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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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436회 작성일 25-03-23 12:58본문
잘못된 만남
왕하8:16~19
2025. 3/23 11:00
향내가 나는 사람, 비린내가 나는 사람
부처께서 어느 날 제자와 함께 길을 떠나게 되었는데, 길을 가다 길에 떨어져 있는 종이를 보게 되었다. 부처께서 제자에게 그 종이를 줍게 하여 그 종이가 무엇에 쓰였던 것 같냐고 물었다. 그러자 제자는 이리저리 살펴보고 냄새도 맡더니 아마도 향을 쌌던 종이 같다고 했다. 종이에서 향내가 났기 때문이다. 계속 길을 가다가 이번에는 새끼토막을 발견했다. 이번에도 부처께서 제자에게 새끼토막을 줍게 한 다음 같은 질문을 했다. ‘그 새끼토막이 무엇에 쓰였던 것 같냐?’ 그러자 제자는 생선을 묶었던 것 같다고 했다. 새끼토막에서 생선비린내가 났기 때문이다. 그러자 부처께서 제자에게 말했다. ‘사람도 이와 같다. 원래는 깨끗하였지만 살아가면서 서로 만나는 대상에 따라 향기가 날 수도 있고, 비린내가 날 수 있다.’ 만남의 중요성을 참으로 실감나게 해주는 일화다.
인생은 만남의 연속이다. 그리고 인간은 만남의 존재다. 산다는 것은 만난다는 것이다. 누구를만나고, 무엇을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과 내용과 평가가 달라진다. 어떤 부모, 어떤 친구, 어떤 스승, 어떤 책, 어떤 직업, 어떤 지도자, 어떤 종교를 만나느냐에 따라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이 결정된다. 사람은 서로 만나고 소통하며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을 통해 성장하고 변화한다. 만남은 우리를 더 넓은 세상으로 이끄는 문을 여는 열쇠이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경험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이렇게 우리의 삶을 풍부하고 다채롭게 만들어 주는 것이 만남이다. 그런데 이런소중한 만남 속에 나를 향기가 나도록 만들어 주는 좋은 만남이 있고, 비린내처럼 악취가 나도록 만들어버리는 잘못된 만남도 있다. 잘못된 만남을 통해 자신과 자손과 나라까지 심각한 해악을 끼친 한 사람이 나온다. 그 주인공은 남 유다의 네 번째 왕이었던 ‘여호사밧’이다.
여호사밧의 치명적인 실수
여호사밧은 남 유다 아사 왕의 아들로, 매우 신실하고 좋은 왕이었다. 그는 백성을 하나님의 길로 인도하고, 영적 부흥을 일으키는 데 중점을 두었다. 특히 ‘여호와께서 판결하신다.’는 자기 이름의 뜻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사회적 공의와 신앙적 회복에 힘썼다. 그는 부왕 아사의 종교개혁을 계승하여 유다 땅에서 바알과 아세라 등 우상을 제거하고,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을 제도화하였다. 그는 유다 전 지역에 레위인과 제사장, 지도자를 파견하여 말씀을 가르치도록 했다. 이는 구약시대에 보기 드문 신앙교육 운동이다. 그로 인하여 유다는 영적으로 부흥했고, 경제적 군사적으로도 강성해졌다. 그래서 열왕기 저자는 여호사밧을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왕상22:43).
그렇지만 그의 통치 중에 치명적인 것이 하나 있는데, 북 왕국 이스라엘의 악한 왕 아합과 동맹을 맺은 일이다. 그것도 자신의 아들 여호람과 아합의 딸 아달랴를 결혼시켜 혼인동맹을 맺은 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오히려 좋은 일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갈라진 이후 두 나라는 지금까지 심한 갈등관계에 있었다. 그런데 이제 형제끼리 싸우지 말고, 형제가 서로 힘을 합해 아람, 블레셋, 에돔, 모압, 암몬과 같은 주변의 적을 물리치자고 맺은 것이었다. 물론 동맹 자체를 문제 삼을 수 없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그 대상이다. 아합도 그렇지만 그의 아내 이세벨은 희대의 악녀였다. 그들은 절대 함께해서는 안 될 악인이었다. 이세벨은 두로와 시돈의 제사장이자 왕인 엣바엘의 딸(왕상16:29-30)로, 열렬한 바알 숭배자였고, 남편 아합을 바알 신봉자로 만들고, 사마리아에 바알 사당과 아세라 목상을 세우도록 했다(왕상16:31-33). 그래서 북 왕국을 우상 천지로 만들었던 장본인이다. 이런 자들을 가까이하여 그들의 딸 아달랴를 며느리로 삼은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었다. 아달랴 역시 그녀의 어머니 못지않게 악한 사람이었다(대하24:7).
시아버지인 여호사밧이 죽고 남편 여호람이 왕이 되자, 남편을 충동하여 남편의 다섯 형제를 죽이게 했고, 온 나라를 북 왕국(아합의 집)처럼 우상 천지로 만들었다. 여호사밧의 개혁을 한순간에 쓸데없는 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그녀의 남편이 왕이 된 지 8년 만에 죽고,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는데, 그 역시 왕이 된 지 1년 만에 북 왕국 예후의 쿠데타에 휘말려 죽게 된다. 이를 빌미로 그녀는 자신의 손주들을 다 죽이고 정권을 잡는다. 이 상황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아하시야의 어머니 아달랴가 그 아들의 죽은 것을 보고 일어나 왕의 자손을 모두 멸절하였으나’(왕하11:1). 다윗 왕가의 혈통을 끊어버리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남(유다) 왕국의 여왕으로 군림하였다. 이런 끔찍한 일이 여호사밧의 잘못된 만남에서 비롯되었다. 이 때문에 그가 25년 동안 이뤘던 업적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나라는 우상 천지가 되고, 자녀와 자손이 끔찍하게 살해되고, 다윗 언약의 불씨마저 사라질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 모두가 잘못된 만남의 결과다. 그러니 삶에서 만남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할 수가 있다.
좋은 만남을 위하여
프랑스의 시인이며 우화작가 장 드 라퐁텐의「전갈과 개구리」에 나온 내용이다. 전갈 한 마리가 강을 건너기 위해 강가에 서 있었다. 마침 개구리가 다가왔다. 전갈이 개구리에게 자신을 업고 강을 건너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개구리가 물었다. ‘네가 나를 독침으로 찌르지 않는다는 걸 어떻게 믿지?’ 전갈이 말했다. ‘너를 찌르면 나도 익사할 텐데 왜 그렇게 하겠어?’ 전갈의 이 말을 듣고 개구리는 전갈을 업고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그런데 강 중간쯤에서 전갈이 개구리의 등에 독침을 박았다. 둘 다 물속으로 가라앉는 와중에 개구리가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왜 나를 찔렀지? 너도 죽을 텐데.’ 전갈도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말했다. ‘그것이 내 본능이니까!’ 우리가 아무나 함부로 만나선 안 된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우화다. 여호사밧이 간과한 것이 바로 이 점이다. 유한한 우리다. 시간이나 열정이나 마음을 의미있고 가치있는 만남에만 쏟아부어도 모자란 인생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기도하라!
우선 좋은 만남, 복된 만남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인생은 만남이고, 만남은 축복이다. 만남은 변화의 기회다. 좋은 만남은 우리를 좋은 쪽으로 변하게 해준다.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계기가 된다. 우리는 주님의 제자들을 통해 확인할 수가 있다. 제자들 대부분이 소외의 땅 갈릴리 출신이고,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이런 그들이 주님을 만나 주님의 제자가 되고, 주님께 훈련을 받아 천국의 기둥이 되고, 세상을 변화시킨 주인공이 되었다. 성도치고 베드로나 요한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들이 주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어찌 이런 영광을 누릴 수가 있었겠는가? 여러분은 하루를 시작하면서, 혹은 직장이나 일터로 출발하면서 어떤 기도를 하는가? 지금까지 기도하지 않은 사람은 내일부터 기도하기를 바라고, 기도할 땐 반드시 만남을 위한 기도를 추천한다. 좋은 만남을 위해, 의미있고 값진 만남을 위해 꼭 기도를 드리고 하루를 시작하기 권한다. 자녀를 위한 기도도 마찬가지다. 좋은 만남을 통해 하루가 의미있는 일들로 가득 채워지도록 기도해 주기 바란다. 이렇게 드리는 예배도 물론이다. 특히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이다. 그저 시간만 때우는 예배가 아니라 영과 육이 회복되고 소생하는, 하나님과의 뜨거운 만남을 경험하는 예배가 되도록 기도해야 한다. 예배의 질을 결정짓는 것은 외적인데 있지 않다. 하나님과의 만남에 있다.
만남을 잘 가꾸라!
사람은 가까이하는 사람에게 물들기 마련이다. 감사하는 사람, 경건한 믿음의 사람, 잘 섬기는 사람, 순종하는 사람과 함께하면 나도 그와 같이 된다. 기도하는 사람과 함께하면 나도 기도하게 되고, 찬양하는 사람과 함께하면 찬양하게 된다. 예배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과 함께하면 나도 예배를 소중히 여기게 된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다. ‘내일을 이야기하는 사람과 만나라.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자라는 식물과 대화하는 사람을 만나라.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될 것이다.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과 만나라. 풍요롭게 살아갈 것이다. 선행을 베푸는 사람과 만나라. 많은 사람을 얻게 될 것이다. 아무리 작은 일도 소중히 여기는 사람과 만나라. 가슴 따뜻한 이들이 몰려들 것이다. 언제나 밝게 웃는 사람과 만나라. 멀리 있는 복이 찾아오게 될 것이다. 기도하는 사람과 만나라.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법을 알게 될 것이다. 말씀을 즐거워하는 사람과 만나라. 믿음의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함께하는 사람, 내가 만나는 사람이 주님 앞에 복 받은 사람인가를 보기 바란다. 주님을 가까이하는 사람, 주님께 은총을 입은 사람인가를 보기 바란다. 그가 주님께 복 받은 사람이라면 그와 함께하는 나도 복을 받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가 주님을 가까이하는 사람이라면 그와 함께하는 나도 주님을 가까이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가 주님께 은총을 입은 사람이라면 그와 함께하는 나도 주님의 은총을 입은 사람이 될 것이다. 이런 것이 좋은 만남이다. 이런 만남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 더 이런 만남을 잘 가꾸어 가야 한다. 정원사가 없는 정원은 없다. 가꾸지 않는 정원은 이미 정원이 아니다. 그저 잡초만 무성한 황무지일 뿐이다. 정원은 가꿀수록 아름답다. 만남도 마찬가지다. 정원을 가꾸고, 텃밭을 가꾸고, 나무를 가꾸듯 만남도 가꿔야 한다. 정성을 쏟아 잘 가꿔야 한다. 그래야 좋은 만남, 복된 만남, 행복한 만남이 된다. 일상에서 좋은 만남의 복을 듬뿍 누리도록 기도하기 바라며, 만남을 잘 가꾸어서 복된 인생, 행복한 인생이 되기를 바란다.
관련링크
- https://youtu.be/vv-VaNC7qss 235회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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