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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델링, ‘간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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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26,094회 작성일 22-07-10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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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델링, ‘간절함

19:1~10

2022. 7/10. 11:00

간절함이 답이다!

한 마리 여우가 토끼를 쫓고 있었다. 하지만 그 여우는 토끼를 잡을 수 없었다, 여우가 토끼보다 몸집도 크고 더 빠른데 토끼를 놓치고 말았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는 간절함이라고 한다. 여우는 한 끼의 식사를 위해 뛰었지만 토끼는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뛰었기 때문이다. 간절함은 성공의 씨앗이다. 간절함이 주는 힘은 실로 대단하다. 간절함은 몸과 마음이 하나 되는 몰입의 상태를 말한다. 중풍환자를 수용한 어느 중환자실에서 있었던 일이다. 간호사가 뱀이야!’고 외쳤다. 그러자 거동을 못한 중풍환자 한 사람이 벌떡 일어났다. 자신이 중풍에 걸렸다는 사실을 잊고 링거를 들고 일어나 뛰었다. 살아야겠다는 간절함이 중풍에 걸렸다는 사실을 잊고 뛰게 만든 것이다. 간절함이 기적을 만든 것이다.

 

기적이 하나님의 영역이라면 그곳에 다다를 수 있는 방법은 간절함이다.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은 불후의 명곡 중에 하나다. 이 곡은 베토벤이 청력을 완전히 잃은 시기에 작곡되었다. 좌절감 가득한 나날 속에서 창작에 대한 그의 간절함은 극에 달했고, 죽음보다 더 깊었던 간절함은 장애조차 초월하여 마침내 위대한 명곡을 만들어냈다. 간절하면 방법이 나오고, 간절하면 이루어진다. 예수님 시대에 나병환자를 비롯하여 귀머거리, 소경, 벙어리, 중병병자, 귀신들린 사람 등 수많은 병자가 있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런 문제를 가진 모든 사람이 그 문제를 해결 받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런 은혜를 누린 사람은 극히 일부였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이런 은혜를 누리게 되었을까? 그 비결은 간절함을 가진 사람이다. 물론 주님이 직접 찾아가셔서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절실함을 가지고 찾아온 사람, 간절히 부르짖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성경은 성도의 태도로서 간절함을 강조하고 있다. 간절한 소망, 간절한 기대, 간절한 묵상, 간절한 섬김, 간절한 기도 등... 그러므로 일상생활이나 신앙생활에서 간절함이 참으로 중요하다. 본문의 사건도 그 중에 하나다.

 

두 부자(富者) 이야기

본서의 저자는 전장과 본장에서 두 부자를 소개하고 있다. 전장에 나온 부자 관원과 본문에 나온 세리장 삭개오가 그들이다. 두 사람은 재물이 많은 부자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두 사람은 매우 대조적이다. 일부러 본서의 저자가 서로 상반된 두 부자 이야기를 기록한 것 같다. 부자 관원은 다른 복음서에서는 청년부자로 소개를 하고 있는데, 율법에 흠이 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자부한 사람이다. 사회적으로 평판이 좋은 모두가 부러워하는 존경받는 부자였다. 하지만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주님을 따르라고 요구했을 때 근심하며 주님을 떠났다. 이는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부자 관원의 실상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를 보시고 주님은 부자의 천국행이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고 평가하셨다. 반면에 삭개오는 재물을 많이 가진 부자였으나 동족에게 배척을 받은 외톨이였고,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는 졸부였다. 왜냐하면 당시 유대사회에서 세리라는 직업과 세리는 혐오의 대상이었는데, 삭개오는 세리장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부자 관원처럼 주님께서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라고 요구하시지도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부당하게 취한 것은 4배로 갚고, 또한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자 부자의 천국행이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씀하신 주님께서 즉시 그의 천국행을 선포하셨다.

 

또 한 가지 공통점이라면 주님을 찾은점이다. 그렇지만 부자 관원이 주님을 찾은 것은 관심을 가장한 자기과시가 목적이었고, 삭개오는 재물과 명예로 채울 수 없는 구원과 영생에 대한 깊은 갈망 때문이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 천국백성이 되는 결정적인 차이였다. 삭개오가 부자였고 세리장이었다는 것은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잘 보여준다. 당시 로마제국의 세금정책은 현지인을 세리로 세워서 세금을 거두었는데, 할당된 금액만 국가에 바치고, 징수액의 초과금액은 세리가 가졌다. 그런데 대부분의 세리는 정한 세 이상을 징수하여 부당이득을 취했고, 이로 인해 백성의 원성을 샀다. 그러나보니 세리는 로마제국의 앞잡이, 매국노, 백성의 고혈을 빨아먹는 거머리 정도로 취급을 받았다. 삭개오는 이렇게 해서 세리장이 되고 많은 재물을 모은 부자가 되었다. 이렇게 온갖 욕을 먹고 지탄을 받으면서 얻은 명예이고, 모은 재물인데, 그것들이 그의 마음을 채워주지 못했다. 그래서 주님을 간절히찾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간절함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9). 다시 말하지만 간절함은 일상생활은 물론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간절한 마음리모델링에 대하여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간절함은 결핍의식에서 생긴다.

지금까지 여러 측면에서 간절함의 중요성에 대하여 말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간절함을 가질 수가 있을까? 우선, 간절함은 결핍의식과 관련이 깊다. 배부른 사람에겐 사해진미로 차려진 진수성찬도 관심이 없다. 배가 고파야 음식을 찾고, 목이 말라야 물을 찾는다. 그래서 배가 고픈 사람에겐 거친 음식도 감지덕지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부족과 결핍을 알아야 그것을 채우기 위해, 혹은 채울 수 있는 것에 대한 간절함, 절실함을 갖게 된다. 본문의 삭개오가 좋은 예다. 앞에서 말한 대로 그는 재물과 명예를 위해 온갖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래서 세리장이 되고, 많은 재물을 가진 부자가 되었다. 그토록 자신 원하던 것을 가졌는데도 마음에 만족이 없었다. 재물과 세속적인 명예로 채울 수 없는 깊은 마음의 결핍을 느꼈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의 결핍이 예수님을 찾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그것을 채우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갔다. 물론 이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다. 유대인이라면 누구도 그를 반기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고, 자칫 군중에 의해 봉변을 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세리에 대한 반감이 너무 심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에게는 이런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주님을 봐야한다는 간절함과 절실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님을 찾아갔으나 이미 주님을 찾아온 많은 사람으로 주님을 볼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는 키가 작아서 더욱 힘들었다. 여기서 키가 작다.’(3)는 것은 그의 결핍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내용이다. 중요한 것은 그의 작은 키가 그를 더욱 간절하고 절실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것이 주님이 지나가실 길목에 서있는 뽕나무였다. 그는 달려가서 뽕나무 위로 올라갔다. 여기서 그가 뽕나무 위로 올라갔다는 것은 그의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는 의미. 자신의 나이를 생각하고, 사회적 위신을 생각하고, 이 일로 인한 사람들의 비난이나 조롱을 생각했다면 그는 결코 뽕나무 위로 올라가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것들을 다 내려놓았기에 선뜻 올라가게 된 것이다. 이것은 동시에 그의 간절함과 절실함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행동이다. 나무 위로 올라가서 바라 볼만큼 주님을 향한 마음이 간절하고 절실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런 간절함이 주님을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 주님을 만나고, 주님을 자기 집으로 모시는 영광까지 얻게 된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고,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라.’(8:17)는 말씀이 정확이 실현되고 있는 모습이다. 주님은 마음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다. 가난한 마음을 가져야 간절함이 있고, 간절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주님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결핍의식은 신앙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태도이고, 이 결핍의식이 간절한 마음 리모델링을 위한 첫 번째 방법이다.

 

간절함은 위기의식에서 생긴다.

간절함을 갖는데 결핍의식과 함께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위기의식이다. 누군가를 나무 위로 올라가게 한 다음 그 나무를 흔들어대면 나무에 올라간 사람이 자연스럽게 소리를 지르며 나무를 꼭 붙잡게 된다. 이것이 위기의식에 대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반응이다. 그래서 위기의식은 간절함을 갖게 만든다. ‘간절히 붙잡다.’를 히브리어로 바타흐’(ְבָּטְח)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절벽에서 뛰어 내리다.’가 본래의 뜻이다. 그러므로 간절히 붙잡는 것은 절박한 위기상황에서 보이는 행동이다. 지난 수요예배에서 말씀드렸듯이 신앙생활도 절박한 영적 위기의식에서 영적 간절함이 생긴다. 다윗이 간절히 하나님을 찾고, 간절히 하나님께 부르짖고, 수시로 하나님께로 달려갔던 것은 그가 항상 절박한 영적 위기의식을 가지고 살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물들이 내 영혼에까지 흘러 들어왔나이다. 나는 설 곳이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지며 깊은 물에 들어가니 큰물이 내게 넘치나이다.’(69:1,2). 야곱도 그랬고, 히스기야도 그랬다. 특히 야곱은 형 에서가 4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온다는 소식을 듣고 얍복강을 건너지 못하고 밤새 기도했다. 성경은 그가 천사와 씨름했다고 했는데, 이는 간절한 기도에 대한 다른 표현이다. 씨름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단어 아바크(אָבַק)는 목숨을 건 결투를 뜻한다. 그가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는지를 잘 말해준다. 그가 이렇게 목숨을 건 결투를 하듯 간절히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은 절박한 위기의식 때문이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영적 위기의식을 가질 것을 촉구한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5:8). 배가 고파서 먹잇감을 찾고 있는 사자처럼 마귀가 우리의 영혼을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영적 긴장을 늦추지 말고, 영적 위기의식을 가지고 살라는 것이다. 바울도 비슷한 말을 했다. 섰다고 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했다. 항상 영적 긴장과 위기의식을 갖고 살라는 뜻하다. 또한 너희가 믿음에 있는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확증하라고도 했다. 그렇다. 지혜로운 사람은 항상 영적 위기의식을 가지고 산다. 일의 형통과 상관없이 주님 앞에서 자신의 영적 태도와 모습을 깨어서 깊이 되돌아본다. 무슨 일이 잘 되고, 안 되고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주님 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주님께서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에 온 마음을 집중한다. 이렇게 영적 위기의식을 가지고 영적으로 민감하게 깨어있다 보니영적 간절함과 절실함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영적 위기의식은 간절한 마음 리모델링을 위한 또 다른 방법이다.

 

삭개오처럼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기적과 같은 일상생활, 특히 기적과 같은 신앙생활을 위해선 영적 간절함이 절실하다. 그리고 이 영적 간절함은 영적 결핍의식과 위기의식에서 생긴다. 부자 관원에게는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이 오히려 쉬울 만큼 좁은 천국의 문이 영적 결핍의식을 가지고 간절히 주님을 찾은 삭개오에게는 활짝 열린 것을 기억하자! 영적 간절함은 천국의 문뿐만 아니라 관계의 문, 기회의 문, 은혜의 문, 축복의 문을 활짝 열리게 만든다. 아무튼 영적 결핍의식과 영적 위기의식을 가지고 간절함으로 우리 마음을 리모델링하자. 그리하여 삭개오처럼 열린 천국문의 주인공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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