1:22). 우리가 이런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 이렇게 평화로운 시기에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요게벳은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자녀를 낳았는데, 그것도 아들이었다. 자녀를 위한 일이라면 대부분의 어머니가 그렇지만 요게벳이야말로 암울한 시대를 자녀를 위해 온 몸으로 맞선 참으로 위대한 어머니다. 본문은 자녀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희생과 헌신을 다하는 어머니 요게벳을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다.
희생을 감수하며 분투하는 어머니
요게벳은 아들을 낳았지만 왕의 명령대로 아이를 당장 강에 버리지 않고 ‘석 달’을 숨겨서 키웠다(2). 여기서 ‘석 달’이란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기간을 의미한다. 이는 그녀가 지엄한 왕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더 이상 아이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결국 아이를 강에 버리게 된다. 물론 이것은 어쩔 수 없어서 아이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다음 ‘하나님의 섭리에 맡겨드린 것’이다. 즉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겨드린 것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믿음이고, 그것을 알고 결단하는 것이 지혜이고, 또한 용기이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는 것이 용기처럼 보이지만 만용이다. 교만이고 불신앙이다. 반면에 하나님을 핑계로 자신이 해야 할 일도 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신앙이다. 요게벳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한 다음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겼다. 이것이 건강한 신앙의 모습이다. 우리 신자들이 가져야 할 중요한 태도다.
그녀가 아이를 그냥 버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에 맡겼다는 것이 그 다음에 이어지는 그녀의 행동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그녀는 아이를 그냥 강에 버리지 않고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역청으로 바른 갈대상자에 넣어 강가 갈대 사이에 두었다(3). 그리고 딸 미리암으로 지켜보도록 했다(4). 여기엔 뭔가 의도된 계획이 있다는 뜻이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이 이를 증명해 준다. 그 때 이집트의 공주가 시녀들과 함께 목욕하러 나와서 아이를 발견하게 된다(5). 그러니까 그녀가 아이를 둔 곳은 공주가 목욕하는 장소였고, 목욕하러 나오는 날짜와 시간에 맞춰서 아이를 두고 미리암으로 지켜보도록 한 것이다. 이는 공주의 목욕장소와 날짜와 시간을 미리 알고 준비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공주가 아이를 안고 있을 때 미리암이 다가가서 “내가 가서 당신을 위하여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이 아이에게 젖을 먹이게 하리이까.”(7)고 말했다. 이는 열 살도 못된 아이의 말이라고 할 수 없다. 이 또한 요게벳이 준비시켜 놓은 말이다. 아이를 위한 이 모든 행위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한 모습이다. 이것이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즉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를 기다리는 자세다. 무슨 일이든 이렇게 하는 믿음의 사람에게 하나님의 복이 따른다.
믿음은 장애물을 넘어서게 한다.
여기서 아이를 살리기 위한 요게벳의 희생과 헌신은 목숨을 거는 일이었다. 히브리 산파들처럼(1:17) ‘영적 용기’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즉 ①잔뜩 약이 올라 있는 왕의 명령을 어기고 아이를 석 달 동안이나 숨겨 키운 것을 비롯하여, ②공주가 목욕하는 출입이 제한된 장소에 노예가 들어가서 그곳에 아이를 둔 것, ③그곳에 숨어 미리암으로 지켜보게 한 것, 그리고 ④미리암이 당돌하게 공주 앞에 나서서 유모를 구해주겠다는 한 모든 것이 목숨을 거는 일이었다. 이 중에 어느 하나라도 잘못되면 자신은 물론 가족의 목숨까지 위태로운 일이었다. 그렇지만 요게벳은 망설이지 않고 시도했다. 이런 용기는 하나님의 섭리를 확신하는 믿음, 하나님만 두려워하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믿음만이 다른 모든 두려움을 이길 수가 있다. 하나님의 섭리를 확신하는 믿음만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이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와 같은 그녀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하였다.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11:23).
당시 이렇게 위기에 처한 사람이 요게벳 뿐이었겠는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수없이 많이 있었을 것이다. 요게벳이 그들과 달랐던 것은 그녀가 믿음의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히브리서 기자의 말처럼 진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섬기는 믿음의 사람. 고난 가운데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굳게 신뢰했던 믿음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하나님의 섭리에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의 생명까지 걸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믿은 대로 이 문제를 멋지게 극복하였다.
반드시 심는 대로 거둔다.
많은 사람들은 희생하면 손해 보는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당장에는 손해도 보고, 불이익도 당하고, 어려움도 당할 수 있다. 사람들이 희생과 헌신의 삶을 부담스러워하고 꺼린 이유가 이 때문이다. 하지만 믿음 안에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선한 일을 위한 희생과 헌신, 그것도 하나님의 섭리를 위한 희생과 헌신에는 반드시 주님의 복이 따른다. 하나님은 반드시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이시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6;7,8).
요게벳이 그 증인이다. 하나님은 요게벳의 헌신과 희생에 복을 주셨다. 하나님은 그녀가 의도한 대로 정한 장소 정한 날짜 정한 시간에 공주를 나오도록 했고, 아이를 보자 ‘불쌍히 여기는’(6) 마음(모성)을 갖게 하여 양아들을 삼게 하셨다. 부왕(父王)이 죽이라고 명령한 히브리 민족의 아이인줄 알면서 양아들을 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공주의 마음을 움직이신 것이다. 그래서 강물에서 아이의 생명을 구했고, 아이를 다시 품에 안고 젖을 먹일 수가 있게 되었다. 더욱 중요하고 놀라운 것은 이제는 아이를 드러내놓고 키울 수가 있게 되었고, 자신의 아이를 돌보면서 품삯까지 받게 되었다(9). 생명도 보장받고, 생활도 보장을 받게 된 것이다. ‘버려야 얻고 죽어야 사는’ 신앙의 원리가 여기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나아가서 이 요게벳을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자 모세가 탄생한 것이다. 우린 여기서 현재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민족을 위한 일이고, 나아가서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녀에게는 모세 외에 누나 미리암과 형 아론이 있었는데,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아론은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이 되고, 미리암은 이스라엘 최초 여자 선지자가 되었다. 참으로 견디기 힘든 상황이었지만 어머니의 희생과 헌신이 이런 명품 자녀들을 만든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자녀들에게 이런 복의 통로가 된 것이다.
자녀의 영혼에 무엇을 그릴까?
자녀의 운명은 상당한 부분이 부모의 손에 달렸다. 부모는 자녀의 이 세상뿐만 아니라 영원을 위한 운명을 꼴 짓는 작업을 하는 사람이다. 그것은 화폭에 그리고 대리석에 조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의 영혼에 그리고 새기는 것이다.
요게벳이 모세와 함께 한 시간은 길어야 5년이었을 것이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이 짧은 기간 동안 그녀는 모세의 영혼에 하나님(신앙)과 하나님의 선민 히브리인(정체성)이라는 사실을 새겨 넣었다. 이것이 훗날 모세로 하여금 이집트의 모든 영화를 버리고 자기 백성과 함께하는 길을 택한 원인이 되었다(히11:24,25). 어렸을 때 어머니가 그의 영혼에 새겨 놓은 것이 그의 일생을 좌우한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유대인들은 자녀교육을 투자 1순위로 삼고 있다. 그들은 자녀를 가정의 미래, 민족의 미래, 하나님 나라의 미래를 건설하는 주역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히브리어로 ‘어린이’라는 말은 ‘건설자’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유대인들의 자녀관을 잘 반영하고 있다. 우리 자녀는 우리 가정의 미래, 교회의 미래, 민족의 미래, 하나님 나라의 미래를 건설하는 주역이다. 지금 여러분은 이 소중한 자녀의 영혼에 무슨 그림을 새겨 넣고 있는가? 여러분은 자녀에게 주님의 복이 흐르는 통로가 되고 있는가? 무슨 복을 흘러 보내고 있는가? 모쪼록 여러분 모두가 모세와 아론, 미리암과 같은 명품 자녀들을 길러낸 요게벳처럼 우리의 자녀를 명품 자녀로 길러내는 위대한 어머니, 위대한 부모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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