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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를 가르쳐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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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6,623회 작성일 23-07-16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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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를 가르쳐주소서!

11:1~4

2023, 7/16. 11:00(성령강림 후 일곱 째 주일

습관의 중요성

어느 마을에 지혜롭기로 소문난 스승이 있었다. 한 제자가 습관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러자 스승은 제자들을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 네 종류의 식물을 보여주었다. 첫째는 막 돋아난 어린 풀이었고, 둘째는 뿌리를 내려 조금 자란 풀이었다. 셋째는 키 작은 어린 나무였고, 넷째는 다 자라 키 큰 나무였다. 그리곤 첫째와 둘째 풀을 뽑아보라고 제자들에게 말했고, 그들은 힘들이지 않고 쉽게 그것을 뽑았다. 이어서 스승은 키 작은 어린 나무를 다치지 않게 뽑도록 했고, 그들은 약간의 힘을 주어 그것을 뽑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키 큰 나무도 뽑아보라고 했는데, 그들이 다 같이 힘을 모아 뽑으려 해도 뽑을 수가 없었다. 이것을 보고 스승이 말했다. ‘그것이 습관의 모습이다. 습관이란 처음에는 마음에 따라 조절할 수 있다. 그러나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자라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나쁜 습관은 아예 처음부터 뿌리 뽑고, 좋은 습관은 큰 나무로 자랄 수 있도록 키워라.’


 

습관에는 좋은 습관, 나쁜 습관이 있다. 그런데, 습관에는 21, 66일의 법칙이 작용한다고 한다. 새로운 습관을 뇌에 각인시키는 것은 21, 몸에 각인시키는 것은 66일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좋은 습관을 심으면 좋은 인품의 열매를 맺게 된다. 습관은 태도를 낳고 태도가 곧 그 사람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습관의 중요성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다. ‘사람의 됨됨이를 결정하는 것은 습관적으로 무엇을 하느냐다. 탁월함은 행위가 아니라 습관이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의 습관이 여럿 나온다. 물론 주님의 습관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기도하시는습관이다. 본문에서 주님의 이와 같은 습관을 엿 볼 수가 있다.

 

 

기도습관     

본문은 주님께서 기도하시는 모습으로 시작을 한다.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1). 복음서에는 주님께서 기도하시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주님은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조용한 곳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시는 습관을 가지고 계셨다(1:35). 하루 일과를 기도로 시작하신 것이다. 때로는 밤늦게 기도하셨다(14:23). 하루 일과를 기도로 마무리 하신 것이다. 또한 밤을 지세면서 기도하시기도 했다(6:12). 이런 주님의 기도습관은 돌아가시기 전날까지 계속 되었다.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좇았더니’(22:39). 이는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바로 전날 밤에 일어난 사건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내일 지시게 될 십자가라는 중대한 문제 때문에 기도하시려 가셨다고 말씀하지 않고, ‘습관을 좇아기도하시러 가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흔히 사람들은 절박하면 기도하게 된다고 말한다. 틀린 말이다. 문제가 있다고 기도하지 않는다. 기도가 습관이 되지 않은 사람은 문제 앞에서도 기도하지 않는다. 그냥 졸며 자게 된다. 주님의 제자들이 그랬다. 사실 그들은 주님께 충격적인 말씀을 들었다. 너희가 다 나를 버리고 도망칠 것이다. 베드로의 경우는 오늘 새벽 닭 울기 전에 3번이나 나를 부인할 것이라고 경고도 들었고, 주님께서 마음이 무척 힘드니 기도하라는 요청도 받았다. 그런데도 그들은 기도하지 않고 졸며 잤다. 주님은 곁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울며 기도하고 계신데, 그 절박한 주님의 기도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을 잤다. 아무튼 주님께서 낮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일을 감당할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다. 기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경험한 힘으로 하루의 모든 일을 감당하셨던 것이다. 성도의 능력 있는 삶의 비결 또한 기도에 있다. 우리도 주님처럼 기도가 거룩한 습관이 되었으면 좋겠다.


 

기도를 가르쳐 주소서!

우리 기독교에는 세 가지 소중한 보배가 있다. ‘십계명, 주기도문, 사도신경이 그것이다. 사도신경은 우리의 신앙고백으로 무엇을 믿는가?’ 신앙의 내용에 대한 것이고, 십계명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신앙적인 실천(윤리), 곧 성도의 삶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주기도문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역동적인 신앙생활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에 대한 것이다. 주기도문은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를 줄인 말로 모든 기도의 모범이다. 주기도문을 최초로 해석했던 교부(敎父) 터툴리안은 주기도문을 ()복음의 요약이라고 했다. 단순한 기도문이 아니라 주님의 인격과 사역이 투영되어 있는 복음 중의 복음이라는 뜻이다. 김세윤 교수 또한 주기도문을 주님의 공동체의 이상이며, 제자도를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했다.


 

본문은 이와 같이 소중한 주기도문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가를 보여주는 말씀이다. 그것은 제자들의 요청 때문이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1). 사실 이 내용만 놓고 보면 기도를 가르쳐달라는 제자의 요청이 선뜻 이해가 안 된다. 당시 제자들은 유대인이었다. 그들은 기도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주님께 기도를 가르쳐달라고 했다. 기도하는 법을 몰라서 그랬을까? 아니다. 그러니 여기서 기도를 가르쳐달라는 이 요청은 단순히 기도를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유대교에는 여러 종파가 있었다. 각 종파마다 그들 나름의 사명() 선언문이 있었는데, 그 선언문이 기도문 형태로 되어있었다. 그러므로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주소서.라고 한 이 요청은 세례요한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사명 선언문과 같은 사명 선언문을 가르쳐달라는 뜻이다. 이 요청에 따라 주어진 것이 바로 주기도문이다. 그러니 여기서 주기도문은 단순한 기도문이 아니고, 주님을 따르는 공동체의 사명 선언문(정체성과 목적, 사명)인 것이다. 누가복음은 이방인, 특히 로마인(데오빌로)을 상대로 기록된 복음서다(1:3). 일종의 기독교를 변호하는 변증의 성격을 가진 복음서다(1:4). 이런 배경에서 생각해보면 이 사실이 더욱 분명해진다. 그래서 주기도문을 단순한 기도문이 아니라 주님을 따르는 공동체의 사명 선언문이라 한 것이고, 나아가 주님의 인격과 사역이 드러나 보이는 복음 중의 복음이라고 한 것이다. 복음의 압축이라. ‘축소판이라. 주님의 초상화라고 한 것이다.


 

주기도문 신학

모든 종교에는 기도가 있다. 그리고 그 종교의 내용은 기도의 내용에 좌우된다. 기도는 그 종교의 가르침과 지향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도는 단순히 복을 구하는 것이나 어떤 문제에 직면하여 그 실마리를 풀어내기 위한 주문이 아니다. 특히 우리 기독교의 기도는 그렇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는 신앙적 삶의 내용이고, 그 토대로서의 신앙고백인 것이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주기도. 주기도에는 몇 가지 신학적 특징이 있다. 우선, 여섯 개의 청원이 주 내용인데(본문에는 다섯 개만 나옴), 하나님에 대한 부분과 인간의 관심에 대한 부분으로 되어 있다. 이는 신앙과 삶(윤리), 원리와 실천,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의 균형을 강조한다. 다음은, 하나님과의 친밀함, 성도와의 함께함을 강조한다. 흔히 하나님에 대한 부분을 -청원’(You-Petition)이라고 하고, 인간의 관심부분을 -청원’(We-Petition)이라고 한다. 여기서 하나님을 2인칭으로 사용한 것은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강조한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관심에 대한 것을 1인칭 복수를 사용한 것은 성도 간의 함께함을 강조한다. 친밀함과 함께함은 신앙생활에서 소중한 가치이자 덕목이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신앙의 질을 결정하고, 함께함이 신앙의 성숙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과는 친밀하고, 성도와는 항상 함께함이 건강하고 성숙한 신앙의 모습이다.


 

그리고 또 하나, 신앙생활에 있어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특히 하나님에 대한 부분에서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나라,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강조하고 있다. 대개의 사람은 자기 이름을 내는 것, 곧 자기 영광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리고 자신의 영역을 만들고 그것을 확장시키는데 관심이 있고, 자기의 뜻을 주장하고 관철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성도는 자기 이름이 아닌 하나님의 이름, 곧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하고, 자신의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확장시키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삶의 우선순위를 두고 사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경건한 성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주기도문이다. 아무튼 주님의 이름을 드러내고, 주님의 나를 세우고 확장시키며, 주님의 뜻에 내 뜻을 꺾고 그 뜻에 순종하는 것이 성도의 모습이다. 이것을 삶의 우선순위에 두고 사는 사람이 경건하고 성숙한 성도다.


 

주기도문의 중요성

아무리 귀한 것도 그 가치를 모르는 사람에겐 무용지물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영적으로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소중한 보배 주기도문을 주셨다. 그런데 우린 이 소중한 주기도문은 그저 예배나 모임의 마감용으로만 사용하고 있으니 말이다. 중요성에 비해 그 활용이 너무 제한적으로 잘못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개혁자 루터는 주기도문을 최고의 순교자라고 했다. 교회와 신자의 주기도문에 대한 잘못된 사용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사실 주기도문은 아주 짧은 기도인 동시에 아주 포괄적인 기도다. 여섯 마디로 되어 있다는 점에서 아주 짧고 간결한 기도다. 그러나 그 속에 담긴 내용은 무엇보다 높고, 깊고, 넓다. 특히 본문에서는 공동체의 사명 선언문이니 주기도문은 교회 공동체의 표지판이다. 주님이 기대하시는 교회가 어떤 모습인지, 교회가 가야할 올바른 방향과 사명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표지판이다. 또한 주기도문은 기도생활의 나침반이다. 기도는 신앙생활의 핵심이다. 제자로서의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원동력이다. 우리의 영적 생명을 건강하게, 영적 생활을 풍성하게, 그리고 능력있게 해주는 것이 기도다. 주기도문은 이렇게 중요한 기도의 올바른 대상, 기도의 올바른 방법, 기도의 올바른 내용을 가르쳐준다. 그러니 주기도문의 의미를 묵상해가며 기도하는 것은 가장 좋은 경건의 습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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