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나게 하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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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256회 작성일 25-08-24 12:35본문
자라나게 하는 말씀
약1:19~27
2025. 8/24 11:00(성령강림 열두 번째 주일)
살아있는 것은 자란다.
현대인이 즐겨 사용하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성장’이다. 경제 성장, 기업 성장, 학업 성장, 육체 성장, 인격 성장 등등. 우리 성도도 신앙 성장, 영적 성장, 교회 성장 등을 자주 말한다. 아무튼 어디에다 붙여도 자연스럽고 좋은 말이 성장이란 단어다. 그만큼 이 말이 사람에게 필요하고, 또한 좋아한다는 뜻이다. 성장의 반대말은 쇠퇴다. 반면 쇠퇴는 모두가 좋아하지 않는다. 성장은 자라 가는 것을 뜻한다.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자라고, 또한 자라나야 한다. 성장은 겉으로는 양적으로 커지는 것을 말하고(양적 성장), 속으로는 질적으로 무르익는 것을 말한다(질적 성장).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도 성장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4:13). 살아있는 것은 자란다. 자라지 않는 생명은 병이 들었거나 죽은 것이다. 신앙은 영원한 생명에 대한 것이다. 때문에 신앙은 성장해야 한다. 하나님을 처음으로 만난 그 순간부터 우리 신앙의 모습 또한 쉼 없이 성장해야 한다. 성장하지 않는 신앙, 그것은 병이 들었거나 죽은 신앙이요, 죽을 수밖에 없는 신앙이다. 신앙의 목표는 변화와 성장이다. 한 사람이 성장하면서 그의 인격과 삶에 변화가 일어난 것처럼 성도 역시 믿음이 성장하면서 인격과 삶에 변화가 일어난다. 아무튼 신앙은 계속해서 성장해야 한다. 그래야 1)유혹을 물리칠 수가 있고, 2)기쁨이 충만한 행복한 생활을 하고, 3)헌신과 섬김의 삶을 살게 되고, 4)영적 위기를 만났을 때 극복할 힘이 있다.
말씀이 영의 양식이다.
그렇다면 신앙은 무엇으로 성장하는가? 그것은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이다. 말씀은 영적 양식이기 때문이다. 말씀이 성도에게 영적인 생명과 성장, 신앙의 기초가 되는 필수적 요소라는뜻이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에서 말씀을 삶의 중심에 두고, 그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 영적 성장의 핵심이다. 음식이 육의 양식인 것처럼 말씀은 영의 양식이다. 아무튼 음식을 먹어야 육적 생명이 살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처럼 말씀이 영혼에 들어올 때 영적으로 살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밥을 먹지 않고는 제대로 활동할 수 없는 것처럼, 말씀을 통하지 않고는 영적인 활동도 이뤄질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영혼에 영양을 공급해 주는 귀한 양식이다. 영의 양식이 공급되지 않으면 육적인 생각과 삶에 지배받게 된다. 그러므로 영적 성장과 함께 영적으로 풍성한 삶을 살려면 끊임없이 기회있는 대로 말씀을 가까이해야 한다. 성도는 말씀으로 태어나고(거듭남), 말씀으로 자라나고(성화), 말씀으로 완성되어(영화) 말씀으로 결산하고 평가받는다. 그러므로 성도는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것처럼 말씀에 항상 깨어있어 말씀을 가까이하는 삶, 말씀에 단단히 묶인 삶을 살아야 한다. 말씀이 우리로 영생하게 하는 양식이기 때문이다.
말씀을 대하는 태도
이 시간은 신앙 성장의 필수적 요소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태도에 대해 말씀을 드리려고 한다. 본문은 말씀을 ‘듣고 행하는’ 참된 신앙에 대한 말씀으로(야고보서의 핵심 주제), 그 참된 신앙을 지키는 비결이 말씀에 있음을, 특히 말씀에 대한 태도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삶에 있어서 태도가 중요한 것처럼,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태도가 중요하다. 무엇보다 말씀을 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본문에서 야보고 사도는 말씀을 대하는 태도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속도가 말하는 속도보다 빨라야한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19). 이 말씀은 우리가 속히 해야 할 것과 더디 해야 할 것을 구분하고 있다. 속히 해야 할 것은 ‘듣기’다. 더디 해야 할 것은 ‘말하기’와 ‘성내기’다. 경험으로, 신앙이 자라지 않는 성도의 특징 중의 하나가 말이 빠르고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다. 자기감정을 말로 푸는 사람이다. 한마디로 ‘말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버린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말로 인한 허물과 실수가 많을 수밖에 없다. 이런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이 ‘듣기’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이 듣는 일을 잘 못한다. 솔직히 즐겨하지 않다. 듣는 것이 잘 안된 사람에게서 신앙의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훈련이 안 되면 신앙이 자라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은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스라엘아, 들으라!’라고 거듭 말씀하셨다. 기독교는 들음의 종교다. 많은 하나님의 종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말씀하소서. 종이 듣겠습니다.’라고 했다. 예수님도 ‘들을 귀가 있는 자들은 들으라!’라고 하셨다. 바울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그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다. 말씀을 얼마나 잘 듣느냐, 자주 듣고, 많이 듣느냐가 신앙의 성장과 질을 결정짓는다. 구약에서 지혜를 ‘듣는 마음’(לב שמע)이라고 했다. 잘 들음에서 지혜가 생긴다는 의미다. ‘잘’ 듣고, ‘많이’ 듣고, ‘자주’ 듣고, ‘제대로’ 듣는 사람이 건강하게 성장한 성숙한 성도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심어야한다.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21). 말씀을 자꾸 들으면 그 말씀이 내 마음에 심어진다. 흔히 암송과 묵상을 말씀을 마음에 심는 일이라고 한다. 말씀이 마음에 심어진다는 것은 말씀이 자라기 위해 자리를 잡는다는 뜻이다. 마음에 자리를 잡고 자란 말씀은 열매를 맺는다. 존 로크는 사람은 태어날 때 백지상태(tabula rasa)라고 했다. 즉, 빈 칠판, 빈 방과 같다는 것이다. 여기에 보고 듣고 느끼는 경험을 통해 지식을 채워가면서 한 사람의 인격자로 성장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채워가고, 채워진 그것이 그 사람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로크가 강조한 것은 백지상태와 같은 마음에 좋은 것으로 가득 채워주는 교육이다. 성경의 사상과 일치하지는 않지만 사람은 마음에 무엇인가를 심는 존재이고, 심어진 그것이 그 사람을 결정한다는 것은 중요하다. 반면에 본문은 우리 마음이 백지상태가 아니라 이미 다른 것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씀한다.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이 그것이다. 사탄이 우리 마음에 심어놓은 씨앗이다. 이 때문에라도 말씀을 마음에 심는 것이 중요하다. 사단이 뿌려놓은 더럽고 악한 것을 제거하는 방법은 말씀밖에 없고, 우리 마음을 말씀으로 가득 채워야 사단이 우리 마음에 더럽고 악한 씨앗을 뿌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셋째,하나님의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아야한다.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21b). 말씀을 듣는 사람에게 요구되는 중요한 자세는 ‘온유함’이다.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는다는 것은 말하기를 더디 하는 자세 즉, 열린 마음으로 경청하는 자세를 뜻한다. 또한 비판에 귀를 기울이며 겸손하게 자신을 돌아보는 자세, 판단은 뒤로 하고 전폭적으로 수용하는 자세를 뜻한다. 이와 같은 온유함은 말씀을 듣는 태도를 넘어 성공의 비결이기도 하다. 카네기 공대에서 1만 명을 대상으로 조사하여 성공의 비결을 발표했다. 그 발표 내용에 따르면, 지식이나 기술은 성공에 15%, 나머지 85%는 인간성이라고 했다. 인간성은 곧 온유한 성품을 뜻한다. 해고당한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지식이나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관계의 결핍이라고 한다. 이 관계성의 핵심이 온유다. 문제는 이 온유함이 저절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훈련을 통해 가능하다. 그래서 온유라는 말 자체가 잘 훈련된 상태를 뜻한다. 헬라어로 온유를 ‘프라우테스’(πραΰτης)라고 하는데, 이 단어의 본래적 의미는 ‘길이 잘 들여진 상태’를 뜻한다. 그래서 ‘힘을 통제하는 절제된 부드러움’이 온유다. 그러므로 온유한 사람이란 하나님께 ‘길이 잘 들여진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자기의 뜻이나 생각, 경험, 선입견 등을 다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겸손히 인정하고 순종하는 태도를 가지게 된다. 말씀을 들을 때도 건성으로 듣지 않고 마음에 꼭꼭 새기며 듣고, 자기중심적으로 자기에게 유리한 것만 선택적으로 듣지 않고 전폭적인 수용적 자세로 듣게 된다.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게 된다. 이런 자세가 온유함으로 말씀을 받는 것이다.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말씀을 받는(듣는) 태도와 신앙 성장은 관련이 깊다. 주님께서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해 이를 잘 말씀해 주고 계신다. 이 비유에 네 종류의 밭(길가 밭, 돌밭, 가시덤불 밭, 좋은 밭)이 소개되고 있는데, 결국은 두 종류다. 열매를 맺는 밭과 열매를 맺지 못한 밭이다. 이것을 결정짓는 것이 말씀을 받는 태도다. 그리고 엄밀히 따지면 열매를 맺은 좋은 밭도 세 종류다. 100배, 60배, 30배의 결심을 맺는 밭으로 나눌 수가 있다. 이 역시 말씀을 듣는 태도에 따라 결정이 된 것이다. 나는 주님의 이 말씀과 본문 잘 연결이 된다고 생각한다. 길가 밭은 말씀을 잘 듣지 않는 것이고, 돌 밭은 말씀을 마음에 심지 않는 것, 그리고 가시밭은 온유함으로 받지 않는 것이다. 반면에 잘 듣고, 그것을 마음에 심고, 그러기 위해 온유함으로 받아야 열매를 맺는 좋은 밭이다. 그래서 주님은 이 비유를 마치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마13:9). 귀가 없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주님께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잘 듣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신 것이다. 잘 듣고 많이 듣고 자주 들어야 한다. 그러나 듣는 것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마음에 심어야 하고, 마음에 심으려면 온유함으로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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