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지(地) 탐방9. ‘스코틀랜의 랜드마크, 에딘버러 캐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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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23,146회 작성일 15-07-25 16:15본문
종교개혁지(地) 탐방9. ‘스코틀랜의 랜드마크, 에딘버러 캐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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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앤드류스에서 오전 일정을 마치고 곧바로 우중충한 회색빛 도시, 향수를 자극하는 백파이프 소리가 은은하게 들리는 곳, 에든버러로 다시 돌아왔다. 말이 탐방이지 번갯불에 콩 볶듯이 소위 주요 지점에 ‘발도장’만 찍고 온 셈이다. 향후 일정도 마찬가지였다. 한정된 시간에 넓은 지역(가고 오는 날을 제하면 9일 동안 5개국을 방문)을 다니다보니 불가피한 일이었다. 에딘버러에 도착하여 먼저 현지식(食)으로 점심식사(스코틀랜드 전통음식 Haggis라는 양 내장 요리)를 하고, 스코틀랜드의 랜드 마크 ‘에딘버러 성(城)’을 방문했다.
에딘버러 성 정문에서
북해의 포스만 남쪽 해안에 위치한 에딘버러는 수도를 퍼스(Perth)로부터 옮겨온(1437년) 이후 옛 스코틀랜드 왕국(1707년 잉글랜드가 합병하여 그레이트 브리튼 왕국이 되기 전)의 수도였고, 현재에도 중심도시다. 여기에 년 간 백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 에든버러 성이 있다. 현무암 암반에 붉은 사암으로 만들어진 이 난공불락 요새는 마법의 성처럼 잿빛으로 덮여있다. 이는 역사의 풍상에서 흘린 수많은 사람들의 피를 연상하게 했다. 성 입구에는 제복을 입은 근위병이 총을 메고 우스꽝스러운 발걸음으로 보초를 서고 있었는데, 관광객을 위해 모델이 되어주기도 하여 이들 앞은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이 성은 7세기에 브리튼인을 격파한 노섬부리아 왕국의 에드윈 왕이 세웠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따서 ‘에드윈 성’이라 불렀다. 에든버러라는 명칭은 바로 여기서 온 것이다. 이 성은 방어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요새였으나 점차 증축되면서 한때는 왕궁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오랜 역사 동안, 특히 잉글랜드와 여러 전투를 겪으며 점령당하고 다시 탈환하는 수난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 바로 이 곳이다. 정문에는 스코틀랜드의 영웅, 영화 「브레이브 하트」의 윌리엄 웰리스와 유명한 반녹번(Banockburn) 전투에서 승리하여 잉글랜드로부터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이룬 로버트 부르스의 동상이 있다. 그리고 여기서 꼭 봐야할 것 중에 하나로 ‘One O’clock Gun’이라고 한다. 주일을 제외한 매일 오후 한 시에 ‘뻥’하고 대포를 쏜다. 그래서 1시가 가까워지면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든다. 1861년부터 리스항구의 선박에 시간을 알려주기 위해 발사되었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너무 늦게 도착한 바람에 그 멋진 광경을 보지 못했다.
왼쪽 상단은 마가렛 예배당 강단이고
하단은 외부 모습이다.
그리고 우측은 예배당 안에 있는 마가렛 모습의 스테인글라스다.
성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은 11세기에 만들어진 아주 작은 성 마가렛 예배당이다. 가장 오래된, 그리고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 이 예배당은 셰익스피어 작품의 주인공 맥베스가 죽인 던컨 왕의 며느리 마가렛을 위해 1076년에 건축된 것이다. 신앙심이 깊은 그녀는 노르만족의 침입으로 스코틀랜드에 피신 와서 말콤(Malcolm III)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남편과 그의 맏아들이 잉글랜드와의 전투에서 전사하게 되자 그 비보를 전해들은 그녀는 결국 화병에 죽고 만다. 그녀가 죽은 뒤, 그녀의 막내아들 데이비드 왕이 어머니의 신앙심을 기려 이 예배당을 건축한 것이다. 예배당 안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유난히 아름답다(한쪽은 성 마가렛의 모습이고, 다른 한쪽은 스코틀랜드에 최초로 복음을 전한 콜롬바의 모습이 새겨져 있음). 곳곳에 그 슬프고도 긴 전쟁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 이 성에 이렇듯 애틋한 모정을 간직한 곳이어서 내게 특별했다. 이제는 역사의 격랑을 뒤로 하고 묵묵히 여행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찬바람을 맞으며 성을 거니는 내 모습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와서 천년 시간의 틈새에 끼어 있는 것 같았다. 아무튼 오랜 세월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 혹은 내어주지 않고 지켜내기 위해 피흘린 이 역사의 현장을 돌아보며 지금도 여전히 소중한 것을 갖기 위해, 소중한 것을 지켜내기 위해선 철저한 희생이 요구된다는 교훈을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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