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으로부터 안전지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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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3,643회 작성일 24-02-20 10:51본문
사단으로부터 안전지대는 없다.
마4:1~11
2024. 2/18(사순절 첫 주일). 11:00
벌레를 잡아먹는 식물
벌레를 잡아먹는, 소위 ‘식충’식물이 있다. 보르네오 섬에 서식하고 있는 ‘네펜데스’(nepenthes)와 북미대륙에 서식하고 있는 ‘사라세니아’(Sarracenia)라는 식물이 그것이다. 네펜데스는 아름다운 꽃을 피워 벌레를 유인한다. 꽃의 아름다움에 취한 벌레가 꽃잎에 앉는 순간 벌레의 목숨은 끝장이 난다. 특수한 소화액을 내뿜어 벌레를 녹여버리기 때문이다. 반면 사라세니아의 무기는 꽃이 아니라 잎이라는 점에서 네펜데스와 다르다. 잎에서 단 꿀을 내뿜어 벌레를 유인하는 것인데, 그 꿀의 유혹에 말려들면 벌레는 목숨을 건지지 못하게 된다. 이들은 화려함과 달콤함을 무기로 벌레를 유혹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네펜데스와 사라세니아와 같은 여러 유혹의 도구가 있다. 그리고 이를 잘 활용하는 자가 사단이다. 사단은 네펜데스와 사라세니아처럼 때로는 화려함과 달콤함으로 유혹하고, 때로는 배고픈 사자처럼 맹렬하게 공격하기도 한다. 깨어있지 않으면 사단의 유혹과 공격에 넘어가 언제 멸망의 구렁텅이로 떨어질지 모르는 것이 인생이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이런 사단의 유혹에 무너지지 않고, 또한 사단의 공격에 효과적으로 맞서도록 늘 깨어있을 것을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수요일(2/14)부터 시작하여 주일을 제외한 부활절 전날(3/30)까지 40일을 예수님의 고난을 기념하며 묵상하는 ‘사순절’ 기간이다. 우리 교회는 이 사순절을 작년부터 한국 컴패션에서 주관하는 성경쓰기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금년에는 ‘예수를 봄’이란 주제로 주님의 탄생에서부터 부활까지 주님의 삶과 사역에 관련된 말씀을 쓰고 묵상하는 내용이다. 그래서 설교 역시 이런 내용에 맞추려고 한다. 주님은 세례 요한을 통해 세례를 받으신 후, 공생애 첫 시역으로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하셨다. 기도로 공생애의 사역을 시작하셨다는 뜻이다. 기도의 중요성을 몸소 보여주신 것이다.
기도로 시작하라!
성경을 보면 경건한 사람과 그 후손, 그리고 그렇지 않는 사람을 구분하는 하나의 선명한 기준이 있다. 혹시 그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것은 ‘하나님을 찾는 것’이다. 창세기에 아담의 자손 중에 경건한 후손의 시조라 할 수 있는 사람이 나온다. 그는 가인이 죽인 아벨을 대신하여 태어난 아담의 셋째 아들 셋의 아들 ‘에노스’다. 이 에노스와 관련된 매우 의미 있는 기록이 있다.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창4:26). 에노스 시대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을 찾았다.’, 혹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예배를 드렸다.’는 뜻이다. 이어 경건한 계보가 나온 것을 보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한 에노스로부터 경건한 후손, 곧 의인의 혈통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런 아름다운 영적 전통이 노아를 거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그리고 이스라엘의 황금시대를 열었던 다윗,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
세례 요한을 통한 세례가 주님의 공적 활동(공생애)을 공개적으로 알리는 신호탄이었다면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로 가셔서 40일 동안 금식기도를 드린 것은 첫 공적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주님께서 공생애를 기도로 시작하셨다는 뜻이다. 마치 방주에서 나온 노아가 가장 먼저 재단을 쌓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장소를 옮기면 먼저 한 일이 재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다윗이 먼저 하나님께 묻고 행동했던 것과 같다. 이와 같은 주님의 기도생활은 공생애 동안 습관처럼 계속되었다. 특히 제자선택이나 십자가를 지신 일과 같은 중요한 일들은 반드시 먼저 기도하셨다. 여기서 주님의 기도는 기도 이상의 의미가 있다. 주님은 결핍 때문에 기도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님의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한 것이었다. 즉, 주님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가장 우선순위에 두셨다는 뜻이다.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주님을 섬기는 사람이라면 기도의 중요성을 알고 주님처럼 무슨 일이든 기도로 시작해야 한다. 하루도 기도로 시작하고, 일도 기도로 시작하고, 공부도 기도로 시작해야 한다. 기도보다 앞서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연약한 존재이기에 주님의 도우심이 필요해서도 기도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위해 먼저 기도로 시작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경건한 습관이 되어야 한다.
기도의 현장까지 넘보는 사단
그런데 여기서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사단의 활동이다. 사단은 하나님과의 교제의 자리까지 넘보는 존재라는 것이다. 사단은 주님께서 금식하며 기도하시는 장소까지 찾아왔고, 기도하시는 주님을 시험하였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세 번이나 시험을 했다. 일반적으로 세 번의 시험을 세 가지 시험으로 해석을 하고 있는데, 의미를 확장하면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을 지속적이고 집요하게 시험한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에덴동산까지 찾아가서 첫 인류 하와를 유혹했던 사단은 주님께서 금식하며 기도하셨던 광야까지 찾아와서 시험을 했다. 소위 사단이 가지 않는 곳이 없고, 사단이 유혹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죄 없이 탄생한 하와부터 죄인 구원하러 오신 주님까지 시험한 사단이다. 그렇다면 죄 가운데 태어나 죄 중에 살고 있는 우리는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우리가 사단의 표적이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사실 지금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있는 이 예배의 현장에도, 예배를 드리고 있는 우리에게도 사단의 손길이 미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런 영적 위기의식과 경각심을 항상 가져야 한다.
이 세상에는 사단으로부터 안전지대가 없다. 사단은 하나님께서 최초의 인류에게 제공하신 가장 완전한 장소 에덴동산까지 드나들었고,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광야도 그의 활동 무대였다. 그러니 교회도 가정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뜻이다. 얼마든지 사단의 놀이터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사단으로부터 안전한 사람도 없다. 심지어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님에게까지 찾아와서 시험을 했다. 그러니 우리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뿐만 아니라 사단은 인간의 약한 고리를 너무 잘 알고, 그것을 공격한다. 주님께서 40일 금식으로 몹시 주리신 줄 알고, 또한 주님께서 돌로 빵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알고 돌로 빵을 만들어 먹으라는 그럴 듯한 제안을 했다. 이렇게 영악한 존재가 사단이다. 그러므로 깨어있어 경계해야 한다. 더 많이 기도하고, 더 깊이 기도하여 주님과 친밀함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삶이, 우리가 거하는 곳이 사단의 놀이터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래야 사단의 유혹과 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아내어 승리하는 신앙생활, 승리하는 인생이 될 수가 있다. 비록 사단이 주님께서 기도하시는 광야까지 찾아와서 유혹을 했으나 주님을 무너뜨리지 못하고 물러갔다. 대신 천사가 나아와서 주님께 수종을 들었다(11). 이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다. 우리 안에 갇힌 맹수는 공격은 할 수 있어도 해칠 수는 없다. 사단을 묶고 가두는 것이 기도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의 무릎을 접지 않는 한 사단은 우리를 무너뜨릴 수 없다는 뜻이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노아, 아브라함, 다윗과 같은 신앙의 위인들이 한순간에 무너진 이유를 안다. 그들이 기도의 무릎을 접을 때다. 어떤 이유인지 기도를 쉴 때 그들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유혹의 창을 닫으라.
플라톤의 제자 중에 ‘트로킬러스’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바다에 배를 띄워서 뱃놀이를 즐기는 사람이었다. 한번은 풍랑을 만나 배가 다 깨어져 죽을 뻔했다. 겨우 살아서 집으로 돌아온 그는 바닷가로 향하는 자기 집의 창을 다 막아버렸다. 어느 날 친구가 와서 왜 창을 막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 번 일을 계기로 바다에 가지 않기로 했는데, 창을 그냥 두었다가 바다를 보면 또 나가고 싶은 생각이 들까봐 막았다네.’ 사람마다 자기 마음을 유혹하는 시험의 창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 창으로 유혹을 받아 시험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트로킬러스처럼 이 시험의 창을 미리 알아서 단단히 막아버리는 것이 유혹을 이기는 지혜다. 우리 주변에도 우리를 유혹으로 이끄는 시험의 창이 많다. 우리 마음을 더럽게 하는 서적의 창을 비롯하여 좋지 않은 영상매체의 창, 쾌락의 창, 습관의 창, 욕심의 창, 명예의 창, 권력의 창, 우리를 더러운 곳으로 인도하는 친구도 그 창들 중에 하나다. 이런 창을 과감히 막아버리는 결단이 필요하다. 반면에 경건생활에 유익한 주님과의 교제를 친밀하게 만들어주는 기도의 창, 찬송의 창, 말씀묵상의 창, 감사의 창, 섬김과 봉사의 창을 활짝 열어야 한다. 시험의 창은 닫고 은혜의 창은 활짝 열 때 사단이 틈타지 못한 성령으로 충만한 삶이 가능해 진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유혹을 은근히 바라면서 닫을 창문을 오히려 슬쩍 열어놓고, 열어놓아야 할 창문을 굳게 닫고 살고 있지는 않는가? 사단의 유혹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 유혹에 빠진 삶은 결코 쉽지 않다. 엄청난 대가가 따르게 된다. 그러므로 시험의 창을 굳게 닫고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기 바란다. 반면에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의 창을 활짝 열어놓는 것이다. 그것이 곧 기도이고, 찬양이고, 말씀묵상이다. 오늘은 사순절 첫 주일이다. 사순절 주간에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죽음을 부활로 바꾸신 주님의 삶을 닮아 가기를 원한다. 지금 우리가 시도하고 있는 주님의 삶과 사역에 관련된 말씀을 쓰면서 묵상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이것이 시험의 창은 닫고 은혜의 창은 여는 일이다. 사단의 공격으로부터 안전지대를 확보하는 일이다. 주님처럼 집요한 사단의 시험에서 승리하는 비결이다. 사단을 결박하여 가두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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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youtu.be/uq3HsGx1WvI 1340회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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