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을 때 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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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6,148회 작성일 23-11-05 16:14본문
있을 때 잘 해!
눅12:54~59
2023. 11/5. 11:00(성령강림 후 스물셋 번째 주일)
하인리히의 법칙(Heinrich's law)
하인리히의 법칙 또는 1:29:300의 법칙이란 것이 있다. 이는 어떤 대형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같은 원인으로 수십 차례의 가벼운 사고와 수백 번의 징후가 반드시 나타난다는 것을 밝힌 통계적 법칙이다. 1931년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H. W. Heinrich)가 펴낸 「산업재해 예방: 과학적 접근」이라는 책에 소개되고 있다. 업무 상 많은 사고통계를 접했던 그는 산업재해 사례분석을 통해 하나의 통계적 법칙을 발견했다. 산업재해가 발생하여 사망자가 1명 나오면 그 전에 같은 원인으로 발생한 경상자가 29명, 같은 원인으로 부상을 당할 뻔한 잠재적 부상자가 300명 있었다는 것이다. 즉, 큰 재해와 작은 재해, 그리고 사소한 사고의 발생비율이 1:29:300이라는 것이다. 무슨 일이든 우연히 또는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 전에 반드시 여러 번의 경고성 징후나 전조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인리히의 법칙은 모든 일에는 반드시 전조현상이 있는데, 이를 무시하고 방치하면 돌이킬 수 없는 큰 사고로 번지고, 이를 알아차리고 잘 준비하면 충분히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하인리히 법칙은 사고예방 법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방면에 가장 최적화된 것이 날씨와 관련된 기상학이다.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날씨가 인간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의식주와 건강과 같은 개인의 일상적인 삶은 물론 적벽대전, 워털루 전투, 노르망디 상륙작전 등 많은 전투의 승패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이 바로 날씨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날씨에 관심이 많았고, 지금도 나라마다 정확한 날씨예보를 위해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더욱이 농경사회에서의 날씨는 생존의 문제였다. 그래서 옛날부터 인간은 날씨를 예측하여 준비하는데 지혜를 모았다. 이런 지혜가 쌓이고 발전하여 예측 노하우를 가지게 된 것이다. 이런 한 단면을 본문이 보여준다. 예수님 당시에도 날씨에 대한 예측을 위하여 상당한 기술적 노하우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당시 사람들은 구름이 서쪽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면 소나기가 오리라고 예측했는데, 그대로 되었다. 이스라엘 서쪽은 지중해다. 그쪽에서 발생한 구름은 지중해의 높은 습도를 머금은 비구름이다. 그래서 그쪽에서 구름이 일어나면 곧 큰 비가 내렸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서풍은 소나기를 몰고 오는 바람이라고 여겼다. 반면에 남풍이 불면 곧 날씨가 덥겠다고 예측했다. 이스라엘 남쪽은 사막이다. 네게브 사막뿐만 아니라 거대한 아라비아 사막이 자리하고 있다. 그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건조하고 뜨거운 바람이다. 그래서 그들은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무척 더울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천지의 기상은 이처럼 잘도 분간할 줄 알면서도 시대는 분간하지 못한다는 것이 주님의 지적이셨다.
어찌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
이렇게 날씨는 예민하게 분간하면서 영적인 일에는 민감하지 못한 것이 문제다. 본문에서 주님은 이 점을 지적하신 것이다.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어찌하여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56). 주님이 말씀하신 ‘이 시대’는 물리적인 시간, 곧 자연적인 시간을 뜻하는 크로노스(Κρόνος)가 아니고, 카이로스(καιρός)다. 카이로스는 특정한 시간 또는 정한 시간을 뜻한다. 비록 흘러가는 것이지만 시간에 특별한 의미가 있을 때 이 의미있는 시간을 ‘카이로스’라 부른다. 그러므로 여기서 ‘이 시대’는 주님이 등장하신 때를 의미한다. 당시 유대인에겐 성경(구약성경)이 있었다. 성경은 메시아 시대에 대해 수백 번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그 메시아 시대가 오셨다는 것을 메시야이신 주님께서 직접 말씀하셨는데도 그들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본문에서 주님은 이런 답답함을 말씀하신 것이다. 메시아가 온 시대임을 보여주는 징조가 분명히 있는데도, 또한 주님께서 메시야이신 증거가 차고 넘친데도, 이를 분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지 않았다. 그저 욕심대로 살기 위해 고의적으로 진리를 거스르고 메시아를 대적했다.
오늘날 우리는 날씨뿐만 아니라 건강에 대해서도 예민하게 분간하며 살아간다. 잇몸이 시리고 아프면 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치과에 가서 검사를 받고 치료를 받는다. 또한 유행이나 외모, 분위기, 자기감정, 자기과시, 자기유익 등에도 무척 민감하게 반응한다. 혹시라도 이와 같은 흐름에 뒤쳐질까 두려워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런 현상을 심리학에서 ‘포모 증후군’(FOMO Syndrome)이라고 한다. 포모(FOMO)는 ‘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뜻하는 영문 ‘Fear Of Missing Out’의 머리글자다. 이렇게 세상적인 것, 육신적인 것에는 뒤쳐질까 걱정하면서 신령한 것, 영적인 것에는 무디고 무관심한 것, 곧 민감하지 못한 것이 오늘날 사람들의 특징이다. 특히 주님의 재림에 대해 더욱 그렇다. 성도 역시 여기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주님께서 탄식하신 것은 당연하다. 동물이나 식물, 곤충 가운데 빛을 좋아하는 주행성과 어두움을 좋아하는 야행성이 있다. 빛을 좋아하는 주행성의 존재는 빛이 비취면 빛을 향하여 밖으로 나오고 가지와 줄기를 뻗는다. 하지만 어둠을 좋아하는 야행성의 존재는 빛이 있으면 어둠 속으로 숨었다가 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찾아오면 비로소 활동을 한다. 사람도 그렇다. 빛의 일을 좋아하는 사람과 어둠의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성경은 빛 속에서 행하는 사람을 빛의 자녀라 하고, 어둠 속에서 행하는 사람을 어둠의 자식이라고 한다. 그런데 본문에서 주님은 빛의 자녀까지 어둠을 좋아하여 야행성이 되어 가는 것을 탄식하신 것이다.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
그러면서 주님은 빛에 대해서, 영적이고 신령한 것에 대해서, 특히 주님의 재림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해야 할 이유를 강조하기 위해 비유의 말씀을 하셨다. ‘네가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 때에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 그가 너를 재판장에게 끌어가고 재판장이 너를 옥졸에게 넘겨주어 옥졸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네게 이르노니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갚지 아니하고서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하시니라.’(58,59). 고대 세계에서는 채무자는 빚을 모두 갚을 때까지 옥에 갇히게 되었고, 많은 채권자는 이렇게 해결 짓는 것으로 만족했다고 한다. 때문에 법정에 오기 전에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법정에 가면 이미 늦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 비유의 핵심은 만일 시비가 있어 법정에 갈 때 법정 밖에서 화해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기회를 놓치면 더는 화해의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옥졸에게 넘겨주고 옥졸이 옥에 가두면 감옥에서 빚을 갚기는 더 어렵다. 그러니 채무자에게 유일한 탈출구는 법정에 들어서기 전에 급히 화해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결코 감옥에서 나올 길이 없다. 원문에는 이 문장이 이중부정으로 되어 있어서 얼마나 화해가 긴박하고 중요한가를 나타내고 있다.
주님은 일상적인 송사사건을 비유로 심판의 때가 이르기 전 철저한 회개를 통해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라는 의미로 말씀하신 것이다. 여기서 ‘길에서’는 지금 송사하러가는 급한 상황으로 기회가 주어졌을 때, 곧 살아 있는 동안, 또는 심판의 때가 이르기 전을 의미한다. ‘화해하기를 힘쓰라.’는 것은 회개하라는 의미다. 그러니까 기회가 있을 때, 곧 심판의 때가 이르기 전에 회개하라는 것이다. 주님께서 심판의 주로 재림하실 때 결격사유가 되지 않도록 회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다. 기회가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다. 아직 기회가 있을 때 주어진 이 시간을 잘 선용해야 한다. 주님이 오시고 나면 늦다. 그때는 회개의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회개뿐만이 아니다. 모든 것이 그렇다. 기회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한번 놓치면 붙잡을 수 없는 것이 기회다. 그래서 기회는 왔을 때 붙잡아야 한다. 그러려면 시대에 깨어있어야 하고, 민감해야 한다.
있을 때 잘 해!
어느 가정에 무뚝뚝하고, 고집이 센 남편과 예쁘고, 착하고, 애교가 많은 아내가 있었다. 이런 아내 때문에 남편의 고집불통과 무뚝뚝함이 가려지곤 했다. 어느 날, 아내가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퇴근길에 두부 좀 사다달라고 부탁했다. 아내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남자가 그런 봉지를 어떻게 들고 다니냐?’고 벌컥 화를 내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런데 바로 그 날 저녁 아내가 가게에 가서 두부를 사가지고 오다 음주운전 차량에 치어 목숨을 잃었다. 아내의 교통사고 소식을 듣고 남편이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아내는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었다. 남편은 아내의 유품을 바라보다 검은 봉지에 담겨진 으깨진 두부를 발견하고, 아내의 죽음이 자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너무 미안한 마음에 가슴이 미어질 듯 슬픔과 후회가 밀물처럼 몰려왔다. 슬픔이 조금 가라앉자 남편은 난생 처음으로 아내의 차디 찬 손을 붙잡고 생전에 한 번도 해주지 않았던 말을 했다. ‘여보! 정말 미안해. 나 때문에 당신을 먼저 가게 해서 정말 미안해. 우리 다시 만나면 당신이 무뚝뚝한 아내가 되고, 내가 상냥한 남편이 되어 그 때는 내가 당신을 왕비처럼 잘 모실께....’ 그 날 이후, 남편은 두부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다. 사람이 살면서 후회 없이 살 수는 없겠지만 되도록 덜 후회하며 사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있을 때 잘해!’ 라는 말을 실천하는 것이다.
무엇이든 있을 때 잘해야 한다. 이 말은 모든 것에는 때와 기한이 있다는 말로, 현재에 최선을 다하라는 것이다. 보고 싶은 사람보다 지금 보고 있는 사람을 잘 챙기고 사랑하고 섬기고 존중해야 한다. 하고 싶은 일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열중하고, 미래의 시간보다는 지금의 시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없는 것을 아쉬워하지 말고 지금 있는 것으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 본문이 말씀하고 있는 화해뿐만 아니라 지난 주일에 드린 말씀드린 말씀에 집중하는 것도, 기도도, 전도도, 사랑으로 섬기는 것도 건강이 있고 힘이 있고 기회가 있을 때 최선을 다해 실천해야 한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때가 반드시 온다. 그러면 깊은 탄식과 회한만 남게 된다. ‘있을 때 잘해라!’ ‘길에서 화해를 힘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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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youtu.be/kuSSg9OnHG8 2943회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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