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닮은 청년 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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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199회 작성일 25-05-18 12:58본문
주님을 닮은 청년 요셉
창45:1~8
2025. 5/18 11:00(청년주일)
발가락이 닮았다!
김동인의「발가락이 닮았다」라는 단편소설이 있다. 주인공 M은 젊어서 무절제한 생활을 하다가 심하게 성병을 앓게 되었고, 그 결과 불임이 된 채로 결혼을 한다. 신혼 때 아내를 사랑하였고, 두 사람은 금슬이 좋았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불임에 대한 자격지심 때문에 아내를 상습적으로 폭행하면서 두 사람 사이는 금이 가게 되었다. 그러던 중 아내가 임신하여 아이를 낳게 된다. M은 자기 아이일 수 없는 그 아이를 보면서 분노보다는 깊은 죄책감에 빠진다. 젊은 시절 무절제한 생활로 불임이 된 것과 상습적으로 아내를 폭행한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그 아이를 자기 아이라고 주장한다. 처음에는 본 적도 없는 자기 할아버지를 닮았다고 우기다가 양말을 벗어서 아이가 자기 발가락이 닮았다고 우긴다. 이 소설의 핵심은 비극적인 현실 속에서도 이성적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즉, 합리적으로 현실에 적응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두 가지를 생각했다. 하나는 인간관계에서 서로 다른 점을 찾기보다 같은 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다른 점에 집중하다 보면 다투게 되고, 결국은 갈라서게 된다. 그러나 사소한 것이라도 같은 점을 찾으면 화목하게 되고 하나가 될 수가 있다. 이것이 좋은 관계의 비결이다. 화목한 가정을 보면 항상 서로 같은 점에 집중한 것을 볼 수가 있다. 다른 하나는 주님을 믿고 섬기는 사람으로서 어떤 부분에서 얼마만큼 주님을 닮고 있을까? 주님을 그렇게 오래 믿으면서도 아직도 주님을 제대로 닮지 못하고, 그저 발가락이 닮았다고 우기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았다. 여러분은 어떤가? 얼마나 주님을 닮았는가? 주님을 닮은 구석이 없어서 양말을 벗고서 발가락이 닮았다고 우기고 있지는 않는가? 우리가 이만큼 주님을 믿었으면 주님을 더 닮아야 하지 않을까?
주님을 닮은 사람
성경에서 가장 주님을 닮은 사람을 찾는다면 누구를 들 수 있을까? 나는 누구보다도 요셉을 꼽고 싶다. 그 이유는 다음 몇 가지 때문이다. 우선 주님처럼 팔렸다는 점이다. 주님께서 가룟 유다에 의해 은 30에 팔리셨던 것처럼 요셉도 형들에 의해서 은 20에 팔렸다. 다음으로 주님처럼 죄 없이 모함을 받아 죄인이 되었다는 점이다. 주님께서 동족인 유대교 지도자에게 미움을 받아 죽으신 것처럼 요셉도 형제의 미움을 받아 노예로 팔렸고, 유대교 지도자에게 모함을 받아 십자가형을 받으셨던 것처럼 요셉도 보디발의 아내에게 모함을 받아 옥에 갇혔다. 또한 주님처럼 용서했다는 점이다.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을 용서하셨던 것처럼 요셉도 자기를 모함한 형들을 용서했다. 그래서 나는 창37장에서 50장까지 기록된 요셉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주님께서 주시는 강렬한 메시지를 듣게 됐다. 우리가 요셉처럼 주님을 닮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요셉은 얼마나 주님을 닮았을까? 성경에 나오는 요셉 이야기에서 세 가지 단어를 주목하게 되었다. 그 세 가지 단어는 바로 ‘꿈’, ‘고난’,그리고 ‘용서’다.
꿈
요셉의 인생을 전체적으로 조망해 보면 한 마디로 ‘꿈’으로 설명할 수 있다. 어려서 꿈을 꾸었고, 자라면서 그 꿈을 간직했고, 나이 들어 그 꿈을 이루었다. 그래서 그의 인생은 꿈으로 시작되었고, 그 꿈을 이루며 마무리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성경은 요셉이 17살 청소년 시절에 꾸었던 꿈 두 가지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창37:5~11). 이 두 꿈은 공통점이 있다. 형제들과 심지어 부모까지도 자기를 높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 꿈 때문에 형제들에 의해 노예로 팔리게 되었다. 이제 세월이 많이 흘렀고, 요셉은 종으로 팔려온 이집트 땅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로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다. 어느 날 뜻밖에도 형들이 곡식을 구하기 위해 자기를 찾아와 자기에게 절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는 형들과 가족을 가뭄에서 구해 낸다. 아예 가족을 모두 이집트로 이주시켰다. 그는 이런 과정에서 청소년기에 꾸었던 꿈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꿈을 꾸게 하셨고, 그 꿈대로 자기를 가족 중에서 높이셨고, 자기를 통해 그들을 구원하게 하셨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나아가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이루는 소중한 도구로 사용하셨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것은 우리 주님도 마찬가지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1:21). 하나님께서 주님의 이름 안에 하나님의 꿈을 담아놓으셨다는 것을 말한다. 주님은 평생 이 꿈을 마음에 간직하며 사셨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그 꿈을 이루셨다. 한 마디로 주님은 하나님께서 주신 꿈이 있는 인생을 사셨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주님과 요셉은 서로 참 많이 닮았다. 둘 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꿈이 있는 인생을 살았고, 마침내 그 꿈을 이루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리는 인생을 살았다.
고난
요셉의 인생을 특징짓는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가 바로 ‘고난’이다. 그는 청소년 시절 생각지 못한 고난을 겪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고난이 인생 자체를 송두리째 뒤바꿔놓았다. 그는 아버지의 총애를 받던 자리에서 노예의 자리로 떨어지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부잣집 사랑받는 아들이 하루아침에 말도 통하지 않고 아는 사람도 없는 이국땅에 종이 되고 만 것이다. 아직 청소년 시기였던 그에게 이 일은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이었다.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충성스럽게 섬겼던 주인의 아내에게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그리고 그 감옥에 갇혀 거의 2년 동안 사람들로부터 완전히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요셉이 침착하게 이런 고난과 맞섰다는 것이다. 그는 누구를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다. 절망하지도 않았다. 묵묵히 고난을 겪어내며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다. 이런 모습은 주님에게서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주님께서도 죄가 없는 분이시지만 죄인처럼 끌려다니면 재판을 받으셨다. 그리고 죄가 없는 분이시지만 빌라도에게 십자가형을 선고받고, 온갖 모욕을 받으며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누구를 원망하시지 않으셨다.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으셨다. 묵묵히 짊어지셔야 할 십자가를 지셨다.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겪으셨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다. 이 점 또한 요셉이 주님을 닮은 점이다. 사실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이룬다는 것 쉽지 않다. 여기에는 고난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니 그 고난을 통과해야 꿈을 이룰 수가 있다.
용서
요셉이 가장 주님을 닮은 부분은 바로 ‘용서’하는 모습이다. 요셉의 형들이 양식을 구하기 위해 이집트로 왔다. 그때 그는 단박 그들을 알아보았다. 물론 형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요셉이 얼마나 놀랐을까? 그리고 얼마나 화가 났을까? 오랜 세월 잊고 있었던 마음의 고통이 떠올랐을 것이다. 그런데 이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 순간 그에게 떠오른 것은 과거의 끔찍한 트라우마가 아니었다. 그의 꿈이었다. ‘요셉이 그들에 대해 꾼 꿈을 생각하고’(창42:9). 청소년기에 꾸었던 꿈이 생각이 났다는 것이다. 사실 그는 지금 그 외나무다리 위에서 원수인 형들을 만난 것이다. 당연히 그들이 자기에게 저지른 그 악행이 생각나야 정상이다. 통쾌하게 복수할 생각을 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이 순간에 지난날 꾸었던 꿈이 생각이 났다.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역사다. 하나님께서 지난날 그의 마음에 담아두셨던 그 꿈을 지금 이 순간에 생각나게 하신 것이다. 이 순간이 원수를 갚은 때가 아니라 그 꿈을 이룰 때임을 알게 하신 것이다. 그래서 그는 형들에 대한 분노를 가라앉히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게 된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이곳에 보내셨나이다.’(창45:5). 이렇게 그는 자기를 사지로 몰아넣었던 형들을 용서했다. 용서한 정도가 아니라 그들과 그 가족까지 돌보아 주었다. 이런 모습은 주님께서 명확하게 보여주셨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눅23:34). 요셉은 이와 같이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다.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신 예수님을 닮아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며 산 것입니다. 요셉이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그렇게 해야 합니다.
주님을 닮자!
10여 년 전 미국의 오하이오 주의 차든 고등학교에서 끔찍한 총기사고가 발생했다(2012년). 한 학생(T.J. 레인)이 구내식당에서 총으로 난사하여 1명이 현장에서 죽고, 두 명이 병원에서 숨졌고, 다른 두 명은 중태에 빠졌다. 그런데 병원에서 치료 중 사망한 드미트리우스 휼린의 어머니 필리슨 퍼거슨이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가해자를 용서한다고 말해 큰 감동을 주었다. 그녀는 인터뷰 중에 이렇게 말했다. ‘저는 아들에게 과거 속에서 살지 말고 용서함으로 늘 오늘을 살라고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날마다 새롭고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용서의 마음으로 용서했습니다. 총을 쏜 학생은 자신의 죄를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요셉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한마디로 말하면 주님을 닮은 사람이다. 주님의 그림자로, 장차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어떤 삶을 사실지를 미리 보여주었다. 이제 우리도 주님을 닮아야 하고, 또한 닮으려 해야 한다. 그저 주님을 믿는 자리에 머물러 있지 말고 주님을 닮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한다. 특히 우리 청년들이 요셉처럼 주님을 닮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우리의 삶으로 주님을 보여주어야 한다. 세상이 우리를 보고 주님을 상상할 수 있도록, 우리를 보고 주님께서 계신 그 나라를 상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꿈을 이루기 위해 고난을 이겨내며 살아야 한다. 그리고 용서하며 살아야 한다. 이것이 요셉처럼 주님을 닮는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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