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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새롭게,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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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7,535회 작성일 23-01-29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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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새롭게, ‘

6:1~8

2023. 1/29. 11:00

가장 맛있는 것과 가장 싼 것

탈무드에 나온 이야기다. 어느 날, 남편이 아내에게 시장에 가서 맛있는 것을 사오라고 했다. 아내는 소의 혀를 사왔다. 며칠 후, 남편이 또 말하기를 오늘은 가장 싼 것을 사오라고 했다. 아내는 또 소의 혀를 사왔다. 남편이 물었다. ‘어째서 가장 맛있는 것을 사오라고 했을 때 혀를 사오더니, 가장 싼 것을 사오라고 했을 때도 혀를 사왔소.’ 아내가 대답했다. ‘친절한 말, 사랑스러운 말, 은혜로운 말, 이런 아름다운 말을 듣는 것보다 더 맛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혀를 사왔습니다. 가장 싼 것, 가장 쉬운 것, 아무 생각 없이 쉽게 할 수 있는 싸구려 행동이 바로 말입니다. 그래서 또 혀를 사왔습니다.’ 이렇게 아내가 지혜를 담아서 대답했다. 가장 귀한 것도 말이고, 가장 잘못되기 쉬운 것도 말이다.

 

 

야고보서는 온 몸을 더럽히는 것이 혀’(3:6)라고 했다. 여기서 더럽히다.’(defile)의 원어적인 의미는 물들이다.’(stain)는 뜻이다. 혀가 곧 온 몸에 대한 지배력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무엇이든 물이 들면 그것을 빼내기가 쉽지 않다. 옷에 물이 들어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데 하물며 우리 마음에, 정신과 영혼에 물이 든 것은 쉽게 지울 수가 없다. 입술의 말이 우리 몸과 마음에 물을 들게 만든다. 물론 좋은 말, 선한 말, 은혜로운 말로 물이 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지만 악한 말, 독한 말로 물이 들면 참으로 심각한 일이다. 실제로 주변에서 독한 말로 물든 마음을 평생 지고 간 사람을 볼 수가 있다. 얼마나 안타까운 모습인가? 말이 그토록 중요하다. 입술을 잘 관리하여 말을 잘 사용해야 한다.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잘 구분하고, 말을 해야 할 때와 하지 말아야 할 때를 잘 구분해야 한다. 거기에 축복과 승리의 관건이 있다. 말은 상황을 좋게도 만들고, 나쁘게도 만든다. 적절한 때에 적절한 말을 하는 사람이 성공의 1순위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말, 은혜로운 말, 살리는 말을 하려면 입술이 새롭게 되어야 한다. 향기 가운데는 아름다운 말보다 더한 것이 없고, 악취 가운데는 악한 말보다 더한 것이 없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본문은 유대나라 웃시야라고 하는 왕이 죽었을 때 선지자 이사야의 영적 경험에 대한 말씀이다. 흔히 이사야의 소명에 대한 말씀이라고 한다. 웃시야는 52년 동안을 유대나라를 잘 다스렸던 훌륭한 왕이었다. 그런 훌륭한 왕이 죽었다. 게다가 이사야는 왕족이었고, 왕궁에서 일하는 관료(궁중사가)였다(대하26:22, 32:32). 그러니 나라의 장래를 염려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이 문제로 기도하던 중 환상을 보게 되었다. 이 환상을 통해 그는 세 가지 체험을 한다. 첫째는 성전에 가득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된다(1~4).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하늘과 그 영광으로 충만한 땅을 보게 된다. 이는 진정한 왕은 하나님이시고, 하늘과 땅을 다스리시는 영원하신 만왕의 왕이시라는 것, 그런데 왕이신 그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임재해 계신다는 것이다. 왕의 죽음으로 염려하는 이사야에게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둘째는 자신의 올바른 정체성을 확인하게 된다(4). 자신의 본래성(originality)을 깨닫게 된 것이다. , 거룩하신 하나님을 통해서 본 자신은 부정한 사람이었고, 살아남을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셋째는 천상회의를 엿듣게 된다(8). 천상회의가 열렸는데,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를 엿듣고 있던 이사야가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하고 자원하고 나섰다. 그래서 그가 선지자로 소명을 받게 되었다.

 

 

여기서 생각해 보려고 하는 것은 두 번째다. 이사야는 하나님을 보고 자신을 보았을 때 진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게 되었다. 인간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이는 자신에 대한 지식을 가질 수 없다. 이는 존 칼빈의 유명한 명제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먼저고. 하나님을 알아야 나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조금 낭만적인 모습이지만 어린 시절 시골집에서 아침에 일어나면 문틈 사이로 햇살이 방안으로 길게 비쳤다. 그러면 부모님이 화들짝 놀라며 아이고, 방안에 먼지 좀 봐라! 빨리 방문 열라고 소리쳤다. 사실 밤새 그 먼지 속에서 잘만 잤다. 그런데 햇살 때문에 드러난 먼지를 보고서 이제야 놀란 것이다. 햇살이 들어오기 전에 방안의 먼지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나 자신을 보고 나를 아는 것 아니다. 나를 아무리 보아도 나만 가지고 나를 알 수가 없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만 내가 누구인지, 어떤 존재인지, 현재 내 상태가 어떤지를 알 수 있다. 이사야가 그랬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보고나니 자신의 추한 모습, 부끄러운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탄식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5a). 그리고 그 이유로 이렇게 외쳤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사람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5b). 자신이 이제 망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가 입술이 부정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부정한 사람 중에 살면서 부정한 입술이 습관화, 생활화, 문화화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신도 부정하지만 부정한 환경에 영향을 받아 부정하게 되었음을 고백하는 내용이다.

 

 

왜 입술인가?

우린 여기서 이사야가 부정한 몸, 부정한 발, 혹은 부정한 손이라고 하지 않고 부정한 입술이라고 말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일반적인 의미로, 이는 우리의 입과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이 그 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말은 인격이고, 믿음이고, 운명이다. 말이 곧 그 사람 자신이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야고보서 저자가 온 몸, 곧 우리의 인생을 더럽히는 것, 다시 말하면 죄로 물들이는 것이 혀라고 했다. 그래서 말에 실수가 없으면 온전한 자라고 했다. 그만큼 입이,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이 중요하고 영향력이 크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사야는 부정한 입술이란 표현을 사용한 것이고, 그 부정한 입술을 때문에 망하게 되었다고 탄식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사야 개인적인 의미로, 이사야는 선지자로 부름을 받을 사람이다. 선지자는 입술로, 그 입술에서 나오는 말로 사역을 하는 사람이다. 입술이 부정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올바르게 전할 수가 없다. 진리를 말하지 못한 부끄러운 사역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또한 거짓을 일삼는 백성에게 진리의 말씀을 전파하려면 입술의 부정이 더욱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어느 분의 글을 읽으면서 가진 생각이다. 현대인에게 경건의 기준이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죄의식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잊은 사람의 공통점이 죄의식 결여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친밀한 사람의 공통점은 철저한 죄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 심리학을 비롯한 문화나 사상에서 죄의식을 부정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들은 실체도 없는 죄를 강조해서 죄의식을 품게 만들고, 그래서 사람들의 심리를 왜곡시킨다고 우리 기독교를 공격한다. 그래서 심각한 온갖 죄악은 날로 증가하고 있는데, 죄인은 없는 것이 이 시대의 특징이다. 이런 시류에 편승해서 교회에서도 죄를 적극적으로 말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성도에게 부족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죄의식이다. 죄에 대한 고백이다. 죄의식과 고백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혹은 하나님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볼 때 갖게 되는 생각이고 태도다. 그러므로 죄의식이 경건생활의 중요한 척도다. 이를 잘 보여준 것이 본문이고, 본문의 주인공인 이사야다. 하나님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본 이사야는 자신의 죄에 대해 몸서리를 치며 외쳤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그런데 이사야가 부정한 입술을 치유받고 선지자로 부름을 받게 된 것은 이와 같이 죄의식에서 비롯된 고백의 입술이 새롭게 열렸기 때문이다. 죄도 죄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죄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죄를 진지하게 고백하는 입술이 열려야 한다. 바로 여기서부터 새로운 살 길이 열리고, 형통의 길이 열린다. 개인의 부흥, 교회의 부흥, 공동체의 부흥이 시작이 된다. 성경 안팎에서 일어났던 부흥운동을 살펴보면 금방 확인할 수가 있다.

 

 

개구의식(開口儀式)

고대 이집트의 장례문화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우상숭배 문화에서 개구의식’(開口儀式), 입 열기의식이란 것이 있었다. 이집트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죽은 자가 저 세상에 가서 말을 못하게 될 것을 걱정했다. 그래서 죽은 자의 입을 숯불로 지져주면 입이 트이게 되고 저 세상에서 벙어리로 살지 않을 것으로 믿었다. 그래서 입 열기의식이 생겨났다. 이러한 의식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우상숭배 문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우상은 나무나 돌과 같은 무생물로 만들어진 것이니 당연히 그 안에는 생명이 없다.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입 열기의식을 행했는데, 이 의식을 통해 우상의 귀가 열리고, 입이 열리고, 이제 말 못하는 우상은 그들의 기도를 듣고, 그들에게 신탁을 해주는 존재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 이 의식을 통해 나무나 돌이 신으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사야가 경험한 것과 매우 유사하다. 이사야가 자신의 부정한 입술의 죄를 통렬히 고백하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때 하나님을 모시고 있던 스랍 하나가 재단 숯불을 집어다가 그의 입을 지졌다. 그러면서 선포했다.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7). 그러자 부정한 입술이 깨끗해지고 사명자의 입술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부정한 입술이 닫히고 사명자의 정결한 입술이 열리게 된 것이다. 아무튼 재단에서 가져온 숯불을 입에 대자 부정한 것들이 제하여졌고, 정결한 입술이 열리게 되었다. 불은 성경에서 자주 성령을 상징한다. 실제로 성령이 불처럼 임하여 말이 변하고 입이 열린 사건이 성경에 나온다. 오순절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2).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는 120명의 사람들에게 불과 같은 성령이 충만하게 임했다. 성령이 임하자 나타난 첫 번째 사건이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이 방언을 하게 되었다. 방언은 말이다. , 신령한 언어다. 신령한 입술이 열린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하나님을 찬양하는 입술,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입술, 목숨을 걸고 예수님을 전파하는 입술이 열리게 되었다. 새롭게 열린 입으로 예루살렘을 진동하게 만들었다. 우리에게도 금년에 이런 은혜가 임하기를 기도하자! 입이 열려서 주님을 뜨겁게 찬양하고, 간절히 기도하고, 어디에서나 공개적으로 신앙을 고백하고, 주변에 주님의 복음을 담대히 전파할 수 있기를 바란다. 성령의 불로 우리의 부정한 입술이 지져져서 입이 새롭게 되고, 새롭게 열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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