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싫어하시는 것, ‘피 흘리는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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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31,777회 작성일 22-03-06 13:16본문
주님이 싫어하시는 것, ‘피 흘리는 손’
잠6:16~19, 막6:30~40
2022. 3/6. 11:00
일상이 전쟁터와 같은 세상
인류의 역사는 지난한 투쟁과정이고, 살육의 승리자가 그 주인공이다. 한 마디로 전쟁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노르웨이 한 역사 연구소의 조사에 의하면, 역사의 기록이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약 5,600년 동안 15,000번의 전쟁이 있었고, 전쟁이 없었던 시기는 약 50년에 불과하다고 했다. 1년에 4번꼴로 전쟁이 일어난 셈이다. 이 전쟁으로 약 40억이나 되는 수의 사람이 죽었다. 지금도 크고 작은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국가 간은 물론이고, 지역이나 정당 간에도 싸우고, 회사에서도, 심지어 가정 안에도 싸움이 있다.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교회 안의 싸움이 더 지독하고 잦은 편이다. 오죽했으며 골목에서 싸우는 아이들을 지나가던 사람이 보고, ‘이놈들, 여기서 싸우지 말고 교회 가서 싸워라.’고 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영국의 정치철학자 토머스 홉스는 인간을 이렇게 정의했다. ‘인간의 본성은 공격적이고 이기적이다. 인간은 날 때부터 싸우고 경쟁하고 서슴없이 다른 존재를 제물삼아 자신의 물질적 욕구를 채우고 빼앗고 이기려드는 존재다.’ 타락한 인간에 대한 이보다 정확한 정의는 없을 듯하다. 때문에 인간의 역사, 사회, 가정, 심지어 교회까지 평화롭지 못한 것이다. 하여간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는 다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사는 것이 전쟁이라고 한다. 입시전쟁, 취업전쟁, 출근전쟁, 식량전쟁, 화폐전쟁, 정보전쟁, 무역전쟁 등 전쟁이란 말이 일상어처럼 사용되는, 일상적인 삶의 터전이 전쟁터가 되어버렸다. 폭력이 난무한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평화를 간절히 원하게 되었고, 그 평화를 위해 또 다른 폭력을 낳는 어처구니없는 세상이 되었다. 본문은 짧지만 이런 세상과 이런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경종이 되는 말씀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을 미워하신다는 말씀이다. 이 시간에는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7가지 중에 세 번째,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에 대하여 생각해 보려고 한다.
손의 상징적 의미
사람의 손은 일이나 행위를 하는 중요한 기관이다. 아침에 일어나 입고, 씻고, 치우고, 정리하고, 먹고. 마시고, 준비하는 것을 비롯하여 의식행위(기도, 악수 등), 노동행위(사물의 이동, 작업, 환자수술, 운전 등), 창작행위(쓰기, 그리기, 연주 등) 등등. 사실 일상생활 거의 모두가 손에서 좌우된다. 그래서 인간의 여러 학명 중에 ‘호모 파베르’(Homo Faber)가 있다.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는 존재로서 인간을 뜻하는데, 이는 손과 깊은 관련이 있다. 도구를 만들고 사용하는 것은 손에 달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문명은 손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간사회의 눈부신 발전과 여러 열악한 조건에도 다른 동물을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손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인간이 두 손을 드는 것은 회개와 경외의 의미를 뜻하고, 때로는 항복과 신앙을 나타내기도 한다. 특히 교회와 가정, 또는 일터에서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것은 신앙을 나타낸다. 또한 기독교 미술에서 하나님을 표현할 때 손을 사용했다. 하나님의 존재를 구름을 뚫고 나온 손으로 자주 표현했다. 초대교회 시대의 석관에 손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죽은 자와 함께 하심을 상징한다. 잘 아는 대로 이스라엘 사람은 기도하기 전에 손을 씻는 습관이 있었다. 또한 회막이나 성전에 들어갈 때도 손발을 씻었고(출40:30~32), 무죄의 표시로 손을 씻는 의식도 있었다(신21:6~8). 빌라도도 대중 앞에서 예수님의 피에 대해 자신은 깨끗하다고 선언하면서 손을 씻었는데, 당시 유대인의 풍습을 따른 행동이었다(마27:24). 이처럼 손은 단순히 인간의 한 신체기관이 아니라 상징적 종교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인간의 손은 해치기거나 약탈하기도 하지만 생명을 구하고 치료하고 축복하기도 한다. 따라서 손을 잘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신앙의 올바른 행위가 되는 것이다. 본문은 이와 같은 손의 잘못된 사용에 대한 말씀이다. 피를 흘리는 폭력의 도구가 되어 사람을 해치거나 상처를 주는 것을 경계하는 말씀이다. 즉, 폭력의 도구, 약탈의 도구, 침략의 도구, 파괴의 도구, 편을 가르고 함정에 빠뜨리는 불화의 도구로 사용되는 손을 하나님께서 미워하시고, 싫어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은 손의 악한 사용을 경계하는 말씀이다.
선한 일의 도구로 손을 사용하라!
반면에 본문을 적극적으로 해석을 하면 손의 선한 사용을 권하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베푸는 손, 나누는 손, 인도하는 손, 살리고 치료하는 손이 되라는 말씀이다. 축복하는 손, 세워주는 손, 붙잡아주고 붙들어주는 손이 되라는 것이다. 모두가 잘 되도록 격려하는 손, 따뜻하게 품어주는 위로하는 손, 희생하며 섬기는 손이 되라는 것이다. 그래서 행복을 만들고, 화목과 평화를 만드는 손이 되라는 것이다. 이런 손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좋아하신다는 것이다. 바울도 이렇게 권하고 있다.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롬6:13). 여기에는 우리의 손도 포함되어 있다.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은 우리의 손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리는 일을 위해 사용하라는 것이다. 성경에 이런 아름다운 손이 총출동이 되어 천국의 잔치를 방불케 하는 기적을 만든 사건이 나온다. 예수님께서 빈들에서 빵 다섯 조각과 생선 두 토막을 가지고 장정 5,000명을 먹이신 사건이다. 일명 ‘오병이어’(五餠二漁) 사건이다.
빈들을 축제의 장소로 만든 손
이 오병이어 사건은 4복음서가 모두 취급하고 있다. 그만큼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 중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뜻이다. 앞서 말했듯이 여기에는 여러 아름다운 손이 등장하고 있다. 먼저, 제자 안드레의 손이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손이자, 사람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손이다. 많은 사람이 주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빈들에 모여 날이 저물도록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말씀을 들었다. 날이 저물어가니 이들을 보내 요기를 하도록 하자고 제자들이 주님께 청했다. 그러자 주님께서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고, 제자들은 크게 당황했다. 장정만 5,000명이 넘는 이 많은 사람을 먹일 수 있는 돈도 없거니와 돈이 있어도 빈들이라 음식을 구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다들 손 놓고 앉아만 있었다. 그때 묵묵히 순종한 사람이 안드레다. 딱히 방법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방법을 찾아본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시도가 기적의 실마리를 찾게 만들었다. 도시락을 가진 한 아이를 발견한 것이고, 그 아이를 주님께로 인도한 것이다. 순종이 중요하고, 내가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서 주님께 인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자 안드레는 이런 아름다운 손을 가진 사람이다.
다음은 어린 아이의 손이다.자신이 먹으려고 가져온 도시락을 주님께 드린 헌신의 손이다. 이 아이가 누구인지 알 수는 없으나 참으로 기특한 아이 같다. 주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도시락을 싸들고 주님을 찾아온 것도 기특하고, 주님의 말씀을 듣는데 집중하여 밥 먹는 것도 잊고 있었다는 것도 기특하고, 얼마나 배가 고팠을 텐데 자신이 먹지 않고 주님께 드린 것은 더 기특하다. 안드레가 자기 앞으로 다가오자 종일 말씀하신 주님이 시장하셔서 그에게 먹을 것을 구해오도록 명하신 것으로 알고 자신의 도시락을 그에게 내어주었는지 모르겠다. 하여간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드린 한 아이의 적은 헌신이 이런 놀라운 기적의 마중물이 된 것이다. 세 번째는 주님의 손이다. 한 아이가 드린 빵 다섯 조각과 생선 두 토막을 감사하며 축복하는 손이다. 겨우 한 아이의 한 끼 분량의 적은 양이지만 하나님께 감사하고 축복한 것이다. 사실 인간의 셈법에는 많고 적음이 중요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그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아무 것도 없는데서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어진 것을 어떻게 취급하느냐가 중요하다. 주님처럼 적지만 감사하고 축복하면 그것이 큰 역사를 만드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자들의 손이다. 음식을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섬기는 손이다. 주님은 축복하신 음식을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사람들에게 나눠주도록 하셨다. 그들은 사람들을 50명씩 무리지어 앉게 한 다음 주님께 주신 음식을 나눠주었다. 그때 기적이 일어났다. 그 적은 빵조각과 생선토막이 모든 사람이 배불리 먹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심지어는 먹고 남은 부스러기가 열두 광주리였다. 주님이 누구신지, 어떤 분이신지를 똑똑히 보여주고, 경험하게 하는 사건이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제자들이 나누면서 섬길 때 기적을 경험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나누고 섬기고 봉사하는 손이 기적을 경험한다. 우리는 여기서 아름다운 손들 때문에 빈들을 헤매는 목자 없는 양과 같은 사람들이 배불리 먹여주시는 참된 목자를 만나 방초동산에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본다. 잠시지만 그들은 천국의 기쁨과 풍성함을 맛보게 된 것이다. 교회는 바로 이런 곳이고, 이런 곳이 되어야 한다. 아름다운 손들이 모여 천국을 경험하는 곳, 천국을 경험하게 하는 곳이 교회여야 한다. 성도는 아름다운 손을 통해 그가 있는 곳을 천국으로 만드는 사람이어야 한다.
가장 아름다운 손
톨스토이의 「황제와 청소부」라는 민화(民話)가 있다. 어느 왕국의 황제가 큰 잔치를 베풀고, 참석자 중 가장 아름다운 손을 가진 사람을 왕과 왕후 사이에 앉게 하고, 값진 선물을 주겠다고 했다. 이 소식을 듣고 사람들은 손톱을 다듬고, 향수를 뿌리는 등 손을 아름답게 단장했다. 그리고 자신이 뽑히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왕이 그 영광의 주인공을 뽑았는데, 그 사람은 다름 아닌 궁전의 청소부 할머니였다. 물론 평생 일만 해온 그녀의 손은 보기 민망할 정도로 거칠고 주름졌다. 그 손을 본 사람들은 모두 의아하게 생각했고, 왕은 그들에게 말했다. ‘이 손은 땀과 수고, 그리고 성실로 장식된 가장 아름다운 손이다.’ 주님께서도 우리 중에서 아름다운 손을 찾으신다면 바로 이런 손이 아닐까? 거칠지만 순종하는 손, 인도하는 손, 헌신하고 희생하는 손, 감사하고 축복하는 손, 나누고 베풀며 섬기는 손을 기뻐하신다. 이런 손이 주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린다. 우리 모두 이런 손의 주인공이 되자!
관련링크
- https://youtu.be/cso8IRrVEYM 15555회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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