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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을 부르는 짐, ‘직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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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154회 작성일 25-01-19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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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을 부르는 짐, ‘직분

4:11~12

2025. 1/19 11:00

내 등의 짐

그리스 신화에 현대인의 표상이 되는 인물이 나온다. 그는 고린도 시를 건설한 시지프스(Σίσυφος). 그는 신들처럼 불멸의 존재가 되고 싶어서 신들을 속이기까지 한다. 그래서 신들의 제왕 제우스의 분노를 사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된다. 그가 받은 형벌은 거대한 바위를 산 정상까지 올려다 놓는 것이다. 그런데 바위가 산 정상에 다다르면 다시 산 밑으로 굴러 떨어져 처음부터 바위를 정상으로 올려다 놓아야하는데 이 일을 영원히 반복하는 것이다. 우리 인생이 이와 같다는 것이다. 인생이란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는 거대한 바위와의 싸움이라는 것이다. 바위는 곧 우리가 감당해야 할 .

 

짐 없이 사는 사람은 없다.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나서 저마다 힘든 짐을 감당하며 살아간다. 사실 우리 인생 자체가 짐이다. 가난도 짐이고, 질병도 짐이고, 건강도 짐이다. 만남도 짐이고, 헤어짐도 짐이고, 미움도 짐이고, 사랑도 짐이다. 가족도 짐이고, 자녀도 짐이고, 부모도 짐이다. 신앙생활도 짐이고, 교회에서 맡은 직분도 짐이고, 심지어 예배도 짐이다. 살면서 부닥치는 일 중에서 짐 아닌 것이 없다. 그러니 다리가 휘청거리고 숨이 가쁠지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짐을 즐겁게 지는 것이 현명하다. 언젠가 짐을 풀 때가 되면 짐의 무게만큼 보람과 행복을 얻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아프리카 어느 원주민은 강을 건널 때 큰 돌덩이를 지고 건넌다고 한다. 급류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다. 무거운 짐이 자신을 살린다는 것을 깨우친 것이다. 헛바퀴가 도는 차에는 일부러 짐을 싣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짐이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다. 짐을 한번 져보라. 자연스럽게 걸음걸이가 조심스러워진다. 절로 고개가 수그러지고 허리가 굽어진다. 시선이 자꾸 아래로 향한다.


 

직분을 주신 이유

우리 교회를 포함해서 이 땅의 모든 교회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이를 바울은 이렇게 표현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고전1:2). 교회는 현실적으로 고린도라고 하는 세속도시에 존재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교회라는 것이다. 이것을 가리켜 교회의 세속성거룩성이라고 말한다. 신앙 공동체인 교회 안에 많은 문제가 있고 문제가 발생한 이유는 이와 같은 세속성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교회를 거룩한 공동체라고 부르는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께 속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실의 교회는 이 둘 사이의 긴장 속에 있다. 이러한 세속성을 극복하여 하나님을 닮은 거룩한 공동체로 나아가는 것이 현실 교회의 목표다. 이와 같은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쏟고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여러 직분자를 세운 일이다.


 

우리 교회가 개척하지 벌써 20년이 되었다. 그동안 네 차례 장로, 안수집사, 권사를 투표를 통해 세웠다. 아마 제가 담임목사로서 사역을 마칠 때까지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면 두 번 정도 더 항존직을 세울 수 있을 것 같다. 목회하면서 감동적인 순간 중에 하나가 직분자를 세우는 일이었다. 충성되고 좋은 일꾼은 그 무엇보다 귀하고 보람된 목회의 열매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제가 임의로 한 일이 아니고, 말씀을 따라 그렇게 한 것이다. 본문은 교회가 왜 일꾼을 세워야 하는지, 곧 직분을 주신 이유에 대해 말씀을 하고 있다. 우선 당시 교회에 있었던 직분을 소개하고 있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11). 교회 안에 여러 직분이 있는데, 그 직분을 주신 이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그러니 직분자는 교회의 일꾼도 목사의 일꾼도 아니다. 하나님의 일꾼이다. 그리고 이어 직분을 주신 이유, 혹은 일꾼을 세우신 이유를 말씀한다.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12). 그렇다. 궁극적으로 교회를 굳게 세우기 위해서 우리 주님께서 각 사람에게 은사에 따라 선물로 직분을 주신 것이다.

 

첫째, 성도를 온전케 하기 위함이다. ‘온전하게’(καταρτισμν)란 사전적으로 준비능력자질장비훈련’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오직 이곳에만 나온다온전하다는 말은 부러지거나 위골된 뼈를 맞추고, 찢어진 그물을 수리한다는 뜻이다. , 언제든지 사용하기 편리하도록 모든 것을 잘 준비하고 구비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영어성경은 이큎’(equip)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 뼈가 부러지거나 위골이 되면, 그물이 찢어져 있으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 목적한 바를 성취할 수 없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직분을 주신 이유는 주님께서 사용하시기에 편리하도록 먼저는 자신을 잘 준비하는 것, 그 자격과 조건을 갖추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다른 사람을 그렇게 하는 것이다. 주님께 충성스러운 사람으로 쓰임을 받을 수 있도록 잘 준비시키는 것이다.


 

둘째, 봉사의 일을 하게 하기 위함이다.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에서, ‘하게 하며에 해당되는 헬라어 단어가 목적의 의미를 가진 전치사 에이스’(ες). 이것은 성도를 온전케 하는 목적이 봉사의 일을 하게 하기 위해라는 것이다. , 직분을 주신 이유가 교회의 유익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란 뜻이다. 직분은 자기만족이나 자기성취의 수단이 아니라는 것이다. 계급이나 권력을 휘두르는 도구가 아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직분을 지위나 서열로 생각하고 있다. 직분은 결코 지위가 아니라 섬김의 도구다. 봉사와 섬김을 헬라어로 디아코니아’(διακονία)라고 한다. 여기서 집사란 말이 나왔다. 이는 디아’(διά)코니아’(κονία) 두 단어의 결합인데, ‘~를 통하여란 뜻의 디아와 먼지를 뜻하는 코니아를 합쳐 먼지를 통하여라는 뜻이 된다. 여기서 먼지를 턴다.’ 혹은 먼지가 나도록 뛰어다닌다.’는 의미를 유추할 수가 있다. 먼지가 나도록 뛰어다며 먼지를 털고 청소를 하는 사람이 섬기는 사람이란 뜻이다. , 더러운 곳을 치우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을 먼지로 생각하는 사람, 이렇게 자신을 작은 사람으로 여기는 겸손한 사람이어야 이 일을 감당할 수가 있다. 교회에서 직분자가 이런 사람이고,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다. 이런 일을 성공적으로 잘 감당하기 위해 자신을 준비하고, 또한 다른 사람도 준비시키는 사람이다.


 

셋째,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함이다성도를 온전하게 한 이유가 봉사(섬김)의 일을 하게 하는 것이었는데, 봉사의 일을 하게 한 이유는 그리스도의 몸(교회와 성도)을 세우기 위함이다. 이것이 직분을 주신 궁극적인 목적이다. 하나님께서 직분을 주신 것은 결국 개인의 유익보다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직분자가 하나같이 주님의 몸을 세울 때 교회는 활력을 얻게 되고, 건강하게 부흥하는 교회가 된다. 여기서 주님의 몸을 세운다는 것은 13절이 말씀하고 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것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한 마디로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의 성숙한 인격을 닮는 것이다. 주님 안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격이 성숙하도록 돕는 것이다. 교회는 조직 이상의 공동체다. 교회의 본질은 사람이다. 교회는 사람을 섬겨 사람을 주님의 인격을 온전히 닮는 사람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행하는 모든 섬김의 초점은 일 자체가 아니라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으로, 어떻게 주님을 닮도록 섬길까? 그것은 사랑이다.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하면, 그리고 사랑을 받으면 변화가 일어난다.


 

직분이라는 짐

흔히 교회의 직분을 가리켜 감투가 아니라 십자가이고, 혹은 명예가 아니라 멍에라고 말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이라는 뜻이다. 특히 부담스러운 짐이라는 것이다. 참으로 마음이 아프면서도 감동적인 글을 보았다. 초대교회 감독들이 모이면 외팔이나 절름발이, 애꾸눈으로 성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고문과 핍박으로 팔이 잘리고, 다리가 불구가 되고, 눈이 뽑혀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평화로운 시기에 신앙생활을 하고 있어서 그렇지 누구의 말대로 직분의 서열은 곧 순교의 서열이라는 말이 맞은 것 같다. 그러니 직분이 감투가 아니라 십자가이고, 명예가 아니라 멍에라는 표현이 전혀 과장이 아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직분을 사모하고, 맡겨주었을 때 충성스럽게 잘 감당한 이유는 직분의 유익과 영광을 알기 때문이다. 직분이 무거운 짐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냥 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직분은 축복을 부르는 짐이고, 영광을 부르는 짐이다.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딤전3:13). 직분의 종류가 아니라 그것을 감당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주님의 복은 직분의 종류에 따라 주어진 것이 아니라 감당하는 태도에 따라 주어진다. 2025년도에 각자에게 주어진 사역이 복을 부르는 짐이라 믿고 충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의 복이 따라다니는 금년 한 해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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