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를 복이 되게 한 사람, ‘레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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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5,596회 작성일 13-03-24 14:17본문
저주를 복이 되게 한 사람, ‘레위’
창49:5~7
2013. 3/25. 11:00
즐거운 교환(fröhlicher Wechsel)
남자들이 제일 좋아하고 여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이야기 세 가지가 있다. 첫째 군대 이야기, 둘째 축구 이야기, 셋째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다. 아무튼 군대는 남자들에게 추억거리가 많은 곳이다. 고참이 졸병에게 ‘라면 사와라.’ ‘빵 사와라.’고 심부름을 시킨다. 그런데 그냥 사오라고 하면 갈취가 되니까 천 원 짜리 한 장 달랑 주면서 ‘가서 라면 다섯 개, 빵 다섯 개 사고 2천원 남겨와!’ 하고 말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엉터리 셈법이 통하는 곳이 옛날 군대였다. 그런데 우리 신자에게는 이보다 더 터무니없는 엉터리 셈법의 장소가 있다. 바로 십자가다. 모든 저주를 온갖 복으로 바꿔주는 곳이 십자가다. 그래서 루터는 십자가를 ‘즐거운 교환’(fröhlicher Wechsel)이 일어나는 곳이라고 했다. 인생의 저주가, 인생의 슬픔이, 인생의 고통이 하늘의 복으로, 하늘의 기쁨으로, 하늘의 위로로 교환되는 곳이 십자가다. 상처가 치유로, 분노가 용서로, 염려가 평안으로, 고난이 영광으로, 사망이 생명으로, 절망이 소망으로 바뀌는 곳이 십자가다. 그러니 십자가는 신자에게 얼마나 즐거운 교환, 행복한 교환의 장소인가! 금번 특별새벽예배를 통하여 이와 같은 십자가의 은혜를 생각해 보기 위하여 ‘십자가, 즐거운 교환’이란 주제로 진행하려고 한다.
사실 성경의 모든 인물들이 오늘 설교 제목처럼 저주를 복이 되게 한 사람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 자리에 있는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니 우리는 이미 주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즐거운 교환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하는 야곱의 셋째 아들 레위도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와 그의 자손은 아버지가 예언한 저주를 복으로 바꾸었던 사람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12지파 중에서 백성들을 대신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제사장 지파가 되는 복을 받았다.
야곱의 저주
임종을 앞 둔 야곱은 열 두 명의 자녀들을 불러놓고 마지막 유언을 하였다(창49:). 그의 유언은 곧 자녀들의 앞날에 대한 예언이었다. 대개가 축복에 대한 예언이었지만 장남 르우벤과 둘째 시므온, 그리고 셋째 레위에게는 저주를 예언하였다. 특히 시므온과 레위는 그들의 폭력성으로 인하여 저주를 받아 형제들 사이에 흩어지리라고 하였다(7). 즉 기업이 없는 떠돌이가 된다는 뜻이다.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와 같이 저주를 예언한 것은 지난 주일에 말씀을 드렸던 디나(Dinah) 사건으로 인하여 세겜 족을 살육하고 약탈한 것과 관련이 깊다. 그들은 복수를 위해 언약의 표시인 할례를 도구로 끔찍한 피의 보복을 저질렀고, 이 일로 그 가족을 심각한 위기에 빠뜨렸다(창34:). 당시에는 그들의 만행에 대하여 야곱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지만 임종직전에 그들의 행위를 기억하고 저주를 예언한 것이다. 우리가 심은 것은 어떤 형태로든지 언젠가는 반드시 심은 그대로 거두게 된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야곱의 이 예언이 무섭도록 정확하게 성취되었다는 사실이다. 우선 시므온 지파는 이스라엘 열 두 지파 중에서 인구가 가장 적고 약한 지파가 되었다.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2차 인구를 조사했을 때 22,200명으로 가장 적었다(민26:51). 물론 처음부터 시므온 지파의 인구가 적은 것은 아니었다. 1차 인구조사 때는 59,300명으로 세 번째로 크고 강한 지파였는데(민1:23), 이렇게 줄어든 것이다. 폭력적인 사람들은 번영할 수가 없는 법이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땅을 분배받았을 때 유다 지파의 기업 중에서 나뉘어 살아가다가, 그 후 북쪽으로 이동하여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의 경내로 들어가 흩어져 살게 되었다(대하15:9;34:6). 후일 남북 왕국이 분열될 때 시므온 지파는 북쪽 이스라엘에 흩어져 살다가 소멸되었다. 처음에는 창대했는데 점차 힘을 잃게 되어 결국에는 다른 지파에 종속되고 말았다. 그의 아버지 야곱의 저주가 그대로 응한 것이다. 반면에 레위 지파는 이스라엘 12지파 중에서 백성들을 대신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제사장 지파가 되는 복을 받았다. 물론 레위도 야곱의 예언처럼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지 못했으나 하나님이 그들의 기업이 되었다. 야곱의 저주가 복으로 변하게 된 것이다. 같이 저주를 받았는데 전혀 다른 결과를 나은 것이다.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
그렇다면 레위는 어떻게 아버지의 저주를 복으로 바꿨을까? 신앙은 선택과 결단이다. 신앙에서 중간지대는 없다. 하나님이냐! 세상이냐! 이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신앙이다. 성경은 그 선택을 결단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선택과 결단에 따라 우리의 운명이 결정된다. 레위 지파가 야곱의 저주를 복이 되게 한 결정적인 사건이 있다(출32:). 그것은 모세가 그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이끌고 나와 시내산에 도달했을 때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시기 위해 모세를 시내산 정상으로 불렀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40주야를 금식하고 있을 때 산 아래서 기다리던 백성들은 모세가 산 위에서 죽은 것으로 생각하고 아론을 중심으로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기는 사건을 일으켰다(1~6). 그 금송아지가 자신들을 이집트에서 구원한 여호와라고 선포했다. 그리고는 술을 마시고 춤을 추면서 축제를 벌였다. 십계명을 받아서 산을 내려오던 모세가 이 황당한 광경을 보고 백성들을 향해 외쳤다.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출32:26).
모세의 이 말은 백성들에게 선택과 결단을 촉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이냐! 금송아지냐!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고 결단하라는 말이다. 그 때에 모세에게로 나아온 사람들이 ‘레위’ 자손이다(26下). 그 결정적인 순간에 레위 자손은 하나님을 선택했고, 헌신을 결단한 것이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께 헌신한 지파로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되었다(29). 이렇게 하나님을 선택하고, 하나님께 헌신을 결단한 사람들이 하나님께 쓰임을 받고, 또한 하나님의 복을 받는다. 아무튼 이 사건을 계기로 레위 지파는 가장 가까이서 하나님을 섬기는 복을 얻게 된 것이다. 묶인 저주의 사슬이 끊어지고, 씌워진 저주의 굴레가 벗겨진 것이다.
연합의 중요성
힘의 원리에는 3가지가 있다. 그것의 첫째는 하나됨(unity)이고, 둘째는 조화(harmony), 그리고 셋째는 협력(cooperation)이다. 한 마디로 ‘연합’이다. 연합이 곧 힘의 원리다. 그래서 솔로몬은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4:12)고 한 것이다. 이런 연합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 사람이 레위다. 사실 그의 이름의 뜻이 ‘연합’이다. 어머니 레아가 그를 낳고 남편 야곱과의 온전한 연합을 갈망하여 지어준 이름이다. 레위의 일생을 보면 ‘연합’이라는 그의 이름의 뜻이 그의 인생을 좌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미 창34장에서 보았듯이 그가 형 시므온과 연합을 했을 때는 신앙을 수단화하고 사람의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는 살인기계가 되었다(5). 그래서 저주의 자식이 되었다. 그렇지만 하나님과 연합을 했을 때는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리는,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를 막는 소중한 하나님의 도구가 되고, 그 결과 저주의 굴레를 영광스러운 축복의 메달로 바꾸게 되었다. 우린 여기서 연합이 중요하지만 누구와 연합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게 된다. 레위가 시므온과 연합했을 때는 저주 자식이 되었으나 그의 자손이 하나님과 연합하여 저주를 넘어 축복의 자녀로 거듭나게 되었다. 금송아지 편에 서서 그것과 연합하면 저주이고 심판이지만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과 연합하면 생명이고 축복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연합하는 것이 중요하다. 누구든지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면 저주는 사라지고 복이 다가온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73:27,28)고 고백한 것이다.
하나님과 연합하라!
하나님과 연합하는 사람은 형통하다. 세계적인 유통기업 월마트는 조그만 할인점으로 시작하여 40년 만에 세계 500대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년 매출이 우리나라 1년 예산을 능가한다. 월마트의 창업자 셈 월튼에게 경영철학을 묻자, ‘나는 하나님 편에서 회사를 운영한다.’고 대답했다. 하나님 편에서 경영했더니 큰 성공을 이뤘다는 고백이다.
하나님이냐! 세상이냐! 이것은 인생의 중대한 선택이다. 이 선택으로 우리의 운명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선택한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연합을 의미한다. 하나님과 연합한 사람은 승리의 삶, 축복의 삶, 풍성하고 행복한 삶을 보장받게 된다. 사람은 가까이 하고, 함께 하는 것을 닮게 되고, 영향을 받게 된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이란 말이 나오게 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니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그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에게 저주가 복이 되고, 상처가 치유되고, 염려가 평안이 되고, 고난이 영광이 되고, 사망이 생명이 되고, 절망이 소망이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셨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 우리의 형통은 주님과 연합에 있고,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말씀이다. 나라고 하는 존재는 ( )안의 수와 같다. 이 ( )안의 수를 결정하는 것은 ( )밖의 수다. 0으로 곱하면 ( )안의 수는 무조건 0이 되고, 무한대로 곱하면 ( )안의 수도 무한대가 된다. 주님이 곧 ( )밖의 수 무한대이시다. 그러므로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고전15:10)라고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나를 결정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이다. 주님을 가까이 하는 것, 그래서 주님과 연합하는 것은 나와 내 자손의 운명을 결정짓는 사건이다. 이런 엄숙한 일에 여러분의 올바른 선택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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