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의 마지막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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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696회 작성일 24-10-06 18:05본문
사명의 마지막 길
신34:1~10
2024. 10/6(성령강림 스물한 번째 주일)
잘 죽는 것(Well-dying)도 중요하다.
좋은 신앙인으로 ‘잘 사는 것’(Well-being)도 중요하지만 신앙적으로 ‘잘 죽는 것’(Well-dying)도 중요하다. 특히 성도라면 마땅히 영원의 관점에서 살아가면서 존엄하게 죽음을 맞이할 훈련을 해야 한다. 이에 대한 좋은 본보기가 ‘모세’다. 본문은 모세의 죽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모세의 죽음과 관련된 4가지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죽음의 순간까지 눈은 빛을 잃지 않고 기력은 정정했다는 것, 느보산에서 요단 서편 땅을 두루 보게 하셨다는 것, 여호수아를 차세대 지도자로 안수했다는 것, 마지막은 죽은 다음 무덤조차도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모세오경의 마지막 부분이자, 신명기의 마지막 장에 기록된 모세의 죽음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교훈이 무엇일까? 역사상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없음을 감안할 때, 모세의 마지막 모습은 ‘사명의 마지막 길’을 이해함에 좋은 귀감이 된다. ‘우리는 어떻게 사명의 마지막을 완성해야 할까?’ 이 질문으로 모세의 생애를 통해 몇 가지 교훈을 생각해 보려고 한다.
‘순종함으로’사명을 완성하라.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하시매’(4).
모세는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다. 죽음까지도 하나님께 순종하면서 받아들였다. 모세의 마지막 사명은 느보산에서 죽는 것이다. 여기서 사명의 완성이 마지막까지 순종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결과를 보고 싶은 욕망이 있다. 모세에게 가나안이 그것이다. 그래서 모세는 가나안 입성불허라는 자신의 슬픈 현실을 신명기 초반(1:37,3:25)과 끝부분(32:51,34:4)에 각각 두 차례 언급하고 있다. 그는 이 문제를 놓고 기도도 했다. ‘그때에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시를.....구하옵나니 나로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3:23~25). 모세의 간절함이 느껴지는 장면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단호했다.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3:26). 사실 모세의 가나안 입성여부는 하나님께 중요치 않았다. 순종이 중요했다. 하나님께서 멈추라고 하실 때 멈춘 순종이 중요하다. 사명이란 순종이다. 모세는 순종을 통해 사명을 완성하였다. 순종이 곧 사명이다.
‘분별함으로’사명을 완성하라.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7).
죽기 전 모세의 상태에 대한 말씀이다. 모세는 죽음의 순간에도 ‘눈이 흐리지 않고, 기력이 정정했다.’ 여기서 두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하나는 보통 사람은 죽을 때가 아니라고 생각할 때, 죽음을 맞는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임종을 맞는 분에게서 느끼는 것은 ‘아직 죽을 때가 아니라’는 회한의 눈빛이다. 어느 신학자의 말처럼, ‘모세는 죽지 않아도 되는 때 죽은 사람’이다. 죽지 않아도 되는 때 죽어야 하는 것, 이것이 가장 힘든 신앙인의 싸움이다. ‘날마다 죽어야 하는 길’을 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신앙의 싸움은 한마디로 ‘죽지 않아도 되는 때 매일 죽어야 하는 것’이다. 사실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청년의 정신이 가득할 때, 하나님 안에서 죽는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지금 모세의 육체는 젊은이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런데 죽어야 했다. 다른 하나는 ‘눈은 빛을 잃지 않았다.’는 말씀은 분별력이 살아있다는 뜻이다. 확대 해석해보면 영적 분별력이 사라지지 않은 상태다. 모세는 눈의 빛이 사라지지 않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느보산에 섰다. 그리고 영적인 눈으로 가나안을 보았다. 느보산에는 세 개의 봉우리가 있다. 가장 높은 봉우리는 835m, 중간은 790m, 그리고 모세가 오른 비스가산은 710m 봉우리다. 하나님은 서해까지의 온 땅을 보여주셨는데, 여기에서 ‘서해’란 지중해를 말한다. 70km가 훨씬 넘는 먼 거리다. 중간에는 800m가 넘는 감람산 봉우리까지 있어 육안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보여주신 것은 육신의 눈이 아니라 영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한 것이다. 영적 분별력으로 가나안을 보았던 것이다. 분별함으로 사명을 완성해야 한다. 마지막까지 영적 분별력이 사라지지 않는 성도가 되었으면 좋겠다.
‘연결함으로’사명을 완성하라.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영이 충만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더라.’(9).
모세의 사명은 ‘여호수아에게 안수함’으로 완성되었다. 여호수아는 믿음의 사람이자, 성실한 지도자였다. 40년이란 시간을 통해 검증된 지도자였다. 인재경영에 관한 정설이 있다. ‘리더가 리더를 알아본다.’ 유유상종, 끼리끼리 모인다는 말은 사실이다. 그러니 리더가 리더를 알아본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리더가 되기 위한 첫걸음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능력이다. 진정한 리더는 리더가 될 제목을 끌어당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리더는 생각하는 것이 같다. 리더가 표현하는 감정은 다른 리더가 감지할 수 있다. 리더는 리더가 될 제목을 끌어당기는 환경을 만든다. 리더는 큰 재목이 될 사람에게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 리더는 본능적으로 사람의 수준을 평가하고 자신과 같은 수준 혹은 자신보다 높은 수준의 리더에게로 움직인다.’ 사울은 사람이 떠나는 사람, 다윗은 사람이 모이는 사람이다. 리더가 리더를 알아보기 때문이다. 미래의 지도자를 육성하는 것은 성경적 요구다. 예수님께서는 12명의 평범한 사람을 불러 훈련시켰다. 그 중에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핵심 제자그룹으로 세워가셨다. 바나바는 바울을 훈련했고, 바울은 디모데를 훈련했다. 베드로는 마가 요한을 세웠다.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의 사명을 이어달릴 수 있는 사람을 세워가고 있는가? 부모가 없을 때를 대비해서 자녀를 키워야 하듯 지도자가 없을 때를 대비해서 지도자를 세워가야 한다.
‘사라짐으로’사명을 완성하라.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벳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의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느니라.’(5,6).
모세는 느보산에 올라가서 죽었다. 오늘날까지 그의 무덤을 아는 사람이 없다. 모세는 수행자 한 명도 없이 홀로 외롭게, 오직 하나님만 아시는 곳에서 죽었고, 거기에 묻혔다. 위대한 지도자의 최후라고 하기에 초라하기 짝이 없다.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비방하는 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유1:9). 칼빈은 이 유다서에 근거하여 모세를 하나님처럼 따랐던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시체를 숭배할 위험이 있어서, 하나님께서 미가엘 천사장을 보내 모세의 시신을 인간이 알지 못하는 곳에 장사했기 때문에 아무도 알지 못한다고 해석하였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무덤을 알지 못하게 하신 것에는 이처럼 영적 의미가 있다. 아무리 위대한 사람도 그는 피조물에 불과하기 때문에 신격화해서는 안 된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위대했던 지도자였지만 그도 한 인간이요, 절대자는 아니었다. 성경은 그 어떤 위대한 믿음의 인물도 신격화되는 것을 배격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조용히 사라지게 하신 것이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하나 모세는 소유도 없이 흔적도 없이 그렇게 죽음으로 들어갔다. 아름다운 뒷모습이며, 바람직한 마무리다.
아름다운 마무리
「가나안을 거절당한 모세」라는 동화의 내용이다. 모세는 터벅터벅 비스가산 꼭대기로 올라갔다. 가나안 땅을 한참 바라보다 힘없이 무릎을 꿇었다. 그 때 하나님께서 그를 찾아오셔서 그의 어깨에 손을 얹고 가만히 물으셨다.
“슬프냐?” ‘아닙니다.’
“섭섭하냐?” ‘아닙니다.’
“억울하냐?” ‘아닙니다.’
“화 나냐?” ‘아닙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엎드려 있느냐?” ‘너무 행복해서입니다.’
“행복하다고? 무엇이 행복한데?”
‘광야에서 하나님과 함께했던 순간순간이 제게는 가나안이었습니다.’
바로 여기에 모세가 가나안 입국거절에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끝까지 순종하는 충성스러운 사람이 된 비결이 있다. 아름다운 뒷모습을 남기게 된 비결이 있다. 또한 이것이 행복한 신앙생활의 비결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을 바라보며 살았지만 모세는 이미 가나안을 누리고 살았다. 때문에 그들은 광야를 불평과 원망으로 살았고, 모세는 은혜와 감사로 살았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끝까지 순종하는 충성의 삶으로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우리 또한 천국을 바라보는 것을 넘어 지금 여기서 천국을 누리는 삶을 통해 사명을 아름답게 마무리 짓는 행복한 성도가 되기를 소망한다.
관련링크
- https://youtu.be/6kxnzn-eIHM 278회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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