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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방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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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5,343회 작성일 23-10-29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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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방화자

12:49~53

2023. 10/22. 11:00(성령강림 후 스물두 번째 주일

almost & altogether

불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소중한 도구다. 불의 발견과 사용은 인류문명사를 혁명적으로 바꿔놓았다. 그런데 이 불은 타고 있을 때 가치가 있다. 타고 있을 때 빛을 비추고, 열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다. , 거리도 집도 밝히고, 밥도 짓고, 고기도 굽고, 방도 따뜻하게 만든다. 사람의 열정은 불과 같다. 열정이 불탈 때 그 사람의 가치와 영향력이 드러나게 된다. 성도도 뜨거운 열정으로 하나님을 섬길 때 그의 가치가 드러나고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불 꺼진 숯덩이보다 빨갛게 타는 장작이 아름다운 것처럼 열정 가득한 성도의 모습은 더없이 아름답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마음이 뜨겁게 불타고 있는지 물어야 할 때다.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는 불타는 가슴을 지니라고 역설했다.

 

성도 가운데 설익은 사람이 있다. 성도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성도가 아닌 사람이 있다. 불이 타다가 꺼져서 그렇다. 소위 불 꺼진 성도라 그렇다. 또한 예수님을 믿는 것을 인격수양이나 자기개발 정도, 심한 경우는 취미생활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신앙을 생명이 아니라 장식으로 생각한 것이다. 성경은 이런 사람을 가리켜 뒤집지 않은전병, 곧 잘 구워지지 않은떡과 같다(7:8)고 말씀한다. 존 웨슬리는 형식적 크리스천이란 설교에서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딤후3:5) 성도가 있음을 지적하며, 그들을 거의 비슷한’(almost) 크리스천이라고 했다. 우리는 비슷한 무늬만 갖춘 성도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전적으로, 완전한’(altogether) 성도가 되어야 한다. 성령으로 충만하여 성령의 불꽃이 튀기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불을 던지러 오신 주님

본문에서 예수님은 이 세상에 불을 던지러 오셨다고 하셨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영적 방화자라는 뜻이다. 주님께서 가지고 오신 불은 세상의 문명을 발전시킨 불이 아니고, 성령의 불이고 진리의 불이고 복음의 불이다. 그런데 이 불의 특징은 태우는 불이다. 심지어 분쟁의 불이다(50). 모든 죄악을 태우는 소멸의 불, 또 악한 모든 것을 태우는 심판의 불이다. 불이 나면 집도 타고, 가재도구 타고, 사람까지도 죽게 된다. 뿐만 아니라 불빛이 비춰지면 모든 실체가 드러나게 된다. 특히 어둠속에서 활동한 모든 것의 실체가 낱낱이 드러나게 된다. 그런데 주님께서 세상에 이런 불을 지르기 위해 오셨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예수님을 한 번 잘 믿어봐야겠다고 결심하면, 복음으로 살려고 하면, 특히 성령을 충만히 받으면 반드시 우리 속에서 심각한 싸움이 일어난다. 당연한 일이다. 살아온 삶의 방향이 다르고, 추구한 가치가 다르고, 섬기는 주인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갈등과 불화는 당연하다. 오히려 평안한 것이 이상하고 문제다. 그리고 이 싸움을 먼저 거는 쪽은 언제나 복음이다. 사실 사단은 불화보다 유혹을 택하고, 타협을 택한다. 눈웃음치면서 유혹하지 싸움을 걸지 않는다. 아무렇지 않은 듯, 좋은 것이 좋은 것 아니냐며 슬금슬금 다가오는 것이 사단이다. 그리고는 우리 안에 온갖 죄의 씨앗을 뿌리게 된다. 그러나 복음은 싸움꾼이다. 죄를 보기만 하면 논쟁을 일으킨다. 싸움을 건다. 악한 모든 것을 정죄하고 심판한다. 그래서 복음으로 사는 사람은 생존의 전쟁 외에 또 다른 영적 전쟁을 치루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대한 선포가 본문에 나온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51).

 


마음에 성령의 불, 복음의 불이 붙은 사람은 반드시 영적 싸움이 있다. 이 싸움이 있는 사람은 살아있는, 역동적인 신앙인이란 뜻이다. 성령이 함께 하는 복음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믿는데 갈등이 없고 평안하다,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은 둘 중에 하나다. 신앙이 매우 성숙하거나 아직 불이 붙지 않았거나! 여러분은 어느 쪽인가? 반면 지금도 마음에서 지독한 영적 전쟁을 치르고 있는 분은 기뻐하며 감사하기 바란다. 영적으로 살아있다는 증거이고, 성령의 불 복음의 불이 붙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 불이 붙기를 원하셨고, 이 불을 던지러 오셨다(49). 그러면 어떤 사람에게 주님께서 던지러 오신 이 불이 붙게 될까?


1. 말씀에 사로잡힌 사람이다.

주님께서 이 땅에 불을 던지러 오셨다고 했다. 이는 우리 마음에서 악이 왕 노릇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아무렇지도 않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을 막기 위해 오셨다는 뜻이다. 불을 던져 우리 속에서 싸움이 일어나게 하시려고 오신 것이다. 싸울 수 있는 저항을 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의사의 말을 빌리면 사람이 하루에 수많은 병균을 먹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수자원 공사는 물 1ml에 세균 100마리 이하를 먹는 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가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세균을 먹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가 병으로 무너지지 않고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기적이다. 그 이유가 백혈구때문이다. 백혈구가 세균을 전부 잡아먹기 때문에 건강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에도 항상 이런저런 사단의 유혹이 있고, 사단이 퍼뜨린 악한 영적 세균이 있다. 이를 잘 아시는 주님께서 영적 백혈구를 통하여 사단이 퍼뜨린 세균을 이기게 하신 것이다. 바로 이 영적 백혈구가 성령이고, 복음이다. 이 영적 백혈구 성령과 복음의 숙주가 바로 말씀이다. 성령은 말씀과 함께 역사하시고, 말씀을 통해 역사하신다.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10:44). 가이사랴에 있는 고넬료의 집에서 일어난 성령강림 사건에 대한 말씀이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을 곧 불이라고도 한다. ‘내 말이 불같지 아니하냐. 반석을 쳐서 부서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 하냐.’(23:29). 그러므로 말씀을 가까이 하고, 말씀에 항상 사로잡혀 사는 사람에게 성령의 불 복음의 불이 붙게 된다. 그래서 우리 안에 더럽고 악한 모든 것을 제거해 주신다. 뿐만 아니라 성령의 사람 복음의 사람으로 살게 해준다.


2. 기도하며 전도에 집중한 사람이다.

기도는 성령의 불을 붙게 하는 중요한 비결이다.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 그 증거다. 주님의 승천을 목격한 사람들 중에 120명의 성도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열흘 간 열심히 간절히 뜨겁게 기도했더니 그들 모두에게 불과 같은 성령이 임하셨다(2:). 그 후 성령의 불은 기도하는 곳이나 사람에 임하셨다.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4:31). 기도 자체도 중요하지만 기도의 내용이 더 중요하다. 특히 사람을 살리는 일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전도를 위해 기도할 때 성령의 불 복음의 불이 뜨겁게 역사한다. 사도행전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0. 흔히 사도행전을 성령행전이라고 하는데, 사도행전은 교회의 탄생과 함께 교회가 확장되어 가는 모습을 기록한 책이다. 그런데 교회의 탄생과 확장에 핵심 역할을 한 분이 성령님이다. 그러니 교회의 확장을 위해서 전도하며 기도할 때 성령이 충만히 임하는 것은 당연하다. 전도는 복음의 확장이자 교회의 확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 표어처럼, ‘모여들어 기도하고. 흩어져서 전도하는생활을 일상화해야 한다.

 


어떤 분(스콧 힝클 Scott Hinkle)이 교회와 성도에게서 성령의 불이 꺼져가는 이유, 그 힘을 잃어가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교회 안에 고상한 척하고 점잖은 척하면서 정작 전도를 하지 않는 사람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전도를 하지 않기에 성령의 불이 꺼져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외양과는 달리 영적인 힘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영혼을 사랑하는 뜨거움, 영혼을 구원해야 한다는 간절함, 영혼을 방치하면 그 화가 내게 미치리라는 위기감이 없이 어떻게 진지하고 절실한 기도가 나오겠는가? 기도하지 않는데 어떻게 성령의 불이 타오르겠는가? 그래서 겉으로는 고상한 척 점잖은 척하지만 성령의 불 복음의 불은 가물가물 꺼져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성도, 이런 교회가 무슨 영향력을 발휘할 수가 있겠는가? 교회 안에 ‘altogether christian’대신 ‘almost christian’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신앙을 하나의 장식품처럼 여기는 성도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전도는 남을 살리는 일이기 전에 자신을 살리는 일이다.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니라.’(5:20). 전도할 때마다 전도를 받은 사람은 물론 전도한 우리의 죄가 하나님 앞에서 덮어진다는 것이다. 전도 자체가 죄 사함의 능력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전도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실제로 다른 사람의 영혼을 마음을 품고 기도하는 사람은 자기 영혼 관리도 잘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3. 사랑으로 섬기는 사람이다.

복음서가 보여주는 주님의 삶을 한 단어로 요약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섬김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주님이 직접 하신 말씀이기도 하고(20:28), 마지막 순간까지 본을 보이시며(13:1~) 강조하신 말씀이다(13:14). 주님은 마땅히 섬김을 받으셔야 할 분이심에도 항상 섬기는 자로 계셨다(22:27). 더 나아가 섬김이 곧 주님의 제자됨의 표징이라 하셨고, 섬기는 그곳에 함께 하신다고 하셨다. 그러니 섬기는 일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일인지를 알 수가 있다. 이것이 주님과 항상 함께 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자기 힘으로 능으로 되겠는가? 성령의 역사하심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사랑의 수고와 섬김이 있다는 것은 성령의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는 증거다. 복음의 불이 이글거리고 있다는 표징이다. 주님의 심장으로 산다는 증거이고, 살아있는 믿음 역동적인 믿음의 사람이란 증거다. 병원을 가보면 알 수 있다. 섬김만 받는 사람은 산소 호흡기를 코에 꼽고 겨우 연명만 하며 침상에 누워있는 환자다. 건강한 간호사, 간병인, 의사, 가족이 곁에서 섬기고 있다. 영적으로도 같은 이치다. 섬김이 없다는 것은 영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성령의 불이 꺼져가는 상태, 그래서 힘들게 영적 호흡을 이어가는 식물신앙이라는 것이다. 섬김이 있는 곳에 주님이 계신다. 섬기는 사람과 주님이 함께 하신다. 주님은 섬기는 사람에게 불을 붙여주신다. 

 

주님의 소원

여러분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일까? 본문의 표현대로면 주님의 소원을 이뤄드리는 교회다. 좋은 성도도 마찬가지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간절한 소원은 우리 교회와 우리 심령에 성령의 불 복음의 불이 타오르는 것이다. 우리의 심령이 영적 화로가 되고, 가정이 영적 풀무가 되고, 교회가 영적 용광로가 되기를 원하신다. 성령의 불 복음의 불이 활활 타오를 때 개인도 교회도 영적으로 활성화가 되고 영향력을 크게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식이 건강하고 영향력 있는 삶을 사는 것이 모든 부모의 소원이다. 주님 또한 우리와 우리 교회가 이런 존재가 되기를 원하신다. 더 나아가 주님께서 세상에 불을 던지러 오신 것처럼 우리 또한 주변에 불을 던지는 사람, 영적 방화자가 되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온 세상이 성령의 불 복음의 불로 활활 타오르기를 원하신다. 이와 같은 주님의 소원을 이뤄드리는 성도가 되고, 이런 교회를 세워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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