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면춘풍(滿面春風), 거울은 먼저 웃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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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6,088회 작성일 23-12-17 12:24본문
만면춘풍(滿面春風), 거울은 먼저 웃지 않는다!
눅4:16~21
2023. 12/17. 11:00(대강절 셋째 주일)
환영받는 사람이 되려면
어느 교회에서 담임목사를 청빙하게 되었다. 지원한 목사 중에 머리가 훌러덩 벗겨진 사람이 있었다. 그가 설교를 하려고 강단에 서자 그의 외모에 실망한 사람이 많았다. 이를 눈치 챘는지 그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여러분, 제 머리가 너무 벗겨졌지요? 이것 때문에 저도 속이 많이 상했답니다. 그러나 주님 때문인데 어쩌겠습니까? 수고한다고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주님께서 제 머리를 늘 쓰다듬어 주셔서 이렇게 벗겨졌습니다.’ 그러자 모두가 박장대소했다. 그리고 그를 담임목사로 청빙하기로 결정했다. 자신의 약점이 될 수도 있는 것을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마음이 건강하고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어디를 가든지 기쁨을 주고, 웃음을 주는 사람이 있다. 이러한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환영을 받고, 존중을 받는다. 상대방을 무장해제시키는 것이 웃음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웃음과 기쁨을 주는 넉넉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곧 예수님의 삶이셨다. 주님은 모든 사람에게 소망을 주시고, 평안을 주시는 분이시다. 또한 주님은 기쁨을 주시는 분이시다. 이것이 대강절 세 번째 주일의 의미다.
기쁨을 잃어버린 사람들
어떤 분의 글에서 가져온 것이다. ‘내 남편은 웃지 않는다. 화도 내지 않는다. 감정도 없다. 돌부처와 같다. 그렇게 변해버린 지 4년이 넘었다. 그래도 우리는 늘 팔짱을 끼고 함께 다닌다. 이런 우리를 보고 잉꼬부부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구태여 변명하고 싶지 않지만 거기에는 더 잔인한 현실이 있다. 걸음걸이가 불편하여 혹시나 넘어질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남편은 78세의 파킨슨병 환자다. 파킨슨병은 운동신경이나 근육을 주관하는 도파민이라는 뇌(腦)물질이 더 이상 생성되지 않아 일으키는 몸의 퇴화작용이다. 치매가 기억을 잃게 한다면 파킨슨은 몸 근육의 움직임 작용을 잃게 하는 병이다.....’ 글을 쓴 이의 남편은 웃을 수 없는 슬픈 병에 걸린 것이다. 그런데 주변을 보면 병에 걸리지 않았는데도 웃음을 잃어버린 사람이 많다. 기쁨이 없으니 근심과 걱정의 포로가 되는 것이다. SK브랜드 관리실에서 20~50세의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웃음에 관한 라이프 스타일’에 관련한 설문조사를 했다. 사람의 수명을 80세로 가정하고 환산한 것이다.
▸하루 평균 일하는 시간: 약 8시간(26.6년)
▸하루 평균 먹고 마시는 시간: 약 2.6시간(9년)
▸하루 평균 자는 시간: 약 6.7시간(22년)
▸하루 평균 걱정 근심하는 시간: 약 3시간(10년)
▸하루 평균 웃는 시간: 단 86초(30일)
잠자는 시간(22년)을 빼면 인생의 1/6을 근심과 걱정으로 보낸 셈이다. 특히 웃는 시간보다 걱정하는 시간이 120배나 많다. 성인이 하루에 평균 10번을 웃는다고 한다. 한 번 웃을 때 걸린 시간이 8.6초다. 문제는 하루에 한 번도 웃지 않는 사람이 1.8%로 나타났다(500명 중 9명). 걱정하는데, 남자는 2시간 30분, 여자는 3시간 30분이었다. 여자가 남자보다 1시간을 더 걱정한 것이다. 남편과 자녀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연령별로는 20대가 3시간 15분, 30대 3시간 7분, 40대 2시간 50분으로 나왔다. 이 통계를 보고 놀란 것은 40대가 제일 많을 줄 알았는데, 20대가 제일 많다는 것이다. 세상이 젊은이에게 희망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직장도 결혼도 살아갈 미래도 모두가 이들에게 걱정거리로 작용한 것 같다. 이런 의미에서 젊은이들에게 응원을 아끼지 말아야겠다.
기쁨을 주려고 오신 예수님
성경에는 주님께서 ‘우셨다’는 기록은 있어도 ‘웃으셨다’는 기록은 없다. 이는 주님께서 평생 웃지 않고 사셨다는 뜻은 아니고, 오히려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만큼 힘들고 어렵다는 것, 그래서 웃을 일보다는 울일 더 많은 것이 우리 인생이라는 것을 반영한 것이 아니가 생각한다. 그렇지만 주님께서는 따르는 사람들에게 큰 기쁨과 즐거움을 주셨던 분인 것을 성경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가 있다. 지난 11월 마지막 주일에 말씀드린 18년 동안 꼽추로 살아온 여인을 비롯하여 그날 회당에 있던 사람들에게 큰 기쁨을 주셨던 사건을 비롯하여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져 큰 곤경에 처했을 때 주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연회장은 물론 신랑과 모든 하객에게 큰 기쁨을 주셨고, 가족과 지역 사회로부터 버림을 받고 한적한 곳에서 생활하던 10명의 한센병 환자를 주님께서 치료해 주심으로 그들에게, 나아가 그들의 가족과 지역 사회에 큰 기쁨을 주셨다. 성공은 했지만 사회적 외톨이가 된 삭개오에게 기쁨을 주시고, 소경거지로 길바닥 인생을 살고 있던 바디메오에게 기쁨을 주신 분도 주님이시다. 어린 딸의 죽음에 낙심한 회당장 야이로와 그 가족에게, 유일한 소망이던 아들의 장례행렬을 따르는 나인성 과부에게, 가정의 기둥과 같은 오빠 나사로의 죽음으로 슬퍼하는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에게 눈물과 탄식과 절망을 기쁨으로 바꿔주신 분이 주님이시다. 이와 같이 삶을 지치게 만든 불치병이나 난치병, 죽음과 같은 절망적인 사건이나 사고, 여러 심리적인 요인으로 기쁨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셨다.
이렇게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 주님의 중요한 사역 중에 하나였다. 일찍이 선지자 이사야는 메시야의 사역을 이렇게 예언하였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사61:1~3). 메시야의 사역 중에 하나가 슬퍼하고 근심하는 자에게 기쁨과 찬송을 주는 것이다(밑줄 친 부분 참조). 본문은 이와 같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 일부를 소개하고 있는데, 흔히 주님께서 공생애 시작을 알리는 일종의 취임사와 같은 말씀이다. 여기서 주님은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이 곧 주님 자신에 대한 말씀이라고 하셨다(21). 그러니까 주님께서 오신 중요한 이유가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시고, 근심하는 자들에게 찬송의 옷을 입혀주시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여기에 초점을 두고 사역을 하시겠다는 뜻이다. 우리가 주님을 ‘복음’(福音)이라,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고 부른 이유다.
그런데 요한복음은 주님이 단순히 기쁨을 주시는 것을 넘어 기쁨을 ‘충만하게’ 하신 분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요15:11). 더 나아가 요한은 이러한 충만한 기쁨을 ‘누리는’ 비결도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16:24). 언제 이런 충만한 기쁨을 누리게 되느냐? 기도할 때, 기도해서 응답을 경험할 때 충만한 기쁨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앞에서 소개할 내용 중에 요청하지 않아도 주님께서 일방적으로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여 기쁨을 주시기도 했지만 간절히 부르짖을 때 관심을 가지시고 문제를 해결하여 기쁨을 주셨다. 그래서 우리 찬송가(364장)에 이런 내용이 있다. ‘내 기도하는 그 시간 그 때가 가장 즐겁다....’
기쁨 제조업자가 되자!
「적극적 사고방식」이란 책으로 널리 알려진 노만 빈센트 필 목사가 기차여행을 할 때였다. 식사시간이 되어 열차식당에 들어갔더니 자리가 부족해서 어떤 부부와 동석하여 식사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동석한 부부의 아내가 계속 불평을 하였다. 야채가 신선하지 않다고 불평하더니 그 다음에는 고기가 오래되었다고, 조금 있다가는 날씨가 왜 이렇게 변덕스럽게 좋지 않으냐고 하면서 괜히 여행을 가자고 했다며 남편을 향해 원망하였다. 그녀의 남편이 옆에 앉은 필 목사에게 말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제 아내의 직업 때문입니다. 용서하십시오!’ 그러자 필 목사가 부인의 직업이 궁금하여 물었다. ‘부인의 직업이 무엇입니까?’ ‘예, 제조업입니다.’고 남편이 대답했다. 무엇을 만드냐고 물었더니, 그 남편이 멋쩍은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예, 제 아내는 불평제조공장 사장입니다.’ 한 마디로 불평꾼이라는 것이다. 주변에 꼭 이런 사람이 있다. 빛을 뿌려 주변을 환하고 따뜻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얼음을 뿌려 주변을 차갑게 꽁꽁 얼어붙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내가 웃으면 거울이 웃는다.’는 말이 있다. 이는 거울은 먼저 웃지 않는다는 뜻이다. 내가 웃어야 상대방이 웃는다. 누군가 해맑게 웃는 모습을 보면 절로 기분이 좋아져 웃음이 나온다. 남의 웃음을 기다리기보다 언제 어디서나 먼저 웃음을 보이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일본의 어떤 회사에는 ‘웃음거울’(smile mirror)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각자가 자신의 이름을 붙인 거울을 전화기 옆에 놓고 통화할 때 거울을 보고 미소를 짓도록 했다. 이 웃음거울 덕분에 그 회사의 사원은 물론 회사까지 외부인에게 매우 좋은 인상을 준다고 한다. 웃음거울. 참 좋은 아이디어다. 기쁨은 자신을 변화시키고 다른 사람에게도 그대로 전염되는 행복 바이러스다. 기쁨의 분량이, 곧 행복의 분량이다. 햇빛은 누구에게나 친근감을 준 것처럼 기뻐하면서 웃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친근감을 주고 사랑을 받는다. 기쁨을 나눠주면서 더욱 기뻐지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한 사람이라도 기쁘게 해 주어야지 하는 생각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기 바란다! 그래서 어느 곳에서든지 누구에게든지 기쁨을 전염시키는 기쁨 바이러스, 기쁨을 주변으로 퍼뜨리는 기쁨 유통업자가 되자! 성도는 ‘기쁨’ 유통업자이고, 교회는 ‘기쁨’ 제조공장이다.
관련링크
- https://youtu.be/hTnt1I-2jTs 1495회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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