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파합시다.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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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2,031회 작성일 24-06-02 14:34본문
전파합시다. 예수님!
행8:26~36
2024. 6/2. 11:00(성령강림 셋째 주일)
선택하신 이유
요15:16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이 우리를 선택하신 이유를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그것은 열매를 맺고, 열매가 항상 있게 하기 위함이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씨를 뿌려 곡식을 거두는 것과 같다. 무엇이든 먼저 씨앗을 뿌려야 열매를 거둘 수 있고, 또한 다음 세대로 계속 번식해간다. 심지 않으면 열매도 다음도 보장할 수가 없다. 이것은 식물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영적인 생활도 마찬가지다. 전도는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일이다. 그래서 전도는 교회를 생존하게 하고, 인류에게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게 하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주님께서 나를 부르시고 구원하신 목적이며, 주께서 친히 전도의 모범을 보이셨고, 또 명령하신 것이다. 그래서 전도를 성도의 사명, 교회의 사명이라고 한다. 요즘 낮은 출산문제로 교회의 자연감소도 문제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주님께서 교회와 성도를 선택한 이유를 망각하고 살고 있는 점이다.
사마리아에서 가사로
본문은 초대 예루살렘교회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이었던 빌립이 에티오피아 한 내관에게 복음을 전한 이야기다. 본문의 조금 앞부분(4~7)에서, 빌립이 사마리아 지역으로 가서 복음을 전한 사건이 나온다. 많은 사람이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그 말을 따랐는데, 귀신이 떠나가고 병든 자가 나았다. 빌립은 섬기는 집사로 세움을 받았으나 복음을 전할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교회가 핍박을 받아 각 지역으로 흩어지자 섬기는 집사에서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된 것이다. 그는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꺼리는 지역 사마리아로 가서 온 힘을 다해 전도를 했다. 그곳에서 그의 전도사역은 앞에서 소개한 대로 큰 성공을 거뒀다. 그런데 그때 성령께서 말씀하셨다. 사마리아를 떠나 남쪽으로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는 것이었다. 문제는 그 길은 ‘광야’였다(26). 한창 성공적으로 전도사역을 하고 있고, 사마리아에서 가사까지는 100㎞가 훨씬 넘는 거리였다. 그것도 사람이 많이 사는 도시나 마을이 아니라 사람이 없는 광야로 보낸 것이다. 참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말씀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순종을 했고, 그곳에서 의외의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예루살렘에서 오순절 절기를 마치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고 있는 에티오피아 내관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한 가지 사실은 전도는 성령께서 ‘주도하시는’ 사역이라는 것이다. 또한 전도사역은 ‘성령의 도우심을 가장 강력하게 경험할 수 있는’ 비결이라는 것이다. 빌립의 사마리아에서 전도할 때 많은 기적, 곧 귀신이 떠나가고 병이 치유된 사건, 그리고 많은 사람이 그의 말을 듣고 순종한 것이 그것이고, 사마리아에서 전도하고 있는 그를 광야 길로 보내어 에티오피아 내관을 만나게 하신 것도 그렇다. 성령의 은사는 사역의 도구이고, 성령의 핵심사역이 전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도현장, 전도하는 사람에게 성령의 역사하심이 크게 나타나게 된다.
에티오피아 내관에게 전한 복음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 북부 이집트 옆에 있는 나라다. 아프리카 중 유일하게 유대교를 믿는 나라로 구약시대에는 구스라고 불렸다. 우리나라와도 관련이 깊은 나라다. 6.25전쟁 때 연합국 16개 참전국 중 한 나라가 그들이다. 강뉴(초전박살이란 뜻)라는 부대 명칭을 가지고 6,037명이 참전하여 253전 전승을 한 최강의 부대였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나치정권이 유대인을 학살할 때 유대인에게 피난처를 제공했던 나라이기도 하다. 그리고 신약시대에는 아프리카에서 거의 유일하게 기독교 국가였다. 북아프리카 대부분의 나라가 이슬람화되었으나 그들만 완전히 이슬람화되지 않았다. 물론 그들도 많은 지역이 이슬람화가 되었는데, 남쪽 지방은 여전히 8~90%가 기독교인인 나라다. 그들이 거의 2천년 동안 아프리카에게서 유일하게 기독교 국가가 된 이유가 바로 본문에 나온다. 빌립이 에티오피아 내관에게 복음을 전한 것이 그 계기가 되었다.
빌립이 성령의 지시를 받아 가사로 가는 광야 길에서 그를 만났는데, 그가 누구인지 성경은 그 이름을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열정이 대단했던 사람인 것은 분명하다. 순천에서 서울까지 왕복 2번에 해당되는 거리(약1,500km)를 오순절 절기를 지키기 위해 왔다가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유대교를 믿지만 이방인으로 절기를 지키기 위해 그 먼 길을 온 것도 대단하지만 덜거덕거리는 마차에서 이해하지도 못한 성경을 펼쳐들고 읽는 모습은 더욱 감동적이다.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데 수레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27~28). 성령에 이끌려 그곳에 도착한 빌립이 본 광경이다. 빌립이 그에게 접근하여 복음을 전했고, 그는 빌립이 전한 복음을 믿고 세례를 받았다(38). 여기서 우리는 성령이 왜 빌립을 성공인 사역의 현장을 떠나 사람이 없는 광야 길로 보내셨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있다. 그것은 ‘사모하는’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다. 그를 구원하기 위해 빌립을 보내신 것이다. 주님께서 사모하는 영혼을 얼마나 소중히 보시는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사모함은 신앙생활에서 아주 중요한 태도다. 사모함이 성도의 자세이고, 예배자의 자세이고, 기도자의 자세다. 이것이 주님의 주목을 받고, 주님의 은혜를 받고, 주님의 복을 받는 비결이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8:17). 한 사람의 간절함이 한 나라의 복음지도를 바꿔놓은 것이다.
더불어 생각할 것은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할 이유다. 본문은 단순히 에티오피아 간다게 여왕의 국고를 맡은 내관 한 사람의 구원 이야기가 아니다. 그 한 사람을 통해 한 나라가 어떻게 복음화가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복음전도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 말씀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할 이유를 잘 보여주는 말씀이다. 그것이 단순히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한 사람이 한 가족이 될 수도 있고, 한 지역, 본문에 나온 내관처럼 한 나라의 문제가 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회 있는 대로 복음을 전해야 한다. 예수가 능력이고, 답이다. 사람을 변화시키고 인생을 새롭게 하실 수 있는 능력이 주님께 있다. 예수를 만나면 심지어 정치, 경제, 자녀교육, 질병과 죽음의 문제도 해결된다.
전도생각
‘췌장암 조기발견 진단시약’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잭 안드리카(Jack Andraka)라는 소년에 대한 영상을 보았는지 모르겠다. 잭은 외톨이였고, 집안에서만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가 13살 되던 해 삼촌처럼 따르던 이웃 아저씨가 췌장암으로 죽었다. 책에서나 보던 죽음이 현실로 다가오자 큰 충격을 받은 그는 그때부터 췌장암에 대해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더 이상 사랑하는 사람을 이 질병으로 잃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서다. 그리고 그 결과 2년 만에 세계 최초로 가장 값싸고 빠르고 효과가 좋은 췌장암 조기발견 진단시약을 개발하게 된 것이다. 이 영상을 보고 누구의 말대로 생각이 참으로 힘이 세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이런 놀라운 결과가 한 소년의 생각에서 시작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생각이 중요하다. 어떤 생각을 자꾸 하면 결국 그 행동을 하게 되고, 그 행동을 반복하다보면 그런 사람이 된다.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잠23:7). 생각이 곧 그 사람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은 자기가 생각한 대로 된다는 뜻이다.
전도도 마찬가지다. 한국사회 주요이슈에 대한 기독교인 의식조사 분석’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60.9%가 ‘전도해본 경험이 전혀 없다’고 했다. 반면에 ‘있다’고 답한 사람은 39.1%다. 이는 천주교(73.8%)나 불교(77.3%)에 훨씬 미치지 못한 수치다. 적어도 우리 사회에서 가장 열정적으로 전도하던 사람들이었는데 이렇게 바뀌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왜전도를 안 할까? 물론 여기에는 여러 요인이 있다. 전도를 해도 결과가 없고, 특히 기독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좋지 않는 것, 그러다보니 성도로서의 자존감과 정체성이 흔들린 것도 그 원인 중에 하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전도에 대한 생각, 전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늘 전도에 대한 생각, 영혼구원에 대한 생각을 품고 사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도 전도를 하게 된다. 할 수밖에 없다. 전도에서 실패란 전도하지 않는 것뿐이다. 우리의 문제는 전도가 안 되는 것에 있지 않다. 진짜 문제는 전도를 하지 않는 것이고, 아예 전도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늘 전도에 대한 생각을 품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를 하면 반드시 열매가 있다. ‘하겠다.’ ‘해보겠다.’ ‘해야 한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는 전도생각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이 시간 여러분에게 전도생각을 품기 위한 방법으로 한 가지를 제안을 하겠다. 매일 전도와 관련된 찬양을 10번 이상 반복해서 듣는 것이다.
관련링크
- https://youtu.be/DPq5TldM7uM 831회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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