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모델링,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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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29,037회 작성일 22-06-12 17:15본문
리모델링, ‘만남’
눅10:30~37
2022. 6/12. 11:00
단순 노출효과(Mere Exposure Effect)
대만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서로 사랑하는 처녀와 총각이 있었다. 이 둘은 서로 많이 사랑했다. 하지만 직장관계로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만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총각은 처녀에게 사랑의 편지를 보냈는데, 얼마나 많이 보낸 줄 아는가? 2년 동안 자그마치 약 5백여 통의 편지를 보냈다. 거의 사흘에 두 번씩 편지를 보낸 것이다. 참으로 대단한 사랑꾼이다. 드디어 2년 후에 이 처녀가 결혼을 결심했다. 누구와 결혼을 하기로 했을까? 당연히 5백통의 편지를 보낸 그 총각이라고 생각하겠지만 틀렸다. 그러면 누구하고 결혼을 하게 되었을까? ‘우편배달부’다. 5백번이나 편지를 배달한 우편배달부와 거의 사흘에 두 번씩 만나다보니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생겨 결혼까지 하게 된 것이다. 5백통의 편지를 보낸 총각에게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절절한 내용을 담은 사랑의 편지보다 만남의 힘이 더 강하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다. 사람은 인격적인 존재이기에 편지도 중요하지만 직접 만난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이런 것을 심리학에서는 ‘단순 노출효과’(Mere exposure Effect)라고 한다. 사회심리학자 로버트 자이욘스(Robert Zajonc)가 연구한 ‘호감이론’이라는 것인데, 사람은 자주 만나면 자연스럽게 호감이 상승한다는 그런 이론이다. 다시 말해서 ‘자주 보고, 자주 만나면 어느새 정이 든다.’는 말이다. 기업이 막대한 돈을 들여 유명연예인을 모델로 세워 TV와 같은 매체에 광고를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자주 노출할수록 제품에 대한 호감도나 기업의 이미지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곧 기업의 이윤과 연결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한 번도 만나지 않고 편지만 5백통 보낸 총각보다 한 번도 편지를 안 썼지만 5백번 만난 우편배달부가 호감이 간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 만남 자체가 관계의 질을 결정짓는 힘이다. 곧 사랑하는 길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만남’이다.
만남의 종류
그런데 만남에는 좋은 만남이 있고, 좋지 않는 만남이 있다. 이것을 결정짓는 것이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만나느냐에 달렸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생선을 묶은 줄에서는 생선 비린내가 나고, 향을 싼 종이에서는 향내가 난다고 했다. 만나는 것, 만나는 사람에 의해 나의 가치나 의미,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만남이다. 독일작가 한스 카롯사는 ‘인생은 너와 나의 만남이라.’고 했다. 인간은 만남의 존재란 뜻이다. 산다는 것은 만난다는 것이다. 부모와의 만남, 스승과의 만남, 친구와의 만남, 신과의 만남, 책과의 만남, 자연과의 만남, 역사와의 만남 등.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만남을 통해서 결정된다. 여자는 좋은 남편을 만나야 행복하고, 남자는 좋은 아내를 만나야 행복하다. 학생은 훌륭한 스승을 만나야 실력이 생기고, 스승은 뛰어난 제자를 만나야 보람을 누리게 된다. 성도는 목회자를 잘 만나야 행복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고, 목회자 또한 성도를 잘 만나야 행복한 목회를 보장받을 수가 있다. 그러므로 만남이 중요하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본문이다. 그래서 본문을 통해 지금까지 우리의 만남을 진단해 보고, 특히 좋은 영적 만남을 위한 ‘만남’에 대한 리모델링을 시도하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
본문은 유명한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인데, 예수님의 이 비유에는 세 종류의 만남이 소개되고 있다. 첫째는 ‘강도들과의 만남’이다. 한 유대인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가진 것을 다 빼앗긴 것은 물론이고 목숨까지 위태롭게 되었다. 이런 만남은 좋지 않는 만남, 나쁜 만남이다. 정채봉 작가의 글에 보면 다섯 종류의 만남이 소개되고 있는데, 생선과 같은만남이 바로 여기에 속한다. 만날수록 비린내가 묻어나고 나중에는 썩은 냄새를 풍기기 때문이다. 이런 만남은 인생을 망치고, 비참하게 만드는 만남이다. 그런데 주변에 이런 만남이 많다. 그래서 강도 같은 남편 때문에, 혹은 강도 같은 아내 때문에 인생이 파탄이 나고, 강도 같은 사건 때문에, 강도 같은 질병 때문에 인생이 무너진 사람이 많다.
둘째는 ‘제사장과 레위인과의 만남’이다. 강도를 만나 거반 죽어가던 이 사람은 구사일상으로 지나가는 제사장과 레위인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지옥 같은 그곳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생각하고, 온 힘을 다해 그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들은 그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도망치듯 지나갔다. 어려움에 처한 이웃에게 솔선수범해야 할 종교 지도자들인데 말이다. 이런 만남을 가리켜 만나나마나한 만남이라고 한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 만남, 헛된 기대만 품게 만드는 이 또한 나쁜 만남이다. 정채봉 작가에 따르면 꽃이 피어 있을 때는 환호하다가 지면 버리는 꽃과 같은만남, 힘이 있을 때는 간수하다가 힘이 다 닳아지면 내다버리는 건전지와 같은만남, 만남이 순식간에 지워져버리는 지우개와 같은만남이 여기에 속한다. 살면서 만나는 우리 만남의 대부분이 여기에 속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만나기는 하지만 별 의미가 없는 만나나마나한 그런 만남이다.
셋째는 ‘선한 사마리아인과의 만남’이다. 의식은 사라지고 숨만 겨우 붙어있는 상황에 그곳을 지나가던 사마리아인이 그를 발견하고는 그에게 다가와 그의 상처에 포도주를 붓고, 타고 왔던 나귀에 그를 실었다. 그리고 여리고에 도착하여 한 여관에 장소를 잡고 그를 밤새 보살펴주었다. 다음 날 두 데나리온을 여관주인에게 주며 그를 잘 돌봐달라고 부탁을 하고 비용이 더 들면 돌아오는 길에 갚겠다고 까지 했다. 이는 좋은 만남이다. 아울러 좋은 만남의 특징이기도 한다. 좋은 만남은 도움을 주고, 회복을 주고, 살아나게 만든다. 복의 통로가 되는 것이 좋은 만남이다. 정채봉 작가가 말한 힘들고 어려울 때 땀을 닦아주고 아프고 슬플 때 눈물을 닦아주는 손수건과 같은만남이 여기에 속한다.
좋은 만남을 위하여
이미 언급했지만 주님의 이 비유를 통해서 다시 한 번 만남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가 있다.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만나느냐가 삶의 질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생명에까지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다. 강도를 만나 거반 죽은 목숨이 선한 사마리아인을 만나 구사일생으로 회복이 되었다. 신앙의 질과 영적 생명의 풍성함 또한 만남과 깊은 관련이 있다. 주님을 만남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고, 만남이 깊어질수록 생명의 풍성함을 누리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여러 만남에 대한 리모델링도 필요하지만 신앙생활에 있어서 만남에 대한 리모델링이 더욱 절실하고 시급하다. 그렇다면 건강하고 영성 깊은 신앙생활을 위해 영적 만남을 어떻게 리모델링해야할까?
우선, 만남의 횟수를 늘리는 것이다. 어느 대만 총각의 이야기에서 보았듯이 만남에서 중요한 것은 ‘자주’만나고, ‘많이’만나고, ‘계속’만나는 것이다. 만남의 횟수가 만남의 질을 결정짓는다. 신앙생활은 더욱 그렇다. 주님과의 만남보다 더 좋은 만남은 없으니까 중요한 것은 이 만남을 아름답게 가꿔가는 것인데, 비결이 자주 많이 만나는 것, 계속 만나는 것이다. 그러면 주님과의 만남에 있어서 횟수를 늘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흔히 예배를 비롯하여 기도, 말씀묵상, 찬송, 전도, 나눔의 실천 등을 경건생활의 중요한 방편이라고 말한다. 결국 이와 같은 경건생활의 방편을 활성화하는 것이 신앙의 질과 건강을 결정한다. 그러니까 경건생활 방편의 횟수를 늘리는 것이다. 즉, 예배의 횟수, 기도의 시간과 횟수, 말씀묵상의 양과 횟수, 찬송의 횟수 등... 다시 말해 예배생활을 두고 이야기하면, 주일예배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기, 주일예배만 참석한 사람은 수요예배에 참석하기, 주일과 수요예배를 참석한 사람은 새벽예배에 도전하기, 그리고 가정에서 가정예배 드리기. 기도도 마찬가지다. 매일 식사기도만 드렸다면 특별한 시간을 내서 기도하기, 하루 한 번 정도 특별한 시간을 내서 기도했다면 하루 두 번 이상 기도하기, 기도시간이 10분 정도였다면 15분 정도 늘리는 것이다. 이것이 곧 주님과 만남의 횟수를 늘리는 것이고, 만남을 리모델링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작은 시도와 변화가 우리의 영적 생활에 큰 변화와 더불어 복된 삶으로 인도한다는 사실이다.
다음은, 주님께 복을 받은 사람과 만나는 것이다. 사람은 가까이 하는 사람에게 물이 들기 마련이다. 감사하는 사람, 긍정적인 사람, 헌신적인 사람, 순종하는 사람과 함께 하면 나도 그와 같이 된다. 기도하는 사람과 함께 하면 나도 기도하게 되고, 찬양하는 사람과 함께하면 찬양하게 된다. 예배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과 함께 하면 나도 예배를 소중히 여기게 된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다. ‘내일을 이야기하는 사람과 만나라.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자라는 식물과 대화하는 사람을 만나라.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될 것이다.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과 만나라. 풍요롭게 살아갈 것이다. 선행을 베푸는 사람과 만나라. 많은 사람을 얻게 될 것이다. 아무리 작은 일도 소중히 여기는 사람과 만나라. 가슴 따뜻한 이들이 몰려들 것이다. 언제나 밝게 웃는 사람과 만나라. 멀리 있는 복이 찾아오게 될 것이다. 기도하는 사람과 만나라.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법을 알게 될 것이다. 말씀을 즐거워하는 사람과 만나라. 믿음의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함께 하는 사람, 내가 만나는 사람이 주님 앞에 복 받은 사람인가를 보기 바란다. 주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 주님께 은총을 입은 사람인가를 보기 바란다. 그가 주님께 복 받은 사람이라면 그와 함께 하는 나도 복을 받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가 주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이라면 그와 함께 하는 나도 주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가 주님께 은총을 입은 사람이라면 그와 함께 하는 나도 주님의 은총을 입은 사람이 될 것이다. 이것이 영적 만남의 리모델링을 위한 또 하나의 방법이다.
물가에 서 있던 전갈이 개구리에게 자신을 업고 강 건너편으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개구리가 물었다. ‘네가 나를 독침으로 찌르지 않는다는 걸 어떻게 믿지?’ 전갈이 말했다. ‘너를 찌르면 나도 익사할 텐데 내가 왜 그렇게 하겠어?’ 전갈이 말이 옳다고 판단한 개구리는 전갈을 등에 업고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하지만 강 중간쯤에서 전갈이 개구리의 등에 독침을 박았다. 둘 다 물속으로 가라앉는 와중에 개구리가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왜 나를 찔렀지? 너도 죽을 텐데.’ 전갈도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그것이 내 본능이니까!’ 프랑스의 시인이며 우화작가 장 드 라퐁텐이 쓴 「전갈과 개구리」의 내용이다. 이것이 믿는 성도인 우리가 아무나 함부로 만나서 안 된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우화다. 유한한 우리다. 시간이나 열정이나 마음을 의미있고 가치있는 만남에 쏟아 부어도 모자란다. 함부로 만나서는 안 되는 사람이나 일을 가려서 만나는 것도 영적 만남의 리모델링에서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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