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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서 아침 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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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6,461회 작성일 23-04-23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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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서 아침 먹어라!

21:1~14

2023, 4/23. 11:00 

밥 먹었냐?

우리말 중에 외국인들이 뽑은 가장 정겨운 말이 무엇인지 아는가? 외국인이 뽑은 가장 정겨운 우리말은 밥 먹었냐?혹은 밥 먹자!’ 라고 한다. 밥 한 끼도 제대로 먹기 어려웠던 시절, 먹고 사는 것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했던 시절에 안부인사로 이 말이 쓰이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식사 시간쯤에 만나면 인사와 함께 밥을 먹었는지 물어보고, 안 먹었다면 같이 식사를 하자며 권하거나 무슨 일이 있어 밥을 못 먹었는지를 물어본다. 우리에게 은 단순히 음식의 의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이 가진 따뜻한 정을 뜻한다. 더불어 밥심()이라는 말에도 담겨 있듯이 생활의 근본,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밥 먹었냐?’는 단순히 인사말이 아니라 마음이 담긴 말이다. 이 말은 특히 어른들이 가장 먼저 묻는 안부인사이기도 하다. 그런데 외국에는 밥 먹었냐는 인사가 없다. 만약 미국에서 ‘Have you eaten?’이라고 한다면 데이트 신청이나 조금 더 나아가서는 사생활침해라고까지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외국인이 가장 정겨운 말로 뽑았다는 것은 그들도 이것이 단순한 인사말이 아니라 정겨운 마음이 담긴 말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한국과 일본을 다녀와 본 한 중국 유학생이 한국학생이 일본학생보다 더 친절했다고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이유는 한국학생은 만날 때마다 밥 먹었는지를 물어봐주고 안 먹었다면 같이 먹자고 권하는 등 자신을 잘 챙겨주어서 좋았다는 것이다. 타국에 와서 혼자 공부하는 것이 힘들고 많이 외로웠는데 이렇게 챙겨주는 모습에 따뜻한 정을 느낀 것이다. 본문에도 부활하신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밤새 그물질로 허기진 제자들을 챙겨 따뜻한 식탁으로 초대하는 매우 흐뭇하고 훈훈한 모습이 나온다.

 

나 고기 잡으러간다!

본문은 부활하신 주님을 세 번째 만났을 때일어난 사건이다(14). 이것은 요한복음에서 제자들에게만 나타나신 횟수다. 이미 두 번이나 주님을 만난 베드로를 비롯한 7명의 제자가 그들의 옛 생활로 돌아갔다.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주님을 만나긴 했어도 전처럼 주님과 항상 함께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실망때문이고, 특히 베드로의 경우는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것에 대한 심한 자책감으로 인한 자격지심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오늘날도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주님을 떠나거나 교회를 떠난 사람들 대부분의 이유가 실망 혹은 자격지심 때문인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래서 베드로가 말했다.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3). 옛 생활로 다시 돌아가겠다는 선언이다. 그랬더니 다른 제자들(2)-도마, 나다나엘, 요한과 야고보, 다른 두 명의 제자-우리도 함께 가겠다.’(3)며 따라나섰다.

 

이와 같은 다른 제자들의 태도를 동조가 아니라 실망과 자책에 시달리고 있는 베드로를 돕기 위한 배려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그들이 함께 배에 타고 물고기를 잡았지만 그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했다(3). 3년 전에 주님을 처음 만났던 그날처럼 아무 것도 잡지 못했다(5:1~11). 그러니까 3년 전, 주님을 처음 만났을 때 일어났던 일이 똑같이 되풀이된 것이다. 어쩔 도리가 없어 돌아온 자리였는데, 그곳에서도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다. 첫째, 삶의 터전이 주님의 만나기 전, 곧 예전에 우리가 살던 곳이 될 수 없음을 알려주고 있다. 둘째, 주님을 만나기 전 삶의 방법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 셋째, 주님을 만나고도 예전의 삶을 고집한다면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의 삶은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이 되어야 하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아무튼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15:5)는 주님의 말씀을 통렬히 실감하게 하는 내용이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런데 바로 그 실패의 자리에 주님께서 찾아오신 것이다.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렸지만 주님은 항상 찾아오시는이시다. 낙심하여 고향 엠마오로 돌아가고 있는 제자들에게 찾아오셨고, 문을 안으로 걸어 잠그고 두려워 떨고 있는 제자들을 찾아오셨다. 불신과 의심에 사로잡힌 도마를 찾아오셨고, 본문에서는 옛 생활로 돌아가 실패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베드로를 찾아오셨다. 물론 성경에는 주님께로 나오라는 표현도 많다. 그렇지만 우리가 주님께로 나아가면 주님은 더 빨리 뛰어오셔서 우리를 맞아주신다. 마을 어귀에 들어선 탕자를 보고 그의 아버지가 맨발로 뛰어나가 맞이한 것처럼 말이다. 주님은 친히 이른 아침에 갈릴리 해변까지 찾아오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얘들아, 너희에게 물고기가 있느냐.’(5). 그들이 없다고 하자 또 말씀하셨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6). 그들은 주님이신 줄도 모르고 순종했고, 그 결과 많은 물고기(153마리)를 잡았다. 밤새 아무 것도 잡지를 못했는데, 주님의 말씀 한 마디에 만선을 하게 된 것이다. 차이는 있지만 이 역시 3년 전 주님을 처음 만났을 때 경험했던 일과 같다. 주님과 함께 하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충만한 인생, 곧 만선인생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일을 보고 가장 먼저 주님을 기억해낸 사람이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요한)였다. 그가 베드로를 향해 외쳤다. ‘주님이시라.’(7). 주님이시라 말에 베드로는 벗고 있던 겉옷을 입고 바다로 뛰어들었다(7). 주님을 먼저 알아차린 것은 요한이지만 행동은 베드로가 빨랐다. 잡은 물고기에는 관심도 없고 주님이 오셨다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가 처음 주님을 만났을 때처럼 배도, 동료도, 잡은 물고기도 뒤로하고 헤엄쳐서 주님께 가고자 했다. 다른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계산하지 않는 저돌성이다. 반면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거리가 불과 한 오십 칸(100미터)쯤 되므로 배를 타고 물고기가 든 그물을 끌고 왔다(8). 그러면 여기서 잠깐!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 중 어느 누가 빨리 해변에 도달했을까? 알 수는 없다. 호스킨스(Hoskyns)같은 신학자는 겉옷까지 입고 수영한 베드로보다는 배를 탄 제자들이 먼저였을 것이라고 단정한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누가 더 빨리 왔느냐가 아니다. 주님에 대한 태도다. 주님이시라는 말에 대해 반응하는 태도, 속히 주님에게 달려가고자 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이 모두를 베드로의 태도에서 볼 수가 있다. 주님은 일의 결과보다 마음의 태도를 소중히 여기신다. 우리 또한 주님이시라는 말에 베드로처럼 상황 고려하지 않고, 주변 눈치 살피지 않고, 손익계산하지 않고 주님을 향해 달려갈 수 있기를 바란다. 계산하지 않는 저돌성!우리가 베드로에게서 배워야할 태도다. 이런 태도로 주님을 따를 수 있기를 바란다. 사실 이런 사람이 주님의 사랑을 받고, 주님께 은혜를 입었다(삭개오, 열두 해 혈루증을 앓은 여인, 소경 바디매오 등).

 

와서 조반을 먹으라.

그들이 육지에 도달했을 때, 그곳엔 주님께서 마련해 놓으신 식탁(mensa christi)이 있었다. 따뜻한 숯불에서 생선과 떡이 자글자글 노릿 노릿하게 구워지고 있었다. 주님께서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계셨던 것이다. 주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와서 조반을 먹으라.’(12). 옛 생활로 돌아가 실패한 현장까지 찾아오신 것도 몸 둘 바를 모르겠는데, 따뜻한 아침식사까지 마련해놓으시고, 그 식탁으로 초대를 하신 것이다. 반가운 마음과 부끄러운 마음 사이에서 다들 긴장하고 우물쭈물하고 있는 사이에 주님께서 먼저 손을 내밀어주셨다.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13). 이 얼마나 아름다고 감동적인 모습인가? 밤새 그물질에 지쳐 있는 제자들, 그래서 허기진 그들에 대한 사랑이 묻어난다. 이보다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장면이 또 있을까싶다.

 

사실 책망을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들은 주님을 잊고자 옛 생활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주님을 떠나 잘 살아보겠다고 스스로 선택하고, 또한 자초한 일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들도 주님께 혼날 준비를 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들을 위하여 한번에 153마리나 되는 물고기를 잡는 기적을 체험하게 해주셨고, 그들을 위하여 아침을 준비하여 주시는 여전히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차마 식사에 참여하고 못하고 있는 그들에게 친히 떡과 물고기를 나누어주셨다. 그들의 허물을 책망하시지 않고 오히려 사랑으로 덮어주셨다. 사람은 언제 감동을 받을까? 언제 회복이 될까?당연히 야단맞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이해받고 사랑받을 때 감동을 받게 된다. 잘 한 것도 없는데 사랑으로 섬김을 받을 때 감동을 받는다. 조건 없는 사랑을 받을 때 회복이 된다. ‘와서 조반을 먹으라.이것은 집나갔다가 돌아온 자식에게 따뜻한 밥부터 챙겨준 어머니의 모습이다. 이와 같은 주님의 모습은 제자들을 용서와 용납과 이해, 그리고 사랑한다는 뜻이다. 사람은 이런 모습에 감동을 받고, 회복이 되고, 다시 일어서게 된다. 이런 사랑에 흠뻑 젖고 나면 목숨을 걸겠다고 결단을 하게 된다.

 

심리학자 칼 로저스(C.R. Rogers) 심리적으로 건강하기 위해서는 우선 ‘무조건적인 존중이 중요하다고 했다. 존중은 옆에서 바라보는 것도 아니고위에서 내려다보는 것도 아니다. 그저 상대방을 높이 보는 것이다. 대상을 높이는 것이다. 사람은 이렇게 누군가로부터 존중받는다고 여겨질 때 회복이 되고 건강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공감적인 이해상대가 내 마음을 알아주고, 내 뜻을 이해해주고, 내가 처한 상황을 충분히 공감해줄 때, 그래서 함께 아파하고, 함께 울어주고, 함께 기뻐해줄 때, 치료가 일어나고 건강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따뜻한 사랑으로 섬김을 받을 때 회복이 된다. 주님께서도 실망과 자책감으로 무너진 제자들, 특히 베드로를 이와 같은 방법으로 회복시켰다. 주님을 떠난 그들에게 주님께서 친히 찾아오셨고, 밤새 실패한 일을 성공하도록 만들어주셨고, 그물질로 허기진 그들을 위해 조반을 준비해주셨다. 미안해서 죄송해서 차마 수저를 들지 못하고 있는 그들에게 친히 떡과 고기를 떼어주셨다. 우리 또한 찾아오셔서 여전히 함께 하시는 주님을 체험하기를 바란다. 주님의 식탁에 초대받아 떡과 물고기를 나누어 주시는 주님의 넉넉한 사랑과 섬김을 체험하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베드로처럼 주님을 만나 뵙고자 하는 단순하고 계산하지 않는 저돌적인 열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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