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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하게 서가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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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4,379회 작성일 24-01-07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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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하게 서가는 교회

9:31

2024. 1/7(신년주일, 개당기념주일) 11:00

교회의 모범, 초대교회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초대교회는 역사상 모든 교회의 모범이다. 영어로 종교개혁을 리포메이션’(Reformation)이라고 한다. 이는 교회의 원래모습(formation)으로 다시 돌아가자(Re)는 운동이다.어떤 새로운 교회를 만들자는 것이 아니고 교회 회복운동이 종교개혁이다. 그리고 그 모범은 사도행전에 나온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초대교회다. 우리교회가 속한 개신교회를 개혁된 교회’(Reformed Church)라고 한다. 하지만 교회는 개혁된’(Reformed) 상태로 머물지 않고 동시에 항상 개혁하는 교회’(always reforming church)이다. 그리고 그 모델은 사도행전에 나온 초대교회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아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에 이르기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는데(1:8),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여 그곳에 모인 사람마다 권능을 받아 교회가 탄생을 했고, 하루에 3, 5천 명씩 회개하여 교회가 크게 성장을 하였다. 그러면 당연히 눈을 밖으로 돌려 다른 지역으로 복음의 영역을 넓혀야 하는데, 초대교회가 이에 민감하지를 못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핍박이라는 비상한 방법을 사용하여 강제적으로 성도를 각 지역으로 흩어지도록 만드셨다. 그 결정적인 사건이 행7장에서의 스데반 순교사건이고, 이 사건이후 교회핍박의 선봉으로 나선 사람이 유대교와 율법에 열심이었던 사울이라는 사람이다. 이 일로 교회는 각 지역으로 흩어지게 되었고, 핍박의 선봉이었던 사울이 주님을 만나는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다. 본문은 이와 같은 일련의 사건이후 초대교회의 모습을 요약하여 보여주고 있는 말씀이다.

 

핍박 속에서도 부흥하는 초대교회

성장기 아이들을 보면, 한 번 아프고 나면 몸도 마음도 훌쩍 자란 것처럼 교회도 마찬가지다. 사실 모든 생물이 그렇다. 그래서 이런 아픔을 성장통이라고 부른다. 이 핍박사건으로 초대교회는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로지경이 확장되었고, 성도의 수가 더 많아져 크게 성장하는 기회가 되었다. 핍박사건이 성장통이 된 것이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그리고 이후에는 유대의 국경을 넘어 이방지역으로까지 확장이 되었다. 여기에 보면, 핍박 속에서도 교회가 크게 부흥하게 된 요소 네 가지가 나온다. 첫째는 평안하여, 둘째는 든든히, 셋째는 주를 경외함, 마지막으로 넷째는 성령의 위로이다. 초대교회가 핍박으로 각 지역으로 흩어지는 과정에서도 이 네 가지 요소가 어우러져 크게 부흥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금년 우리교회 표어를 함께, 더욱 알차게’ 로 정했다. 알차다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속이 꽉 차 있거나 내용이 아주 실속이 있다는 뜻이다. 물론 성숙에 더 가까운 말이지만 성장과 성숙을 다 포함하고 있다. 이를 표어로 정한 것은, 내외적으로 성장하고 성숙하여 부흥을 이루는 한 해로 만들자는 의미. 교회도 세상도 모두가 힘들고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핍박 속에서도 부흥한 초대교회처럼 이런 상황에서도 교회는 물론, 성도 여러분 개인도, 가정도, 하는 일도, 성장하고 성숙한 부흥을 이루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초대교회 부흥의 요소 이 네 가지를 하나씩 상고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모든 일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무엇보다 마음이 중요하다. 그래서 성경도 마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17:22).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고 했다. 마음의 평안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강조하는 말씀이다미국의 리 버크와 스탠리 탠 교수는 성인 60명을 대상으로 1시간 동안 코미디 프로를 보여주는 실험을 했다(1996). 그리고 그들의 혈액을 채취해 비교했더니 면역을 활성화시키는 감마 인터페론(Γ-interferon)이 무려 2백배나 증가하는 것을 발견했다. 이런 실험을 여러 나라에서 실시했는데 감기도 알레르기도 암도 줄어드는 것을 보았다. 엘머 게이츠(Elmer Gaits)는 화()에 대한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호흡을 할 때 나오는 액체를 냉각시켜 색깔을 보았더니 화를 많이 낼 때는 밤색, 슬플 때는 회색, 기쁠 때는 청색으로 나타냈다. 그리고 계속 화를 내고 있으면 몸에 많은 독소가 발생하여 온 몸으로 퍼졌다. 그 독소는 80명 정도의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맹독(猛毒)이었다. 이와 같은 독이 몸 안에 있으면 어찌 건강할 수 있겠는가? 위 두 실험을 통해 마음의 즐거움이 양약’(good medicine)이라는 말씀이 의학적으로 입증된 것이다. 건강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성공과 실패도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마음을 잘 다스리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마음에 담대함과 평안함이 있으면 웬만한 일도 두렵지 않고 이겨내게 된다.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한다.는 말씀이 그 뜻이다. 여기서 는 사람의 존재 자체를 의미한다. 마음이 어렵고 혼란스러우면 작은 일조차도 버겁게 느껴진다. 존재 자체가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하는 일이 잘 될 수가 없는 것이다. 아무튼 마음이 중요하고 마음의 평안이 더욱 중요하다. 마음이 기쁘고 즐거우면 어떤 역경도 이겨내고, 앞에서 말한 대로 육체의 병도 이겨낼 힘이 생기게 된다. 그러나 마음이 상하고 마음이 병든 사람은 백약이 무효하다. 그러므로 성도는 무엇보다 마음을 잘 지키고, 마음 관리를 잘 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마음의 평안을 유지해야 한다. 영적 전쟁의 최전방이 바로 마음이기 때문이다. 마음에서 이기면 모든 것을 다 이기게 되고, 마음에서 지면 이미 그 전쟁은 진 전쟁이 된다. 초대교회가 핍박 속에서도 부흥할 수 있었던 첫 번째 비결이 바로 이 평안함이었다.

 

평안하게 서가는 교회

엄마와 함께 꽃밭에 놀러갔던 어린이가 꽃을 보자 엄마의 손을 뿌리치고는 꽃밭에 들어가서는 이 꽃 저 꽃을 꺾으면서 기뻐했다. 한참 후에 주변을 보니 엄마가 안보였다. 아이는 울면서 손에 가지고 있던 꽃을 다 던져 버리고 엄마를 찾았다. 세속적인 평안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다. 세상이 말하는 평안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상태를 뜻한다. 이런 평안은 상황이 변하면 금방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평안은 문제가 없는 상태를 말하지 않고, 문제 속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누리는 평안이다. 이런 평안이 개인도 가정도 교회도 부흥으로 이끈다.

 

초대교회가 이를 잘 보여준다. 초대교회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그저 고요한 호수와 같은 교회가 아니었다. 사도들이 잡혀가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태형을 당하기도 하고, 복음전파 금지명령을 당하기도 하고, 심지어 스데반이 순교를 당하는 외적인 박해를 심하게 당했다. 내적으로도 심각한 문제에 자주 직면했다. 5장을 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베드로의 책망으로 같은 날 죽은 사건이 발생했다. 얼마든지 목사가 성도를 저주해서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흉흉한 소문이 날 수도 있었고, 이 일로 교회가 어려움에 처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성경은 이 일의 결과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5:11). 그리고 이어서 이런 말씀이 나온다. ‘믿고 주께로 나아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5:14). 사도를 통해 하나님의 하신 일에 온 교회와 듣는 사람들이 두려워했고, 교회가 크게 부흥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뜻이다. 이런 엄청난 사건이 있어도 교회와 성도가 평안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경이 말씀한 참 평안은 환경이나 상황에 휘둘리지 않는다. 그러니 평안이 부흥의 중요한 조건인 것이다.

 

알찬부흥의 비결로서 평안

그러므로 관건은 어떤 환경이나 상황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평안을 갖는 것이다. 어떻게 초대교회처럼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평안을 가질 수 있을까? 그래서 알찬 인생, 알찬 가정, 알찬 일터, 알찬 부흥을 이룬 교회를 만들 수 있을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서는 세상 그 무엇도 평안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참된 평안은 하나님의 얼굴에 있고(6:26), 주님의 선물이다(14:27).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26:3,4). 그 비결이 신뢰. 우리가 삶에서 통제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통제 밖에 있다. 그리고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해 걱정으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불안해하는 대신 기도로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며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사람이 참 평안을 얻을 수 있다. 신뢰하며 구하는 사람에게 선물로 참 평안을 주신다.

 

외줄타기 인간문화재인 분의 말이다. 줄을 탈 때 원칙이 있는데, 그것은 위를 바라보는 것이다. 아래()를 보면 떨어진다고 했다. 성도 역시 그 시선을 어디에 두느냐가 중요하다. 세상이 요동칠지라도 시선을 주님께 두어야 한다. 베드로가 주님을 바라볼 때는 주님처럼 물 위를 걸을 수 있었으나 바람을 보는 순간 물에 빠지고 말았다(14:30). 헬라어로 인간을 안드로포스’(άνθρωπος)라고 한다. ‘위를 바라보는 존재, 위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뜻이다. 위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볼 때 평안이 있고, 지혜가 있고, 형통이 있다. 그래서 알찬 성장, 알찬 부흥을 경험할 수 있다. 금년에도 많은 풍랑이, 높은 산들이 우리의 앞길을 막아설 것이다. 풍랑을 보지 말고, 산을 보지 말고 주님만 바라보기 바란다. 그러면 풍랑 속에서도, 깊고 험한 산속에서도 평안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이 평안이 우리와 우리 교회를 알찬성장()으로, ‘알찬부흥으로 인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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