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통즉통(不通卽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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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936회 작성일 24-07-20 09:15본문
불통즉통(不通卽痛)
충청도 어느 시골 이발소에 한 미국인이 들어왔습니다. 이발소 주인아저씨가 그 미국인에게 인사했습니다. ‘왔시유?’ 충청도 말로 ‘어서 오세요.’ 라는 뜻이었는데, 미국인은 이발소 주인의 말을 ‘What see you?’(당신은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로 착각해 들었습니다. 미국인은 완전한 표현은 아니지만 시골 아저씨치고 그 정도면 훌륭한 영어실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미국인 앞에는 이발소의 큰 거울이 있었고, 문장이 길어지면 아저씨가 알아듣지 못할까싶어 딱 한 마디로만 대답했습니다. ‘미러’(mirror, 거울).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미국인이 의자에 앉자마자 이발소 주인은 커트용 전동식 이발 기계로 미국인의 머리를 빡빡 밀어버렸습니다. ‘미러’(mirror)라는 말을 거울이 아니라 ‘머리를 밀어’라는 말로 알아들은 것이었습니다.
물론 누군가 웃자고 지어낸 말이겠지만 이 우스갯소리에는 중요한 삶의 통찰이 있습니다. 그것은 소통이 되지 않는 삶에는 고통이 따라온다는 것입니다(不通卽痛). 소통은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만약 우리의 말이나 뜻이 서로 통하지 않고 오해만 불러일으킨다면 분명 그것만큼 답답하고 괴로운 일도 없을 것입니다. 서로의 말을 경청하고 이해하려는 노력만이 소통과 고통의 의미가 같아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通卽不痛). 이는 단순히 인간관계뿐만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집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성대로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소통이 잘 이뤄지면 풍성한 생명과 형통의 복을 누리게 됩니다. 신앙생활에서 말씀과 기도, 특히 예배를 소중히 여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와 같은 경건생활의 활동이 하나님과의 소통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말씀과 기도,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의 활발한 소통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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