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능력, ‘살리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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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12회 작성일 25-07-13 16:14본문
말씀의 능력, ‘살리는 말씀’
겔47:1~12
2025. 7/13 11:00(성령강림 여섯째 주일)
왕과 사형수
성경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왕과 반역을 일으켰으나 실패해서 사형선고를 받은 사형수가 있었다. 사형수는 왕이 성경을 사랑하는 줄 알고 왕에게 호소했다. ‘왕이시여. 저는 반역을 일으켜 처형을 기다리고 있는 사형수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사형을 당하기 전에 성경을 꼭 한번 읽고 싶습니다. 헛된 일만 일삼다가 성경도 한번 읽지 못하고 죽게 된 것이 너무 안타깝고 후회가 됩니다.’ 성경을 사랑한 왕은 사형수의 기특한 요청을 기꺼이 들어주었다. 그리고 얼마의 시일이 지나 왕이 사형수에게 성경을 다 읽었는지 물었다. 그러나 사형수는 다 못 읽었다고 했다. 상당한 기간이 지났음에도 성경을 다 읽지 못한 이유를 물었다. 사형수가 대답했다. ‘성경 구절은 많은데, 하루에 한 구절씩 연구하고 묵상하며 읽다 보니 아직 다 읽지를 못했습니다.’(성경 전체 장과 절; 1,189장, 31,102절). 왕은 그가 단순히 성경을 읽지 않고 매일 한 구절씩 연구하고 묵상하면서 읽는다는 말에 큰 감동을 받아 이런 명령을 내렸다. ‘그러면 집에 가서 성경을 다 읽고 죽어라.’ 그를 석방시켜 준 것이다. 성경이 한 사람의 사형수를 살려준 것이다. 왕이 사형수를 이렇게 석방시킨 것은 적어도 성경을 연구하고 묵상하며 읽는 사람이라면 새롭게 변화되었다고, 새롭게 변화되리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생명의 말씀
그렇다. 하나님은 생명의 주인이시다. 하나님은 모든 생명을 지으셨고 주관하시는 분이시다. 모든 생명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 하나님이 모든 생명의 원천이라는 뜻이다. 성경은 창세기부터 시작하여 요한계시록까지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의 이야기다. 그래서 성경을 가리켜 ‘생명의 책’이라고 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하여 생명의 역사를 이루셨다. 특히 말씀으로 세상을 지으셨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창1:3). 여기서 ‘이르시되’는 ‘말씀하시기를’이다. 창1장에 이 말이 6번 반복되고 있다. 그리고 말씀하신 그대로 모든 것이 이뤄졌다. 이렇게 말씀으로 없는 것을 있게 하고, 텅 빈 곳을 채우고, 무의미를 의미로, 혼돈을 질서로, 죽은 것에 생명을 불어넣은 것이다. 즉,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채우시고, 유지하시고, 다스리신 것이다. 이와 같은 말씀의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는 생명의 근원이 하나님의 말씀이란 뜻이다.
체코 출신의 작가 프란츠 카프카(F. Kafka)의 말이다.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부수는 도끼여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굳은 마음을 깨부수는 도끼가 될 뿐 아니라 우리를 살리는, 살게 하는 유일한 텍스트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부지런히 읽고 공부하고 묵상하고 실천해야 할 이유다. 요즘 한국교회의 위기를 말하는 사람이 많다. 너무 단순화시킨 것 같지만 사실 한국교회 위기는 ‘말씀의 위기’라고 할 수 있다. 말씀이 곧 생명인데, 이 생명의 말씀을 외면한 것이 문제다. 물론 많은 사람이 말씀을 읽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 말씀과 함께하는 삶에 늘 실패하고 있다. 말씀을 살아내지 못함으로써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 지금 우리가 당면한 위기의 실체다. 이런 의미에서 ‘말씀의 능력’이란 주제를 가지고, 당분간 말씀에 어떤 능력이 있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이 시간에는 살리는, 혹은 살게 하는 능력이 있는 말씀에 대하여 은혜를 나누려고 한다.
성전 문지방 밑에서 시작된 물
신약은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고 선언한다(요1:1). 말씀이 곧 ‘생명의 원천’이라는 뜻이다. 살아있는, 그래서 모든 것을 살리는 것이 말씀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말씀의 능력을 잘 보여주는 것이 본문이다. 본문은 에스겔 선지자의 환상이다. 살리고, 살게 하고, 더욱 풍성하게 하는 말씀의 능력과 특징을 잘 보여준다. 본문은 40장부터 시작된 새로운 예루살렘성과 성전에 대한 환상의 일부인데,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에 대한 환상이다. 성전 문지방 밑에서 시작된 작은 물줄기가 뻗어갈수록 발목에서 무릎으로 허리까지 차오르고, 다음에는 헤엄칠 만큼 물이 깊어지더니 사람이 건널 수 없는 강이 되었다. 작은 물줄기가 뻗어갈수록 물이 점점 많아져 강을 이루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신약적 의미로 해석하면 주님의 겨자씨 비유처럼 하나님 나라의 확장성, 복음의 확장성, 은혜의 확장성을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이 물의 영향력이다. 이 물로 인하여 강 좌우편에 나무가 자라고, 이 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니 바닷물이 살아나서 모든 생물이 살고, 고기가 심히 많아지고, 어장이 형성되어 어부가 모여들고, 강가에 마을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강 좌우편에서 자란 나무는 각종 열매를 맺어 먹거리를 제공하고, 그 잎사귀는 약재료가 되었다. 이 모두가 성전 문지방 밑에서 흘러나온 물 때문에 일어난 역사다.
물은 곧 생명을 의미한다. 물과 생명이 깊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류의 모든 문명이 강을 끼고 시작이 되었고, 도시도 마을도 공장도 모두 물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세워졌다. 하나님이 세우신 최초의 마을 에덴동산도 네 강의 발원지에 있었다(창2:10~14). 우리 인체의 80%가 물로 되어 있다. 물이 생명유지의 필수조건이다. 그런데 주님은 자신이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는 물이고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요4:14)이라고 하셨다. 주님이 생명이시고, 영생을 주시는 분이라는 뜻이다. 요한은 이 주님을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요1:14)이라고 했다. 주님이 말씀이라는 뜻이다. 주님이 말씀이라면 말씀은 곧 ‘생수’(물)인 것이다. 그리고 생수인 이 말씀은 생명이다. 그래서 물처럼 생명을 살리고, 생명을 살게 하고, 생명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것이 말씀이다. 본문에서 에스겔 선지자가 본 환상은 말씀의 능력(영향력)을 잘 보여준다. 작은 물줄기가 큰 강을 이룬 것처럼 작은 말씀의 씨앗이 나중에는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큰 강과 같은 능력으로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주변에 온갖 혜택을 주게 된다(7~12). 강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이 놀라운 말씀을 주님은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다. 문제는 이와 같은 말씀의 능력이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하여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면 문제는 우리에게 있다. 말씀을 신뢰하지 않거나 우리 안에 말씀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말씀의 능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말씀을 마음에 두라!
시편저자는 이런 고백을 했다.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시119:11). 여기서 ‘두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차판’(צפן)이라고 하는데, 이는 비밀로 하기 위해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숨겨 놓다.’는 뜻이다. 소중한 물건을 다른 사람이 찾을 수 없는 비밀한 곳에 숨겨두는 모습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보물처럼 그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마음 깊숙한 곳에 차곡차곡 쌓아둔다는 뜻이다. 달리 말하면, 말씀을 세상에서 가장 귀하게 여긴다는 고백이다. 그래서 이 말씀을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고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마음 깊은 곳에 쌓아두게 된 것이다. 마음에 깊이 품고, 마음에 새기는 것이다. 이것이 말씀의 능력이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하여 나타나게 하는 비결이다.
그러면 어떻게 말씀을 마음 깊은 곳에 차곡차곡 쌓아둘 수 있을까? 옛날부터 말씀을 마음에 쌓아두는 것을 ‘거룩한 독서’(Lectio Divina)라고 했다. 이 거룩한 독서에는 ‘관찰’(Observatio-읽고 듣고 암송하고 연구하는 것), ‘묵상’(Meditatio), ‘기도’(Oratio)의 단계가 있다. 이것을 줄여서 묵상이라고 한다(시1:2). 묵상은 말씀을 마음에 두는 것이다. 말씀을 마음에 쌓아두고, 마음에 새기는 훈련이 묵상이다. 그래서 성경은 물론 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이 묵상을 강조했다. 크리소스톰은 ‘거룩한 책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단순히 서가에서 침묵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묵상을 통해 우리 마음에 새겨두기 위해서다.’고 했다. 말씀은 장식용이 아니라 묵상을 위해 주셨다는 것이다. 말씀을 읽고, 읽은 말씀을 기초로 묵상해야 한다. 말씀을 깊이 묵상할 때 넘치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하고, 말씀의 능력도 경험할 수 있다. 사막에서 자라는 선인장의 뿌리는 길게는 100미터 이상 뻗어있다고 한다. 물을 얻기 위하여 뿌리를 길고 깊게 뻗은 것이다. 이처럼 말씀을 사모하며 묵상하는 사람, 그 마음 깊은 곳에 생명의 말씀을 많이 쌓아둔 사람에게 주님의 은혜가 넘치게 된다. 우리 안에서 죽은 것과 죽어가는 것이 다시 살아나고, 잠자는 것이 깨어나게 된다. 병든 것이 치료되고, 무너진 것이 회복된다. 그래서 절망이 소망으로, 낙심이 위로로, 두려움이 용기로 바뀌게 된다. 이런 소중한 인생의 빛나는 보배를 말씀을 통해 얻을 수 있다. 우리 모두 이 보배를 누리는 주인공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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