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묻는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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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242회 작성일 25-03-30 12:55본문
하나님께 묻는 인생
대상10:13~14
2025. 3/30 11:00
잃어버린 보석
역대기는 구약성경 중에서 가장 나중에 기록된 책이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서 기록된 책이다. 바벨론 포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정신적, 신앙적으로 큰 충격을 주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정체성을 흔들어 놓았던 사건이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잊어 버리셨다.’라고 탄식하며 스스로 절망하였다.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사49:14~16). 역대기는 이런 백성에게 민족의 자존과 선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세우기 위해 기록한 책이고, 그들의 고민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담은 책이다.
역대기의내용은 긴 족보 이야기(대상1:~9:)와 왕들의 종교개혁 이야기가 중심이다. 특히 기도를 통해 국가를 위기에서 구하고, 예배 부흥을 통해 국가의 번영을 이루고 민족의 자존을 만방에 떨쳤다고 기록한다. 즉, 민족의 자존심과 정체성을 회복하는 길은 신앙회복, 곧 예배회복에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우리가 살길은 무너진 제단을 다시 쌓고, 꺼진 제단의 불을 살려서 예배를 회복하는 것, 그래서 신앙을 회복하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 원리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나 사회도 그렇게 희망적이지 않다. 특히 성도와 교회의 위상은 바닥을 치고 있다. 교회가 부흥하기는커녕 타종교로 빠져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 원인이 예배에 있다. 성도 개인과 교회에서 예배의 삶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는 온갖 장식품으로 화려하게 빛나지만, 정작 빛나야 할 보석인 예배를 잃어버렸다.’ 우리는 이와 같은 토저(A.W. Tozer) 목사의 탄식을 새겨들어야 한다. 이 잃어버린 보석인 예배를 회복하는 것이 개인도 교회도 사회도 소망이 있다.
사울의 실패이유
본문은 통일왕국 시대의 첫 번째 왕 사울의 실패를 소개하고 있는 말씀이다. 본문은 9장까지 긴 족보 이야기에 이어 이스라엘의 번영을 이뤘던 다윗 시대로 넘어가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우선 여기서 이렇게 사울 왕가의 비참한 최후와 함께 실패의 이유를 다루고 있는 것은 다윗의 승승장구를 이야기하기 위함이다. 다시 말하면, 사울의 실패를 통해 이스라엘이 패망한 이유를 간략하게 압축해서 설명하고, 이어서 회복의 방법을 제시하기 위함이다. 본문은 사울이 실패한 이유를 하나님께 범죄했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그 내용을 두 가지로 이야기하고 있다.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 것’(13a)이고, 다른 하나는 ‘신접한 자에게 가르침을 청하면서도 하나님께 묻지 않는 것’(13b~14a)이다. 결국 이것은 하나다. 곧 하나님께 묻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묻지 않으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가 없는 것이고, 또한 하나님이 아닌 다른 존재(영매)를 찾아가 묻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께 대한 심각한 범죄인 것이다.
이는 마치 집안에 부모님이 계신데 집안의 대소사를 부모님이 아니라 이웃집 아저씨 아주머니와 의논한 격이다. 만일 이것이 현실이라면 부모님이 얼마나 섭섭하고 참담하겠는가? 사울이 그랬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사울 이야기는 단순히 사울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이스라엘이 망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의 왕이시고, 아버지이시고, 남편이신 하나님께 묻지 않고, 듣도 보도 말하지도 못하고 우마차에 실려 다니는 우상을 찾아가 물은 것이다. 그 결과 참담한 패망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다윗의 승승장구
하나님께 묻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구’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뜻한다. 즉,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이다. 이를 히브리어로 ‘다라쉬’(דָּרַשׁ)라고 한다. 이 단어는 역대기의 핵심을 잘 반영해 주고 있다. 가깝게는 사울이 실패하여 그 왕권이 다윗에게 넘어간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울이 하나님께 다라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구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께 기도하는 생활, 하나님을 예배하는 생활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다윗은 부지런히 하나님을 다라쉬했다. 시132편에, 하나님의 임재 상징인 언약궤를 향한 다윗의 열정이 잘 드러나 있다. ‘그가 여호와께 맹세하며 야곱의 전능자에게 서원하기를 내가 내 장막 집에 들어가지 아니하며 내 침상에 오르지 아니하고 내 눈으로 잠들게 하지 아니하며 내 눈꺼풀로 졸게 하지 아니하기를 여호와의 처소, 곧 야곱의 전능자의 성막을 발견하기까지 하리라 하였나이다.’(시132:2~5).
역대기에서도 다윗의 이런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가나안 정복 이후 500여 년 동안 정복하지 못했던 예루살렘 정복한 이야기를 간단하게 다루고 있다(11:4~9). 나라의 수도요, 종교의 중심지가 될 참으로 중요한 이야기를 단지 5절로 아주 간단하고 다루고 있다. 반면에 언약궤를 옮긴 이야기는 3장에 거쳐 기록하고 있다(13,15~16). 이는 그가 하나님의 언약궤, 곧 하나님을 얼마나 소중히 여긴 사람인지를 잘 보여준다. 이것이 그가 사울과 다른 점이다. 다윗이 이토록 하나님의 언약궤에 진심이었던 이유가 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궤를 옮겨오자. 사울 때에는 우리가 궤 앞에서 묻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매’(13:3). 하나님께 묻기 위함이다. 결국 이런 열심과 태도가 기도생활과 예배생활로 이어졌다. 블레셋이 쳐들어왔을 때다(14장). ‘다윗이 하나님께 물어 이르되’(10). ‘다윗이 또 하나님께 묻자온대’(14). 적이 침략했을 때 적을 맞아 싸워서 백성을 지키는 것이 왕의 중요임무다. 그런데 그는 이 당연한 일도 먼저 하나님께 물었다. 그리고 순종했다. ‘다윗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하여’(16). 기도 외에 그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또 ‘예배’다. 그는 항상 예배에 목말라했다. 시편에 있는 그의 시들에서 이러한 그의 태도가 자주 나온다. 그는 자식에게 왕좌를 빼앗겼을 때, 빼앗긴 왕좌보다 하나님께 예배하지 못한 것을 더 안타깝고 가슴 아프게 여겼다. 이런 다윗을 두고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를 ‘내 마음에 합한 자’라 했다고 했다(행13:22. 참고 삼상13:14).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란 늘 하나님을 찾고, 구하고, 의지하는, 곧 하나님께 묻는 사람을 뜻한다.
사실 역대기는 하나님께 부지런히 묻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다윗과 솔로몬을 비롯하여 남왕국 왕들 중에서도 선한 왕들의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그것도 그들이 부지런히 하나님을 찾고 구하고 의지한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에 대한 메시지는 분명하다. 누구든지, 어떤 상황에서든지 하나님을 다라쉬하는 사람은 형통하리라는 것이다. 즉, 현실이 비록 암담해도 다윗처럼, 여러 선한 왕들처럼 하나님을 다라쉬하면 다윗-솔로몬 시대의 영화를 반드시 회복하리라는 것이다. 이런 소망의 메시지가 역대기의 주제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이 더욱 짙어가는 현실을 사는 우리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다윗처럼 하나님께 묻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다. 다윗은 적이 쳐들어왔을 때도, 끌려간 가족으로 인해 다급할 때도, 사울이 눈앞에 있을 때도 하나님께 물었다. 당연한 것도 묻고, 묻고, 또 묻고 시도했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도 항상 예배를 먼저 생각했다. 오늘날 우리가 자주 넘어지는 이유는 하나님께 묻지 않고 자기의 생각, 자기의 소견대로 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전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하고 사는 성도가 놀라울 정도로 많다. 성도로 사는 것이 아니라 종교인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믿는 사람 같지만 믿음보다는 종교 행위만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도 당신께 묻기를 원하신다. 형통의 길, 회복의 길은 하나님께 묻는 데 있음을 기억하자. 부지런히 묻고, 자주 묻고, 당연한 것도 물으면서 살자. 그리고 예배를 사모하고 예배에 헌신하자.
찌꺼기 인생의 대역전
미국 시카고에 있는 어느 한 교회에서 세 살짜리 여자아이의 장례식이 있었다. 먹지 못해 굶어 죽은 아이였다. 그런데 이 불쌍한 아이의 장례식에 남루한 옷을 입고 충혈된 눈으로 찾아온 알코올 중독자가 있었다. 그는 사람들이 기도하는 틈을 타 죽은 아이의 신발을 벗겼다. 그것을 팔아 술을 마시기 위해서다. 그런데 그 사람은 죽은 아이의 아버지였다. 20년 후, 시카고 제일 장로교회에서 수많은 성도 앞에서 한 사람이 외치고 있었다. ‘저는 죽은 딸의 장례식에서 딸의 신발을 훔쳐다가 술을 마신 파렴치범입니다. 이런 만물의 찌꺼기 같은 나를 다시 살려주시고, 일꾼으로 삼아주신 분은 위대하신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가 바로 시카고의 부흥사 멜 트라더목사다.
그는 술에서 깬 후, 패륜적인 자신에게 깊이 절망하여 자살을 하려고 했다. 그때 전도자들이 나타나 그를 강권하여 무디 목사가 인도하는 부흥에 참석하도록 했고, 거기에 예수님을 만나 변화가 되었다. 그리고 신학을 공부하여 목사가 되었다. 그는 자기처럼 인생의 막장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부흥사가 되었다. 하나님은 찌꺼기와 같은 사람도 아름답고 존재로, 영광스러운 주님의 일을 담당하는 일군으로 변화시키시는 놀라운 분이시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날마다 다라쉬해야 할 이유다. 그러면 개인도, 가정도, 교회도, 나라도 회복이 되고 부흥이 된다.
관련링크
- https://youtu.be/Pms4IB1Bq8I 42회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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