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님과 같은 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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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2,199회 작성일 24-05-19 13:35본문
성령님과 같은 스승
요14:16~17,26
2024. 5/19. 11:00(성령강림 주일)
삶을 바꾼 만남
인생은 만남의 연속이고, 만남이 인생의 질을 결정한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내세우는 성공의 비결이 있다. 그것은 ‘만남’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좋은 기회를 만나고, 좋은 책을 만나고, 좋은 스승을 만나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실제로 학창시절 좋은 선생님을 만나 인생이 바뀐 사람이 많다.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미켈란젤로도 그 중에 한 사람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미켈란젤로는 기억해도 그의 스승 베르톨도 조반니(Bertordo di Giovanni)는 기억하지 못한다. 베르톨도는 14세에 자기 문하생이 된 미켈란젤로의 놀라운 재능을 발견하고 그에게 물었다. ‘조각가가 되는 데 가장 중요한 조건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재능(기술)과 열정입니다.’ ‘맞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스승은 어린 미켈란젤로의 손을 이끌고 어느 술집으로 갔다. 술집 앞에는 아름다운 여인의 나체상이 세워져있었다. 그 다음 성당으로 인도했다. 그곳에는 아름다운 성모상이 서있었다. 스승이 물었다. ‘너는 어떤 조각가가 되고 싶으냐? 전자냐, 후자냐?’ ‘저는 하나님을 위해 저의 재능(기술)과 열정을 사용하겠습니다.’ 스승은 세 차례나 다짐하듯 물었고, 그는 세 번을 서약하듯 똑같이 대답했다. 삶에서 중요한 것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인 것처럼 예술가에게 중요한 것은 재능이나 열정이 아니다. 어디에,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그것을 사용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래서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재능과 기술과 열정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온전히 쏟아 붙게 되었고, 그 결과 불후의 예술가로 남게 되었다. 좋은 스승과의 만남이 이런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런 만남을 가리켜 ‘삶을 바꾼 만남’이라고 한다.
참 스승으로 보내주신 성령님
신앙생활도 만남이다. 특히 삶을 바꾼 만남이다. 복음서의 내용 대부분이 미켈란젤로에게 베르톨도 조반니처럼 참 스승이신 예수님을 만나 삶이 바뀐 사람들의 이야기다. 본문은 주님께서 이와 같은 사역을 마치고 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하신 약속이 있다. 그것은 주님과 같은 또 다른 스승을 세상에 보내주시겠다는 약속이다. 그분이 곧 ‘성령’이시다(16). 성령은 주님께서 이 땅을 떠나시면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스승이시다. 짧은 인생이지만 생각해보면 참으로 많은 사람에게 빚을 지고 살았는데, 여러 배움의 과정에서 만난 선생님도 그 중에 하나다. 그들은 오늘의 우리가 있기까지 여러모로 가르쳐주고 키워주었던 분이다. 이 스승의 주일에 참 스승이신 성령에 대하여 은혜를 나누려고 한다. 오늘이 또한 성령강림 주일이기 때문이다.
우리와 함께 해주시는 성령님
16절을 다같이 읽겠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17절도 비슷한 말씀이다.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주님은 잠시 후면 제자들을 떠나게 되신다. 그 대신 또 다른 보혜사 즉, 성령을 그들에게 보내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그런데 보내주신 그 성령이 그들과 ‘영원토록 함께 있게 하실 것’이라고 하셨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함께 하신 그가 어떤 존재냐다. 함께 해도 도움대신 짐만 된다면 오히려 골칫거리가 될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성령을 굉장한 능력자로 소개하고 있다.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사11:2). 이와 같은 실력과 능력을 갖춘 분이 우리를 ‘도우시는 분’(保惠師, Helper)으로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의 어떤 부분을 도우실까?
우선, 성령은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고(16:13),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신다(14:26). 성령은 진리이신 주님(요14:6)께로 우리를 인도하여 주님을 알게 하고, 주님을 주로 고백하여 믿게 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3). 그리고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주신다.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이 세상에 대하여, 특히 진리이신 주님에 대하여 모든 것을 가르쳐주신다. 그래서 죄의 심각성을 알고 죄를 멀리하며, 의를 사모하고, 이 세대를 분별하는 지혜를 갖게 된다. 우리를 행하신 주님의 뜻과 계획이 무엇인지 알고 실천한다. 또한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모든 것이 생각나게 하신다. 우리가 살면서 실수하거나 실족한 이유가 주님의 말씀을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말씀이 생각나서 위기를 극복하거나 위기를 기회로 만들도록 도우신 분이 성령이시다.
다음은, 성령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신다(롬8:24). 롬8장은 바울의 성령론을 요약해놓은 말씀이다. 여기서 바울은 우리 구원의 모든 과정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신 분이 성령이라고 말한다. 즉, 우리를 ‘거듭나게’(과거적 구원인 중생) 하고, ‘거룩하게’(현재적 구원인 성화) 하고, ‘영화롭게’(미래적 구원인 영화) 하신 분이 성령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우리가 연약하여 이런 일을 이룰 수가 없기 때문이다. 롬7장에서 바울은 자신의 연약성을 발견하고 이렇게 탄식한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7:24). 이렇게 탄식하던 그가 8장에 와서 선언한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나)를 해방하였음이라.’(8:1,2). 실패를 벗어날 수 없다고 탄식하던 그가 이렇게 해방(승리)을 선언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도우신 성령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성령에 대하여 말한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8:24). 영적 생활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우리는 연약한 존재다. 질그릇처럼 쉽게 금이 가고 깨지는 존재다. 호모불라(Homo Bulla)라는 학명처럼 훅 불면 금방 사라지는 거품과 같은 존재다. 이런 우리를 챙기시고 도우시는 분이 성령이다. 때문에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해도 싸이지 않는 존재, 사단이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존재,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강력한 존재가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앞의 내용과 관련하여 성령은 우리가 누구인지, 어떤 존재인지를 올바로 알도록 도우신다. 특히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알게 하신다. 우리가 절망적인 죄인이고, 스스로 그 죄를 극복할 수 없는 무기력한 존재라는 것을 아는 데서부터 신앙은 시작이 된다. 바로 이 사실을 알게 하고 인정하게 하시는 이가 성령이다. 앞에서 소개한 바울의 탄식도 그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성령께서 알게 하신 것이다. 성령을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되자 이런 탄식을 하게 된 것이다. 어느 분의 고백이다. 그는 예수님을 믿고서 한 가지가 달라진 것이 있는데, 전에는 다른 사람은 다 틀리고 자기만 옳은 줄 알았는데, 이제는 웬일인지 다른 사람은 다 옳고 훌륭하고 자기만 부족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두 가지 마음 밖에 없다고 했다. 누구를 보든 ‘미안한’ 마음이 든다는 것이다. 아내를 보아도, 아이들을 보아도, 교회에서 지체를 보아도, 직장에서 동료를 보아도 늘 미안할 따름이라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감사한’ 마음이다. 이것도 감사하고, 저것도 감사하고, 모든 것이 감사하기만 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곧 성령이 주신 생각이고, 또한 성령이 주신 마음이 아니겠는가! 예수를 잘 믿는 것이고, 제대로 믿는 것이다. 성령을 통해 자기의 연약함을 깊이 알게 되니까 주변 모두에게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 들고, 또한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을 갖게 된 것이다.
성령과 같은 스승이 되자!
‘인간은 교육을 통하지 않고는 인간이 될 수 없는 유일한 존재다.’ 라는 말이 있다. 교육 없는 인간이란 상상할 수 없다는 뜻이다. 살면서 여러 복이 있지만 가장 큰 복 중의 하나는 우리 인생에서 존경할 만한 스승을 만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 모두는 이미 이런 복을 누린 사람이다. 가장 존경할 만한 최고의 스승을 이미 만났기 때문이다. 그분은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시고, 또한 성령이시다. 특히 내적인 교사이시고 스승이신 성령은 우리 안에 우리와 함께 거하신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성령을 인정하고 성령께 구하는 것이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 공부하다, 직장에서 일하다, 사업을 하면서도, 사람을 만나다 마음속에 결정할 일이 있으면 기도하는 것이다. ‘성령이여, 제게 가르쳐 주소서.’ ‘제 안에 계신 성령이여, 저의 스승이여! 저를 도와주소서. 깨닫게 하소서. 인도하소서.’
아울러 교회에서 교회학교 교사로 구역에서 구역장과 권찰로 섬기는, 그리고 교육을 담당하는 모든 분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를 드린다. 여러분이 있어 오늘의 우리 교회가 있고, 교회의 다음 세대가 잘 준비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도 성령과 같은 스승이 되어 이 막중한 사명을 잘 감당해주기 바란다. 성령처럼 지체들과 늘 함께 하면서 그들이 주님의 소중한 사람으로 세워지도록 잘 도울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가르치고 있는 사람들에게 소중한 스승으로 기억되시기를 바란다. 특히 우리 교회 다음 세대들이 내 평생 존경하는 선생님, 마음속에 사모하는 스승을 우리 교회를 통해 만났다고 고백할 수 있는, 이런 영광의 주인공이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주님 앞에 서게 될 것이고, 주님은 세상에서 사는 동안 ‘너의 자랑과 영광이 무엇이냐’고 물으실 것이다. 그때 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 가르치고 섬겼던 사람들을 보이며. ‘바로 이들입니다.’고 말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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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youtu.be/nocpZnR8Wmw 874회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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