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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새롭게, ‘보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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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7,243회 작성일 23-03-05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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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새롭게, ‘보내심

45:1~8

2023. 3/5. 11:00

내던져짐(Geworfenheit)과 던짐(antworfenheit) 사이

어느 철학자(하이데거)는 인간에겐 본질이 없다고 했다. 그냥 존재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또한 존재하고 싶어서 존재하는 것도, 태어나고 싶어 태어나는 것도 아닌 그냥 태어나진 것, 세상에 무작정 내던져진 존재(Geworfenheit)라고 했다. 마치 아무렇게나 던져진 돌멩이와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런 것도 같다. 사람은 자신이 태어날 집안이나 장소를 선택할 수 없다. 그저 던져지듯 어느 특정시대, 특정장소, 특정상황에서 태어난다. 다시 말하면 부모와 가족, 사는 사회, 습득하는 문화와 관습, 이 모든 것이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마련된 기존의 것이다. 나는 상사 도월이라는, 지금은 물속에 잠긴 산골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요즘말로 흑수저로 태어났다. 그렇지만 이것은 나나 내 부모의 의지나 선택과 전혀 상관없이 그저 그 속으로 던져진 것이다. 어려서 어머니에게 왜 나를 나았냐?’고 투정을 부리면, 어머니는 내가 낳고 싶어서 나았냐. 니가 그냥 나온 거지라고 대답했다. 이런 의미에서 철학자의 말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철학자는 또 말한다. 인간이 그냥 이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이긴 하지만 인간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있고, 자신이 선택한 미지의 미래를 향한 자신을 던질 수 있다고 한다. , 자기 자신을 던질 수 있는 존재(antworfenheit)라는 것이다다시 말하면, 그냥 내던져진 체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해서 그 방향을 향해 자기가 자신을 던지는 것이다비록 선택과 상관없이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거나 병에 걸리거나 사고가 났지만 그냥 그대로 가만히 남아있지 않고, 여기가 아닌이곳이 아닌다른 삶을 향해 자신을 던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삶의 의미나 가치, 평가는 이 선택과 결단에 따라 바뀌게 된다. 그래서 이제까지는 운명이었으나 지금부터는 자신의 선택과 결단에 따라 자신의 운명이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바로 이 내던져짐던짐’ 사이에 있는 존재라고 한다. 하지만 선택이 어렵다. 그냥 내던져진 존재다보니 주어진 목적이나 기능이 있을 수가 없고, 목적과 기능이 없으니 선택이 어려운 것이다. 그러니 인간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마치 정답이 없는 문제지를 받은 것과 같기 때문이다.

 

보냄을 받은 존재로 오신 예수님

그렇다면 사람은 정말 본질이 없이 그냥 존재하는 것일까? 목적도 가치도 의미도 기능도 없이 그냥 이 땅에 내던져진 존재일까? 그리고 선택과 결단으로 던진 삶에서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또한 내던져짐과 던짐 사이에 끼어 선택의 어려움 때문에 불안에 시달리며 사는 것일까? 성경도 이렇게 인간을 생각하고 있을까? 성경은 전혀 다르게 말씀하고 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이고, 인간의 불안은 내던져짐과 던짐 사이의 존재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참 존재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이라고 말씀한다. 이것을 성경은 라고 말씀한다(3). 또한 분명한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삼위 하나님의 진지한 협의에 따라 지음 받은 존재라고 말씀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선택과 결단에 의해 가치와 의미가 결정된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다. 문제는 인간의 타락으로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되어 그 목적과 의도를 잊어버린 것이고, 나아가 본질까지 상실하게 된 것이다. 아무튼 인간은 목적이나 의도가 없이 그냥 이 세상에 내던져진 것이 아니라 분명한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보냄을 받은 존재.

 

우리에게 이 사실을 알게 해주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요한복음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보냄을 받은 존재다.철학에서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한 내던져진 존재라고 하는데, 주님은 하나님에 의해 보냄을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다. 분명한 사명을 가지고 이 땅에 오셨다는 뜻이다. ‘내가 이 세상에 온 건 내 뜻을 행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 왔다.’(6:37,38). ‘보냄을 받은 자라는 이 고백은 예수님 자신의 실존적 삶을 이해한 방식인데, 자신이 누구며, 왜 태어났고, 무엇을 위해 왔는지를 분명히 말씀하신 것이다. 이렇게 말한 사람은 오직 예수님뿐이시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단순히 주님 자신의 실존적 삶을 이해하는 방식을 넘어 모든 인간의 실존적 삶의 방식에 대한 말씀이라는 것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20:21). 주님 자신이 보냄을 받은 존재이신 것처럼 제자들 역시 보냄을 받은 존재라는 것이다. 제자들 속에는 우리 모두도 포함이 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주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존재다.

 

Not being sold!(나는 팔려온 것이 아니다!)

예수님처럼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존재라는 것을 깊이 인식하며 살았던 사람이 본문의 주인공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 요셉이다. 그는 주님보다 2천년도 앞서 살았던 사람이다. 잘 알다시피 그의 삶은 참으로 파란만장했다. 형들의 미움을 받아 어린 시절 노예로 팔려, 이집트 사람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살이를 했고, 그곳에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고, 감옥에서 왕의 술 맡은 관원의 꿈을 해몽해주고 풀려나는가 싶었는데 그 대로 2년 동안 감옥에 방치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집트 왕 바로의 꿈을 해몽해주고 수직상승하여 단박에 이집트 총리가 되었다. 그 기간이 무려 10여 년의 세월이었다. 알고 보니 이 모두가 볼 수는 없었지만 세밀한 하나님의 손길, 곧 하나님의 섭리였다.

 

그리고 이렇게 크게 성공한 요셉은 약 20년 만에 자신을 사지(死地)로 내쫓은 형들과 극적으로 만나게 되었다. 한 마디로 형들에게 복수를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그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성공을 복수대신 용서와 섬김의 기회로 삼았다. 본문이 이를 잘 보여준다. 기근 때문에 양식을 구하러 온 요셉의 형들은 비로소 요셉의 정체를 알게 되었고, 그의 정체를 알게 된 그들은 놀라서 말을 잃었다. 대제국 이집트의 총리가 자신들이 노예로 팔아넘겼던 바로 그 요셉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죽었다싶어 머리를 들지도 못하고 두려워 떨고만 있었다. 그때 그가 말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5).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7,8). 그는 여기서 자신이 형들에 의해 팔려온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니 자책하지 말라고 위로한다. 대신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았다고 3번이나 말을 하고 있다. 형들의 악행을 하나님의 섭리로 해석하고 받아들인 것이다.

 

But being sent!(나는 보냄을 받았다!)

이것은 요셉의 자기 정체성에 대한 고백이자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신앙고백이다. 그래서 본장(45)을 요셉의 고백장(告白章)이라고 한다. 자신은 팔려온 것이 아니라 보냄을 받았다는 것이다.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먼저 이집트로 보냈다는 것, 특히 형들과 형들 자손의 생명을 보존하시려고 보냈다는 것이다. 이는 자신의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백이다. 그가 노예로 죄수로 기가 막힌 세월을 보내면서도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벼락출세하여 대제국의 총리가 되어도 자신에게 행한 형들의 악행을 용서하고, 오히려 그들과 그들의 가족까지 거둬 잘 섬긴 이유 즉, 복수가 아닌 용서와 섬김의 기회로 삼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악조차도 선으로 바꾸시고 생명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를 알았고, 보았고, 믿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억울함이나 악함에 대한 심판도 구원도 상도 모두 하나님이 주시기 때문이다. 또한 위기에서 자기가족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먼저 보냄을 받은 존재라는 자기 정체성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을 품을 필요도 없고, 복수를 할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용서하고 섬기게 된 것이다.

 

보냄을 받은 자는 사명자다!

한 총각이 기도를 했다. 자기 마을에서 제일 예쁜 처녀와 결혼하게 해주시면 절대 바람피우지 않겠다고, 만약 바람피우면 자기를 그날로 데려가도 좋다고. 그리고 그는 예쁜 처녀와 결혼했다. 살다가 바람을 한번 피웠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뒤로 몇 번 더 바람을 피웠다. 10년 후, 거친 바람을 만나게 되었다. 비행기를 타고 있었는데 비행기가 크게 흔들렸고, 결혼 전 하나님께 기도했던 것이 생각났다그렇지만 그 비행기에는 100명쯤 타고 있었고, 하나님이 설마 다 죽이실까 생각했다. 그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내가 너 같은 놈 100명 모으느라 10년이 걸렸다.’ 우리는 설마 설마하면서 죄를 짓고 산다. 죄를 짓고도 아무 일도 없으니까 계속 그렇게 산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 세고 계시고, 다 보고 계시고, 반드시 계산하신다. 우연은 없다. 그렇게 보일 뿐이다. 그래서 스스로 속는 것이다.

 

우리는 우연히 이 땅에 내던져진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과 섭리 가운데, 소중한 사명을 가지고 보냄을 받은 존재. 살면서 다시 새롭게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것이 바로 이것이다. 나는 보냄을 받은 존재다!’이것이 우리의 정체성이고, 존재의식이다. 이를 알고 깨닫는 것이 은혜이고, 또한 믿음이다. 그래서 은혜를 받은 믿음의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사명자로 믿고,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찾고, 그 사명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였다. 우리 삶의 영원한 모델이신 우리 주님이 그랬다. 요셉이 그랬고, 바울이 그랬고, 제자들이 그랬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는 결코 그냥 내던져진 존재가 아니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우연히 지금 이 삶의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사명을 주어 보내셔서 지금 이 삶의 자리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지금 이 삶의 자리에 보내신 뜻이 무엇인지 묻고 찾아야 한다. ,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로서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묻고, 그 사명을 찾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인생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 수가 있다. 물론 사람마다 성격이 다른 것처럼 사명도 다르다. 그렇지만 모든 성도에게 공통된 사명이 하나 있다. 그것은 영혼을 사랑하고, 영혼 섬기고, 영혼을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흔히 위대한 사명이라고 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존재로서 각자의 사명에 충실하면서 무엇보다도 위대한 사명을 잘 감당하기 바란다. 그래서 해의 영광을 상급으로 받는 우리 모두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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