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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범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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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7,018회 작성일 23-06-18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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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범한 사람

32:22~32

2023, 6/18. 11:00(성령강림 후 셋째 주일

하늘을 범한 꽃

능소화(凌霄花)란 꽃이 있다. 담쟁이처럼 줄기의 마디에 흡착뿌리가 있어 건물의 벽이나 다른 물체에 의지하여 타고 오르며 자란다. 가지 끝에서 나팔처럼 생긴 주황색의 꽃이 여름에서 가을에 걸쳐 핀다. 화려한 꽃을 피우는 등나무 같다고 해서 금등화’(金藤花)라고도 한다. 능소화는 옛날에 왕궁이나 양반집에만 심을 수 있다고 하여 양반의 꽃이라고도 부른다. 그래서 일반 사람이 집에 이 꽃을 심으면 관아에서 잡아다 곤장을 때리고 심은 꽃은 뽑아버리고 다시 심지 못하게 하였다고 한다. 한자로 범할 ’(), 하늘 ’()를 쓴다고 하여 하늘을 범한 꽃이라고도 한다. 아마도줄기로부터 흡착뿌리를 내면서 줄기차게 하늘을 향해 기어오르려 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 것 같다. 그렇다면 능소화는 어떻게 높이 올라갈 수 있는 것일까? 사실 능소화는 덩굴성 식물이라 스스로의 힘으로는 단 한 뼘도 위로 올라갈 수 없고, 그저 땅바닥으로만 뻗어갈 수밖에 없다. 주변에 벽이나 나무와 같은 높은 물체가 있어야 위로 올라가는 것이 가능하다. 이는 능소화 뿐만 아니다. 이 땅에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다른 것에 기대지 않고 살 수는 없다. 이런 의미에서 무엇에 기대어 사느냐가 중요하다. 그것이 우리의 존재를 결정짓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흡착뿌리. 줄기에 흡착뿌리가 있어서 그것으로 물체를 단단히 붙잡고 위로 올라간 것이다. 그 뿌리가 물체를 꽉 붙잡아주기 때문에 어떤 거센 비바람에도 견디며 위로 올라갈 수가 있는 것이다.

 

하늘을 범한 사람

성경의 인물 중에 능소화처럼 하늘을 범한 사람이 있다. 창세기에 나온 세 번째 믿음의 조상 야곱이 바로 그 사람이다. 그래서 어떤 분은 야곱을 능소화에 비유하기도 한다. 아마도 본문에서 야곱이 하나님의 천사와 씨름한 사건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 같다. 그는 천사와 씨름을 하여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얻었다. 이와 같이 능소화를 하늘을 범한 꽃이라고 하거나 야곱을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고 하는 것은 서로 비슷한 메타포(은유). 야곱이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말도 안 되는 복을 받은 것도 마찬가지다. 그의 곁에는 높이 오를 수 있는 하나님이 계셨고, 능소화의 흡착뿌리와 같은 기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기도로 하나님을 강력하게 붙잡았기에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이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기도는 능소화의 흡착뿌리처럼 우리를 하나님께 단단히 묶이게 만들고, 그래서 어떤 시련의 비바람에도 견디게 해준다. 또한 수많은 장애물을 딛고 더 높이 오르도록 해준다. 성도로서 영향력있는 삶도 기도에 있다.

 

아마스파이더맨이란 영화를 본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저 평범한 청년인데, 거미문양의 옷을 입으면 큰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거미줄을 높은 건물에 부착시켜 놓고 그 줄을 이용하여 건물과 건물 사이를 날아다니며 위기에 빠진 사람들을 돕고, 혹은 위기에 처한 사람을 거미줄로 붙잡아서 구출해내는 슈퍼히어로 영화다. 이 영화를 보며 하나님의 전신갑주와 기도가 바로 이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기도는 스파이더맨에게서 거미줄처럼 하나님과 우리를 묶어주는 강력한 끈이다. 이 끈이 단단히 묶일수록, 길고 튼튼할수록 더 높이 더 멀리 더 크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가 있다. 신앙생활은 곧 기도생활인데, 기도로 주님께 단단히 묶이는 훈련, 기도의 줄을 더욱 길게, 그리고 튼튼하게 만드는 훈련이다. 본문은 바로 이와 같은 훈련의 한 모습을 야곱의 생애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에게 삶은 전투(씨름)였다.

야곱의 일생은 파란만장했다. 그가 이집트 왕 바로에게 지나온 자신의 삶을 한 마디로 요약하여 말한 데서 잘 나타나고 있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47:9). 그는 힘들고 어려운 험악한 세월을 누구든지 붙잡고 씨름하듯(싸우듯) 살아왔다. 그러니 그의 삶이 얼마나 고단하고 힘들었겠는가? 생각해 보면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어쩌다 이렇게 훨쩍 60평생을 살았지만 돌이켜보면 굽이굽이 힘겨운 싸움의 연속이었다. 어떻게 이런 세월을 살아왔는지 너무 기특해서 가끔 내 자신에게 이렇게 격려한다. ‘그 동안 무너지지 않고 잘 버텨줘서 고맙다!’ 본문에서는 그가 천사와 씨름하는 장면이 나온다. 치열했던 그의 삶을 증명해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그는 누구든지 닥치는 대로 붙잡고 씨름하듯 살아왔다.

 

그의 이름에서 이런 그의 삶을 엿 볼 수 있다. 잘 아는 대로 그 이름인 야곱은 발꿈치를 잡다.’는 뜻이다.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태어나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무엇인가를 잡기 위해 사는 인생이었다. 형의 발꿈치를 붙잡고, 속셈을 부리고, 자신의 이익과 욕심을 위해 형도 아버지도 속였다무엇인가를 계속 붙잡고 씨름하려 했던 인생이었다. 붙잡기 위해서 마주하는 모든 관계와 싸워야했다. , 붙잡기 위해 아버지와 형과 삼촌과 주변 사람들과 끊임없이 싸워야했다. 또한 자기 자신과 싸우고거친 인생과 싸웠다. 어디를 가도 만족이 없고서 있는 자리마다 갈등과 불안두려움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싸움에서 그가 항상 이겼다. 그런데도 피해는 늘 그가 당했다. 이것이 자신의 이익과 욕심을 위해 싸우는 싸움의 특징이다. 승리처럼 보이지만 피해자가 결국은 자신이라는 것이다.

 

복으로 주신 새 이름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천사와 씨름을 하게 된다. 천사와의 씨름에서도 그가 이겼다. 실은 그가 이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천사가 기꺼이 져주신 것이다. 자식이긴 부모가 없듯 하나님도 자녀인 우리를 이기려들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의 손을 번쩍 들어 올리시며 네가 이겼다고 말씀하시는 분이다. 적어도 우리의 기도에 있어선 더욱 그렇다. 이어서 천사가 그에게 말했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28). 그토록 그가 갈망했던 복을 선언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가 원한 복과는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그가 원하는 것은 상황의 변화였다. 지금 400명의 병사를 이끌고 오는 에서가 두려워 이렇게 기도를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에서로 하여금 회군을 하게 하거나 어떤 변고가 생겨 위협이 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어야 하는데, 복이라고 주신 것이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이 전부였다. 어떻게 이를 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야곱은 이를 복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 더 이상 그의 입에서 복이란 단어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이름은 참으로 중요하다.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그 사람의 정체성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름이 바뀌었다는 것은 존재가 바뀌었다는 뜻이다. 다른 사람을 붙잡고, 속이며 살아온 야곱에서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이스라엘로 바뀐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이란 단어의 본래 뜻은 ‘하나님을 이겼다.’가 아니다. 이스라엘은 주도하다.’, ‘다스리다는 뜻의 사라라는 단어와 하나님을 뜻하는 이라는 단어가 결합된 것이다(이 두 단어가 결합된 미완료 직설법 형태).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주도하신다.’하나님께서 다스리신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다른 사람의 발목을 붙잡고 속이며 싸우는 삶을 살아온 야곱이다. 그런 그가 이제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사람이 되었다하나님께서 기꺼이 져주시기로 작정하신 한 사람이 되었다그러니 이제부터는 속이는 인생, 붙잡고 싸우는 인생으로 살지 말라는 것이다(사실 그의 허벅지 관절을 쳐서 어긋나게 만든 것도 이 때문이다. 물리적으로 씨름을 할 수 없도록 만든 것이다.). 대신 하나님께서 주도하시고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인생, 곧 이스라엘로 살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기도신학이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내 뜻을 맞추기 위해 내 뜻을 꺾는 것이다. 하나님을 단단히 붙잡기 위해 내가 붙잡고 있는 것들을 끊어내는 것이 기도다. 이와 같이 야곱의 존재가 바뀌게 된 것이다. 자기 지식과 지혜힘과 능력으로 사람을 속이고 싸워 이겼던 인생이 하나님께서 주인이 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 주도적인 인생이스라엘로 변화된 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존재로 변화되었다. 이것이 입니다. 복은 자기 힘으로 움켜쥐고 싸워서 얻는 것이 아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전능하신 하나님께 붙들려있는 것이다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인 되시고 다스리시는 인생이 복된 것이다. 비로소 야곱은 이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이후 변화된 그의 모습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브니엘이란 지명과 에서와의 상봉장면).

 

하나님의 얼굴을 발견하는 사람으로

이제 야곱은 하나님과 더불어 진정한 승리자가 되었다. 세상을 쫓고자신의 안위를 위해 사람을 속이고무엇인가를 붙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우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힘이 되어주시고, 하나님이 능력이 되어주시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며, 하나님께서 붙드시는 인생이 되었다. 그래서 형(에서)의 얼굴에서도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의 밤에 홀로 남겨진 우리에게도 찾아오셔서 물으신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 ‘너는 너의 힘과 능력으로 불안과 두려움을 떨쳐내려고 스스로 사람과 세상과 싸우는 인생이냐아니면 나의 손에 붙들려서 내가 대신 싸워주는 인생이냐?’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우리는 본문을 통해 분명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리도 인생의 어려움과 문제로 인해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여 인생의 밤을 지나고 있을 때, 하나님과 씨름하면하나님을 붙잡으면하나님께서 외면하지 않으시고 상대해주신다는 사실이다. 자비와 인자로 져주시는 은혜를 누리게 된다는 사실이다. 야곱이 그 증인이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중심에 좌정하시고, 우리의 걸음을 붙드신다. 이 믿음의 정체성을 확고히 해야 한다. 인생의 모든 순간에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임마누엘의 은혜를 새겨야 한다. 믿음은 자신의 힘과 능력지혜와 지식을 의지하지 않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저는 다리를 이끌고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이다. 그러면 원수와 같던시기하고 질투하며 불화하였던 이웃의 얼굴에서형제자매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발견하게 된다우리 또한 하나님의 얼굴을 드러내는 삶이 된다.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우리의 얼굴을 통해삶을 통해 밝히 드러낼 수 있는 복된 믿음의 삶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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